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화
"안녕하세요? 선배님. 주무시는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몬은 다시 말했다.
"저희도 이 방을 함께 사용하고 싶은데, 혹시 괜찮으실까요?"
"......."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뒤따라온 레나가 덜덜 떨며 시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 그냥 돌아가요, 시몬 학생. 저 사람은 역시......."
그때였다.
열린 이불 사이로 충혈된 붉은 눈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딕이 침을 꿀꺽 삼켰고 레나가 겁먹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신입생."
마침내 이불이 걷히고, 한 남자가 부스스 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오늘이 입학식...... 벌써 그렇게 됐네."
마른 체구였지만 이상적으로 근육이 자리 잡힌 몸,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충혈된 오른쪽 눈을 반으로 가른 듯 선명한 흉터. 게다가 벗은 상체 곳곳에도 자잘한 흉터들이 가득했다.
위험한 사람.
모두가 느끼는 첫인상이었다. 그가 눈을 부라리자 딕과 레나가 양쪽에서 시몬의 팔을 붙잡았다.
"......선배란 호칭은 됐어. 나도 1학년이니까."
"그럼 카쟌 씨......."
"그냥 카쟌이라고 불러."
그가 앞머리를 쓸어올리자 흉흉한 눈빛이 드러났다.
당장에라도 칼 들고 사람을 난자해 죽여 버릴 것만 같은, 도저히 10대 소년이라고 할 수 없는 눈이었다.
"니들이 이 학교에서 얼마나 버틸진 모르겠지만 두 가지만 명심해. 첫째, 내가 하는 일에 신경 꺼. 둘째, 내가 잠들기 전에는 시끄럽게 굴지 마. 내가 잠들면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니들 알아서 해."
"......아! 그럼 허락하시는 거군요?"
"허락이고 자시고, 빈방이 없으니 결국 누구든 들어올 거 아냐."
카쟌이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
잠시 후 고른 숨소리가 들리며 카쟌이 잠들었다.
시몬과 딕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나온 레나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이 방으로 할게요."
결국 두 사람은 409호로 결정했다. 레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리스트에 체크표시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방문 앞의 케이스에 꽂았다.
"그럼 409호로 하겠습니다! 나중에 혹시라도...... 저 사람한테 나쁜 짓을 당하게 되면 알려주세요. 즉각 기숙사감님께 보고해서 조치하겠어요."
"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레나와 헤어진 시몬과 딕은 한 자리씩을 맡아서 짐을 풀었다. 딕은 문과 가까운 자리를 골랐고, 시몬은 상대적으로 카쟌과 가까운 안쪽 자리를 맡았다.
두 사람이 짐을 푸는 중간중간 소음이 났지만 카쟌은 죽은 사람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작은 숨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저 사람, 진짜 안 깨나?"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딕이 교과서를 바닥에 떨어뜨려 보았다.
바닥에 쿵! 소리가 울렸지만 여전히 카쟌은 세상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잠을 자면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마음대로 하라더니, 진짜였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두 사람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짐 정리를 마쳤다.
"시몬! 샤워나 하러 가자. 올라오는 길에 봤는데 2층에 목욕탕 있었어."
"목욕탕?"
* * *
시몬은 공중목욕탕도 처음 와봤다.
한 번에 백 명이 넘는 인원도 수용할 수 있는 이 시설은 바닥과 벽면이 온통 황금처럼 번쩍거리고 있었고, 탕에는 뜨끈한 온천수가 흘러나왔다.
시몬은 버튼을 누르면 천장에 나오는 물줄기 아래에 서보거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에 몸을 담그며 피로를 풀었다.
"아, 너무 좋다."
그렇게 목욕이 끝나고 나오는 길.
시몬은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나른한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딕이 킬킬 웃었다.
"샤워부스 보고 놀라는 사람은 처음 봐. 어디 산에서 살다 왔어?"
"비슷해."
시몬이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문질러 닦으며 대답했다.
"크크, 아무리 그래도 샤워 버튼 누르면서 와- 와- 하고 감탄하는 건 좀 자제하지? 애들 소문이 얼마나 빠른데."
"내가 그렇게까지 했어?"
"장난 아니었지."
두 사람은 다시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카쟌은 시간이 그대로인 것처럼 여전히 똑같은 자세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창밖을 보니 새까만 어둠이 뒤덮여 있었다.
샤워를 하고 노곤해진 시몬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보았다.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세상 모든 행복이 이곳에 있는 것 같았다.
"아으으, 역시 키젠에 오길 잘했어."
그 말을 들은 딕이 킥킥 웃었다.
"누구나 키젠에 오고 싶어 하지. 물론 여기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지는 우리 성적에 달렸고."
"지금 2학년은 300명밖에 안 된다고 들었어."
"맞아. 지금은 학생보호기간이라 교수들이 살살하는 건데, 이제 조금 있으면 성적미달로 퇴학, 싹수 안 보이면 퇴학, 룰을 위반해서 퇴학. 키젠에서의 생활은 서바이벌이야."
딕이 팔로 뒷머리를 받히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딱 1학년까지만 버텨도 어지간한 곳에는 다 들어갈 수 있어. 만약 미친 경쟁을 뚫고 정식 졸업생이 될 수 있다면...... 그땐 뭐 대륙을 움직이는 시대의 주류가 되는 거지. 사실상 왕족 빼고 다 가능해. 음, 아니지. 키젠 졸업생이면 중소 왕국에서 공주라도 내어주려나?"
시몬이 피식 웃었다.
"귀족이 되고 싶은 거야?"
"별로. 물론 귀족이 되면 무시 안 당하고 편하긴 하겠지만, 그게 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야."
"그럼 뭐가 목푠데?"
딕이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어 보았다.
"이거지."
"......."
단순히 '돈을 벌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치고는 딕의 표정은 너무나 복잡해 보였다.
그래도 오늘 처음 만난 사이니 시몬은 더 깊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잠시 딕이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시몬은 손가락에 낀 반지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반지가 검게 물들고, 시몬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바닥에서 아공간이 열리며 아일랜드 랫맨의 스켈레톤 세트가 튀어나왔다. 캠밸로드에서 사둔 수업 재료들이었다.
"오! 뭐야 뭐야? 방금 그거 뭔데?"
"아공간."
시몬이 간단히 대답하며 스켈레톤 세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케이스를 열고 포장된 뼈들을 꺼냈다.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어보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소독이 제대로 된 듯 무척 깨끗했다. 바닥에는 뼈 도면도 동봉되어 있었다.
딕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업 끝난 지가 언젠데 또 공부?"
"그냥. 그때의 감각을 잊고 싶지 않아서."
소환학 수업에서 있었던 헥토르와의 승부.
많은 일들이 워낙 한꺼번에 일어나서 시몬은 다시 한번 그때의 경이로운 감각을 재현해 보고 싶었다.
우선 두개골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에 칠흑을 흘려 넣어 언데드를 깨웠다.
따닥. 딱.
두개골이 턱과 입천장을 부딪치며 살아 움직였다.
소환마법으로 탄생한 언데드는 칠흑의 사용자를 주인으로 여긴다.
시몬은 천천히 눈을 감고 언데드와의 동화력을 끌어올렸다. 무수한 상념들이 시몬의 머릿속에 자리잡히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오로지 내 감으로만.'
시몬은 5번, 7번, 10번 뼈를 집어서 두개골에 장착했다. 조금만 힘을 줘도 뼈가 알아서 착착 달라붙는 게 손맛이 좋았다.
척추를 만들고, 몸통을 형성하며, 다리로 이어나갔다. 막힘없이 척척 뼈들을 붙여 나가는 시몬의 모습을 딕은 입을 벌리며 지켜보았다.
"......됐다!"
그렇게 30분이 걸려, 수업에서 만들었던 네 다리로 움직이는 이레귤러 스켈레톤을 재현했다.
하지만 수업 때와는 다르게 시간도 많이 걸렸고, 다리 쪽에 문제가 있는 듯 걸음도 삐걱거리며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건 집중력과 몰입의 문제.
편안한 공간에서 스트레스 없이 스켈레톤을 조립해 보니 수업 때만큼의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시몬은 그 작품을 복원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시몬은 언데드의 두개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안해."
그러고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스켈레톤의 몸통을 무너뜨렸다.
와르르!
조립되어 있던 뼈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침대나 책상 위, 창가와 옷장 안 등으로 들어가 버렸다. 딕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뭐야, 왜 그래? 기껏 만들어놓고 아깝게......!"
시몬은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깨끗하게 씻은 머리에서 다시 땀이 줄줄 흘렀다.
소환 마법으로 형성된 스켈레톤들은 이전의 몸을 복원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정식명칭은 '복원력', 현장에서는 '인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몬은 방 곳곳에 흩어진 53개의 뼈들에 함유되어 있는 칠흑을 느꼈다.
'복원!'
시몬이 눈을 부릅뜨자 방 곳곳에 흩어져 있던 뼈들이 일제히 날아와 스켈레톤의 몸뚱이에 알아서 착착 붙기 시작했다.
처음 만드는 데는 30분이 걸렸지만, 재조립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5초에 불과했다.
시몬은 참았던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다시 봐도 개쩔긴 해."
딕이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복원을 마친 스켈레톤이 다가와서 시몬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며 아양을 떨었다. 시몬도 미소를 지으며 언데드를 슥슥 쓰다듬었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도면에 나와 있는 정석적인 아일랜드 랫맨 스켈레톤 조립에 들어갔다.
단순히 도면을 보고 숫자에 맞춰서 이어나가는 게 아니라, 왜 10번 다음에는 11번 뼈가 와야 하는지, 왜 조립 순서가 이렇게 굳어진 건지, 스스로 고찰하고 생각하며 깨달은 점은 노트에 적어나갔다.
이 순서가 오랜 시간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며 굳어진 정석. 하지만 이 정석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리라.
모든 작업에는 이유가 있었고 의미가 있었다. 그런 점을 깨우칠 때마다 전율이 일었고, 선대들의 지식과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몬은 25번과 31번 뼈를 바꿔 끼워보았다.
"어때?"
시몬은 여러 실험을 했다. 팔을 움직여보던 스켈레톤이 따닥 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인체 구조상 더 합리적인 선택이 있더라도, 언데드가 움직이는 데 더 효과적인 배열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으으음."
잠시 졸고 있던 딕이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도 하는 거야? 소환학에 제대로 재미 붙였네."
"응, 재밌어."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빨리 다음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딕은 하품을 하며 침대로 들어갔지만, 시몬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예 소환학 개론을 펼쳐놓고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했다.
'언데드의 기본.'
시몬은 여전히 목이 말랐다.
아버지가 영지민들을 도울 때 사용했던 스켈레톤.
로레인이 갱들을 제압할 때 사용했던 스켈레톤.
그 두 사람에 비해 내가 모자란 게 뭘까.
따악!
철컥!
따닥.
계속 고찰하면서 반복 조립했다. 15초에 복원되던 스켈레톤을 이제는 10초로 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70번 넘게 재조립을 진행하던 시몬 스켈레톤의 눈구덩이에서 검푸른 칠흑이 피어올랐다.
이건 수업시간에도 없던 현상이었다.
스으으.
불타는 눈의 스켈레톤이 고개를 움직여 시몬을 바라보았다.
"......."
시몬도 스켈레톤과 눈을 마주했다.
시몬의 입학 첫날은 그렇게,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