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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320화 (320/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20화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3)

휘잉, 휘이잉!

따스한 햇볕 아래로 산들한 바람이 불어왔다.

‘와아.’

바람궁.

실피드의 영역에 들어온 제아는 속으로 감탄사를 내질렀다.

우선 바람이 끝내줬다.

시원함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실피드의 바람은 마치 영혼 곳곳을 깨끗하게 씻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그 끔찍했던 공포의 바람이 이렇게 기분 좋게 다가올 수도 있는 거구나.

다음은 바람궁 그 자체의 광경이 아름다웠다.

넋을 잃을 정도로.

수풀과 암벽이 우거진 절경 위, 허공에 지어진 아름다운 궁전.

그 밑으로 내려오는 수십 개의 ‘바람 폭포’.

“후우웁!”

제아가 저도 모르게 그 기운을 들이마셨다.

바람 폭포에서 수양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정령 친화력이 충만한 기운이 폐를 가득 채웠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동생 수아 역시 넋과 혼이 빠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바람의 정령사라면 누구나 그럴 거다.

이곳을 괜히 성지(聖地)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휘이잉!

바람의 정령답게 이동은 굉장히 빨랐다.

실피드가 몇 번 손을 휘젓자, 어느덧 사방이 절경으로 이루어진 궁전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궁전 옥상에는 커다란 별(☆) 모양의 문양이 있었고.

실레스틴들은 자연스럽게 각 문양의 끝자리에 위치해 정령왕의 명을 기다렸다.

제아와 수아도 그쪽으로 이동했다.

‘이건 뭐지?’

‘도대체 어떻게 돼가는 거야?’

그녀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서로 죽일 듯 싸웠던 상대가 이제는 바람궁 옥상에서 정령왕과 서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가며 담소를 나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어쨌든.

그녀들도 입장을 허가받았으니,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상태.

온 정신을 집중해, 정령왕과 남자의 입술을 쳐다봤다.

* * *

“그래.”

실피드가 차분한 눈동자로 물끄러미 응시했다.

들었던 내용을 정리하듯, 입술을 천천히 오물거렸다.

“네가…… 죽은 유이사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거지? 그러려면…… 그녀가 가졌던 ‘한’을 풀어줘야 하고?”

“맞아요.”

내가 답하자, 투명했던 실피드의 눈이 더더욱 투명해졌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고요한 눈초리.

왠지 내 속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혼까지 꿰뚫리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5분 같은 5초가 흘렀을까.

“진실이구나.”

실피드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니, 진실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대는 분명 그녀의 영혼과 맞닿아 있어. 너는 모를 거야.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그렇습니까? 저도 행복하다면 행복합니다.”

“……네가?”

“예, 정령왕님이 유이사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사실, 처음엔 걱정했었다.

「유이사」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게, 뼈구에 대한 적대감 때문인 줄 알고.

그런데 보아하니, 그게 아니다.

정령왕은 유이사를 사랑했다.

그녀의 향을 느끼고는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리워했다.

정확히는 달콤하고도 아늑하며 포근하다고 표현했지.

당연히 나 역시 그 모습이 좋게 보일 수밖에 없다.

뼈구는 내 소환수고, 나의 수하이며, 나의 가족이니까.

“……그래?”

내 답에 잠깐 멈칫해서 멀뚱거리던 실피드가 이내.

“아하하하핫! 그래? 그렇단 말이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혹시, 그대는 유이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아느냐?”

“오? 얼마나 대단했는데요? 솔직히 제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잘 없거든요.”

“아아, 안타깝구나. 유이사를 모르다니……. 실례가 안 된다면 내가 알려줘도 되겠느냐?”

“예? 실례라니요. 저야 영광인걸요.”

그녀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다만, 세세하게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사실 유이사뿐만 아니라, 정령계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요.”

“그건 알고 있다. 그대는 정령 친화력이 아예 전무하지 않느냐.”

“…….”

순간 붸붸붸붸거리는 실프들의 음성이 뇌리에 스치는 건 왜일까?

이건 조금 기분 나쁜데!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정령 친화력이란 이 우주에서도 굉장히 희귀한 고유 능력이다. 한 세계에 아무리 많아 봐야 열, 두 손을 넘기지 않지.”

“그렇게 적나요?”

“그래. 그리고 그 열 명 중 대다수가 자신이 정령 친화력을 가진 줄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하는 게 현실이다. 그 열 중 두세 명만이 하급 정령과 계약을 맺지.”

“허어.”

하긴.

정령 능력이 많으면 그것 또한 사기일 거다.

얘네들 굉장히 세니까.

크흠, 헛기침한 정령왕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최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고 정령계에 입장할 수 있는 존재는 더더욱 드물다. 대략 백 개의 세계 중 하나 정도?”

1%라는 말이네?

“또, 그들 중 대다수가 한 가지 속성의 친화력만 가질 수 있지.”

“어이쿠.”

그 말은 두 가지 속성 이상인 자도 존재한다는 소리죠?

내가 더 말하라는 듯 호응하자, 실피드가 신나서 말을 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100명 중 하나 정도가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또 그들 100명 중 하나 정도가 세 가지 속성의 친화력을 가진다. 그냥 다 속성 정령사는 극히 드물다고 보면 돼.”

“와아아, 그럼 우리 유이사는요?”

나는 안다.

저 말이 다 유이사를 띄우기 위한 밑밥이라는 것을.

그걸 알기에 나 역시 신나졌다.

“아하핫! 유이사를 물었느냐? 우리 유이사는 유일무이했지!”

실피드가 짝짝짝 손뼉을 치며 외쳤다.

“유이사는 무려 네 가지 속성을 모두 갖춘 정령사였다!”

“와아아아아! 진짜요?”

“그뿐이 아니야! 그 친화력이 엄청나서 4대 정령왕 전부와 계약할 수 있었다고!”

“키야아아!”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정령왕 중에 하필 나를 선택했다는 것이지! 때문에 샐리온, 엘라임, 노아스가 얼마나 질투했는지 줄 아느냐?”

“으이구, 우리 유이사가 정령 볼 줄 알았네요.”

“너. 말을 참 예쁘게 하는구나? 과연 유이사의 영혼과 닿을 수 있는 존재다워.”

“과찬이세요.”

실피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딱 그거였다.

팔불출(八不出).

마치 자식 자랑하는 어미처럼 신나서 떠드는 실피드의 모습이, 왜 이리 순수해 보이는 걸까?

나 역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 역시 기존보다 더 선선해졌다.

그리고 그런 정령왕을 바라보는 다섯 실레스틴들.

- 정령왕님…….

- …….

그들이 넋 놓은 표정을 지은 채, 실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정령왕께서 저런 표정을 지으신 지가 얼마 만이던가.’

‘……잊고 있었다. 저렇게 밝은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분이셨지.’

사실.

실레스틴들은 현재 감격하는 중이었다.

유이사의 실종 이후.

바람 구역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유이사」라는 단어가 나올 때면 전 구역이 벌벌 떨어야 했고, 모든 정령이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정령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니까.

정령왕 실피드의 첫 계약자이자.

그녀가 처음 마음을 내어줬던 존재.

유이사 스톰트리.

바람의 정령이 여자와만 계약하는 것도.

다른 계약자에게서 ‘유이사’의 향을 찾는 정령왕을 위함이었다.

“유이사가 네 정령왕 중 날 먼저 선택했던 이유가 뭔 줄 아느냐? 나랑 가장 닮아서였다. 성격도 외형도. 그녀는 날 빼다 박았었지. 아하핫!”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웃으며 폭소하는 실피드.

‘정령왕께서 즐거워하고 계셔.’

‘그것만으로 나 역시 행복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 역시 슬픔과 그리움을 극복하는 과정이겠지.’

실레스틴들이 이번엔 정령왕 앞의 남자를 쳐다봤다.

유이사의 향이 난다는 남자.

“헐? 정령왕님이랑 닮았으면, 유이사도 한 미모 했겠는데요?”

“꺄하핫! 너, 똑똑한 놈이로구나?”

“하하하!”

그리고.

“…….”

그 모습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제아와 수아였다.

사실, 그녀들은 불안했다.

정령왕이 저렇게 좋아하는 존재를 죽여 없앨 뻔했으니.

이 자리가 묘하게 불편한 탓이다.

특히 아까부터 수아의 표정은 살짝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러던 순간.

제아는 발견했다.

남자, 주동훈의 시선이 수아에게 닿아 있는 것을.

움찔!

동생이 몸을 살짝 떨었다.

동시에.

슬쩍 올라가는 남자의 입꼬리.

‘아아.’

기억하고 있다.

저 남자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눈빛만 봐도 알았다.

마치 [우리 아직 할 얘기가 남아 있지? 이따가 대화하자?] 하는 눈빛이지 않던가!

휘이잉!

「세페우스」 세계의 두 하이 랭커 자매.

제아 실프리온과 수아 실프리온은 부는 산들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 * *

“자, 그래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던 정령왕이 분위기를 다시 환기했다.

“이제 유이사의 ‘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 나 역시 그녀의 영혼과 닿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즐거웠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다운됐다.

실피드의 표정에 울적함이 깃들었다.

나는 정령이란 게 가진 힘에 비해 참으로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감정에 이렇게 쉽게 물드는 걸 보면.

“솔직히, 슬프구나……. ‘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죽어서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러니, 그 이제 그 한을 풀어줘야지요.”

유이사의 한.

내 매개체 던전의 임무이자, 뼈구 각성의 실마리.

“이제 말씀해 주세요. 우리 유이사의 한이 무엇인지.”

하지만.

들려오는 정령왕의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나는 몰라.”

“……예?”

내가 당황하자, 실피드가 픽 웃었다.

미묘하게 씁쓸한 웃음이었다.

“그녀의 한을 알았다면, 내가 직접 풀어줬겠지. 난 그럴 힘이 있거든…….”

고오오오…….

불어오는 바람에서 압도적인 거력이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끔찍한 기운.

“…….”

맞지.

초룡인 파괴룡마저 아작낼 법한 그녀의 힘이라면, 내가 묻기 전에 그 ‘한’을 해결했을 가능성이 컸다.

“다만, 짐작하는 것은 있어.”

“짐작하는 거요?”

“유이사는 정령계 최초로 모든 정령왕과의 계약을 목전에 두었던 정령사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정령 친화력이 살짝 부족했었지.”

“…….”

쿵쿵!

다시 들어도 심장이 뛰는 말이었다.

4대 정령왕 모두와 계약이라.

그런 게 유이사라니.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그녀는 정령계 중앙 구역으로 여정을 떠났었다.”

“중앙 구역이요?”

“바람, 땅, 불, 물을 가리지 않는 정령들의 공동구역. 그곳 제일 중심부 깊은 곳에는 이 정령계를 지탱하는 금속이 있지.”

“…….”

“심원의 수정이라 하는 것인데, 그것을 만지면 엄청난 정령 친화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심원의…… 수정?

어디서 들어본 금속인…….

아!

내가 눈을 번뜩였다.

- 주인, 나라고 알겠나? 나 역시 처음 보는 도면인 것을. 그래서 아린 처자에게 물어봤네.

- 정령계 깊은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금속이라더군. 구하고 말고를 떠나, 우리가 어떻게 정령계에 간다는 말인가? 거긴 아예 다른 세상인데.

드미르가 했었던 말.

내 수하들의 무기 세트, ‘파괴룡 세트’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재료.

‘심원의 수정’(SSS급)!

아아.

그게 거기 있었구나?!

“그 중앙 깊은 곳은 오직 정령사만이 진입할 수 있다. 정령은 들어가지 못하지. 정령이 들어갈 방법은 오직 하나야. 들어간 정령사가 소환하는 것. 그곳은 정령계가 아니기에, 10%의 힘밖에 내지 못하지만…… 어쨌든, 나 역시 유이사와 함께 그곳에 들어갔었다…….”

쿠구구구…….

그 순간.

실피드의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선선하게 불던 바람도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 괴수……. 빌어먹을 괴수를 상대로 무리만 하지 않았어도……!”

“워워, 정령왕님!”

내가 재빨리 나섰다.

“진정! 진정해 봐요!”

“…….”

일단 실피드를 진정시키자.

이번 던전.

대충 각이 나온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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