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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화 (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화

네프티스가 돌아간 후, 시몬은 인생에서 가장 바쁜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언제나 느긋하던 아버지 리처드 또한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의 서슬 퍼런 눈빛과 날 선 행동에 '꼭 키젠에 가야 하나요?' 같은 어린아이 투정 따위는 쑥 들어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리처드는 시몬의 몸에 마법을 걸었다. '코어(Core)'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했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미친 듯이 고통스러웠다.

사흘 밤낮을 꼬박 새우며 코어의 구축 작업이 끝나자, 시몬은 리처드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영지 사정에 걸맞지 않은 무척이나 크고 호화스러운 마차였다. 느껴본 적 없는 안락한 쿠션감에 시몬은 입이 딱 벌어졌다.

"무사해야 한다 시몬."

기어이 2주일 치 도시락을 마차에 실은 안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흔들었다.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레스힐로 돌아오렴."

소문난 애처가인 리처드가 이제 첫발을 내딛는 아이에게 그게 무슨 소리냐며 화를 냈다.

살아생전 두 사람의 부부싸움을 본 적이 없던 시몬은 정말로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마부가 말고삐를 잡아당기자 마차 바퀴가 굴러갔다.

이렇게, 평생을 레스힐에서만 살았던 시몬의 모험이 시작됐다.

물론 편안한 마차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차 안에서 리처드는 시몬에게 속성으로 흑마법을 가르쳤다.

"호흡을 해보거라."

굳이 호흡을 하란 소리는, 리처드가 가르쳐 준 '호흡법'을 사용해 보란 뜻이었다.

시몬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대기 중의 마력을 체내로 끌어들였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연습한 일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 천천히 내부의 마나를 움직여 코어에 통과시키거라."

리처드가 시몬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보조했다. 시몬은 강처럼 흐르는 마나를 조심스럽게 심장 아래의 코어에 통과시켰다.

뭔가 달라졌다. 흐물흐물하던 마나가 좀 더 점성이 생기고 단단해진 느낌이다.

"이제 마나가 팔을 타고 흐르도록 유도하거라. 그래, 그대로 손 밖으로 방출하렴."

막힌 혈이 뻥 뚫리는 기분과 함께.

시몬의 손바닥에 검은 액체가 땀방울처럼 묻어나왔다.

시몬이 눈을 깜빡이며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자, 리처드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잘했다 시몬. 이게 바로 네크로맨서가 가진 힘의 근원인 '칠흑'이다."

리처드의 말에 따르면, 한때 기사와 마법사들이 대륙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는 주류를 차지한 네크로맨서에 밀려 약세를 보인다. 기사는 네크로맨서의 물량을 이길 수 없고, 마법사는 시전속도와 파괴력에서 밀린다.

"마법사와 네크로맨서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칠흑'의 유무란다."

리처드가 왼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 위로 푸른색의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마나는 기체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 밀도가 낮아서 결속이 어렵고 대기 중에 흩어지려는 성질이 있다."

이번에는 오른손을 뻗었다. 점성 있는 검정 액체가 샘처럼 솟아 나와 손바닥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반면 '칠흑'은 고체나 액체에 가까운 성질을 가지고 있단다. 농밀한 마력으로 이루어져서 결속이 쉽고 형태변형이 자유롭지."

손바닥에 흘러내리던 점성 있는 검은 액체가 갑자기 불쑥 위로 솟구쳤다. 그것은 허공에서 다시 뭉쳐 꽃으로 변하고, 파도로 변했으며,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이나, 회전하는 풍차로도 변했다.

"와......!"

갑자기 시작된 화려한 쇼에 시몬이 감탄성을 흘리는 그때, 칠흑이 형태를 바꾸어 '마법진'의 형태를 이루었다. 수많은 룬어들로 구축된 검은 마법진에서, 마치 폭탄이 폭발하듯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오싹한 느낌과 함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뭔가, 뭔가 대단한 게 벌어지려는......!

쩡!

리처드가 주먹을 쥐자 마법진이 깨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던 잿더미들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 칠흑을 기반으로 권능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우리는 네크로맨서라고 부른다."

시몬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어서 가르칠 수 있는 게 많지 않구나. 남은 시간 동안 코어로 '칠흑'을 뽑아내는 기본기 연습에 집중하자꾸나."

"네. 아버지!"

칠흑을 만들어내는 연습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처음엔 손바닥에 방울이 고이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가 커지고 형태도 달라져 갔다.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성과가 있으니 시몬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에 몰입했다. 리처드도 아들의 빠른 성취에 만족하면서도 조바심을 느끼지 않도록 이끌었다.

'......괴물 같은 성취다.'

리처드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단순 방출에서 형태변화까지 고작 사흘.

이건 진짜로 정상이 아니다.

범재가 형태변화를 이룩하는 데 반년에서 2년 가까이 걸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몬은 칠흑을 위해 태어난 소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기 아들이지만 가르치는 중간중간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사실 리처드도 시몬의 재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코어'를 만들어주지 않은 건 때가 오길 기다렸을 뿐.

자아와 정서가 확립되지 않은 때에 폭발하는 재능은 독이다. 리처드는 폭군처럼 행동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누구보다 후회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실수를 아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시몬도 재능을 꽃피울 때가 왔다. 전 대륙이 이 아이의 등장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리처드는 온몸에 전율이 흘러서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었다.

"아버지! 보세요!"

시몬이 손바닥 위로 불꽃처럼 넘실거리는 칠흑을 일으켰다. 리처드는 진지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암청. 약간의 푸른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칠흑이구나."

"조, 좋은 거죠? 저 희귀 케이스인가요? 재능 있는 거예요?"

"그냥 멋있는 게 다다."

"......."

시몬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연습을 재개했다. 리처드는 고개를 돌리며 승천하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수습했다.

'표정관리도 쉽지 않군.'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시몬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내가 같이 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란다. 시몬."

갑작스럽게 리처드가 통보했다. 시몬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키젠까지 데려다주시는 줄 알았어요."

"미안하지만 아비는 사정이 있어서 드레스덴 왕국령엔 발을 들이지 못해. 여기서부터는 네가 모든 걸 결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갑자기 지독한 중압감이 밀려들며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17년을 레스힐에서만 살았으니, 이런 변화가 두렵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때 리처드가 시몬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장담하마, 아들아. 넌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게야. 그리고."

리처드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진심으로 네가 자랑스럽구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의 인정에, 시몬은 가슴 한편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다녀올게요. 아버지."

그렇게 리처드와도 헤어진 시몬은 넓은 마차에서 홀로 지냈다.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칠흑의 단련에 집중했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흘러.

"와......!"

드레스덴 왕국의 수도, '랭거스틴'에 도착했다.

대도시를 처음 본 시몬의 감상은, 그저 압도당했다.

하나같이 높고 커다란 건물들과 정신없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마차들, 그리고 우글거리는 사람들까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비켜! 비켜!"

시몬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가파른 비탈길을 폭이 5미터가 넘는 초대형 마차가 내달리고 있었다. 그 마차를 이끄는 건 무려 온몸이 앙상한 뼈로 이루어진 말이었다.

'언데드!'

도시 한복판에 언데드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차나 인력거를 끄는 단순 노동에서부터, 광장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잡일까지.

네크로맨서들이 주류가 된 시대라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정신 바짝 차리자.'

시몬은 가볍게 자신의 뺨을 두들긴 다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쪽지를 펼쳤다.

<239 캠맬로드, 랭거스틴 SL1E 6AJ.>

<가이드 대기 중>

'이 주소로 찾아가란 거지?'

시몬은 각오를 다졌다.

랭거스틴이든 레스힐이든 결국 다 사람 사는 곳 아니겠는가. 이 주소로 가서 키젠까지 안내해 줄 가이드를 만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

하지만 이 정보만 봐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시몬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풍성한 금발의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시, 실례지만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부인."

여인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시몬은 식겁했다.

그녀의 한쪽 눈이 튀어나와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아가."

"......."

놀라면 실례다. 놀라면 실례다.

시몬은 필사적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이 종이에 적힌 주소로 가고 싶은데요......."

"주소? 어디 보자."

대롱대롱 흔들리던 눈알이 휙 길어져서 종이를 훑는 광경에 시몬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다행히 입술을 꾹 깨물고 있어서 소리가 튀어나오는 일은 면했다.

"아, 캠맬로드? 랭거스틴의 명소란다. 저기 위에 보이는 광장을 돌아서 오른편으로 가면 황금빛 타일이 펼쳐진 골목이 보일 거야."

"아......! 정말 감사합니다!"

시몬이 꾸벅 허리 숙여 인사했다.

여인은 손에 든 부채를 펼쳐 입을 가리고는 호호 웃었다.

"요즘 보기 드문 깍듯한 아기네. 랭거스틴에서 행운이 있기를 바라마."

다행히 뭔가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한 시몬은, 여인이 알려준 광장을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

그리고 잠시 후.

조용히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가 시몬과 똑같이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 * *

'드디어 캠밸로드에 왔구나.'

대체 이 도시는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걸까. 시몬은 20분을 헤맨 끝에 캠맬로드에 들어올 수 있었다. 여인이 말한 대로 바닥 타일이 금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239, 239.......'

쪽지를 들고 건물마다 붙어 있는 주소를 체크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실례합니다."

맞은 편에서 누군가가 훅 나타나 시몬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대머리 남자였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한번 닦고는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 239 캠맬로드, 정확히는 SL1E 6AJ에 가고 계십니까?"

시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떻게 주소의 상세사항까지 알고 있는 거지?

"아! 혹시 하울 님이 보낸 가이드란 분이......!"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하울 님의 가이드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셔서, 혹시나 길을 잃으신 게 아닐까 해서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시몬은 크게 안도하며 말했다.

"드디어 만났네요. 저는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랭거스틴 가이드인 라울리입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여독도 쌓이셨을 테니 숙소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15분 정도 걸으셔야 합니다. 지름길로 최대한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네!"

캠맬로드에서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으며, 시몬은 연신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길 봐도 집, 저길 봐도 집이다. 얼마나 빼곡하게 들어찼는지 공간의 낭비가 거의 전무한 수준.

이 도시의 사람들만 해도 레스힐 영지 전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몇 배는 많을 것 같았다.

"정말 걱정했습니다, 고객님. 랭거스틴에서 외부인이 가이드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거든요."

라울리가 줄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눈 뜨고 코 베인다고 하죠. 순진한 여행객들을 벗겨 먹으려는 사람들이 도시에 득실대고 있습니다. 소매치기, 강도, 바가지 씌우는 악덕 상인들까지. 숙소에 가면 제가 랭거스틴 방언을 몇 마디 알려드리겠습니다. 임시방편이지만 아예 할 줄 모르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아하."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아저씨도 절 벗겨 먹으려 하시는구나."

"......!!"

라울리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고, 고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

"의도치 않게 시선이 아래쪽으로 자주 향하시네요."

시몬이 검지를 뻗으며 말했다.

"손으로 조끼의 아랫주머니를 직접 더듬어 본 것도 한번, 물건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한 거죠? 주머니 폭이랑 구김을 보면 나이프 같은 물건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

라울리가 식은땀을 흘리며 시몬을 돌아보았다.

"그건...... 네. 맞습니다."

찰칵.

그가 순순히 인정하며 조끼의 아랫주머니에 나이프 손잡이를 보였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랭거스틴은 위험한 곳입니다. 이렇게 좁은 골목에서는 누구와 맞닥뜨릴지 모르니......."

"결정적으로 아까 말씀드린 하울이라는 사람, 사실 제가 지어낸 거예요."

시몬이 빙글빙글 웃으며 팔로 뒷머리를 받쳤다.

"하울 님의 가이드라고 하니까 바로 받아먹으시더라고요. 레스힐의 존슨이 아끼는 염소 이름이 하울인데, 혹시 염소의 심부름이라도 하시나요?"

"......."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라울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그럼 다 알고도 따라온 거라고? 너 대체 뭐 하는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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