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화 (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화

이어지는 다음 수업들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2교시는 신성방어학, 3교시는 혈류학이었는데, 교수들은 하나같이 1번 특례입학인 시몬을 강단으로 불러들여 시험했다.

연례행사였다. 사실 키젠에서는 학생들 간의 경쟁은 물론, 교수들 간의 경쟁도 무척이나 치열했다.

실적이 좋지 않은 교수는 학기 중에도 잘렸고, 실적에 따라 급여가 변동했으며, 키젠 내부에서의 입김과 영향력도 달라졌다.

그렇기에 교수들은 최대한 많은 전공 학생들을 확보하려 했고, 특히 우수한 학생들은 자신의 직속제자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 일환으로 첫 수업에 가장 우수한 학생들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거였는데, 특례 1번인 시몬이 강단에 올라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몬은 두 수업 모두 '메이린 빌렌느'라는 여학생을 상대해야 했다.

그녀는 A반 1위였고, 1학년 전체를 통틀어놓고 봐도 최상위 입학성적의 보유자였다. 필기 평가만 놓고 보면 사실상 전교 1등에 가까운 인재.

그런 그녀를 상대로 이제 막 흑마법에 입문한 시몬이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헥토르와의 싸움에서는 그럭저럭 한 방이라도 돌려줬지만, 메이린과는 승부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의외의 상황에 교수들은 고개를 갸웃했고 같은 A반 학생들도 이제는 시몬이 초심자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흐으으.......'

그렇게 세 번째 수업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있었다.

시몬은 텅 빈 매점 테이블에 홀로 엎드려 쉬고 있었다.

'수업이 재밌기는 한데, 엄청 빡세다.'

학교 수업이란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특히 헥토르와의 승부에서 온 힘을 다 빼버린 게 컸다.

시몬은 앓는 소리를 내며 팔에 머리를 기댔다.

"안녕."

숨을 좀 돌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시몬에게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선글라스를 이마 위에 올려둔 짧은 금발 머리의 남학생이 씩 웃고 있었다.

"나도 너랑 같은 A반이야. 딕 헤이워드라고 해."

"......시몬 폴렌티아."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했다.

"너 벌써 유명인 다 됐더라. 다른 반에서도 네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던데?"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특례 1번 거품 꺼져간다는 이야기겠지."

"하하하!"

딕이 소리 내어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사실 네가 지극히 정상인 거야. 이제 입학 첫날인데 다들 뭘 그렇게 호들갑인지."

"말이라도 고마워."

딕이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깍지를 꼈다.

"그거 알아? 헥토르는 벌써 자기 파벌을 만들고 있어."

"......파벌?"

"첫 수업에서 워낙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잖아. 주위에 애들 꼬이는 게 당연하지. 유력가문의 장남이기도 해서 귀족 애들 사이에서 인기 많더라."

시몬은 뚱한 표정으로 턱을 괬다.

"별로 관심 없어."

"야, 야, 들어봐. 키젠에서는 '정치'도 중요해! 이대로 A반이 헥토르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리면 어떻게 되겠냐? 헥토르에 찍히는 놈은 그걸로 끝인 거야. 당장 조별과제 같은 거에서 같이 할 조원도 구하기도 힘들어질걸."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시몬은 자세를 고쳐앉았다.

"넌 그런 쪽 상황파악이 빠른 것 같은데. 왜 헥토르한테 안 가고 여기 있어?"

시몬이 제대로 핵심을 찌른 건지, 딕이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순진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예리한데.'

딕이 무안하게 웃으며 옆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난 평민이거든. 상인 집안."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한 예법으로 고개를 숙였다.

"평민 따위가 무례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나으리."

"......그런 거 하지 마. 키젠에선 다 같은 1학년이라고 들었어."

딕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긴 한데, 꼭 지가 귀족이란 걸 티를 내는 애들도 있어서."

"적어도 난 아니야."

"다행이네. 사실 네게 제안할 게 있어."

딕이 손을 내밀었다.

"내 파벌에 들어와, 시몬."

"......?"

"실력이 달리든, 거품이란 소릴 듣든, 이러나저러나 네가 특례 1번이란 건 엄연한 사실이야. 선행학습 진도 같은 거, 지금이야 좀 커 보이지만 나중엔 결국 다 평준화된다고. 네프티스 님도 이유가 있으니까 널 특례로 데려온 게 아닐까? 넌 가치가 있어."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파벌이니 뭐니 그런 거 말고."

"......?"

시몬은 딕이 내민 손 앞에 손을 내밀었다.

"그냥 동등한 친구는 어때?"

딕이 헛웃음을 흘렸다.

"......와, 그거 엄청 어색한 울림인데."

이 키젠에서 '동맹'이나 '파벌'이 아니라, 그냥 친구를 먹자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 줄이야.

솔직히 촌스럽다.

오글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 타산적인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히려 이런 시몬의 접근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딕이 손을 뻗어 시몬의 손을 꽉 붙잡았다.

"가끔은 이런 감성도 괜찮겠지."

"......하하."

시몬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키젠에 대해서 잘 알고, 정치적 감각이 있는 학생과 친구가 되는 건 나쁘지 않았다.

가볍게 악수한 두 사람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다음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 이동해야 했다.

"다음 수업이 뭐더라?"

"잠깐만."

딕이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펼쳤다.

"아, 소환학이네."

그 말을 들은 시몬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 * *

시몬과 딕은 늦지 않게 강의실로 들어왔다.

첫 수업의 서먹서먹할 때와는 달리, 이제 다들 친해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둥 분위기가 많이 풀어져 있었다.

그리고 딕이 말한 대로, 헥토르의 주위에는 네 명의 남학생들이 왁자지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시몬이 지나가자 숨죽인 비웃음을 흘렸다.

"오우야, 특례 1번님 지나가신다."

"키젠 역사상 희대의 거품."

"저런 놈이 세르네, 샤텔, 로레인을 제친 게 말이 돼?"

그들이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지만, 정작 무리의 중앙에 있는 헥토르는 조용했다. 잠시 시몬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마, 시몬."

딕이 말했다.

"바람잡이들 말에 귀 기울일 필요 없어."

시몬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더니 가방에서 소환학 책을 꺼냈다.

"기대된다."

"......응?"

"소환학 수업."

시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주의를 줄 필요도 없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딕이 피식 웃었다.

'역시 뭔가 다르긴 다르다니까.'

잠시 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학생들은 서둘러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지익. 지익.

강의실 밖에서 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저주학의 '바힐 아마가르'를 비롯해, 지금까지 본 모든 교수들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학생들은 누가 들어올지 잔뜩 기대하며 기다렸다.

달칵.

마침내 강의실 문이 열렸고, 30대 초반 정도의 남자가 들어왔다.

방금 막 일어난 사람처럼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면도한 지 오래되어 보이는 까끌까끌한 턱수염, 헐렁한 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낡은 슬리퍼까지.

시몬은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가 강의실에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깔끔하고 스마트한 교수들의 차림을 봐왔으니 조금은 충격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교수는 질질 슬리퍼를 끌고 강단의 교탁 앞에 섰다.

"한 학기 동안 소환학을 가르칠 '아론 데이아'라고 한다."

나른한 목소리가 강의실을 울렸다.

아론은 칠판으로 걸어가 소환학이라는 글자를 느릿하게 써내려갔다.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놓고, 나머지 한 손으로 글자를 쓰는 뒷모습에서는 세상만사 귀찮음이 느껴졌지만, 그게 또 쿨함 포인트인지 몇몇 여학생들은 상기된 얼굴로 수군거리기도 했다.

"소환학은 네크로맨서의 뿌리고,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우리들의 기원이 관지기, 무덤도굴꾼, 시체성애자에서 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지."

아론이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분필을 내려놓았다.

"각설하고, 너희들도 귀가 있다면 소환학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을 거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느니, 대우를 못 받는다느니. 공부하기 어렵고 핸디캡이 너무 많다느니."

몇몇 학생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주워들은 그런 수많은 편견들......."

시몬은 조금씩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다른 학생들도 침을 꼴깍 삼키며 아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대부분은 사실이다."

"......?!"

시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소환학 교수가 지금 뭐라고?

아론은 나른한 목소리로 계속 설명해나갔다.

"너희들이 앞서 들은 수업에서는 우리 전공이 얼마나 좋은지, 왜 들어야만 하는지.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을 거라 생각한다. 내 개인적으론 반대다. 학생들이 제대로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장단점 모두를 확실히 이야기해 줘야지."

아론이 다시 칠판으로 다가가서 분필을 집었다. 학생들도 필기할 생각으로 깃펜을 잡았다.

"소환학의 단점 첫 번째."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단점부터 이야기하는 거냐.

"소환학은 비싸다."

아론이 칠판에 글자를 써내려간 후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너희들이 얼마를 상상하건, 소환학은 그 이상으로 재료비가 많이 드는 학문이다."

갑자기 강의실에 적막이 흘렀다.

"나머지 과목을 전부 합친 재료비보다, 소환학 한 과목의 재료비가 더 들 수도 있다. 그야 당연하지. 스켈레톤이나 좀비를 만들 때마다 옆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습격하고, 동물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학살할 건가? 아니다. 요즘 네크로맨서들은 스켈레톤 세트, 혹은 바로 좀비로 만들 수 있는 특수처리된 시신을 활용한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낸 언데드들도 대부분은 1회용이지."

몇몇 학생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특히 평민 학생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임무의 보상보다, 싸우느라 소모된 재룟값이 더 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소환학을 전공할 거라면 돈을 벌 생각은 포기해라. 그리고 두 번째."

아론이 다음 글자를 써내려갔다.

"소환수의 의존성이 심하다. 뭐, 이것도 당연한 이야기겠지. 소환학은 소환수로 싸우는 학문이다."

아론이 분필을 쥔 팔을 들어 '의존성'이란 단어에 원을 여러 번 그렸다.

"소환수가 파괴되면, 소환술사의 전력은 80% 이상 급감한다."

"......."

"특히 요즘에는 일회용 언데드보단 개조에 개조를 거듭한 자신만의 반영구 언데드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시에 이 언데드가 파괴되면 어떻게 되지?"

아론이 입꼬리를 올렸다.

"실전에서 너희 동기들이 지도를 펼치고 열심히 전술을 상의하고 있는 동안, 소환수를 잃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도록."

시몬은 갈수록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렇게까지 말한다고? 이 사람 진짜 소환학 교수 맞나?

"그리고 이 의존성은 첫 번째 단점과 일맥상통한다."

아론이 동그라미를 친 '의존성' 단어에 선을 그어 '비싸다'에 연결시켰다.

"주력 소환수를 잃으면 소환술사는 전력상으로도,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치명타를 입게 된다. 다시 돈을 모아서 전력을 복구하는 데 긴 시간을 보내야 할 거다."

강의실에 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칠판에 글자를 써내려간 아론이 이를 보이며 웃었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