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61화
누가 서열 1위냐
검신(劍神) 백무흔은 성좌다.
즉, 여전히 강했다.
스켈레톤의 몸인 것?
‘폴리모프’를 통해 이전의 육체를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고.
탐욕의 백무흔을 죽인 것?
그 힘은 다 흡수해 버렸다.
그리고 솔직히.
탐욕을 부리나, 부리지 않으나.
둘이 똑같은 백무흔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니던가.
막바지 두 영혼이 뿜었던 힘은 분명 비등했었다.
스윽!
그리고.
그런 백무흔이 파괴룡의 검집을 늘어뜨리자.
쿠과가가가!
전신을 압도하는 엄청난 기세가 공간을 장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더욱 신기한 것은.
예전처럼 땅이 흔들리거나 갈라지는 게 아닌.
정확히 기세를 분출하는 그 대상들만이 위압감을 느낀다는 점!
실로 어마어마한 기력 컨트롤이었다.
“헛!”
“……흐읍!”
“무슨 이런?”
그를 막내라 부르던 스켈레톤들이 짤막하게 잇소리를 냈다.
뻔히 아는 거다.
무력으로 서열을 정하면 그 결과가 어찌 될지.
현재 무릉도원을 포함한 이 지구에서 백무흔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주동훈의 스승인 만술(萬術) 어르신이 오지 않는 한, 드래곤이 와도 안 되지 않을까?
“크하하핫! 동생. 잠깐만!”
드미르가 다급하게 백무흔을 말렸다.
“이건 아니지 않나. 같은 전우들끼리 만나자마자 칼을 들다니! 주인이 알면 얼마나 슬퍼하겠나!”
“주군을 존중하지만, 너희가 다짜고짜 막내라 부르는 상황까지 존중하는 것은 아니다.”
드미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백무흔이.
스르릉!
기어코 검집에서 검을 빼내었다.
“하,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사실 우리 사이에 서열이 어디 있나?”
“암, 그냥 가장 늦게 각성했으니, 장난식으로 막내라 불렀던 거지. 하하.”
드미르와 카덴이 넉살 좋게 웃으며 그를 만류했다.
‘제기랄.’
‘아무래도 이번 신입은 좀 꼴통인 것 같은데.’
‘힘이 오지게 센 만큼, 자존심도 엄청나구만! 완전 독불장군이야.’
물론 속은 그렇게 넉살 좋지 못했지만.
하여튼.
검을 뽑은 백무흔 덕에, 아홉 스켈레톤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따로 떠들고 있던 아린과 유이사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중앙으로 향한 것이다.
“음.”
상황을 대충 읽은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단순한 상황이었다.
원래 병력 통제나, 잡다한 지시 사항 등은 암암리에 태양창이 해왔다.
교수님께서 병력 통제는 경험 많은 카덴이 하라는 지시가 따로 있긴 했었지만, 다들 무의식적으로 가장 먼저 각성한 태양이를 선임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각 때부터 살짝 애매해졌다.
무각, 유이사, 백무흔.
뒤늦게 각성한 이들의 힘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관습상 하던 [막내]라는 호칭에서 백무흔의 반발이 나온 상황.
“나는 뼈다귀1이었다.”
백무흔이 입을 열었다.
“엄밀히 말하면, 가장 먼저 주군을 모셨던 사람이 나란 말이다. 무력도 그렇고, 순번도 처음인데. 왜 내가 막내라는 것이지?”
“각성을 늦게 했으니까.”
태양창이 바로 답했다.
“설마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상태에서 검 몇 번 휘둘렀다고 처음을 주장하는 건가? 지금껏 주군께서는 많은 여정이 있었고. 내가 가장 제정신인 상태에서 오랫동안 모셔왔다. 그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다.”
‘흠.’
아린이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둘 다 맞는 말이긴 한데.
어찌해야 하나.
이는 단순하지만, 또 중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들은 교수님의 충성스러운 수하.’
이들이 갈등을 겪으면 교수님이 손해를 본다.
그런 상황은 똑똑한 자신이 막아내야 했다.
‘일단은.’
백무흔이 주장하는 무력?
그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다.
무슨 마교의 강자존(强者尊)도 아니고.
협력은커녕, 서로 이기려고 훈련만 주야장천 할 게 분명했다.
훈련을 많이 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개뿔.’
이미 충분히 많이 하는 건 둘째치고.
서로가 경쟁상대가 되면서, 자신만의 비기나 깨달음을 공유하지 않으려 들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즉, 팀의 시너지가 없다는 말.
“그리고, 뭐? 무력?”
태양창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 험악해진 상황에 불을 더 지펴 올리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촤르륵!
화난 듯 높게 펼쳐진 검은 날개를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웃기는 놈이로군. 무력으로 서열을 정해? 나는 인정 못 한다.”
“인정 못 하면 네가 어쩔 건가?”
백무흔이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럼. 내가 실력 없이 입만 산 놈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건가?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그런 걸 1갑자로 천하통일을 이룬다 표현했지. 터무니없는 말이라는 뜻이다.”
“통제? 내가 언제 그런 걸 받으라 했나?”
“그럼?”
“오해하지 마라, 백무흔. 난 네 어깨를 툭툭 치며, 막내라 부른 것밖에 없어.”
“…….”
“그것에 발끈해서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주의 머저리처럼 날뛴 건 너지.”
태양창이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아, 뭐. 이해해. 검만 휘두르다 보면 그럴 수 있거든. 나 역시 과거에 그랬던 경험이 있어서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휘리릭!
태양창이 여유롭게 창을 돌려 등 뒤로 위치시켰다.
“여기는 단체다. 그것도 주군을 위한 조직이야. 네 개인적인 감정을 들추어 갈등을 일으키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태양창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모든 것을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그의 우둔함을 꾸짖는 그의 공격.
“흥.”
눈썹을 찡그린 백무흔이 코웃음 쳤다.
“적어도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불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군.”
그가 생각하기에, 태양창의 말에는 모순이 있다.
갈등을 일으키는 곳이 아니라면서.
정작 갈등의 원인을 가장 크게 제공하는 게 태양창 아니던가.
“게다가 나 역시 처음부터 요지는 ‘막내’였어. 논점을 흩트리지 마라, 태양창.”
파직!
파즈지직!
두 절대자의 눈에서 맞불이 튀었다.
정적.
무릉도원의 공기가 유난히 서늘해졌다.
단언컨대.
수하들끼리의 갈등은 처음 있는 상황.
“이런 이런.”
엘드린이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허허.”
“이걸 어째야 하나.”
카덴과 드미르도 당황하고 있었다.
“크하핫! 시원하게 맞짱 떠버려!”
투신, 무각이 웃으며 말하다가.
“아아, 참. 그럼 백무흔의 편을 드는 건가? 아하하, 오해하지 마. 난 중립이거든. 진짜야, 진짜라고.”
차라리 그냥 비난을 해, 무각아…….
자존심이 뭉개진 태양창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주군을 위함은 변함없지만, 그는 그저 백무흔이 싫었다.
뼈일이가 싫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이유 없이 노골적으로 싫은 사람.
별다른 이유 없이 띠꺼운 사람.
태양창에겐 그게 백무흔이었다.
‘그가 강해서?’
아니.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고프다면서, 탐욕적이었던 과거를 후회한다면서.
뭐?
무력으로 서열을 정하자고?
그게 인간이 고프다는 사람이 할 소리인가?
혹여 막내라는 말이 싫었어도.
말로 설득을 했어야지.
칼을 뽑아서는 안 됐다.
힘으로 해결하려 했으면 안 되었다.
“흠.”
아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스켈레톤들은 서로의 감정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백무흔과 태양창의 갈등이 생각보다 더 골이 깊다는 걸 느꼈다.
화르륵!
아린이 손바닥에 불꽃을 피워 올렸다.
혼자.
성좌가 아님에도 그 누구보다 밝게 타오르는 엘로이즈의 불빛.
“둘 다, 떨어져 봐요.”
아린이 불꽃으로 둘의 거리를 떨어뜨렸다.
“아린.”
“넌 또 뭐…….”
“스읍!”
아린이 똥개 혼내듯 바람을 들이키자.
“……!”
“……!”
움찔한 백무흔과 태양창이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다.
지금.
백무흔과 태양창의 머릿속에는.
상황을 지켜보는 다른 스켈레톤의 속마음이 어렴풋이 들리고 있었다.
‘야, 야야야야. 아린은 건들지 마.’
‘아린 양은 마스터가 제일 아끼는 수하지.’
‘아아, 이 미련한 자들이여. 설마 마스터에게 미움받고 싶나요?’
엘로이즈 아린.
주군이 가장 아끼는 수하.
그걸로 모든 게 끝이었다.
사실상, 서열 1순위.
“둘 다 혼날래요? 살 만큼 사신 양반들이 이렇게 유치하게 싸우고 싶나, 정말.”
가장 키 작은 소녀가.
가장 어려 보이는 소녀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꾸짖음에도.
“…….”
“…….”
백무흔과 태양창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들도 알았다.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쪽팔린 순간이라는 것을.
하지만 또 알았다.
그냥 넘어갔어도, 언젠간 터질 일.
여기서 무조건 매듭짓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후, 좋아요.”
옅게 한숨을 뱉은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지금이 자신이 나설 차례다.
“그럼 둘이 시원하게 대결해요.”
“……대결?”
태양창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지하게 나서서 하는 말이 또 대결?
그럼 내가 지잖아?
후우웅!
백무흔이 미소 지으며, 다시 한번 검을 떨쳤다.
“대결이라면 난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
당장에라도 태양창을 갈라 버릴 듯한 기세가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후.”
아린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싸우라는 게 아니에요.”
“……?”
“공평하게. 균형이 맞는 방안으로 제가 제시할 거예요. 그것대로 임무를 수행하시면 돼요. 당연히 결과를 매길 거고. 거기서 이기는 사람이 형이고 지는 사람이 동생 하시면 돼요.”
“……?”
“…….”
“솔직히 교수님한테 물어보면 끝나는 일이거든요? 그냥 교수님이 네가 형 해라! 하고 정해주면 그대로 따를 거잖아요. 맞죠?”
“……그렇지?”
“주군의 말은 지엄하니까.”
백무흔과 태양창이 순서대로 말했다.
“근데 그러고 싶으세요?”
……
아니.
아니다.
주군의 명을 받들겠으나.
마음으로는 승복하지 못할 거다.
“게다가.”
아린이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교수님께 물어본다 쳐요. 교수님 입장은 생각 안 해요? 교수님에겐 둘 다 소중한 수하들일 텐데, 한쪽 편을 들어주란 말이잖아요. 안 그래도 바쁜 교수님께 심란한 감정을 느끼게 해야겠어요, 안 해야겠어요?”
“……아니지.”
“안 해야 한다…….”
마치 선생에게 혼나는 학생처럼.
순둥순둥하게 대답하는 그들.
심지어 어느덧 정 자세까지 한 둘이었다.
“그러니까.”
아린이 달래듯 미소 지은 것은 그때였다.
“제가 말한 대로 하기로 해요. 저도 슬슬 짜증 나려 하니까. 아시겠어요?”
아린이 임무를 던져주고!
그 결과에 따라 깔끔히 승복하기!
“…….”
“…….”
둘 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다가.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