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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331화 (331/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31화

그대 옆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우우우웅!

내가 잡고 있는 신살(神殺) 창이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꾸욱.

나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무기의 떨림을 진정시켰다.

그래.

유이사를 각성시킨 게 끝이 아니라는 말이지?

또 뭐가 남아 있는 거냐.

[화(火)의 정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합니다.]

화(火)의 정수.

자상하신 불님이 반응한 것은 그때였다.

[토(土)의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은 일, 고생했다고 합니다.]

토(土)의 인정?

쿠구구구……!

그 순간, ‘심원의 수정’ 더미 뒤편에서 신묘한 빛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건……?”

“또 뭐죠?”

정령사들도, 정령들도.

놀란 표정으로 그 빛을 바라봤다.

[띠링!]

[아이템을 찾았습니다!]

떨림이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휘감던 빛의 색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갈색.

광활한 대지의 기운.

마치 모든 것을 포용할 것만 같은 포근한 기운이 세상을 뒤덮었다.

- 그워워어?

땅의 정령왕 노아스가 당황했으며.

- 아아!

토룡이 입을 떡 벌렸다.

- 토(土)시여……! 정말 토(土)이십니까?!

콰가가가!

그러고는 경건하게 대가리를 땅에 박았다.

그뿐이랴?

[수(水)의 정수가 인사합니다. 방가방가.]

[목(木)의 정수가 부드럽게 웃습니다. 오랜만이네요, 토(土)]

[금(金)의 정수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환영.]

정수들도 반가웠는지, 앞다투어 인사했다.

아아.

나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전율이 일었다.

정말 또 다른 정수의 파편이 여기에 있었다니!

[그대는 탐욕에 앞서 생명을 도외시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 토(土)의 시험을 통과합니다.]

시험.

부르르, 나는 몸을 잘게 떨었다.

이런 걸 일타양피라 하지?

유이사의 한도 풀고, 토의 인정도 받고.

이거 진짜.

용을 죽이기라도 했으면, 큰일이었잖아?

[띠링!]

[신살(神殺)급 아이템, 봉인된 일곱 정수의 영령(4/7)이 갱신됩니다.]

[봉인된 일곱 정수의 영령(5/7)를 획득합니다.]

아아, 좋아!

나는 곧바로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 : 봉인된 일곱 정수의 영령(5/7)]

[등급 : 신살(神殺)급]

[종류 : 무기]

[설명 : 태초의 신(神)들조차 두려워하던 일곱 정수의 파편. 모든 속성의 정수를 모으면 봉인이 해제됩니다. 현재, 화(火)의 정수, 수(水)의 정수, 목(木)의 정수, 금(金)의 정수, 토(土)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효과1 :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변형합니다.]

[효과2 : 절대 파괴되지 않습니다.]

[효과3 : 수집한 정수의 힘을 사용합니다.]

[효과4 : 기력 5,000 증가.]

드디어.

파편 다섯 개를 모았다.

어느덧, 웃고 있는 내 입가.

‘죽여주네.’

내가 사는 지구에서, 나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사기 무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을까?

수집욕 같은 게 있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수가 채워진 게 그 무엇보다도 기뻤다.

정수.

그 신살(神殺)급 존재가 지닌 막강한 힘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는 게 바로 나이니까.

[토(土)의 정수가 인자하게 웃습니다.]

[나의 아이, 토룡(土龍)을 치유해 주어 정말 고맙다고 말합니다.]

천만에요.

그 덕에 유이사를 각성시킬 수 있었는걸요.

저 역시.

제 무기 속에 들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水)의 정수가 입을 삐쭉입니다. 괜히 힌트를 줘서리.]

아무렴.

기분이 좋으니까, 수(水) 놈의 말마저 예쁘게 들렸다.

그래그래, 마음껏 떠들렴.

픽 웃은 내가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쿠구구구……!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인 채, 미동조차 없는 거대한 용이 보였다.

웃기는 건.

- 뀨웅!

- 끼이잉!

초룡 두 마리도 어미를 따라 하려는 듯, 옆에 가서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

어이쿠, 귀여워라.

“이게……. 무슨 일이래?”

“저 괴수가 미쳤나? 갑자기 왜 저렇게까지 굴복하는 거야? 거의 머리를 바닥에 넣을 기센데?”

“치유해 줬다고 저러는 걸까요?”

용의 등에서 내려온 정령사들이 숙덕거렸다.

“…….”

아무것도 모르는 정령사들과 달리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정수 때문이겠지.’

그 막강한 용을 ‘따위’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높은 ‘격’을 가진 존재.

봐봐.

이름도 토룡(土龍)이잖아?

[토(土)의 정수가 부탁합니다.]

[불쌍한 아이다. 오직 나의 흔적을 지키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자신을 희생시킨 아이…….]

[토(土)의 정수는 토룡(土龍)이 자유를 즐기길 원합니다. 남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부탁이라.

어떤 부탁인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잘 알겠다.

저 용에게 잘 설명하라는 말이겠지?

‘예, 정수님.’

부탁은 무조건 들어드릴 테니.

우리 오늘부터 잘 지내봐요?

* * *

- 크르르르…….

대가리를 땅에 박아 넣은 토룡(土龍) 카시아스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용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히 셀 수도 없을 만큼 오래전에 느꼈던 토(土)의 기운.

비록 완전하진 않지만, 분명 그분의 것이 맞았다.

‘어찌……!’

그분의 기운이, 그분의 파편이.

저 존재에게 향한단 말이던가.

도대체 저자는 뭘까?

누굴까?

쿵쿵!

카시아스의 심장이 뛰었다.

가슴이 얼마나 벅차던지,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기까지 했다.

얼마나 꿈에 그리던 순간이던가!

미동조차 없이 남아 있던 그분의 흔적이 되살아나, 그분의 뜻과 영접하는 것!

바로 카시아스가 남은 삶 동안 영원토록 바랬던 것이었다.

그런 바람을 저 남자가 이루어주었다.

그런 데다가 자신의 몸을 치유해 주기까지 했으니.

힐끔.

카시아스가 자신의 발톱과 꼬리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이런 멍청한!

귀인을 상대로 휘두른 이것들을 당장에라도 뭉개 버리고 싶었다.

“큼큼.”

남자가 입을 열었다.

“토께서 말씀하시네요.”

- 크르르르?

토(土)께서?

카시아스가 천천히 고개를 벌떡 쳐들었다.

신체적으로 너무 흥분되고 격정적인 순간이었지만, 애써 몸을 눌렀다.

침착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도 안쓰러웠고 고마웠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 크롸라라라라라라!

용은 포효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고.

호흡이 흐트러졌으며, 몸에서는 열이 팔팔 끓어올랐다.

그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무언가 찡한 것이 발바닥 끝에서부터 분수처럼 솟구치는 그런 느낌.

- 토(土)시여, 아닙니다! 안쓰럽다뇨! 제겐 오늘까지의 그 모든 순간이 축복이었……!

“토께서 그쪽이 자유를 찾았으면 좋겠대요. 이제는 본인 자신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대요.”

- 아니, 어찌 그런 말씀을……!

급하게 반박하려던 용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사실이 그랬다.

토(土)의 파편은 사라져, 저 인간 쪽으로 흡수되었다.

그 말인즉슨, 이제는 지킬 것이 없다는 말.

저 남자가 떠나면?

자신 역시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아, 정정. 저 두 마리의 초룡을 위해서도 살아야겠죠. 이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건가?”

- ……!

카시아스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두 마리의 초룡.

토일(土一)이와 토이(土二).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이들.

용의 세월은 길다.

그렇기에 그만큼 성장도 더디다.

파괴룡 같은 특수종이 아닌 이상, 수많은 시간을 경험해야 성룡에 도달하겠지.

‘녀석들.’

이 두 마리의 새끼는 무언갈 경험하지 못했다.

수호 임무를 수행하는 어미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이곳에 갇혀있어야 했다.

세상을 몰랐으며, 보는 거라고는 파편 위에 생겨난 수정 덩어리뿐이었다.

용은 경험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그렇기에.

- 그렇습니까……?

카시아스는 토(土)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본인을 위해 살아라!

그것은 카시아스 자신이 아닌, 자신의 새끼를 위하는 말이기도 했다.

부르르르!

다시금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르며, 용은 남자를 바라봤다.

-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카시아스는 남자를 향해 존대했다.

그는 토(土)의 파편이 선택한 남자.

종족을 초월해, 존경받을 자격이 있었다.

“묻고 싶은 거요?”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 사실, 저는 자유가 뭔지 모릅니다.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이곳을 지키며 싸운 것 외에는 해본 게 없기 때문입니다.

혹여 아주 먼 옛날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찾을 수 없는 기억이다.

살아온 삶에 비하면 극히 일부라, 떠올리기도 힘들었다.

-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대 옆에 토(土)께서 계신다는 것.

- 혹시, 그대 옆에서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그대와 함께 세상을 경험해도 되겠습니까?

카시아스가 남자를 보며 제안했다.

아니, 부탁했다.

* * *

헐.

음…….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 옆에서 머무른다고?

용이?

저 끈질긴 방어력의 토룡(土龍)이?

뭐, 나야 좋긴 한데.

문제가 있었다.

아주 큰 문제.

“제 옆에 있는 거야 뭐. 그쪽 자유이긴 한데. 전 이제 곧 떠나는걸요?”

정령계가 우주 어디에 있는질 모른다.

얼마나 먼지.

어디 방향에 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다.

아직 우리의 문명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퀘스트가 끝났으니, 곧 무릉도원으로 이동하겠지.

이걸 우짜냐.

용을 아공간 가방에 쑤셔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 괜찮습니다.

토룡이 목을 떨었다.

- 저는 그대와 그대가 품고 있는 토(土)의 향을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 예, 그대가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가 그대를 찾아가겠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요.

쿠구구구구……!

용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날개를 활짝 폈다.

이렇게 큰 놈이 내 쪽으로 온다고?

이건.

나보다 용기사가 훨씬 좋아하겠는데?

어쨌든.

거절할 이유가 없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내가 있는 곳.

과연, 지구로 올까? 무릉도원으로 올까?

엄밀히 말하면 두 세계도 아예 다른 공간에 위치해 있다.

다만, 이 넓은 우주를 배경으로 쳤을 때 가까운 곳에 있기야 하겠지.

어쨌든 델라일라가 여행을 다니다 찾아낸 공간이니까.

‘어디로 오든.’

저 용은 분명히 날 찾아낼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 고맙습니다, 인간.

휘이잉! 휘잉!

토룡이 새끼들을 이끌고 하늘로 붕 떠올랐다.

- 그리고 고맙다. 바람의 정령사.

하늘을 나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어색하게 날갯짓하는 토룡.

그가 유이사에게까지 감사를 표했다.

끄덕.

유이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말씀을요.”

동시에.

후우우웅!

쿠과가가가가!

하늘을 난 용이 굴 천장을 뚫고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깊은 곳을 떠나는 괴수.

용은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나를 찾는 여행.

그 와중에 수많은 세계를 경험하고,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겠지.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아마도 언젠가는.

* * *

“지구라……. 우리도 언젠가 보는 날이 올까?”

비에이-12 출신의 정령사, 이스타가 머리를 긁적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쉽네.”

“아쉽.”

오시로툼 세계의 케린도 단답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마 조만간 만날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 전부.”

탕타라 세계의 정령사, 링링이 골렘 위에서 빙긋 웃었다.

“만난다고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마라고 했잖아요. 확실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고요. 하핫!”

링링이 내 어깨를 탕탕! 치며 웃는다.

뭐야?

호기심이 슬쩍 머리를 내밀었지만, 사실 시간이 없었다.

[보상이 도착합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고금제일인’(SS급)을 획득합니다.]

[띠링!]

[해당 아이템은 직업 연관성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투욱!

내 손아귀 위에 생겨난 목검.

새로운 매개체가 생겨났다는 것은 이제 곧 던전 밖으로 나가질 때가 되었다는 말.

[아이템 : ‘고금제일인’(SS급)]

[등급 : SS]

[종류 : 매개체]

[설명 : 숨겨진 유적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목검입니다.]

[효과1 : 던전, ‘무림’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헌터, ‘주동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은 헌터 등급 SS 이상부터 활성화 가능합니다.]

‘이건 딱 봐도 뼈일이 거네.’

나는 떠오르는 정보를 곁눈질하며, 정령사들과 인사했다.

정령왕들이야 뭐.

어차피 유이사만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고.

나머지 사람들은 진짜,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거니까.

‘심원의 수정은.’

굳이 챙기지 않았다.

[토(土)의 정수가 말합니다.]

[‘심원의 수정’은 그저 내 주변에 피어나는 부산물, 파편이 있는 곳에서 언제든 채광할 수 있다.]

즉.

파드드득!

내 손에서 무기가 생겨나는 것처럼, ‘심원의 수정’(SSS급) 역시 내 손에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무한정.

“이제 곧 가야 한다고 했죠? 고마웠어요, 동훈 씨! 그리고…….”

내 생명의 은인, 제아 실프리온이 나를 응시했다.

“그냥 혹시나 하는 말인데……. 우리 수아, 너무 미워하지 마요.”

스으읏!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본래 들어왔던 장소로 돌아나가는 과정.

나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제아를 향해 빙긋 웃어줬다.

“수아요? 그게 누구죠?”

“예……?”

동시에.

파앗!

기묘한 기운이 몸 전체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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