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32화
드미르의 역작 (1)
무릉도원으로 복귀한 나는 고개를 젖히고 깊게 심호흡했다.
“후아아.”
아아, 좋아라.
이 익숙한 공기와 환경.
역시 집이 최고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가 보다.
“나른하네.”
물론, 그냥 집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자연환경과 가슴이 뻥 뚫릴 정도의 시원한 절경을 자랑하는 나만의 공간이다.
나는 토룡(土龍)과 싸우느라 긴장됐던 근육과 정신이 한순간에 이완됨을 느끼며, 상태창 윗부분을 확인했다.
[헌터 : 주동훈]
[이명 : 스켈레톤 엠페러]
[기력 : 14,220/14,220]
[고유 능력 : 저주받은 네크로맨서]
[랭킹 : 4위]
[등급 : SS]
“아.”
아쉽게 랭킹은 그대로였다.
4위.
이건 1년이 지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아직 내가 마왕과 천마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판단했음일까?
‘뭐든.’
상관없긴 했다.
솔직히.
유이사의 합류 이후, 나는 자신감이 정수리 끝을 뚫고 솟구친 상태였다.
마왕? 천마?
둘 다 덤비라 해.
그래도 이길 것 같으니까.
나 자체도 만술의 기초를 닦은 터라 만만치 않은데.
‘4대 정령왕이라니…….’
정령왕의 힘은 정말 엄청났다.
10%의 힘만으로도 그 단단하던 토룡의 등껍질을 벗겨내지 않았던가.
물론 그만큼의 페널티를 받긴 했지만, 어쨌든.
정수와 비스름한 비대칭 전력의 증가는 추후 위기를 타파할 카드로 쓰일 수 있을 거다.
“아아, 세상이란 참 밝은 거구나!”
왜일까.
오늘따라 유난히 밝아 보이는 해를 바라보며.
팔깍지를 낀 채, 하늘을 향해 쭈~욱 뻗으며, 신선한 산소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스슷!
“교수님!”
허공에서 아린이가 튀어나왔다.
동시에.
쐐애애액, 콰아앙!
“주군, 다녀오셨습니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태양창까지.
그리고 하나둘.
무릉도원에서 훈련 중이던 내 수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크으!
이 주인의 등장을 맞이하고 반기는 수하들이라.
그래, 이런 게 바로 ‘집’이지.
날 환영해 주는 이들이 있는 공간.
“잘들 있었어?”
내가 빙긋 웃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김진아 : 길마님?!]
[김진아 : 스켈레톤들 다 달려가는 거 보니, 오신 것 같은데.]
[김진아 : 웬일로 빨리 오셨어요?]
허허.
이게 이제 소식이 좀 빠른데?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빨리 와서 불만입니까?]
내가 간단히 의식으로 채팅을 쳤다.
[김진아 :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김진아 : 빨라도 너무 빠르니까 문제죠.]
엉?
아, 빠르긴 했지.
실피드 만나고, 중앙구역으로 이동하고, 토룡과 싸우고 등등,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니까.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얼마나 걸렸는데요?]
[김진아 : 예……?]
[김진아 : 얼마나라니요. 이틀 전에……. 가셨잖아요?]
어엉?
그건 좀 많이 빠른데?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이틀이요……?]
그럼, 지금.
세계랭킹 발표식이 끝나고.
델라일라의 소집으로 회의한 지 채 2일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말?
허허허.
죽을 고비를 좀 많이 넘겨서 그런지, 난 한 일주일 이상 걸린 줄 알았는데.
아니면, 진짜 그랬을 수도 있다.
우주의 시공간은 신비하니까.
[김진아 : 그거 아세요? 어제 용기사 초룡도 얻었어요.]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진짜요?]
와, 그 브키아르의 알인가 뭔가.
그거 1년 전부터 계속 부화하더니.
드디어 얻은 거야?
[김진아 : 예, 엄청 귀엽던데. 지금 애지중지 키운다고 산도 안 내려오고 있는 거 같거든요? 하필, 길마님 가시고 바로 다음 날에 부화해서 아쉬웠는데, 한번 가 보셔요.]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조만간 가 봐야겠네요.]
어쨌든.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뭐, 잘됐습니다. 빨리 복귀하면 좋은 거죠, 뭐.]
“유이사.”
나는 뼈구를 불렀다.
후두두둑!
“부르셨나요, 주인님?”
만들어진 뼈가 순식간에 살과 머리칼을 생성했다.
와우, 폴리모프 숙련도가 거의, 아린이 급으로 빠른데?
내가 그녀를 부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다른 각성한 수하들과 인사시키기 위함!
“이게……. 뼈구의 모습입니까?”
태양이가 눈을 크게 떴고.
“반가워요. 뼈구. 아, 유이사인가요? 전 숲의 일족, 엘드린이라 해요.”
“반갑다, 카덴이다.”
“우린 구면이죠? 다나예요.”
모인 수하들이 하나둘,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이사가 살포시 무릎을 굽혔다.
“예, 전 유이사라고 합니다. 주인님께 은혜를 입었죠. 정령사예요. 다들 좋으신 분들,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각성자들은 각성 전 스켈레톤일 때 기억이 남아 있다.
유이사가 바로 폴리모프를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
어쨌든.
둘째는 유이사의 합류로 얼마나 세졌나 확인해 보고 싶음이다.
“유이사.”
“예, 주인님.”
“정령들을 불러봐. 약속했던 대로 우리 세계를 구경시켜 줘야지.”
“명 받들게요.”
우우웅!
빙긋 웃은 유이사가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 *
화르르륵!
촤르륵!
쿠구구구……!
휘이이잉!
유이사의 전후좌우로, 4대 정령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와우, 여기가……. 그 무릉도원이라는 곳인가?”
샐리온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오호홋! 이게 얼마만의 나들이인지 모르겠어요. 아아, 아름다워라. 어머?”
엘라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여긴 수맥이 좋네요? 오자마자 바꿔주려 했는데, 이미 누가 만지기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흐르네요. 기운도 충만하고.”
아아.
그거…….
수(水) 놈이 츤데레긴 츤데레인가 보다.
온갖 욕을 하면서도, 무릉도원에 힘을 팍팍 주는 걸 보면.
그 순간.
- 고오오오오!
쿠구구구구…….
땅이 흔들림과 동시에 산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어어?
이건 노아슨데…….
“유이사!”
내가 다급히 외치자, 유이사가 곧바로 내 진의를 파악했다.
“예, 바로 소환 해제시킬게요.”
- 그워어어?
억울한 목소리의 노아스.
내가 바닥을 푹푹! 밟았다.
“어딜 무릉도원을 망치려고.”
노아스는 산(山)만 한 골렘이다.
이런 데서 등장했다가는 드미르가 힘겹게 지어놓은 옆 도시가 무너질 수 있다.
아무리 10%의 힘이라 할지라도, 크기와 무게와 같은 물리적인 힘은 지반이 견디기 힘들 터.
- 그워어어어어어!
결국, 노아스는 제대로 된 구경조차 못 해보고 정령계로 돌아가야 했다.
들썩이던 땅의 진동 역시 다시금 가라앉았다.
“앞으로 노아스는 조용히 등장하는 거 아니면, 소환 금지야.”
“분부 받들겠습니다, 주인님.”
“그래, 그래.”
다음은.
휘이이잉!
실피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걸어 나왔다.
“정령왕을 그렇게 다루는 존재는 네가 처음이야.”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마치 [이런 미친놈] 하는 표정이었다.
어쨌든.
정령왕의 첫 등장에, 수하들이 자못 긴장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스켈레톤과 나는 ‘감응’이란 것을 한다.
즉, 내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의지를 웬만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교수님.”
먼저, 아린이 입을 열었다.
“응.”
“교수님의 전력을 파악하고 싶으신 거죠?”
내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게 핵심이다.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고 싶은 것.
근데 문제가 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문제.
‘상대할 사람이 없어.’
지구에 있는 어떤 던전도, 내가 겪었던 것에 비하면 약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천마신교나 마왕군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내 심장이, 내 의식이 가장 먼저 찾은 게 바로 아린이었던 거다.
그녀는 지식의 보고이니까.
“방법이 있어요.”
“역시!”
아린이답구나!
“뭔데, 뭔데?”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고대 마법 중에 위험한 고대 생물을 소환하는 방법이 있어요.”
“위험한 고대 생물?”
“다만 고대 마법답게, 좀 많이 위험할 수 있는데…….”
“일단 말해봐. 듣고 판단하게.”
“아포피스라는 녀석이에요. 기록에 의하면 고대에는 거의 용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생명체인데…….”
“용?”
내가 픽 웃었다.
방금 토룡(土龍)이라 불리는 고룡급을 발라먹고 온 나한테 뭐?
용?
그것도 용보다 센 것도 아니고, 겨우 용에 근접?
“바로 소환해 보자.”
“하지만, 교수님.”
아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것은 그때였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혀 보세요.”
“응?”
“아포피스는 위험하고 커다란 생명체예요. 여기다 소환했다간, 아까 땅의 정령왕처럼……. 겨우 지은 도시를 다 박살 내버릴 수도 있을 거예요.”
“으헛? 그건 안 된다, 주인!”
쿠웅!
근처에 있던 드미르가 망치를 땅에 내려찍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돼!”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땅딸보.
그 모습을 보며, 아린이 빙긋 웃었다.
“대신,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소환하면 괜찮을 거예요. 좀 많이 멀리 떨어진 곳에…….”
“좀 많이면……?”
“여기 행성 반대편이요.”
“아.”
이해했다.
이곳, 도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치고받고 싸우란 거지?
거기선 노아스도 불러도 되겠네.
“그럼, 잠깐만.”
고개를 끄덕인 내가 정령왕들을 바라봤다.
우선 아포피스인가 뭔가와 붙어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정령왕님들은 당분간 여기서 유희들 즐기고 계세요.”
다음으로 수하들을 바라봤다.
“너희도 계속해서 훈련하고.”
“예, 주군!”
“알겠습니다, 마스터.”
수하들이 각자의 무기를 땅에 박으며 답했다.
그리고.
스윽!
아까 내리박았던 망치를 들어 올리며, 씨익 미소 짓는 드미르.
“주인.”
녀석의 부름에 나 역시 입가에 미소를 가득 지었다.
와.
이거 어떡하냐?
벌써 설렌다, 진심으로.
코끝을 자극하는 금속의 향기와 모루에서 피어오르는 열기.
흐르는 땀과 함께 내려찍는 청량한 망치 소리까지.
“정령계에 갔는데, 심원의 수정은 가져왔겠지, 주인?”
아무렴.
“이거?”
파드드득!
내가 손을 내밀자, 그 위로 정령계 깊은 곳에서 봤던 크리스탈이 한가득 자라기 시작했다.
“끄아악!, 주인!”
드미르가 좋아서 나자빠졌다.
“진짜로 그걸 구해온 거냐? 크하하핫! 역시, 주인이다! 과연, 나 드미르가 평생을 몸 바쳐 모실 만한 주인이 맞단 말이다! 크하하하하!”
“그렇지? 하하하하!”
나도 마주 웃어줬다.
드미르야.
너만 기쁜 거 아냐, 나도 기뻐.
네가 이번 블랙 스미스로 성좌가 되면……. 나는.
유이사를 비롯해 두 성좌를 수하로 둔 존재가 되는 거거든.
“그럼 우리.”
휘잉!
손을 한 번 휘젓자.
후두두둑!
크리스탈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중한 수하들을 위해, 어디 한번 무기 좀 만들어볼까?”
향후.
우주 최고의 대장장이가 될 드미르가 만들어 낼 첫 역작을.
당장 뽑아보자고!
* * *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부길마님?]
[김진아 : 예, 말씀하십쇼, 길마님!]
내 부름에 김진아가 즉각 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인도자(引導者), 카푸의 채팅창 능력은 사기다.
편의성을 등급으로 매겼을 때, 거의 성좌급 아닐까?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저, 드미르랑 작업 들어갈 겁니다. 오늘부로 저는 그냥 없는 겁니다?]
내 말의 의미는 단순했다.
엄청 중요한 거 하니까, 그 누가 와도 찾지 말라는 뜻.
[김진아 : 또……. 뭘 하시려고.]
[김진아 : 아무튼, 알겠어요.]
[김진아 : 길마님이 무릉도원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 부길마. 마음에 안정을 찾았답니다.]
오케이.
준비는 끝났다.
도시 내 화려하게 지어진 공방의 꼭대기 층.
그곳에 나열된 열 가지의 무기 및 장신구를 보았다.
순서대로.
검, 창, 활, 방패, 지팡이, 망치, 성물, 건틀릿과 신발, 목걸이, 반지.
“주인.”
“응, 드미르.”
“이번엔 나 혼자 못해. 함께 도와줘야 한다.”
“그거 알아?”
두쿵, 두쿵!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지는 걸 느끼며, 내가 입을 열었다.
“혼자 한다고 하면 서운할 뻔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