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50화
고금제일인 (2)
백무흔의 목검 아래.
2세대 천하제일인 장삼봉이 쓰러졌다.
3세대 천하제일인 초대 천마의 목이 부러졌다.
…….
5세대 대종사(大宗師) 손천우.
6세대 도존(刀尊) 백량.
7세대 혈마(血魔) 위금백.
…….
그리고.
10세대 5대 천마 강소소.
…….
“그래서.”
뼈일이의 설명을 듣던 만술 노인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목검으로 이전 세대 천하제일인들을 다 패고 다닌 게냐?”
“……그렇습니다.”
“그중 하나가 걸걸인 거고?”
“예. 강 소저도 그 희생자 중 하나였지요.”
“허허.”
노인이 혀를 내둘렀다.
이미 강소소와의 푸닥거리는 끝낸 상태였다.
근처.
멀지 않은 곳에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데.
계속 놀고만 있을 순 없었으니까.
웃기는 건.
그 방방 뛰던 강소소 역시 얌전히 노인 뒤 좌측 끝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서열정리.’
만술 노인이 자신의 위라는 것을 그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과연, 마교다웠다.
도덕적 관념 따위 집어치우고, 순수한 강함만을 추구하는 광신도 단체.
나였으면, 강소소처럼 했을까?
‘아니.’
절대 못 했을 거다.
난 누가 내 위에 있는 꼴을 못 보니까.
상대가 죽나, 내가 죽나 끝까지 덤벼들었겠지.
“…….”
어쨌든.
뼈일이의 과거는 우리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고금제일인이 되기 위해, 모든 천하제일인을 뚜까 패고 다녔다니.
물론, 여기서 가장 충격받은 존재는.
“너, 이 새……. 쿨럭, 컥컥!”
바로 강소소였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욕을 내뱉다가 목이 막혀 버리기까지 한 그녀.
- 스승님, 괜찮아?
하세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괜찮겠냐?!”
버럭!
울분에 찬 강소소가 소리쳤다.
“열심히 무공 익혀서 최연소 천하제일인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죽은 이유가 뭐? 미래에서 온 천하제일인한테 당한 거라고? 와, 도대체 이게 무슨 대가리 깨진 막장 전개냐! 이 개 같은 놈아! 내 목숨 돌려내! 돌려내라고!”
억울함이 하늘 끝까지 솟구치는지, 방방 뛰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
“…….”
그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왜냐면.
진짜 불쌍한 상황이거든.
뭐, 그 세대 사람에게 죽은 거라면 이해라도 한다.
근데, 뭐?
미래?
솔직히.
이건 나라도 좀 많이 억울했을 것 같다.
진짜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거잖아.
웃기는 건.
당당한 뼈일이의 반응이었다.
“강 소저, 미안하게 됐소.”
“미, 미안하게 됐소? 됐소오오오? 와, 이거 진짜 개념 밥 말아 먹은 웃긴 놈일세. 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면 다냐?”
“그런데 말이오.”
“엉?”
“너무 억울할 필욘 없지 않소?”
“뭐, 뭣?!”
“어차피 마교는 강자존. 약자가 강자에게 죽는 게 일상인 세상 아니오.”
“미, 미…… 친?!”
열받은 강소소가 욕설을 내뱉었지만.
그 뒤에 따로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뻐끔거렸다.
‘오.’
나 역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네?
뼈일이의 말도 나름의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교도놈들.
원래 나쁜 놈들이잖아?
그들의 칼에 죽어간 자들 중 강소소보다 억울한 이들이 태반일 터.
그 상대가 과거의 사람이든, 미래의 사람이든 뭣이 중하단 말인가!
“끌끌끌.”
만술 노인도 재밌는지, 혀를 차며 웃을 뿐이었다.
“하여튼.”
뼈일이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주군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이곳에 소환된 이유는……. 제 ‘한’, ‘후회’를 풀어주기 위해섭니다.”
그의 뒤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대는 존재.
백무흔의 본신(本身).
저벅, 저벅.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저자는 제 고금제일인에 대한 탐욕이 뭉쳐 있는 덩어리. 과거의 저이자,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래.
위험해 보이긴 한다.
아주 많이.
꿀꺽.
나와 하세라가 침을 삼킬 때였다.
[띠링!]
[스테이지 : 검신(劍神)의 한]
[난이도 : 측정 불가]
시야에 임무가 도착했다.
[시공간을 비틀어 천하제일인을 모두 죽여 버린 백무흔. 그로 인해 그의 본 세계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모든 무공이 사라지고, 무림인들이 실종된 세계. 그곳에서 자신을 기억하는 이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욕심부린 자의 말로.]
[백무흔은 과거의 자신을 저주합니다.]
[백무흔은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합니다.]
[검신(劍神) 백무흔을 죽여, ‘뼈다귀1’의 진정한 각성을 이뤄내세요.]
“예, 열심히 꿈을 이루는 동안. 제가 사는 세상은 무너져 내렸지요.”
뼈일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엄청난 폭우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제 행동 하나하나 때문에 제 세상이 꼬여 버린 겁니다. 모든 숙원을 이루고 다시 본 세계에 복귀했을 땐 이미 하늘이 붉었고, 온 세상은 피로 가득했습니다.”
“…….”
“저는 제가 밉습니다, 주군.”
쿵! 쿵!
그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쳤다.
무엇을 한다고 그 많은 사람을 죽였을까?
그게 그만큼 가치 있는 꿈이었던가?
“그러하니, 제발.”
“…….”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리한다면.”
처억!
그가 왼 무릎을 바닥에 대었다.
“제 오만의 대가로, 주군께 영혼을 바쳐 충성을 다짐하겠습니다.”
크으.
본격적인 임무의 시작이었다.
* * *
“흘…….”
노인이 황당한 표정으로 백무흔의 본신을 바라봤다.
아직까지는.
흉흉한 기세를 뽐내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내.
줄줄 흘러나오는 기운에 오랜만에 숨이 턱 막힘을 느꼈다.
“저런 걸 죽여야 한다고? 끌끌, 이번엔 좀 많이 힘들겠구나.”
“예?”
“나랑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강할지도. 예측이 잘 안 된다.”
“헐, 그 정도입니까?”
그건 좀.
많이 빡셀 것 같은데.
“하지만 괜찮지 않아?”
저벅.
강소소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야 왜 우리가 실체화됐는지 감이 잡히네.”
동시에 백무흔을 바라봤다.
“합공(合攻).”
다 함께 보스를 치는 것.
“제자들만으로는 절대 무리이기에, 던전이 우릴 불러낸 거야. 저 빌어먹을 놈, 같이 잡으라고. 그게 아니면 답이 없다는 거지.”
이글이글.
강소소의 눈이 불타올랐다.
당연한 일이다.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불타오르지 않겠는가.
스릉!
하세라가 칼을 뽑았다.
화르륵!
나 역시 창을 만들었다.
‘검신, 네가 신(神)이라면.’
나는 신살(神殺)이다.
비록 뼈일이의 전생이 어마무시한 존재라지만.
우리 전부가 다 함께라면?
이번 각성 역시 제법 쉽게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
노인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저벅.
오히려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어르신?
왜, 같이 무기 안 꺼내시고 뒤로…….
“이놈아, 내가 왜?”
“예?”
“왜 나를 쳐다보느냐. 이건 네놈이 극복해야 할 시련 아니더냐?”
아.
그런 거였어?
안 도와주는 거였어?
“뭐, 뭐라고?”
당황한 강소소가 말을 더듬었다.
“저런 ‘걸’ 지금, 제자들에게 상대하라 하다니, 제정신인 거야. 노친네?”
“저런 게 아니다, 걸걸아.”
노인이 씩 웃었다.
“저건 뼈일이, 내 제자 놈의 수하 될 존재이지.”
“…….”
“주인이 수하 하나 못 이겨서야 어디 주인 노릇 할 수 있겠느냐?”
“그건 맞죠.”
내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말에 틀린 게 없었다.
저놈은 내가 극복해야 할 시련.
시간은 충분하다.
혹여 없더라도 만들어내야 했다.
“어르신은 도와주실 필요 없습니다.”
- 난 참전할 거야.
하세라가 칼을 휘둘렀다.
맞지.
그녀는 참전해도 된다.
그녀 역시 무언갈 얻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것일 테니.
공동 퀘스트로 엮인 이상 나 혼자 독식할 생각은 없다.
“진짜야?”
강소소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놈들이 아직 뭘 모르는 모양인데, 저거 좀 말도 안 되게 센 놈이다. 본좌의 목숨을 목검 하나로 끝낸 놈이라고!”
스릉!
노인이 칼을 뽑은 것은 그때였다.
“아니, 노친네는 또 왜 칼을 뽑아? 안 도와준다며?!”
“걸걸아.”
“으, 응?”
“도와주긴 뭘 도와주느냐? 우린 따로 훈련해야지.”
“훈련……?”
갑자기?
“언제 또 유령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가만히 쉬면서 구경만 할 생각이었느냐?”
“마, 맞네?”
“이리 와라. 제자들의 일은 제자들에게 맡겨 놓고 한판 붙어보자꾸나.”
“그러면…….”
강소소가 힐끔 하세라를 돌아봤다.
막말하고 못살게 굴어도 스승은 스승인 걸까?
극악무도한 천마의 눈에 하세라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 나는 걱정 말고 놀다 와, 스승님.
하세라가 꾹 움켜쥔 칼로 휘둘렀다.
“걱정은 무슨!”
휙!
하세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백무흔이 비록 자신의 원수지만.
이미 자신의 깜냥을 알아버렸다.
눈앞에 만술 노인 하나 못 이기는 실력으로, 어찌 고금제일인을 상대한단 말인가.
검신(劍神).
저자는 그냥 재앙이었던 거다.
사악했던 자신을 향한 하늘의 심판이었던 거다.
“근데 노친네.”
“말해라, 걸걸아.”
“나 검 없는데? 아까 영감이 부수는 바람에.”
“그거? 하나 주마.”
쩡그렁!
바닥에 떨어지는 쇠붙이.
“와, 미친! 아니,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저번부터 그게 제일 궁금한 강소소였다.
* * *
두 스승.
만술과 천마가 동굴 한쪽으로 사라졌을 때.
“…….”
꿀꺽.
하세라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수많은 던전과 사건, 그리고 훈련이 있었지만.
주변에 스승이 없어 본 적은 이번이 단언컨대 처음.
‘하지만.’
의외로 심장은 차분했다.
왜냐.
혼자가 아니니까.
주동훈, 그와 함께이니까.
- 그럼, 가 볼까?
후웅, 후우웅!
칼을 휘저어 글자를 적은 하세라가 아직도 묵묵히 앉아 있는 백무흔의 본신을 바라봤다.
벽.
하세라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것 또한 시련이자 기연이다.
저 벽을 넘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
“잠시만요.”
내가 말했다.
* * *
‘바로 싸우자고?’
아니.
그건 안 된다.
이건.
성급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아무리 무모해도, 정도란 게 있는 거고.
무엇보다 가슴이 시키질 않는다.
“기다려 봐요.”
나는 기세를 뿜어내며 달려 나가려는 하세라를 막아냈다.
- 왜?
“저놈 보면, 아직 움직이질 않잖아요.”
- 그래서?
“보통 이런 건, 한 대 치거나 건드는 순간 움직이거든요? 그리고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태청심법에 잡히는 백무흔의 기운은.
적어도 정령계에 존재하는 정령왕급이다.
성좌급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강소소가 성좌급 중 최상위다.
그런 강소소를 가볍게 때려잡은 놈이다.
그런 놈이 움직여 우릴 공격한다면?
끝.
세이브도 없이 게임 종료다.
“되돌릴 수 없어지는 거예요.”
- 그럼?
“준비해야죠.”
화르륵!
내가 창을 다시 지팡이로 바꾸었다.
원래 노인이 돕는 줄 알았을 땐, 바로 싸우려 했었다.
그만큼 노인의 힘이 강대했으니까.
하지만 하세라와 나 혼자 공략하는 거라면?
나 역시.
내 모든 힘을 동원해야 했다.
원래 부르지 않으려던 아린이까지 소환해야겠지.
투웅!
내가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고.
그러자.
저벅, 저벅.
태양이, 엘드린, 카덴, 다나, 무각, 유이사.
내 충성스러운 여섯 전투 요원들이 내 등 뒤로 걸어왔다.
그리고.
우우웅!
나는 추가적으로.
가장 믿음직스러운 존재, 아린을 불러냈다.
한창 아포피스를 잡고 있을 별천지 멤버들에겐 미안하지만, 일단은 내가 우선이잖아?
“교수님, 부르셨나요?”
붉은 머릿결의 소녀, 아린이 허공에 나타났다.
“아린아.”
“예.”
“혹시 저기 보이는 검신에 대해 조사 좀 해볼 수 있어?”
적을 효율적으로 상대하는 법.
그것의 첫걸음은 바로 상대에 대한 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