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27화
토룡이 지키는 것 (2)
쾅, 쾅, 쾅, 쾅!
마치 두더지 잡기라도 하듯.
토룡의 발톱이 신경질적으로 내려 찍혔다.
- 크롸라라라라!
“크윽!”
발톱 주제에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하나하나 박힐 때마다 뼈가 으스러지고 실핏줄이 터지는 기분이다.
아무리 금강불괴라도 통증이 없는 건 아니다.
피부가 뚫리지 않을 뿐, 뼈나 내부가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까아앙! 까앙!
“젠장.”
나는 내가 쥔 무기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내가 쥔 방패가 신살(神殺)급이 아니었다면, 이미 곤죽이 된 채로 바닥에 짜부라졌겠지.
- 꺼져라! 꺼지란 말이다!
저기요.
죄송한데, 꺼지고 싶어도 못 꺼져요.
이미 던전 안으로 들어왔고, 출구도 없어 보이거든요.
우린 어차피 싸울 운명이라 이 말입니다!
카가가각!
녀석의 비늘에 방패가 지속해서 긁혔다.
‘어쨌든.’
계속 고민하며 싸우던 나는, 정령들을 제외한 정령사들을 전부 뒤로 물린 상태였다.
마땅한 방법도 없고, 막는 것과 피하는 것만 반복하는 상황에서 뭉쳐봐야 뭐 하겠는가.
‘게다가.’
어차피 정령사들은 그 자체에 힘이 없다.
다루는 정령들이 셀 뿐.
그저 가능한 한 멀리서 안전을 확보하는 게 최상이었다.
- 이 날파리 같은 놈! 사라져라!
녀석의 어그로는 오직 나에게만 끌렸다.
본능적으로 아는 거겠지.
내가 제일 위험한 놈이라는 걸.
“괜찮겠어요?!”
뒤에서 링링의 외침이 들려왔다.
내가 말없이 ‘오케이’ 사인을 들어 올렸다.
그녀가 지구인은 아니지만, 뭐…….
대충 제스처로 알아먹겠지?
콰앙! 콰아앙!
지축이 뒤집히고, 바위가 튀어 올랐다.
거센 압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또다시 녀석의 꼬리를 피하는 순간.
- 저 기운을 뚫을 방법이 있긴 하다.
바람의 최상급 정령, 실레스틴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뭐? 뭔데요?”
내가 고개를 획 돌렸다.
“진즉 안 말하고 뭐 했어요?”
이 자식이.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 거 안보였어? 앙?
확!
실피드한테 꼬질러 버릴까 보다.
내가 도끼눈을 뜨자.
-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불가능하거든.
실레스틴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
“지랄.”
내가 이를 악물고 웃었다.
콰가가강!
다시 한번 발톱이 방패를 내려찍었다.
“쿨럭!”
슬슬 한계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금강불괴여서 버티던 것도, 내부 장기가 지속해서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런 충격이 지속되다간, 정말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일단 말하기나 해요!”
스슷!
내가 그림자를 밟아 꼬리를 피하면서 일갈했다.
“불가능한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테니까!”
- 압도적인 힘.
“뭐?”
- 무형의 기운을 씹을 만한 압도적인 힘이 있으면 충격을 입힐 수 있다. 정령왕께서도 그 당시 본신의 힘까지 써가며, 토룡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들었지.
그래?
압도적인 힘이라.
그럼 결국, 내 비기.
무진과 독섬에 모든 기력을 담아 쏟아내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 그대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대가 가진 모든 힘을 써도 안 될 거다.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다시 말하죠!”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해보기도 전에 부정적인 소리를 들으면 부정 타는 기분이 들거든.
[수(水)의 정수가 열렬히 응원합니다!]
[토룡 이겨라! 토룡 파이팅!]
얼씨구?
시야를 방해하는 상태창을 가볍게 밀어버린 내가 바닥을 박차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화르륵!
동시에 방패를 창으로 바꾸었다.
이제 막지 않는다.
오로지 피하거나 공격할 뿐.
나는 녀석의 등에 깊게 벌어진 상처를 노려봤다.
저기에 무진(武進)과 독섬(毒閃)의 묘리를 꽂아 넣는다.
‘할 거면 제대로 가자.’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
결판을 내려면 빨리 내야지.
우우웅!
나는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기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정령 님들!”
내가 일갈하자.
- 말하세요!
- 준비하고 있었다!
- 기어코 하겠다는 거냐……?
- 그오오오오!
네 속성의 최상급 정령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이미 정령사들이 내 말을 듣도록 명령해 놓은 상태.
“간단해요! 제가 공격하는 타이밍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겁니다!”
용 또한 듣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거력(巨力)이란 알아도 막지 못하는 것.
고오오오오……!
마치 용이 브레스를 준비하듯.
엄청난 기운이 압박되어 몰아치기 시작했다.
[화(火)의 정수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조심하라 합니다. 토(土)가의 시련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수(水)의 정수가 시끄럽다고 합니다. 왜, 훈수질?]
[화(火)의 정수가 눈을 흘깁니다.]
[금(金)의 정수가 이번엔 수(水)의 말이 맞다고 합니다. 개입 금지.]
[화(火)의 정수가 인정합니다.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수(水)놈은 무시하고 넘어갔는데.
화(火) 님까지 저러니까, 무언가 불안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처럼 심장이 날 응원하지 않는다.
뭐라 해야 할까.
찝찝하면서도 꺼림칙한 느낌이랄까?
- 이노오오오오옴! 허튼 수 쓰지 말고 꺼지거라!
토룡이 포효했다.
근데 그 포효 속에 담긴 말이 묘하게 거슬린다.
‘꺼지라고?’
이상했다.
지금껏 만나왔던 용들은 상대를 벌레처럼 업신여기며 죽이려고만 했지, 꺼지란 말을 사용하진 않았는데.
“뭘까?”
나는 창을 내지르기 위해 뒤로 젖힌 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우우웅!
태청심법이 원활하게 돌았다.
한 번뿐인 공격을 제대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를 탐지해, 녀석의 빈틈을 찾아야 한다.
분명.
그러기 위해 탐색했던 태청심법인데.
‘뭐야?’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잡혔다.
토룡이 아닌, 무언가가 분명 느껴졌다.
저 거대한 생명체 아래 깔린 무언가가.
쿵쿵!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꿀꺽.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설마…….”
내가 이마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씨발.
“설마 그런 건가?”
- 뭐 하는 건가, 인간이여!
- 용이 반응하기 전에 빨리 공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가 읽혀!
“젠장, 잠깐만 기다려 봐요!”
이건 도박 수다.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
[수(水)의 정수가 뭐 하냐 묻습니다.]
[왜, 공격을 앞두고 고민하냐 합니다. 혹시 머저리 중 상머저리?]
젠장, 이 수가놈아.
안 넘어간다.
“저기, 용 밑에!”
내가 토룡을 가리켰다.
모든 정령들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용 밑에 꼬물거리는 존재 느껴져요?”
그렇다.
용 아래에 숨어 있는 꼬물꼬물한 두 녀석.
아마 알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초룡이겠지.
무언가를 지키던 어미가 왜 새끼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상처 입은 용이 [꺼져라]만 반복했던 이유.
그것은 심원의 수정이 아닌 본인의 새끼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유이사 스톰트리.
그래, 그 유이사가 정령왕까지 소환해서 저 빌어먹게 튼튼한 토룡의 등에 상처까지 만들 수 있는 그녀가.
토룡에게 죽었다고? 왜?
- 그때, 그 괴수……. 빌어먹을 괴수를 상대로 무리만 하지 않았어도……!
- 결국 토룡의 발톱이 유이사의 복부를 짓눌렀고, 그 날카로운 이빨이 목을 꿰뚫었어…….
실피드와의 첫 대면 시 들었던 말.
나는 근데 왜 자꾸만.
유이사가 그냥 당해줬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왜 그런 애들 있지 않은가.
모성애가 있는 생명체를 아끼는, 어쩌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기는 정 많은 성격.
‘물론, 나는 이해 못 하지만.’
게다가.
마치 내 고민을 기다려 주기라도 하듯.
어느새 공격을 멈춘 채, 경계 어린 표정으로 날 응시하는 토룡.
거기에 더해서.
혹여나 들킬까 더는 말하지 않는 수(水)놈까지.
‘이건.’
걸어볼 만한 도박 수였다.
“케린.”
내가 중얼거리자, 뒤에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혹시, 정령의 힘으로 용을 치유해 줄 수 있어요?”
- ……?!
물의 최상급 정령, 엘레스트라가 날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까진 아니고.
살짝 손해일 뿐이다.
어차피 용은 공격을 멈췄고, 나는 기력을 쓰지 않았다.
그뿐이랴?
저 빌어먹게 튼튼한 무형의 기운은 공격을 허용하지 않을뿐더러, 내 일격이 성공할 거란 보장도 없는 상황이다.
내가 말했다.
“혹여, 유이사의 한이…… 너무도 착해 빠진 그녀의 한이…… 저 용의 등에 난 상처라면요?”
- 그건 억측이에요!
엘레스트라가 외쳤다.
“저 토룡을 보세요.”
하지만 난 지지 않고 손아귀에 힘을 주어, 용을 가리켰다.
“가만히 있잖아요.”
스슷!
내가 그림자를 밟아 용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살기(殺氣)와 투기(鬪氣)를 완전히 죽인 채.
그 순간.
경계 어린 토룡의 입이 벌어진 것은 그때였다.
- 너는…… 유이사, 그녀를 아는 자인가?
어어?
아무래도 내 판단이 맞는 모양인데?
진짜로?
* * *
토룡(土龍) 카시아스.
카시아스는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룡이었다.
태초의 용족, 창조룡과 한 세대를 살았을 만큼 오래된 용.
그의 임무는 하나였다.
옛 구신(舊神).
토(土)의 명을 받들어, 그 성스러운 존재의 흔적을 지키는 것.
정령계라는 곳이 생기기도 전에.
카시아스는 그곳에서 토(土)의 파편을 지켰다.
나중에 그곳 전체가 뒤덮여, 새로운 세계가 감쌀 때까지도.
토(土)의 충직한 수하였던 토룡은 꿋꿋하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쫓아냈으며, 신(神)의 사도들이 근접했을 땐 모르쇠 숨겼다.
토(土)의 흔적은 그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백 년이 흐르고, 천 년이 흐르고, 만 년이 흘렀다.
십만 년이 흐르고, 백만 년이 흐르고, 천만 년이 흘렀다.
도저히 셀 수 없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우직하게 자리할 만큼 용의 정신력은 강력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힘들군.’
끝없는 적막 속.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잊힌 공간에서.
용은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던 순간.
반짝!
빛나는 토(土)의 파편.
[많이 외로우냐?]
“……!”
카시아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오랫동안, 토(土)의 목소리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
옛날 옛적 자신이 모시던 주인의 소리를 듣자, 카시아스는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토(土)시여……!”
[고맙고도 대견한 네게 하고 싶은 말은 말들이 참 많다만, 길게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동안 축적된 힘이면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토(土)의 용건은 간단했다.
[토(土) 속성 초룡이 창조됩니다.]
[토(土) 속성 초룡이 창조됩니다.]
꼬물꼬물하며 생겨난, 두 존재.
“아아, 주인이시여……! 이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카시아스는 감격했다.
두 새끼에 감격한 게 아니라, 토(土)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토(土)에게 무언가 선물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감동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자신이 보낸 시간이.
자신이 겪었던 희생과 고통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감격인 마음.
[적적한 시간, 이것들을 키우며 보내거라.]
[또한 희망을 잃지 말아라. 언젠가 네 충성이 꼭 보답받는 날이 있을지니.]
이후로, 더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파편.
카시아스는 두 새끼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뿔 하나 달린 첫째가 토일(土一).
뿔 없는 둘째가 토이(土二).
끔찍한 작명 센스였지만, 카시아스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토(土)가 만들어준 소중한 선물.
카시아스는 마음을 다해 새끼들을 키웠다.
그렇게 약 백 년 정도가 지났을까.
- 누구냐!
그의 앞에 한 존재가 등장했다.
여러 속성이 동시에 공존하는 자연 친화적인 존재.
“여기에 심원의 수정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토룡(土龍)과 유이사 스톰트리의 대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