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화
"우, 웃기지 말고 지금 당장 네프티스에게 연락해! 니들이 감히 날 이렇게 취급해도......!"
펑.
하고 루시우스의 몸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허공에 피로 추정되는 액체 몇 방울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단지 그뿐.
모두가 입을 벌린 채 눈만 끔뻑였다.
"시간 없다. 입학생 전원 배에 탑승하도록."
실라지가 뒷짐을 지고 돌아서며 말했다.
"자네도."
"......."
시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배로 이동했다.
방금의 사건으로 입학생들의 분위기는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다만 몇몇 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속닥였다.
"저게 혈류계 흑마법이구나!"
"저주학 지망인데 순간 흔들릴 뻔."
"1학년도 저 교수님 수업 들을 수 있는 거 맞지?"
시몬은 배를 향해 걸어가면서 힐긋 실라지 쪽을 보았다. 실라지도 시몬을 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미소 지었다.
"걱정 마라. 죽인 건 아니니까."
"......아, 넵."
시몬이 배에 올라타자 실라지가 말했다.
"전원, 좌석의 안전띠를 매도록."
실라지가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불그스름한 방울 같은 것이 펼쳐지며 배 전체를 덮었다. 시몬은 호기심을 품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 배로 어떻게 키젠까지 간다는 거지?'
뱃머리는 바다가 아니라 지면 쪽을 향해 있었다. 후진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는데, 통신을 주고받고 있던 하수인이 실라지에게 보고했다.
"교수님. 5분 후에 도착합니다."
"그대로 유도해."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거대한 물보라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물보라는 갈수록 그 크기를 부풀리며 다가오더니, 잠시 후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고래가 튀어나왔다.
"우와아아!"
고래는 그대로 입을 벌려 배를 통째로 집어삼킨 채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 * *
키젠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중 언데드 '황천고래'.
전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키젠이 지정하는 도시의 항구를 뜯어먹는 몬스터다.
다만 1년에 1번. 텔레포트 허가를 받지 못한 키젠의 신입생들을 학교로 옮기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더 간단히 말하면 키젠의 고속 '이동수단'이다.
고래 뱃속이라지만 내부는 꽤 따뜻하고 쾌적했다. 고래에 상주하는 키젠의 하수인들이 배로 올라와 신입생들의 수발을 들었고, 음식도 제공했다.
분위기는 곧 풀어졌고 다들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 아까 대단하더라."
시몬도 옆자리의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는 녹색 머리카락의 소년은 자신을 '로웬 오스카'라고 소개했다. 얼마나 사교성이 좋은지, 시몬에게 오기 전에 벌써 몇 명이랑 친해졌다.
"그렇잖아. 선뜻 나서기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그걸 네가 달려가서 손목을 확!"
"대단한 일도 아니었어."
시몬은 대수롭지도 않게 대답하며 생선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살이 부드럽게 잘려 나가고 그 위에 레몬즙을 살살 뿌렸다.
주로 로웬이 이야기하고, 시몬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주는 가운데, 로웬이 손뼉을 짝 치며 물음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넌 입학시험 뭐로 치렀어?"
"입학시험?"
처음 듣는 이야기에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것도 있었던가?"
"당연하지! 키젠에 들어오려면 누구나 치는 거잖아! 나 같은 경우는 칠흑으로 형태변화를......."
로웬이 자연스럽게 본인 이야기로 넘어가 버리는 사이, 시몬은 의문에 잠겨 있었다.
시험이라고? 전혀 그런 걸 치른 기억이 없었다.
'이거 함부로 이야기했다간 형평성에 문제 생기는 거 아냐?'
5,000골드 상당의 아이템도 받았는데, 더 이상 네프티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과장이 잔뜩 들어간 영웅담을 끝낸 로웬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너는 어때?"
"어, 음...... 나도 너랑 비슷한 거였어. 칠흑 형태변화."
"오, 우연인데!"
"다들 자리에 앉도록. 이제 곧 도착한다."
실라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떠들썩하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들이 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도착이라니. 긴장감이 훅 밀려들었다. 시몬은 안전띠를 매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갑판 위로 올라온 실라지가 아까처럼 불그스름한 막을 펼쳐서 배를 덮었고, 이어서 고래의 뱃속에 물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떨어지기 싫으면 꽉 붙잡아라."
그렇게 말하는 실라지가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시몬은 있는 힘껏 앞 좌석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막힌 댐이 뚫리듯, 꼭대기까지 차오른 물이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다리가 붕 뜰 정도로 아찔한 속도감에 학생들의 비명이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어둠밖에 없던 구멍의 터널 끝에 밝은 빛이 보였고, 배는 순식간에 그곳으로 빠져나갔다.
휘이이이잉!
밖으로 나왔다.
지상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까마득한 수천 미터 상공. 배는 황천고래가 뿜어낸 물줄기에 올라타 있었다.
이내 물줄기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뱃머리가 아래를 향했다. 학생들이 공포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이제, 떨어진다.
"큭!"
시몬은 아예 앞 좌석을 끌어안았다.
이내 주위가 빛살처럼 지나가며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맞바람에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스륵.
그때 실라지가 손톱으로 검지에 상처를 냈다. 흘러나온 피 한 방울이 배를 감싸고 있는 막에 흡수되자, 조금씩 낙하 속도가 줄어들었다.
잠시 후 시몬이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자, 배는 열기구처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와아아......!"
학생들이 탄성을 질러댔다.
푸른 수평선 너머로 세상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는 태양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일출을 선보였고, 배의 아래에는 키젠이 위치한 '로크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울창한 정글, 매끈하게 닦인 광야, 낙엽이 흐르는 폭포와 눈 덮인 산까지. 사계절을 이 섬에서 한꺼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로웬! 일어나 봐!"
"......."
물론 로웬을 비롯한 대부분은 여전히 좌석에 머리를 처박고 있거나 헛구역질을 해댔지만.
그렇게 낙하산을 펼친 것처럼 서서히 속도가 줄어들던 배는 마침내 지면에 무사히 안착했다.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당장 입을 막고 나무 쪽으로 뛰어가 토를 하는 학생들도 속출했다.
"나와서 4열 종대로 서도록."
실라지는 간단한 인원체크를 마친 뒤 학생들을 이동시켰다.
키젠은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성이었다. 거인 문지기가 성을 열어주었고, 여러 겹의 보안 흑마법을 거쳐 안으로 들어왔다.
황천고래를 타고 온 시몬 일행들 외에, 다른 루트로 도착한 입학생들도 보였다. 저쪽도 다이나믹한 이동이었는지 하나같이 기진맥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서두르겠습니다.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성안으로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하수인들이 발 빠르게 안내했다. 학생들은 곧장 근처의 건물로 들어가 교복을 배부받고 남녀로 나뉘어 탈의실로 이동했다.
"5분 안에 환복을 마치고 밖으로 집합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곳에선 모든 게 신속했다. 시몬도 분위기에 휩쓸려 얼른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키젠은 교복도 멋있구나.'
맞춤복처럼 길이가 딱 맞아 떨어지는 세련된 검정 팬츠는 교복이라기보다는 수트에 가까웠다. 몸에 착 달라붙는데 움직임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 위에 흰 셔츠와 레드톤의 넥타이를 착용한 다음, 키젠의 마크가 박혀 있는 세련된 자켓을 걸쳤다.
그리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와.'
이게 수트핏이라는 건가? 옷을 쫙 빼입은 자신의 모습은 탄성이 나올 만큼 멋있었다.
교복과 수트의 중간쯤 되는 디자인이었는데, 이대로 연회장에 가도 될 만큼 세련되기도 했다.
기분이 붕 떠오른 시몬은 앞뒤로 돌아보며 새로운 차림을 만끽했다.
"이거 봐! 겉옷에 마법도 걸려 있어!"
"교복이 전투복 겸용이라잖아. 어지간한 갑옷보다 튼튼하대."
탈의실 밖에서 들린 목소리를 들은 시몬은 교복 자켓을 슬슬 만져보았다. 정말로 마법이 걸려 있는지 옷에서 은은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이거 대체 얼마나 비쌀까, 사실상 금덩이를 두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집합 2분 전입니다!"
하수인의 재촉하는 목소리에, 시몬은 서둘러 구두까지 신고 밖으로 나왔다.
키젠의 수트형 교복으로 갈아입은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입꼬리가 승천할 듯 올라가 있었다.
"이제 나와주십시오! 이동하겠습니다!"
시몬과 남학생들이 탈의실 밖으로 나왔고, 반대편 여자 탈의실에서도 여학생들이 나왔다.
두 무리는 거의 동시에 짠 것처럼 멈칫했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교복 쪽이 더 예쁜데?'
키젠 로고가 박혀 있는 세련된 블랙톤 자켓과, 그 안으로 보이는 흰 블라우스와 얇은 넥타이, 그리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커트까지.
여성복도 교복과 수트의 중간쯤에 위치한 디자인이었는데, 다들 체형에 맞춰 핏이 깔끔하게 맞아 떨어졌다. 나이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느낌도 났다.
"남학생 여학생 각자 두 줄로 서서 대강당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서로의 멋진 모습을 봐서 그럴까, 강당으로 이동하는 두 그룹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흘렀다.
다들 걸으면서도 서로의 차림을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얼른 고개를 돌리곤 했다. 벌써부터 누가 잘생겼니 예쁘니 하는 웅성거림이 귓가에 들렸다. 시몬은 학교생활이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했다.
계단을 쭉 내려와 드디어 입학식이 시작되는 대강당에 들어섰다. 이미 많은 입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시몬 일행은 거의 마지막 차례였다.
"시몬! 이거 실화야? 우리가 키젠에 와 있어! 와 씨, 현실감이 없다 진짜!"
탈의실에서 잠시 헤어졌는데 어떻게 또 찾아온 로웬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시몬은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물었다.
"이 인원이 전부 입학생인 거야?"
"물론! 1학년은 입학생만 1,000명이야!"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2학년은 300명 정도고, 3학년은 그 절반 이하라고 들었어."
"......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로웬이 음침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 1,000명 중에서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는 학생들은 상위 30%뿐이야. 그만큼 생존경쟁이 치열하단 거지."
학교에서 생존경쟁이라니.
시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빡세면 700명이 학교에서 나가게 된다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하수인들의 통제에 따라 전 학생들이 착석했다.
로웬은 주위를 빠르게 한 바퀴 스캔하더니 이런저런 요주의 인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르네 아인다르크! 역시 올해 입학했네. 상아탑의 공식 후계자야."
로웬이 가리킨 방향에 백금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차가운 인상의 여학생이 보였다.
"이름 있는 세계의 유망주들은 다 왔어! 다윈 캐러딘! 제이 샌더스...... 와! 쟤는 뭐야?"
"어디?"
"뒤를 봐."
시몬이 뒤를 돌아보자 누구보다 인상적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키가 3미터가 넘는 거구의 남학생. 그의 뒷자리에 앉은 불행한 학생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샤텔 마에르. 거인 혼혈이야."
"......크네."
"마투 전공으로 가겠지. 저 피지컬을 누가 상대해?"
로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흐흐."
왼편을 바라보는 로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미 로웬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차분하게 앉아 있는 흑발 적안의 소녀.
"누가 뭐래도 올해 탑은 저 애지. 로레인 아크볼드."
시몬은 움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프티스 님의 유일한 딸이니까 당연히 '특례'일 줄 알았는데, 그냥 본인이 적당한 성적으로 입학시험 치고 들어왔대."
"그래?"
"수석이나 차석은 아니라지만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걸? 올해 입학생 최고는 저 애야."
시몬도 공감했다. 그녀의 실력은 눈앞에서 직접 봤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강단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지금부터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가 행사를 진행했다.
키젠답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빠른 진행. 부총장의 연설이나,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관리자의 이야기도 딱 필요한 만큼만 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이지 편했다.
그리고 가장 큰 환호성이 터질 때는 교사진이 등장했을 때였다.
실라지처럼 지금도 현역에서 뛰고 있는 최정상급 네크로맨서들. 대륙의 정세에 어두운 시몬조차도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인사들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우상들이 등장하자, 학생들의 반응은 거의 광신도를 방불케 했다.
옆자리의 로웬도 거품을 물며 소리치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교수진 쪽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네프티스 님은 안 나오셨네."
시몬의 중얼거림을 들은 로웬이 픽 웃었다.
"그 위대한 네크로맨서가 1학년 입학식 따위에 나오겠어? 3학년은 돼야 간신히 얼굴 한번 볼까 말까일걸."
"......그런가?"
그런 사람이 입가에 아이스크림 묻히고 랭거스틴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은, 말해줘도 믿지 않을 것 같다.
"그럼 다음은 학생대표 선서가 있겠습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이 입학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순서다. 시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웬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학생대표는 1학년 최고의 남학생과 여학생이 한 명씩 올라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호명하는 학생은 강단으로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서류를 펼쳐 들고 말했다.
"특례 2번. 세르네 아인다르크."
거대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백금발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갔다.
곳곳에서 '상아탑 후계자'라는 웅성거림이 들린다.
"그리고 특례 1번."
사회자가 다시 입을 열자 웅성거림이 일제히 멎었다.
"시몬 폴렌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