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화
주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지금 내 이름 부른 거 맞지?'
시몬은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없습니까?"
시몬은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천 명이나 되는 또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누구야?"
"전혀 모르겠는데."
"쟤가 1번이라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온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많은 집중을 받는 것도 처음이었다.
시몬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강단에 올라와 세르네의 옆에 섰다.
"후우우."
시몬이 천천히 숨을 내쉬자 사회자가 다가와 시몬의 어깨를 두드렸다.
"긴장할 것 없어. 여기 나와 있는 대로만 하면 돼."
"예, 알겠습니다."
세르네가 시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시몬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오른손을 올렸다.
"선서."
"선서."
그러자 뒤에서 똑같이 998명의 학생들이 '선서'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입학생은......."
"우리 입학생은......."
시몬은 입을 움직이면서도 머리가 빙빙 돌았다.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세르네의 목소리에 맞춰서 한 자 한 자 삑사리 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읽어갔을 뿐이었다.
그렇게 입학 첫날부터,
시몬은 모두의 눈에 들었다.
* * *
"아니 미친! 와! 네가 특례 1번이었어?"
시몬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로웬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시몬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지만, 빠듯한 수업 일정이 시작되는 바람에 즉각 강의실로 이동해야 했다.
입학식이고 학교 첫날이었지만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 바로 첫 번째 수업이 시작됐다.
시몬은 A반으로 배정받았다. 1학년 1학기는 전공 없이 진행되며, 총 14개 학급이 운영된다.
처음엔 6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수업을 듣게 되지만, 나중에 이 인원이 반 토막 나는 경우가 많고 학급이 통폐합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시몬이 A반에 들어가 보니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로레인은 물론, 로웬도 없었고 그나마 서점에서 만났던 신디 비바체가 '헤이! 특례 1번!' 하고 인사해 줬을 뿐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반이라 다들 서먹서먹한 분위기였기에, 시몬도 적당히 묻혀 있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수업은 저주학.'
적당히 뒷좌석에 자리 잡은 시몬이 교재를 꺼내놓고 고개를 들자, 뒤돌아서 시몬을 보고 있던 학생들이 황급히 고개를 되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쓴웃음을 흘리며 모른 척했다.
드르륵!
드디어 강의실 문이 열리고 교수가 들어왔다. 누군지 알아본 학생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바힐 아마가르!"
"진짜야?"
네크로맨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음지에 숨어서 시체나 만지는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주류로 올라선 현대의 네크로맨서들은 스마트하고, 실용적이며, 세련되고 트렌디한 이미지다. 오히려 꽉 막히고 보수적인 이미지는 프리스트들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바로 이런 신세대 네크로맨서들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바힐'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수트를 입은 바힐은 그야말로 모델 같은 비율을 자랑했다.
빼어난 외모는 물론,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로 키젠의 핵심 전력 '까마귀'에 속해 있는 스타성 넘치는 젊은 네크로맨서.
키젠 학생들에겐 절대적인 동경의 대상이었다.
바힐은 학생들의 환호에 빙그레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몇몇 여학생들의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반갑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올해 1학년 저주학 수업을 맡게 된 바힐 아마가르입니다."
다시 한번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바힐은 두 손을 들어 학생들을 능숙하게 진정시킨 후 머리에 쓴 펠트제 중절모를 교탁에 내려놓았다.
"그럼 출석을 한번 불러볼까요? 여러분도 서로가 처음일 테니, 이름을 불리면 간단하게 자기소개 한마디씩 하는 걸로 합시다."
바힐이 출석부를 불렀다.
"제이미 빅토리아."
"네! 교수님 정말 영광입니다! 저도 교수님을 따라......!"
바힐이 손을 뻗어 제이미의 말을 막더니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저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친구들에게 본인을 소개하는 거예요. 다시."
곳곳에서 자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이미 빅토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한 학기 동안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제이미가 평탄한 스타트를 끊은 뒤, 다들 잘 부탁한다는 무난한 느낌으로 소개했다.
시몬도 지금 이 상황에서 더 튀어버리면 좋을 게 없었기에 깔끔하게 넘어갔다.
가끔 조별수업을 대비해 본인을 어필하는 학생이나, 난 잘났으니 알아서 기라는 느낌으로 소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개성 넘치는 학생들이 많군요. 좋습니다."
출석부를 내려놓은 바힐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칠판으로 다가갔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타악. 탁탁.
분필을 든 그가 칠판에 크게 '저주학'이라는 세 글자를 써내려갔다. 마지막 '학' 자를 쓸 때 얼마나 힘을 줬는지 분필이 부러져 날아갔다.
바힐은 익숙한 듯 새 분필을 들었다.
"근본적인 물음부터 시작해 보죠. 우리는 왜 저주학을 배워야 하는가?"
바힐은 첫마디부터 좌중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목을 빼고 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했다.
"혹시 저주에 대해 정의해볼 수 있는 사람?"
시몬의 바로 앞자리, 안경을 쓴 여학생이 번쩍 손을 들었다.
"클라우디아 멘지스입니다! 저주는 내 힘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약화시키는 흑마법입니다!"
"훌륭합니다. 클라우디아."
바힐의 칭찬에 여학생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단순히 상대방을 '약화'시킨다는 말만으로는, 마음에 확 와닿지 않는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좋아요. 여기 백중세의 실력을 가진 두 기사가 있다고 칩시다."
바힐이 분필을 움직여 검처럼 세워 들었다.
"두 기사는 검을 부딪치며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체력을 소모시키며, 상대방의 실수나 빈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군요."
바힐이 칠판에 이그저스트(Exhaust)라고 썼다.
"이십여 합을 주고받지만, 상대가 좀처럼 쓰러지지 않아요. 그때 검을 맞대고 있던 기사가 고함과 악을 내지르며 상대방을 죽일 듯 노려봅니다. 상대편 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질린 표정을 짓는군요."
바힐이 칠판에 레이크 프레셔(Pressure)라고 썼다.
"드디어 검이 상대의 어깨를 베고 지나갑니다. 상대방은 피를 쏟아내며 움직임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승기를 잡아나갑니다!"
바힐이 칠판에 블리딩(Bleeding)이라고 썼다.
두 검사의 싸움이 진행될수록, 칠판에 써지는 단어들도 많아졌다.
그 단어들은 전부, 네크로맨서의 저주 마법 종류였다.
학생들은 손에 땀을 쥐었고, 이내 바힐의 목소리가 절정에 치달았다.
"그리고 마지막! 기어코 기사가 상대의 목을 베어 떨어뜨립니다!"
바힐이 분필을 든 팔을 내리고, 강의실에는 쥐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말없이 학생들을 쭉 둘러보던 바힐이 이내 씩 웃으며 칠판에 '둠(Doom)'이라는 마법을 썼다.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제 아셨나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야만적인, 단순히 병장기를 부딪치는 전투마저도 결국은 상대방을 약화시키며 승리의 단계를 밟아가는 일련의 단계 행위에 불과하단 겁니다."
바힐이 새로운 분필을 들었다.
"그럼 이제 현대 네크로맨서의 싸움을 보겠습니다."
그는 칠판에 낙서하듯 사람 그림을 그렸다.
"네크로맨서가 이 상대를 이기는 방법은?"
바힐은 지금까지 써놓은 모든 저주마법 단어들에 원을 그려 묶은 다음, 주욱 칠판 끝으로 끌고 가 사람에 닿게 했다.
"이겼습니다."
"아......!"
"저주는 여러 흑마법들 중에서도 가볍고, 단순한 구조를 가졌으며, 신속한 전개가 가능합니다. 약간의 수고만으로 상대방을 완전히 뒤흔들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죠."
바힐이 가장 앞에 앉은 남학생에게 눈을 찡긋했다. 그러고는 팔을 휘두르며 초 단위의 속도로 탈진 저주를 완성해 쏘아 보냈다.
"헉!"
남학생이 그대로 자리에 널브러졌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듯 눈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바힐은 느긋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이게 바로."
그러곤 남학생의 가방에 들어 있던 마력검을 뽑아 그의 목을 내려치는 시늉을 했다.
"현대 네크로맨서의 싸움입니다."
오오오오-!
흥분한 학생들이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보냈다.
바힐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 숙여 화답하고는, 학생에게 건 저주를 풀어주었다.
"여러분이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입생의 8할 이상이 2학기에도 제 수업을 들을 거라 감히 예상합니다. 저주는 호환성이 뛰어난 학문이거든요. 여러분의 특기를 살리면서도, 틈이 날 때마다 차근차근 상대방에게 저주를 꽂아 넣으세요. 그게 바로 승기를 굳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겁니다."
그가 저벅저벅 걸어서 다시 강단으로 돌아왔다.
"그럼 이번엔 여러분이 흥미로워할 이야기를 잠시 해보죠."
그러곤 칠판에 앞서 쓰여 있는 '저주학' 아래로, 새로운 글자를 써내려갔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주학이 현대 네크로맨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칠판에 '프리스트'라고 썼다.
"우리의 주적을 상대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첫 수업부터 민감한 주제를 꺼내 들었다. 곧바로 학생들의 눈에 강한 호승심이 일어났다.
"그럼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네크로맨서에게 '저주'가 있다면 프리스트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 강화 마법과 약화 마법의 차이죠. 바로 여기서."
바힐이 빙그레 웃었다.
"저주가 축복보다 더 우수한 점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학생?"
주위가 조용해졌다.
학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가운데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제일 처음 출석부에서 불린 제이미 빅토리아였다.
바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미 빅토리아입니다. 저주가 축복보다 시전 속도에서 더 우위입니다! 같은 상대라도 더 빠르게 약화효과를 쌓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의견이군요."
바힐이 팔짱을 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시전 속도만을 따지면 상대방의 '저항'을 뚫고 시전해야 하는 저주보다, 프리스트의 축복이 근소하게 더 빠르다는 게 학자들의 공론입니다."
제이미가 아쉬운 듯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의견 있는 사람?"
그때 번쩍 팔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선이 굵은 얼굴에, 짙은 눈썹. 큰 키에 체격이 좋은 남학생이었다.
"헥토르 무어입니다."
"말해보세요."
"약해진 상태의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치 수수께끼 같은 대답이었지만, 바힐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걸렸다.
"학생. 이름이 뭐라고 했지?"
"헥토르 무어입니다."
"기억하마."
오오-
주위에서 부러움 가득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무려 천 명의 신입생들이다. 어떻게든 교수의 눈에 들어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는 이상,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건 대단한 메리트였다.
"헥토르의 말이 맞습니다. 약화마법은 단련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학생들을 쭉 살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정상 컨디션일 때를 전제로 훈련합니다. 모든 환경이 자신의 통제범위 이내일 때,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느냐가 실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보기보다 아주 섬세한 동물이라, 티끌만 한 변화로도 고장 낼 수 있습니다. 내게 활을 겨눈 궁수의 팔을 도려내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란 겁니다. 결막염으로 시야를 방해하거나, 멀미를 나게 하거나, 거리감을 혼동시키거나, 다른 사물에 신경을 쓰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원래는 맞아야 할 화살도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힐이 입꼬리를 올렸다.
"네크로맨서는 적의 컨디션을 떨어뜨릴 다양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피로감이 심하거나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복통이 심할 때, 저주를 대비한답시고 훈련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냥 하루 쉬고 말지."
학생들의 자작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우리는 나를 강화하는 것보다, 상대방을 약하게 만들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깃펜을 움직였다. 어쩐지 시험에 꼭 나올 것 같은 이야기라 메모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 직접 저주마법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눈치껏 따라 필기하고 있던 시몬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뭐야? 첫 수업부터 바로 흑마법을 배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