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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318화 (318/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18화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1)

정수의 파편.

얼마나 강한지, 파편만으로도 지금껏 만나왔던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존재.

화(火)의 정수, 수(水)의 정수, 목(木)의 정수, 금(金)의 정수.

나는 그들이 눈을 뜬 것을 느꼈다.

왜 그런 걸까?

여기가 정령계이기 때문일까?

‘같은 원소 계열이라?’

아니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나서?

[수(水)의 정수가 비웃습니다.]

[고작 실레스틴 따위 처리도 못 하면서 무슨 영령 사용자냐며, 그냥 나가 뒈지는 게 어떻냐고 진심으로 묻습니다.]

콰가가가가가……!

실레스틴의 어마어마한 바람의 폭풍이 내 전신을 두들겼다.

‘제길.’

기세가 두 배로 강해졌다.

그 말은.

언니, 제아가 참전했다는 것.

‘이거. 진짜 안 될 것 같은데요?’

한 마리도 버거웠는데, 두 마리라고?

이건 그냥 죽으라는 말이잖아?

[화(火)의 정수가 버티라 말합니다.]

[목(木)의 정수가 부드러운 미소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금(金)의 정수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상황을 바라봅니다. 짝! 짝! 짝! 손뼉을 칩니다. 아무나 이겨라!]

아니, 이 싸람들이?

정수들은 이번에 도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큰일인데.’

내 눈동자가 흔들렸고, 등 뒤엔 식은땀이 가득 찼다.

질지도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워야 했다.

‘그래, 오히려 잘 됐어.’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정수에게 의지해서 상황을 해결하면, 당장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순 없다.

No Pain, No Gain.

본래 시련이란, 힘들면 힘들수록 그 가치가 있는 법 아니던가!

‘해보자.’

내가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입술을 세게 깨물며 다짐했다.

끝까지 맞서 싸운다.

그리고 더욱 강해진 채로 살아남는다.

[수(水)의 정수가 피식 웃습니다.]

[방금 생각은 살짝 제법이었다 합니다.]

[그나저나, 금(金)의 정수가 다들 느꼈냐 묻습니다.]

[수(水)의 정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토(土)가 놈…… 이곳은 토(土)가 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세계라 합니다.]

토?

그러면 토의 정수?

여기 정령계에 다른 정령의 파편이 있다고?

내가 귀를 쫑긋했다.

그럼.

다들 저 토(土)의 정수 때문에 눈을 뜬 건가 보네.

[화(火)의 정수가 정신 차리라 합니다.]

[신경 쓰지 말고 눈앞의 적에 집중하라 합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고요.’

다가와 손을 휘저으며 바람 폭격을 날리는 실레스틴의 입에 창날을 쑤셔 넣었다.

콰아앙!

하지만, 별 타격이 없다.

녀석들의 움직임은 꼭 바람과도 같아서, 아무리 찌르고 때려도 얄밉게 피해버린다.

‘정령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기엔 애매해.’

그렇다면?

내가 눈을 번뜩였다.

계약자인가 뭔가를 노리면 되는 거잖아?

제아는 날 감싸주고 있으니, 넘어가 주고.

수아?

그래, 넌 좀 맞아야겠다.

화르륵!

창이 이번엔 몽둥이로 바뀌었다.

누군가를 팰 때 딱 좋은 무기.

창을 찌르거나 검으로 베는 것보다는 역시 몽둥이로 패는 게 상대에게 가장 큰 수치를 가져다줄 수 있다.

‘어차피 이제 어떤 무기든 파괴력은 다 비슷하니까.’

“흐아아압!”

생각하기 무섭게, 스슷! 그림자를 밟았다.

기합을 내지르며 수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 어딜!

실레스틴이 풍압을 생성해 나를 밀어냈지만, 내 시선은 오직 하나.

수아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쿠구구구……!

내 몸에 자리 잡고 있는 기력과 독무(毒霧)가 꿈틀거렸다.

‘휘두른다.’

콰가가가가!

내 몸이 수만 번 연습했던 투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만술(萬術).

비기(祕技).

독섬(毒閃).

몽둥이에서 튀어 나간 녹색섬광이 수아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실레스틴이 뿜어내는 풍압은 이걸 융화하고도 남으니까.

언제나처럼, 비기 하나를 더해줘야지.

콰가가가가!

나는 몽둥이를 든 그대로 내달렸다.

만술(萬術).

비기(祕技).

무진(武進).

몽둥이로 펼치는 연격이 융단폭격처럼 수아에게 쏟아져 나갔다.

“꺄아아악!”

기겁한 수아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틀었다.

- 건방진 놈이 누굴 건드느냐!

- 막아주마!

쓔아아아아아!

엄청난 바람에 순간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집중하여 하나하나 튕겨냈다.

콰가가가가강!

바람에 저항하며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그리고 결국.

“뒈져라!”

퍼어어억!

미약하지만, 몽둥이 끝이 수아의 복부에 닿았다.

“커헉!”

수아가 통증을 느끼는지, 배를 부여잡은 채 눈알을 크게 뜬다.

아프냐?

겨우 그거로?

내가 실레스틴들한테 맞은 건 그거의 수천 배야, 인마.

하지만.

나와 수아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 몸이 쏟아지는 바람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는 것이다.

젠장.

기력이란 기력을 거의 다 퍼부은 것 같은데, 겨우 한 방?

아쉬웠다.

과연 성좌급 정령이라는 건가?

‘좀 더 팼어야 하는데.’

내가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아무리 세졌다 한들, 성좌급 둘을 상대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 제법이었지만, 거기까지다.

- 이제. 그 이름을 입에 담은 대가를 치르거라!

콰가가가가가!

두 실레스틴의 몸에서 엄청난 거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쿨럭!”

온몸에 압박이 가해졌다.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숨이 쉬어지지도 않았다.

공기가 차단되고, 피부가 짓눌렸다.

살갗이 자꾸 밖으로 밀려 나가려 했고, 뼈에서는 뚜두둑 소리가 났다.

“……빌어먹을.”

SSS급 둘을 어떻게 이기냐?

갑자기 나타난 용 두 마리와 별다른 것 없는 녀석들.

그래, 녀석들은 그냥 재앙이었다.

솔직히 여기까지 버틴 게 장할 정도다.

지구에 그 어떤 랭커를 가져다 놔도.

이번 던전의 난이도를 말해주면 까무러치지 않을까?

‘아.’

마왕은 예외인가?

그는 마계에서 무려 5년을 버틴 자이니까.

아니, 솔직히 마왕도 놀랄 거다.

그분도 거기서 맨날 상급 마왕(SSS급)들이랑 뒹굴고 있는 건 아닐 테니.

“크흐윽!”

내가 완전히 무력화되자, 실레스틴 둘이 의기양양하게 접근했다.

완전히 전투 불능이 되었다 파악했음인지, 눌리는 풍압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죽을 정도에서 견딜만할 정도로.

나는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제아 쪽 실레스틴.’

그쪽에서 날 죽이길 원치 않고 있다.

그저 제압만 하고 싶어 할 뿐.

만약, 그녀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면, 난 정말 녀석들의 말처럼 갈기갈기 찢어서 바람 폭포 속에 던져졌으리라.

“퉤.”

끓어오르는 가래를 옆에 뱉어냈다.

시뻘겠다.

피가 나온다는 것은, 이미 내부가 다 진탕되었다는 것.

다나가 보고 싶었지만, 다나는 여기에 없다.

씨발.

“그래.”

내가 눈에 힘을 준 채, 실레스틴들을 올려다봤다.

“싸움은 너희들이 이긴 것 같고, 하나만 묻자.”

진심으로 궁금하니까.

“왜, 그 유이사라는 이름에 그렇게 반응하는 거냐?”

- 제발!

- 제발 그 이름 좀 입에 담지 마라!

- 닥쳐, 닥치라고!

어후.

그니까, 왜?

- 그냥 죽여라! 저놈은 답이 없다! 정령왕께서 나서기 전에 처리하는 게 우리에게도 좋을 거라고!

“죽이는 건 안 돼요!”

전투를 지켜보던 제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답답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당신! 제발 좀 그만해요! 기껏 살려놨더니, 왜 자꾸 죽으려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답답했는지, 이를 강하게 악물며 눌러 말하는 제아.

에휴.

너도 답답하지?

미안하지만, 나도 답답해.

일단, 힘이 전부 빠진 내가 몸을 대자로 뻗었다.

바람 폭포 위로는 지랄 맞게도 잘 빠진 예쁜 하늘이 보였다.

휘이이잉!

그 푸르른 하늘을 풍경으로, 무언가 투명하면서도 뽀얀 얼굴이 거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굉장히 매끄러운 달걀형의 얼굴.

녹색의 긴 머리칼과 눈동자.

‘예쁜데?’

그녀와 한 2초 정도?

눈을 마주치고 있을 찰나,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

‘누구지?’

그것보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벌떡!

대자로 뻗었던 내가 다시 황급하게 허리를 세우자, 먼저 다른 이들의 표정이 눈에 보인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제아와 수아가 시야에 담겼고.

그리고…….

“어?”

그 막강하고 공포스럽던 실레스틴들마저 경악하는 낯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뭐야, 이거?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제아 쪽 실레스틴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시, 실피드 님? 여기까지 어쩐 일로……!

- 지금은 안정을 취하셔야……!

불안에 떠는 표정으로 말을 하는 녀석들.

저들이 실피드를 바라보는 눈빛을 표현하자면 딱 그거였다.

웬 얌전한 광견(狂犬)이 언제 또 미쳐 날뛸까 불안해하는 느낌?

그런 나의 시야에 메시지가 하나 딱 떴다.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를 조우합니다.]

와우.

[위대한 업적을 이뤄냅니다.]

[축하합니다!]

[기력이 1,000 증가합니다.]

“……어?”

고작 보는 것만으로도 깡 기력이 1,000씩이나 증가한다고……?

얼마나 사기적인 존재면 그래?

‘어쨌든.’

그렇다.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인간형의 초절정 미녀.

요정이라기보다는 천사에 더 가까울 것 같은 존재가 바로.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라는 거지?

* * *

“……너희는 아직도 나를 애 취급하는구나.”

정령왕, 실피드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실레스틴들을 바라봤다.

“내 분명 말하지 않았느냐. 그때와는 다르다고. 유이사는…… 이제 다 잊었다고.”

씁쓸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실피드.

그녀의 기운은 장난이 아니었다.

“…….”

바람 구역에 더 이상 바람이 불지 않았다.

공기의 이동조차 허용하지 않을 만큼, 잠잠해졌다.

하지만, 적막은 또 다른 숨 막힘을 불러일으켰다.

왜, 태풍의 중심부인 ‘눈’은 날씨가 맑고 비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딱 그러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 구역을 모두 장악해 버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용?

용도 이 실피드란 존재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성좌급 위의 존재가 있다면, 이런 존재이지 않을까?

‘서럽네.’

문득,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첫째는 매개체 던전 난이도를 이따위로 만들어놓은 전지전능하신 누군가에게 빅엿을 날리고 싶다는 마음.

둘째는 이 거대한 우주 앞에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에 대한 무력감.

‘그렇구나, 이것이…….’

전율했다.

지금의 내 경지에서 실피드는 그야말로 바람의 신(神)이자 절대자.

“유이사에 관해 물었다지?”

단 한 마디.

나를 향한 한마디에, 슬쩍 일어난 순풍이 내 가슴을 조여 맸다.

내 모든 능력이 다 부질없어지는 무력감이 전신을 관통했다.

[수(水)의 정수가 지랄도 정도껏 하라고 합니다.]

[하긴, 한낱 벌레가 포식자인 개구리를 보면 저런 감정이 들 수도 있는 건가? 생각합니다.]

[화(火)의 정수가 시끄러우니, 닥치고 있으라 합니다. 사용자에겐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니까.]

내 시야로 떠오르는 수(水)의 핀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발언이기도 한데.

놀랍게도.

나는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정수 입장에서는 저런 정령왕도 한낱 개구리라 생각하는 거잖아?’

[수(水)의 정수가 껄껄 웃습니다. 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자빠졌담?]

내 뒤에 있는 존재가 훨씬 더 위대하다.

그게 지금은 엄청난 위안이 되는 것이다.

예쁘게 생기신 정령왕.

나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예, 정령왕님.”

그러고는 입을 열어 똑바르게 말해줬다.

“정확히는 위대했던 정령사 유이사 스톰트리. 그 존재의 한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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