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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화 (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화

남작 후계자의 생활에는 로망이 없다.

중앙에서 존재를 알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변방의 시골 영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로 방앗간의 풍차들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고, 드넓은 목초지에는 젖소와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따악. 따악.

반대편 숲에는 마을 남자들의 벌목 작업이 한창이었다. 넉살 좋은 로버트가 또 무슨 농담을 했는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작은 영지에서의 나날은 평화로운 슬로우 라이프, 그 자체였다.

그래도 시몬은 이곳의 생활에 꽤 만족하는 편이었다.

"시몬. 영주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옆에서 나란히 걷던 시몬의 아버지 리처드가 물음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시몬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음...... 포용력? 아닐까요."

리처드가 빙그레 웃었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구나."

"그럼 좋은 대답은요?"

리처드가 천천히 팔을 들어서 가슴에 손을 올렸다.

"뜨거운 가슴이다."

의외의 대답에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네?"

"계절마다 잎이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영주에게 필요한 덕목도 상황에 따라 변한단다."

리처드가 시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었다.

"영주는 친구도, 부모도, 심지어는 악역도 될 수 있어야 하지. 하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영주는,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힘이 생긴단다. 주종관계의 유대란 그런 것이지."

"나으리!"

리처드와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성인 장정 여럿이 큰 통나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는데, 표정을 보니 제법 버거워 보였다.

"산책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으시다면 '그걸' 좀 부탁드립니다!"

"기꺼이 그러겠네. 찰스."

시몬은 슬쩍 긴장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리처드 폴렌티아는 평범한 시골 영주지만,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물러서거라. 시몬."

눈을 감은 리처드가 빠르고 조용히 주문 몇 마디를 읊조리고는 손바닥을 펼쳤다. 검은 빛무리가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마법진의 형상으로 변했다.

시몬이 경계의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법진이 작동을 시작하며 사방의 나무와 수풀들이 흔들렸다.

'온다!'

바닥이 출렁거리며 검은 늪처럼 변하고, 그 위로 솟아난 팔들이 태양을 갈구하듯 흔들렸다.

그 팔들은 살점 한 점 없이, 하나같이 새하얀 뼛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언데드(Undead).

산 자에 대한 맹목적인 공격성을 가진 괴물들.

하지만 이 영지에서는 그런 상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따닥.

따다닥.

바닥을 짚고 일어난 해골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던 통나무를 함께 떠받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나으리!"

심지어 영지민들도 해골들을 두려워하긴커녕, '이제 살았다! 같은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계속 수고하게."

그렇다.

시몬의 아버지는 네크로맨서였다.

* * *

네크로맨서들이 세계의 절반을 지배한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시작은 탈헤른 제국부터였다.

탈헤른의 황제가 네크로맨서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의 본거지인 '키젠'에 5만 대군을 보냈을 때, 키젠에서는 단 10명의 네크로맨서만을 파견했다.

고작 10명.

그리고 여기서 '장미 회군'으로 불리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키젠으로 향하던 5만 대군이 고스란히 말머리를 돌려 제국의 수도로 되돌아왔다.

전부 언데드가 된 채로 말이다.

탈헤른의 수도는 쑥대밭이 됐고, 황제는 키젠에 항복했다.

이후, 탈헤른의 왕좌는 '한때 황제였었던'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차지하게 됐다.

제국의 문무백관들이 시체 덩어리에 머리를 조아렸고, 수천만 제국민들이 30년간 썩어 문드러진 시체의 인형극 놀음에 농락당했다.

네크로맨서의 힘과 공포를 보여준 역사의 단편.

시대의 주류로 떠오른 네크로맨서들은 서서히 세력을 넓혀 나갔고, 이제는 대륙의 절반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머지 절반은 이들의 유일한 대척점인 '프리스트'들이 차지했다.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던 두 세력 간에 일어난 100년 전쟁 이후,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대륙은 다소 위태로운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영지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려나.'

시몬은 이런 전쟁의 역사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그가 다스리게 될 영지 '레스힐'에서 최근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들을 꼽아보자면, 좀처럼 소식이 없던 찰스네의 암소가 두 마리의 새끼를 건강하게 순산한 것과, 밀대로 마룻바닥을 닦던 칼론이 미끄러져서 이마를 세 바늘 꿰맨 정도였다.

시몬은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영주성에 도착했다.

아, 물론 영주성이란 이름도 영지민들이 애써 그렇게 불러주는 거였고, 사실은 그냥 평범한 나무집이다.

가난한 영주들도 영주의 위엄이 어쩌고 하면서 작게나마 성채를 갖추는 데 비하면, 레스힐의 영주인 리처드는 무척 소박한 편이었다.

끼이익.

"엄마, 저 왔어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니, 기분이 편안해지는 나무향이 물씬 풍긴다. 벽면에는 벽난로의 장작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시몬! 왔니?"

앞치마를 입은 회백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주방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시몬의 어머니인 안나 폴렌티아였다.

"네, 방금 마을의 벌목 작업을 도와주고 오는 길이에요."

"밥은 먹었고?"

"......아까 점심때 먹었잖아요."

"남은 반죽으로 빵 좀 구워놨으니까 잼 발라서 먹으렴."

아들을 못 먹여 죽은 귀신이 들어간 게 틀림없다. 어머니인 안나는 시도 때도 없이 주위 사람들을 먹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시몬은 못 들은 척하며, 식탁에 있는 쟁반을 가리켰다.

"엄마, 이건 뭐예요?"

"레하크 버섯을 우린 물이란다."

레하크 버섯은 남쪽 산맥에서 자주 발견되는 독버섯인데, 물에 넣어두기만 해도 이렇게 녹색 기름 같은 것이 둥둥 떠다니게 된다.

먹으면 복통이나 설사로 일주일은 고생하겠지만, 안나의 손을 거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녀가 소매를 걷으며 다가오더니 레하크 버섯을 우린 물에 손을 올렸다.

우우우웅!

"와!"

지켜보던 시몬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그녀의 손에서 하얀빛이 일렁이는 것과 동시에 독이 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둥둥 떠다니던 녹색의 이물질들이 그림처럼 사라지고, 버섯의 영양만이 온전히 남았다.

독을 정화할 때 그녀의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하얀 아우라. 흔히 '신성'이라고 부르는 힘은 프리스트의 상징이었다.

그렇다.

시몬은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몬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저 두 사람이 동화 속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금단의 사랑을 나누었고, 그 결과 태어난 게 바로 자신이라는 것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다.

"시몬!"

언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는지 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플파이 구웠으니까 먹으렴!"

"......아, 알았어요."

* * *

언제나처럼 하루가 지나갔다. 시몬은 고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레스힐은 오늘도 조용했고, 내일도 조용할 것이다.

이 평화로운 일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시몬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팔랑!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창밖에서 날아온 편지가 시몬의 얼굴에 찰싹 들러붙었다.

"끄훕."

시몬이 팔을 들어 그것을 떼어내며 눈을 떴다.

"안녕?"

낯선 목소리에 시몬은 눈을 끔뻑였다.

달빛이 처연하게 비치는 창가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다리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는, 이질적이다 못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숲의 요정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때가 됐어."

벌꿀처럼 달콤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잠시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시몬은, 조용히 이불을 들어 머리끝까지 덮었다.

"못 본 척하지 마!"

소녀가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창가에서 내려왔다.

"나 봤잖아! 일어나 빨리이!"

왁왁 소리 지르는 그녀의 성화에 시몬은 마지못해 이불을 걷고 부스스 상체를 일으켰다.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길을 잃은 거야? 엄마는?"

소녀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여유를 되찾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달빛이 창 안으로 비치며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한층 더 황홀하게 빛났다.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 널 보러온 거야, 시몬 폴렌티아."

시몬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나를? 왜?"

"그 편지를 읽어봐."

나이답지 않은 엄숙한 목소리였다.

시몬은 조심스럽게 봉인을 뜯고 편지봉투를 열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반으로 접힌 빳빳한 종이가 보였다.

벌컥!

"시몬!"

"시몬! 방금 무슨 소리니?"

방문이 열리며 리처드와 안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과 은빛 머리의 소녀가 시선을 마주했다.

"아......!"

"네프티스 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 듯, 부부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소녀도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리처드, 안나!"

세 사람은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몬은 졸지에 소외된 기분을 느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리처드는 소년처럼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어머니 안나는 지금 당장 식사 준비를 하겠다며 난리였다.

"시몬. 제대로 예를 갖춰 인사드리거라."

리처드가 말했다.

"네프티스 아크볼드 님이시다."

어, 잠깐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네프티스 아크볼드.

네프티스 아크볼드.

아니, 그럼 설마......!

'키젠의 네프티스 아크볼드!'

키젠을 다스리는 모든 네크로맨서의 정점.

한 제국의 황제를 시체 꼭두각시로 만든 '탈헤른 사태'의 장본인이자.

300년을 살아 있는 죽음의 마녀.

그게 바로 저 소녀라고?

'그럼 이건 뭔데.'

시몬이 덜덜 떨며 편지지를 꺼냈다.

"정식으로 제안할게. 시몬 폴렌티아."

편지지를 읽는 시몬의 귓가로 소녀의 목소리가 노랫말처럼 울렸다.

[키젠 입학통지서 - 시몬 폴렌티아]

"키젠으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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