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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324화 (324/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24화

저도 참여할게요

휘이이잉!

선선한 바람이.

숨 막히게 옥죄어오는 샐리온과 엘라임의 압박을 살포시 걷어냈다.

“너네 뭐야! 지금 바람 구역까지 와서 내 귀한 손님을 핍박하는 거야? 앙?”

압박에 눌려 있던 몸이 한결 편해지는 기분.

내 몸을 감싸는 실피드의 숨결은 마치 형체를 이룬 것만 같았다.

따듯하면서도 서늘했고,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했다.

“엥? 그게 무슨 개소리야?”

샐리온이 허리에 양손을 짚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엘라임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실피드, 핍박이라뇨. 여기 주변 안 보이세요? 우릴 부른 것은 저자예요.”

톡톡.

엘라임이 물기 맺힌 손가락으로 ‘소환진’과 ‘문’을 건드렸다.

그것들은 목적을 이뤄,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뭐야.”

후웅!

그것을 본 실피드의 숨결이 살짝 거칠어졌다.

“진짜네?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환 흔적을 바라보는 그녀.

“그래서 우리도 묻고 있었지. 어떻게 정령 친화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가 우릴 불러낼 수 있었는지. 신기하잖아?”

화르륵!

샐리온의 눈빛에 흥미가 가득 담겼다.

흡사 신비로운 생명체를 처음 마주한 어린아이처럼.

“그나저나, 네 귀한 손님이라고?”

“…….”

“그건 더 신기한데? 그 까탈스러운 실피드가 여자가 아닌 남자를 귀한 손님이라 칭하다니.”

“설명해 주세요, 실피드.”

엘라임이 싱긋 웃었다.

어마어마한 세 존재의 담화.

내가 봐왔던 가장 끔찍했던 존재, 거대마룡이나 탐욕룡쯤은 가볍게 찜쪄먹을 존재들이 셋이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니…….

‘으으.’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흐응.”

실피드가 코웃음 쳤다.

“설명? 내가 왜?”

그녀가 마치 장난감을 빼앗기기 싫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아.

저들에게 나란 그저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에 불과한 걸까?

“후우.”

내가 심호흡했다.

어차피 이들을 불러낸 것은 나.

대화를 해도 내가 할 거다.

“정령왕님들?”

내가 입을 열자.

“응?”

“예.”

“으응?”

세 존재가 동시에 시선을 나에게로 돌린다.

그 모습이 무언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살짝 귀여웠다.

뭔가.

가진 힘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순수함이랄까?

“왜.”

샐리온이 피식 웃었다.

“감히 우리랑 계약이라도 하려고?”

그는 ‘감히’라는 표현을 썼다.

계약은 언감생심이라는 뜻일까?

그렇겠지.

‘아쉽네.’

쩝.

내가 입맛을 다셨다.

소환 의식을 따라 할 수는 있어도, 계약을 맺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인가 보다.

‘하긴.’

계약이란 쌍방 동의로 하는 것이니.

하지만.

‘어차피 곧 내가 부리게 될 녀석들이야.’

뼈구를 각성시킨다는 가정 하, 녀석들은 전부 유이사와 계약하게 될 테고.

그런 유이사의 주인이 바로 나니까.

‘대박이긴 하네.’

이 끔찍한 정령왕 넷을 부리는 수하라니.

물론, 정령계가 아닌 세계에서는 정령왕 역시 10% 정도의 힘밖에 쓰지 못할 거다.

하지만 그게 어디냐.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성좌급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을 텐데.

“우리라고 그쪽과 계약을 하기 싫은 건 아니에요.”

엘라임이 부드럽게 웃었다.

“계약하면 이 지루한 정령계를 벗어나 다양한 세상들을 구경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할 수만 있다면…… 우린 좋죠.”

그 미소가 왜 이리 교태롭게 느껴지는 걸까?

“하지만, 이것은 우주, 대자연의 법칙이랍니다. 정령 친화력이 없는 자와는 계약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수는 없으며, 어기고 싶어도 못 해요.”

“네, 이해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도 정령왕과 곧바로 계약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찔러볼 겸, 소환해 본 거지.

‘다만, 이렇게 된 거.’

딜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곳은 내가 헌터로 살아온 과정 중 가장 빡센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토룡(土龍).

그놈도 끔찍한 놈일 것이 뻔한 상황이고.

그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두는 것이 좋겠지.

무모함을 즐기더라도, 챙길 수 있는 건 챙길 생각이었다.

“정령왕님들의 그 궁금증. 지금 풀어드리면 되는 거죠?”

정령왕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딱 둘이다.

그들을 어떻게 소환했는지.

그리고 왜 실피드가 자신을 귀빈으로 여기는지.

나는 그것 중 후자를 말할 생각이었다.

“네가?”

샐리온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예.”

“…….”

“일단 제 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실피드께는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곳에서 위대한 정령사라고 알려진 유이사 스톰트리의 주인 되는 사람입니다.”

“……?”

순간, 정령왕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주인? 네가?”

샐리온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헉, 주인님 할 때 그 주인인가요?”

엘라임이 얼굴을 붉히며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다.

아니, 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령왕이 순수해 보인다는 것 중 쟤만은 취소다!

그리고.

“……!”

“……!”

제아와 수아 역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얘기는 대충 들었겠지만, 내가 주인일 줄은 몰랐겠지.

자, 어쨌든.

“결론부터 말할게요. 저는 죽은 그녀를 되살리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솔직히 그 과정은 어렵겠지만, 저는 높은 확률로 성공할 거라 보고 있어요. 그리고 되살아난 유이사는…… 저와는 다른 정령 친화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

적막이 흘렀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렸을 때.

“으하핫!”

엘라임이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네요. 그러니까…… 그쪽이 유이사를 부활시킨 다음, 우리 전부와 유이사를 계약시키겠다는 말을 하는 거죠? 생전에도 못 했던 것을?”

역시.

정령왕이라 그런가 이해력이 빠른데?

“정확해요. 더군다나 제가 유이사의 주인이니, 저한테 잘 보이는 정령왕님께 더 많은 세상을 구경시켜 드릴 수 있겠죠.”

“우와, 당돌하네요. 정말.”

뾰르르륵!

엘라임이 허공에 생성된 물방울 위에 살포시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래요. 그럼 그쪽한테 잘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엘라임!”

샐리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는 건가?”

“저 아이의 눈을 봐요.”

“……눈?”

“에이, 왜 그래요, 샐리온? 영체의 참 거짓 정도는 판단할 수 있으면서. 정 모르겠으면, 실피드한테 물어봐도 되고요.”

엘라임이 실피드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진실이야. 쟤 몸에서 유이사의 향이 나거든.”

“……킁.”

화르륵!

샐리온의 몸에서 불이 거칠게 타올랐다.

“그럼 진실이겠군. 실피드는 항상 유이사에 진심이었으니까.”

세 정령왕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말인즉슨.

‘이게 먹히네?’

내가 이렇듯 세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 제아 덕분이었다.

그녀가 말해줬으니까.

원래 정령왕들은 계약에 환장한다고.

“자, 그럼.”

톡톡.

내가 발바닥으로 바닥을 가볍게 건드렸다.

“마지막, 지켜보시는 한 분까지 나와보시죠?”

“호오오?”

엘라임이 진짜 재밌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샐리온 역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 순간.

쿠구구구구…….

바닥 전체가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꺄악.”

“꺅!”

제아와 수아가 깜짝 놀라 넘어졌고, 정령왕들이 솟구치는 바닥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쿠과가가가가……!

놀랍게도.

지금껏 서 있던 바닥이 한 존재의 머리에 불과했다.

‘골렘’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돌덩이의 머리.

[땅의 정령왕 ‘노아스’를 조우합니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몰랐다.

아마 내가 유이사의 주인임을 밝히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태청심법은 기운의 흐름을 잡는다.

그리고 정확히.

내 폭탄선언 이후,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엄청난 기운의 요동침을 잡아낼 수 있었다.

[위대한 업적을 이뤄냅니다.]

[축하합니다!]

[기력이 1,000 증가합니다.]

‘나이스.’

마지막 기력 1,000까지 낭낭하게 빨았고.

“……어떻게 알았지?”

콰르르르르르!

저 멀리 보이는 골렘의 팔 부분이 핑그르르 돌았다.

‘어후.’

내가 혀를 내둘렀다.

크기로만 봤을 땐, 거의 거대마룡 뺨치겠는걸?

“멍청한 노아스놈.”

실피드가 비웃었다.

“그렇게 티 나게 놀라놓고, 어떻게 알았냐니?”

“……보통은 티 나게 놀라도 모르는 게 우리의 기운 아니더냐. 저기 샐리온과 엘라임도 놀라고 있는데, 왜 너만? 혹시 그 지능이란 게, 바람이랑 같이 날아가 버린 건가?”

“오호? 그으래? 내 귀엔 왜 뒈지고 싶다는 소리로 들리는 걸까?”

“흐음, 진실 왜곡까지 하는 걸 보면, 정말 정신병에 걸렸다는 말이 맞나 보군? 쯧쯧, 정령왕이 정령사 하나 잃었다고 이렇게까지 미쳐 버리다니.”

“이 육중한 돌덩이 새끼가!”

휘이이이잉!

순간 주변에 거친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불문율 깨고 붙어봐? 앙?”

“역시, 폐급 정령왕답군……. 정령계에 피해 주는 것도 정도껏 해라.”

아니.

이분들은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싸우고 그래?

“워워.”

내가 바로 중재에 나섰다.

“진정들 하세요. 잊었어요? 제게 잘 보이셔야죠!”

어찌 보면 광오한 말일 수도 있다.

용보다 강한 존재들이 감정싸움을 하는데, 나한테 잘 보이라는 말로 말리다니.

하지만.

쿠구구구……!

휘이잉!

“크흠. 너, 쟤 덕에 산 줄 알아.”

“음음, 말하라. 유이사의 주인이여.”

그 말 한마디에.

두 정령왕은 폭발하던 기운을 완전히 죽여버렸다.

‘오우.’

이거 은근히 잘 먹히는걸?

종종 써먹어야지.

자, 그럼.

본론을 말해볼까?

* * *

제아는 정신이 없었다.

실피드의 등장부터, 구타당하는 수아, 거기에 정령왕 소환까지.

뭐 하나 정상적인 일이 없었는데,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폭풍이 몰아친다.

‘세상에.’

정령왕 넷의 모임이라니.

거기다가 뭐?

정령왕 보고 자신한테 잘 보이라고?

유이사의 주인은 또 무엇이며.

그 끔찍한 기운의 네 정령왕이 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건데?

심지어 말 한마디로 정령왕의 싸움을 말리는 모습은…….

그녀의 정령사 인생에 가히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수아야.’

제아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동생을 쳐다봤다.

‘언니.’

수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언니, 나 아무래도 좆된 것 같아. 어쩌자고 저런 사람을 건드렸지?]라고 말하는 느낌.

‘괜찮아, 동생아.’

이미 맞을 만큼 맞았잖아.

이런 게 위로가 될까? 싶었지만, 그것만큼 위안이 되는 것도 없었다.

저 남자는 생각보다 뒤끝이 없어 보이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어쨌든.

남자는 정령왕 넷을 대상으로.

침착하고 담담하게 딜을 걸었다.

- 중앙 구역 깊은 곳에 함께 들어갈 지원군을 보내주세요.

지원군이라 하면, 정령계에 상주하는 정령사들을 뜻하는 말.

- 실피드께서 말했다시피, 유이사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토룡을 토벌해야 해요. 하지만, 그 토룡이 만만치 않은 건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겠죠? 그러하니, 같이 싸울 정령사를 구해주세요. 각자. 구해오는 만큼, 제 점수를 따는 겁니다.

정령들은 깊은 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정령이 아닌 자는 들어갈 수 있다.

- 모두들 현재는 계약한 정령사가 없는 거로 알고 있어요. 맞죠? 그러하니, 최소 최상급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를 보내주세요. 솔직히 그들에게도 좋은 제안일 거예요. 성공하기만 하면, ‘심원의 수정’을 만질 기회가 될 테니까.

그렇다.

저 남자는 최상급 정령사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바로 정령왕을 소환하는 것.

그러려면 정령 친화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그 친화력을 기를 수 있는 최고봉이 바로 ‘심원의 수정’.

제아와 수아도.

바람 폭포를 찾기 전에는, 중앙 구역에 들어갈까 수없이 생각하고 고민했었다.

‘결국, 무서워서 못 들어갔지만.’

하지만.

모두가 모여서 가는 거라면?

그 모든 영광을 같이 누릴 수 있는 거라면?

그 순간.

제아는 실피드와 눈을 살짝 마주쳤다.

[어때, 지원해 볼래?]라고 물어보는 눈빛.

“넵!”

제아가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어, 언니?”

깜짝 놀란 수아가 눈을 껌뻑였다.

동생아.

이건 기연이다.

세상 어떤 랭커가 기연을 놓치니?

하물며.

저 대단해 보이는 남자가 같이 가준다잖아!

“중앙 구역 토벌! 저희 자매도 참여할게요!”

제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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