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화
이번 지명은 헥토르였다. 메이린은 못내 아쉬운 듯 입술을 삐쭉인 채 등을 기댔고, 헥토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첫 수업에서처럼, 시몬과 헥토르는 마주 보고 섰다. 조교가 두 사람의 발 앞에 스켈레톤 세트를 내려놓았다.
"수업 종이 울리기까지 10분 정도 남았다."
아론이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러곤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싸구려 목걸이를 하나 꺼내더니, 교탁 앞에 세워둔 해골 모형의 목에 걸었다.
"스켈레톤을 써서 이 목걸이를 손에 넣어라. 수업이 끝난 시점에서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하마. 너희들이 직접 움직이거나 다른 흑마법을 사용하는 건 금하지만, 그 외에는 어떤 행동도 허용하겠다. 그럼, 준비."
아론이 팔을 뻗었다. 두 사람이 자세를 낮추었다.
"시작해라."
시몬과 헥토르가 동시에 스켈레톤 세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 수 있어!'
시몬이 눈을 빛내며 두개골을 꺼냈다.
'이 수업은 내가 이길 수 있어!'
시몬은 두개골 안의 마법진 안에 칠흑을 흘려보내 언데드를 깨웠다.
눈구덩이에 검은빛이 일렁이게 된 두개골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척추를 한 번에 조립하자. 2번부터 7번까지.......'
시몬은 고개를 들어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
조교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칠판에 붙은 뼈 구조 사진을 떼어내고 있었다.
아론이 말했다.
"이번 승부에 '컨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시몬이 입술을 짓씹었다. 헥토르도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렸지만 이내 스켈레톤 세트로 고개를 돌렸다.
시몬도 멘탈을 추스르며 뼈를 골랐다.
'그래도 뼈에는 번호가 있잖아. 1번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조립하면 돼!'
그러나.
아무리 뼈를 살펴봐도 겉면에 숫자가 적혀 있지 않았다.
"아까 너희들이 쓴 건 수업용 재료다. 수고스럽게도 조교들이 일일이 글씨를 써놓은 거지. 시중에 파는 스켈레톤 세트에 뼈 번호가 친절하게 적혀 있는 경우는 없다."
아론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했을 텐데? 네크로맨서라면 전부 숙지해야 한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곁눈질로 헥토르 쪽을 살폈다.
이미 전 과목 선행학습을 완료한 헥토르는 아일랜드 랫맨의 뼈 순서와 구조를 외우고 있는지 막힘없이 조립해 나가고 있었다.
'......포기하지 말자. 나도 한번 만들어봤으니까 중요한 뼈 순서는 머릿속에 들어 있을 거야.'
시몬도 2번 목뼈를 찾아내 차근차근 조립해 나갔다. 아론은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관찰했다.
'특례 1번은 스켈레톤을 처음 만져보는군.'
고개를 돌려 헥토르를 바라보았다.
'반면 저 덩치는 순서와 구조를 암기했다. 지식과 기억력에 의존하며 만들어내고 있어.'
첫 수업부터 뼈 구조도를 가리고, 뼈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건 아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선행학습을 한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지만, 아론의 관심사는 누가 이기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소환학에 감각을 가진 학생을 찾아내는 것.
'헥토르라고 했나? 감각이 있어.'
선행학습을 한 지식이 바탕이 되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실수를 피하는 건 그의 직감이었다. 헷갈리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으면, 아주 높은 확률로 옳은 선택지를 골라냈다.
'반면 특례 1번은.......'
초장부터 헤매고 있었다. 중요한 핵심 뼈들의 순서가 틀리면서 전체적인 조립 밸런스가 흔들리고 있다.
닥치는 대로 뼈를 갈아 끼우는 모습을 보니 멘탈이 반쯤 나간 모양.
선행학습을 좋게 보는 건 아니지만, 실력이 떨어진다면 준비성이라도 좋아야 했다.
'이 반에서 건질만 한 놈은 헥토르 정도군.'
달칵. 달칵.
어느새 두 다리까지 완성한 헥토르의 스켈레톤이 똑바로 자리에 섰다.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특히 파벌을 자청하는 네 명은 벌떡 일어나 헥토르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내가 이긴다.'
헥토르가 팔 조립을 시작하며 곁눈질로 시몬을 살폈다.
놈은 몸통 조립부터 막혔다. 완전히 패닉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기왕 이기는 거,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짓밟아주마.'
헥토르가 오른팔 조립을 끝냈다. 바로 가서 목걸이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내친김에 왼팔 조립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놈을 반에서 웃음거리로 전락시켜야 해. 특례입학이라는 자신감을 정면으로 꺾어서 바닥까지 떨어뜨려야 해.'
순식간에 왼팔까지 작업을 끝냈다. 헥토르는 도면도 보지 않고 스켈레톤 한 구를 온전히 완성한 것이다.
헥토르의 스켈레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확실히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디고 있다.
약 올리듯 시몬의 주위를 빙빙 돌던 스켈레톤은 이내 모형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들어서 스스로 목에 걸었다.
헥토르가 근육질의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동시에 그의 스켈레톤까지 따라서 오른팔을 번쩍 드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5분 남았다."
아론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
시몬은 여전히 몸통 조립부터 헤매고 있었다.
긴장해서 그럴까, 상대를 의식해서 그럴까, 기억날 듯 말 듯 했던 뼈들의 순서까지 머릿속에서 증발해 버렸다.
'침착하자.'
시몬은 손에 쥐고 있는 뼈들을 내려놓았다.
수업시간에 배운 뼈의 순서나 번호가 떠오르지 않을 때, 시몬은 본능, 혹은 직감을 써서 맞춰 나갔다.
그러다 보니 지식과 직감, 두 가지가 서로 부딪히고 뒤엉키며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래서 시몬은 포기하기로 했다.
기억력이 천재 수준이 아닌 이상, 한 번의 수업으로 뼈들의 세세한 모든 순서를 외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수업으로 배운 지식을 포기한다.
'이번엔 직감으로,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만 조립하는 거야.'
시몬은 조립 중이던 스켈레톤을 팔로 쳐서 망가뜨렸다. 곳곳에서 놀란 음성이 터져 나왔다.
"포기했나?"
"실력도 없고, 근성도 없고."
"저런 게 무슨 특례 1번이야?"
시몬은 그런 소리에 신경을 두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 내에 마지막까지 일말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1번 두개골을 들었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형성된 상식과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2번 목뼈를 집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몬은 이를 외면하고 5번, 7번, 10번 뼈를 연달아 두개골에 연결했다.
"어, 시작부터 틀렸지 않아?"
"끝났네."
시몬은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정답'을 만들 필요는 없다. 아론 교수의 요구는 뭐가 어떻든 스켈레톤을 일으켜서 목걸이를 손에 넣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시간이 없어. 어려운 구조는 과감하게 버리고 간소화한다.'
'20번을 중심으로 앞다리를 만들고.'
'27번은 핵심이라서 뺄 수 없어. 대신 29번을 챙긴다.'
말없이 시몬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아론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건......!'
시몬이 만들고 있는 건 직립보행을 하는 아일랜드 랫맨이 아니었다.
두 다리와 두 팔을 바닥에 대고 있는 네발짐승의 형태.
'말도 안 돼. 터무니없어. 하지만......!'
틀림없다. 대륙 서부의 대도시에서 발견된다는 대형 쥐 몬스터 '그레이 랫'과 뼈 구조가 흡사하다.
사실상 같은 생물분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고, 아일랜드 랫맨이 진화하기 전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뼈를 다르게 조립해서 랫맨이 진화하기 이전의 모습을 재현한다고?'
물론 해부학적 특징과 생태, 내부기관은 엄연히 달라서 그레이 랫을 똑같이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건 생물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언데드'다. 몸에 잘 맞건 말건 뼈를 흑마법으로 움직이게 하는 건 가능했다.
'흉부에 49번 꼬리뼈를 이었다. 그럴듯해.'
'어떻게 11번과 16번이 호환되는 걸 어떻게 아는 거지?'
'개념과 지식으로 숙지한 게 아니라, 순리적으로 통찰하고 있다고?'
지금 눈앞에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론이 제시한 정답과는 한없이 동떨어진 불량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론은 바다와도 같은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한편 헥토르도 시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시몬의 작품, 두 팔과 다리를 바닥에 대고 상체를 낮춘 그것은 아일랜드 랫맨이라고 부를 수 없는 괴기한 스켈레톤이었다.
하지만 뭔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잘한다 시몬!"
정적에 빠진 교실에서, 갑자기 신디 비바체가 벌떡 일어나 팔을 세웠다.
"형태는 됐어! 뭔진 모르겠지만 그대로 완성해!"
어느새 딕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시몬의 작품을 바라보았다. A반 톱인 메이린마저도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였다.
헥토르는 입술을 짓씹었다.
완성품을 만든 건 나다.
최단시간 내에, 도면도 보지 않고 해냈다.
내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왜 다들 나를 보지 않는 건데?
헥토르는 초조해졌다.
첫 번째 수업 때처럼.
'그냥 보고만 있겠냐!'
헥토르가 스켈레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론은 직접 움직이거나 다른 흑마법을 사용하는 걸 금할 뿐, 그 외에 어떤 행동이든 허용된다고 했다.
헥토르의 스켈레톤이 시몬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몬은 눈치채지 못한 듯 조립에 집중하고 있었고, 곳곳에서 떠들썩한 외침과 함께 '피해!'라는 소리가 쏟아졌다.
꽝!
결국.
헥토르의 스켈레톤이 시몬의 스켈레톤을 발로 차서 부쉈다.
몸통 쪽부터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뼛조각이 하늘로 흩날린다. 학생들이 입을 가리며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겼다. 시몬 폴렌티아!'
헥토르가 땀을 줄줄 흘리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어째서?'
시몬은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미소 띤 얼굴로 오른팔을 뻗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시간이 한없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지며, 헥토르의 동공이 시몬의 오른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방금의 발길질로 튀어 오른 뼈들 중에,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팔뼈가 보인다.
그것은 헥토르의 스켈레톤 옆을 날아가면서 단순한 동작, 하지만 아주 정확한 단 하나의 동작을 구사했다.
사락.
팔이 스켈레톤이 매고 있던 목걸이를 붙잡아 벗겨낸 것이다. 그러고는 힘을 잃은 듯 바닥에 툭 떨어졌다.
모두가 입을 벌렸다.
그리고 동시에.
대앵-
수업종료를 알리는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
"......."
교실에 짙은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아론마저도 목걸이를 움켜쥔 채 바닥에 떨어진 스켈레톤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이건...... 아니야!"
헥토르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아론 교수님! 교수님은 스켈레톤으로 목걸이를 손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저건 스켈레톤도 뭣도 아닌, 아무 의미 없는 뼛조각일 뿐입니다!"
킥.
하고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웃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바닥에 앉아 있던 시몬이 고개를 들어 헥토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닌 것 같은데?"
붕!
목걸이를 쥔 팔뼈가 자석에 당겨지듯 날아가 무너진 몸통에 부딪혔다.
차악!
차작!
착!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뼛조각들이 쓰러져 있던 스켈레톤의 몸통에 스스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스켈레톤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우고, 이내 박살 나기 이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헥토르의 동공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스켈레톤이 목걸이를 움켜쥔 채로 시몬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두 다리로 몸을 세워 시몬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똥 씹은 표정의 헥토르를 응시하며, 시몬이 씩 웃어 보였다.
"이제 됐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의실에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