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323화 (323/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23화

첫 정령 소환

“…….”

수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그래.

저 남자가 대단한 건 맞다.

맨몸으로 실레스틴 둘을 상대해 버틴 것은 둘째 치고.

정령왕, 실피드가 귀빈으로 인정한 사람이지 않던가!

아마 전 우주를 뒤져봐도, 정령왕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생명체는 극히 드물 거다.

어쩌면 없을지도?

‘하지만.’

정령과의 계약은 그것과 또 다른 문제다.

당장 주변 실프들의 목소리만 들어봐도 답이 나온다.

“쟤 봐. 지금 뭐라 했어?”

“꼴에 정령이랑 계약한다고? 낄낄낄.”

“저런 친화력으로? 진짜 웃기는 애네. 누구~ 쟤랑 계약할 사람?”

“흐익? 미쳤냐?! 어우, 상상만 해도 싫어! 끔찍해!”

하급 정령에게 저런 소리를 듣는다는 건, 아예 친화력이 없다는 것.

제아나 수아는 비록 바람 속성이지만, 그래도 최상급 정령을 소환할 만큼의 정령 친화력이 존재한다.

그 정도 친화력이 있기에, 다른 속성의 정령들도 소환할 수 있는 거지…….

저 남자는 뭔 짓을 해도…….

우우웅!

“……어?”

남자의 주변을 선선한 훈풍이 휘감은 것은 그때였다.

동시에.

땅에는 갈색 문양이, 허공에는 적색, 청색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언니인 제아가 보여줬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것.

“에엥?”

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자신이 보여줬던 것과 똑같은 소환 의식 아니던가!

“진짜로?”

“……?”

수아는 진심으로 놀랐다.

아니, 어떻게 저게 되는 거야?

남자를 휘감는 기운과 문양이 어딘가 어설프지만, 분명히 저것은 정령을 부르는 소환술이 맞았다.

“……미친.”

수아가 욕을 내뱉었다.

뭔 정령을 친화력도 없이 불러?

쿠구구구……!

땅이 흔들렸다.

가장 먼저 완성된 것은 바닥에 있는 땅의 정령 소환진.

“또, 어떤 놈이냐!”

괴팍한 성질의 노움이 불쑥 나타나 외쳤다.

소환 방식이 비슷해서였을까?

보아하니, 아까 소환된 녀석과 같은 놈이었다.

구릿빛의 땅딸보.

“어떤 미친 새끼들이 자꾸 바람 구역에다 소환을 진행해? 앙?”

“나다, 이 씹새끼야.”

꾸욱!

남자가 땅딸보의 목을 잡고 바닥에 찍어 누른 것은 그때였다.

‘무, 무슨……!’

수아가 경악했다.

세상에 어떤 정령사가 정령을 저렇게 대한단 말인가……!

정령사는 정령을 부리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정령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과 교감하는 존재다.

갑(甲)이 아니라 을(乙)에 가깝다는 말이다.

‘……정령사가 아니어서 그런가?’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지금 소환 의식을 진행하는 거 아니었나?

어떻게 의식을 펼치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있는 거지?

게다가, 언니와 달리.

저 사람은 땀은커녕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어딜 초면에 건방지게 놈놈거려?”

“끄악, 끄아악! 이놈!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

“놓으면? 또 돌무더기 튀기면서 사라지려고?”

꾸우욱!

손아귀로 목을 더욱 강하게 누르는 남자.

그가 중얼거렸다.

“둘 중 하나 선택해.”

“끄아아악?”

“맞을래? 계약할래?”

“……!”

노움이 입을 떡 벌렸다.

뭐 저런 미친 존재가 있냐는 낯빛으로.

무슨 정령 친화력도 없는 놈이 계약으로 협박을 한단 말인가!

‘세상에.’

‘……이게 맞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정령사 자매도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 * *

노움을 잡아둔 순간에도.

정령 소환 의식은 계속되었다.

‘이거, 생각보다 쉬운데?’

내 기준에선.

아린이 복잡하게 꼬아놓은 마법을 펼치는 것보다 이게 훨씬 편했다.

태청심법을 통해 제아의 소환 의식을 그대로 베끼는 것.

“끄악, 끄아악!”

내 손아귀 밑에서 땅딸보가 발버둥 쳤다.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내가 기운으로 옭아매고 있는 중.

“시끄러.”

노움은 약하다.

센 놈은 몰라도 약한 놈이 성질까지 더러우면, 그건 덜 맞아서다.

정령계에서 노움이 맞을 일이 어디에 있으며, 어쩌다 소환된 정령사들은 다 굽신거리기에 바빴겠지.

계약을 떠나.

이런 놈은 정신 교육을 좀 해줘야 한다.

‘그나저나.’

계약이 쉽지 않겠는걸?

하급 정령도 이 모양인데, 정령왕은 또 어떠하랴.

어쨌든 불러낼 수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계약 못 하면 뭐.

중앙 구역 가서 심원의 수정이랑 딱 붙은 채로 시간을 보내든가 해야지.

‘일단, 노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불과 물의 정령은 아직 불러내지 않았다.

한 가지 발상 때문이었다.

‘내가 파이어 볼을 쓰면, 다른 애들이 쓰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뜨겁잖아?’

그 이유는 신살(神殺)급 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령이라고 그렇지 않은 법은 없지 않을까?

화륵, 화르륵!

주술을 사용할 때와 똑같이.

나는 내가 뿜어내는 기운에 무기를 덧대었다.

먼저, 왼손에는 불.

[‘봉인된 일곱 정수의 영령(4/7)’이 가동됩니다.]

[화(火)의 정수, 효과를 얻습니다.]

[불의 기운이 강해집니다.]

“……!”

화르르르르륵!

불의 문양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오른손에는 물.

[‘봉인된 일곱 정수의 영령(4/7)’이 가동됩니다.]

[수(水)의 정수, 효과를 얻습니다.]

[물의 기운이 강해집니다.]

촤륵, 촤르르륵!

청색 문양도 기존의 것보다 훨씬 커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 콰르르!

[화(火)의 정수가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수(水)의 정수가 못마땅한 듯 쳐다봅니다.]

이 힘은 정수의 힘을 빌리는 것과 다른 개념이다.

그저 무기의 힘을 빌리는 것.

즉, 템빨일 뿐이다.

“어어?”

“무, 문양이 커지고 있어요! 이건 더 윗급의 정령이 나올 때 보이는 현상인데?”

오, 그래?

그럼 더 모아야지.

나는 아예 눈을 감은 채로, 기운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

화르륵! 화르르륵!

어느 정도 커진 문양이 이제는 진을 구성하여.

바닥에 멋들어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촤르륵! 촤르르륵!

물의 기운 역시 지지 않았다.

엄청난 기운을 내포한 문양들이 허공에 촘촘히 박히며, 하나의 ‘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 언니!”

“이, 이건…….”

자매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중급 정령을 넘어 상급 정령? 어떻게 정령 친화력도 없는 자가……. 그것도 두 속성을 동시에……!”

“언니, 상급 정령이 아니야. 저기 봐. 더 커지고 있다고.”

“어어, 어어어?”

“그, 그럼 최상급 정령?”

쿠과가가가!

쿠구구구구……!

초록빛이었던 바람 구역이 적색과 청색으로 물들었다.

절반은 불에 타오르기 시작했고, 또 절반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고작 의식만으로 숨이 턱 막힐 만큼 엄청난 기운이 사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노움도 겁에 질린 채 입을 꾹 다물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

그리고.

나 역시 몸이 덜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정수의 기운들은 항상 그렇다.

뭔 놈의 힘이 그렇게 강한지.

압축하고, 또 압축해도 끊임없이 기운이 흘러나온다.

[무한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들.

트득, 트드득!

어느덧 내 몸속도 두 속성의 기운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등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하지만.’

더 해보자……!

할 수 있을 만큼.

내 몸이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기운을 더 불어 넣어보자.

“자, 잠깐만요!”

“더 커지고 있어요……! 이건, 처음 보는 건데……. 언니 맞잖아! 실레스틴이 소환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 그렇다는 건?”

그 순간이었다.

두콰가가가가가!

거대한 기운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좌측에 퍼졌던 불의 기운이 한 곳으로 뭉쳐 소환진을 만들어내고.

우측에 퍼졌던 물의 기운이 한 곳으로 뭉쳐 완성된 문을 만들어내는 그 장엄한 광경!

“…….”

“…….”

자매가 눈을 부릅떴다.

마치 이 광경을 한순간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뭐야?”

쿠르르르……!

붉은 소환진에서 적색 머리칼의 사내가 우뚝 솟아올랐다.

“이게…… 몇천 년 만의 부름이지?”

벗은 상체는 매끈한 근육으로 가득했고, 등 뒤를 염화의 날개로 뒤덮은 존재.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털이 곤두설 만큼 거친 기세를 뿜어내는 존재는…….

“……이런 미친.”

땅에 박혀 있던 노움이 중얼거렸다.

“무슨 날 불러내는 놈이…… 정령왕을 불러내?”

그렇다.

인간형의 근육남은 바로.

[불의 정령왕 ‘샐리온’을 조우합니다.]

정령계의 네 주인 중 하나.

[위대한 업적을 이뤄냅니다.]

[축하합니다!]

[기력이 1,000 증가합니다.]

나타난 것은 샐리온뿐만이 아니었다.

“저를 부르셨나요?”

문에서 뽀글뽀글하며 생성되는 존재.

실피드가 투명하면서 뽀얗고 하늘하늘한 청순 느낌이라면.

이 존재는 머메이드형 몸매에 긴 머리칼의 섹시한 느낌이랄까?

[물의 정령왕 ‘엘라임’을 조우합니다.]

그녀 역시.

정령계의 네 주인 중 하나.

[위대한 업적을 이뤄냅니다.]

[축하합니다!]

[기력이 1,000 증가합니다.]

두 정령왕의 등장이었다.

* * *

“…….”

“…….”

제아와 수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쿵쿵!

심장 박동수는 평소보다 수배나 빨라졌으며.

머리가 어질어질해, 혼절할 것 같은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정령왕을 소환한다고?’

정령왕을?

그것도 둘씩이나?

정령계 역사상 단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일 아니던가!

심지어 전설의 정령사라 불리는 유이사도 이런 기록은 없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저런 괴물을 죽이려 했었다니……. 살아 있는 게 기적인데.’

문제는

혼란스러운 게 자매들뿐만이 아니었다는 거다.

“뭐지? 설마 네가 날 불렀냐?”

고개를 갸웃하는 샐리온과.

“……무언가 신비한 느낌이었어요. 으음,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무언가……. 본질적인 기운에 이끌렸을 뿐인데…….”

입맛을 다시는 엘라임.

두 정령왕도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음.’

정령왕이라…….

나 역시 놀라웠다.

떠오른 발상대로 한 것뿐인데, 설마 정령계의 끝판왕 격 존재가 튀어나와 버리다니.

[수(水)의 정수가 웃기지 말라 합니다. 충분히 예상하지 않았냐고 되묻습니다.]

아니거든요.

진짜 놀랐거든요…….

다만, 궁금한 것은.

‘왜 모르지?’

두 정령왕이 이 정수의 힘 자체를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는 저번에 만났던 ‘고대 마법’(SSS급)의 반응과 확연히 달랐다.

과거.

델라일라의 시련에서 주문서를 찢었던 날.

- 감히 위대하신 존재 앞에서 힘을 사용해도 되냐 묻습…….

정수들을 본 고대 마법의 첫 반응.

아니, 성좌급인 고대 마법도 아는 정수를 왜 그것보다 격이 높아 보이는 애들이 파악조차 못 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화(火)의 정수가 부드럽게 웃습니다.]

[고대 마법? 그놈은 살짝 특별 케이스라 합니다.]

[수(水)의 정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래 산 놈이긴 하지, 우리가 잊히기 전 세대를 함께했으니.]

잊히기 전 세대?

내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 차려 할 찰나.

[목(木)의 정수가 만류합니다. 아직, 시기상조. 자극 금지.]

[금(金)의 정수가 인정합니다.]

[적어도 저 정령왕 정도의 격만 갖춰도, 그때는 얘기가 통할 거라 합니다.]

[수(水)의 정수가 코웃음 칩니다. 저놈이?]

그래.

마음껏 비웃어라. 수(水) 놈아.

내 언젠가는.

네가 비웃지 못할 위치까지 올라설 것이니.

[수(水)의 정수가 껄껄 웃습니다. 지랄.]

어쨌든.

정수들은 언제나처럼 정보를 꽁꽁 둘러싸고 있으니.

“야, 내가 물었잖아. 네가 날 소환했냐고.”

“맞아요, 우릴 어떻게…… 소환한 거죠? 그것도 둘씩이나 불렀네요?”

우선은 불러낸 저 정령왕부터 해결해 볼까?

싶을 때였다.

휘이이잉!

익숙한 향의 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뭐지?”

동시에 등장하는 녹빛의 요정.

“샐리온이랑 엘라임이 내 구역엔 어쩐 일일까나?”

어이쿠.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까지 등장하셨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