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8화
계속 못 본 척하기도 그래서 시몬은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소녀의 얼굴도 아래로 휙 내려갔다.
"......."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
시몬은 다시 고개를 되돌려 새로운 쉬폰 케이크를 꺼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도 슬그머니 창가 위로 올라왔다.
깜빡깜빡.
소녀의 청색 눈동자가 깜빡거린다. 쉬폰 케이크가 시몬의 입과 가까워질 때마다 깜빡거리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시몬은 속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프티스 님도 같이 와서 드세요."
그 말에 소녀가 얼굴을 휙 내밀었다.
"앗, 어떻게 알았어? 그래도 돼?"
기다렸다는 듯 창가를 뛰어넘은 네프티스가 쪼르르 다가와 쉬폰 케이크 앞에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 강아지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물론이죠. 드세요."
"헤헤, 잘 먹을게!"
그녀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쉬폰 케이크를 들고 냠냠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했다.
두 개의 작은 뺨이 몽실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에, 시몬은 키젠의 지배자고 뭐고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이것도 드시겠어요?"
시몬은 매점에서 사 온 군것질거리를 더 꺼냈고, 그때마다 네프티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넘무 조아!"
그녀가 잼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집에선 맨날 단 거 못 먹게 하거든!"
"......아하하."
졸지에 시몬은 생에 한번 보기도 힘들다는 위대한 네크로맨서와 디저트 타임을 가지게 됐다. 두 사람은 간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공간 사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로레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화제는 자연스럽게 학교생활로 넘어갔다.
"학교는 처음이랬지? 어땠어?"
"재밌어요!"
시몬이 즉각 대답했다.
"교수님들도 멋지고, 친구들도 착하고, 수업도 재밌고...... 저 예상외로 학교 체질인 것 같아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좋다. 이렇게 너랑 키젠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리처드 생각나네."
"아버지요?"
"응! 너희 아버지도 키젠 학생이었거든. 몰랐어?"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쿡쿡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리처드는 진짜 장난 아니었어. 의젓한 너랑은 다르게 사고뭉치에 희대의 문제아였지."
"......아버지가요?"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그 점잖고 엄격한 아버지가 학창시절엔 사고뭉치였다니, 도저히 아버지와 악동의 이미지가 겹쳐지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머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 말썽은 말썽대로 피우면서 교수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곤 했어. 수업 째고 도망치려는 리처드를 내가 가서 붙잡아온 게 한두 번이 아니야."
"......미,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그럼 아버지는 무사히 키젠을 졸업하신 건가요?"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2학년 자퇴."
"......아."
"갑자기 이 학교는 너무 좁다면서 자퇴해 버렸어. 그동안 키젠에 그런 학생이 없었거든. 리처드는 여러모로 특별한 케이스였지."
네프티스가 두 팔을 바닥에 붙이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겉모습과는 다른, 어떤 깊고 아련한 감정이 그녀의 얼굴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 그땐 나도 어렸지."
"......."
뭔가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았다.
"아무튼! 리처드가 로크섬에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을 거야. 자세히 살펴보면 학교 곳곳에 네 아버지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 그런 게 있다면 재밌겠네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팡팡 털었다.
"그럼 난 저녁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갈게! 늦으면 또 혼날지도 모르거든. 헤헤."
"벌써요?"
시몬은 아쉬운 마음이 담긴 말을 내뱉고는, 스스로 놀랐다.
그녀와의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짧게 느껴져서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버린 것이다.
"금방 또 만날 수 있을 거야. 시몬."
네프티스가 싱긋 웃었다.
"간식 잘 먹었어! 안녕!"
네프티스가 창가를 훌쩍 넘어가려는 그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서 작은 쪽지 같은 게 떨어졌다.
시몬이 쪽지를 집고는 다급히 창가 쪽으로 달려갔다.
"네프티스 님! 이거 두고 가셨......!"
휘이잉.
어느새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시몬은 머리를 긁적이며 쪽지의 겉면을 위아래로 살폈다.
"정황상...... 내게 주시는 거겠지?"
시몬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반으로 접힌 쪽지를 펼쳐보았다.
지도였다.
지도는 키젠 내부를 지나서 키젠 바깥의 어떤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도착지는 해골마크로 표시되어 있었다.
해골이라니, 보통 목적지에는 보물상자 표시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시몬은 지도를 꼼꼼히 살폈다. 도착지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네프티스는 왜 이 장소를 알려준 걸까.
-자세히 살펴보면 학교 곳곳에 네 아버지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시몬은 결심을 굳히고 주먹을 꾹 쥐었다.
내일 당장 출발하기로 했다.
* * *
키젠에서의 첫 주말 아침이 밝았다.
네프티스의 지도에 표시된 곳은 출입이 금지된 숲이었기에, 날이 어두워질 때 출발하기로 했다.
딕과 카쟌은 일찌감치 자리를 비웠고, 시몬은 소환학 교과서를 펼쳐놓고 선행학습 따라잡기에 몰두했다.
소환학 말고 다른 과목도 조금 공부해 둘까 해서 펼쳐봤더니, 잘 집중이 안 됐다.
어차피 곧 있을 조별과제 전에 주종목을 하나 골라야 하는 만큼, 시몬은 이번 주말을 소환학에 올인하기로 했다.
'스켈레톤과 좀비의 차이점. 첫째가 명령 복종. 스켈레톤은 네크로맨서의 명령에 순종적인 편이지만, 좀비는 본능에 의존하고, 산 자에 대한 증오가 증폭되므로 컨트롤이 까다롭다.'
'좀비 다음 단계가 구울이구나. 개체수가 적지만, 좀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와, 한 번의 도약으로 최대 300미터를 이동할 수 있다고?'
'누더기 골렘이란 것도 있네! 나는 이거 언제 만들 수 있는 거지?'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 건지 몰랐다. 시간은 미친 듯이 흘러갔고, 시몬은 시계를 볼 때마다 아쉬움을 삼켰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소환학 공부에 쏟아붓고 슬슬 해가 저물 즈음, 시몬은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기숙사 외박 명부에는 '1박 2일 로체스트 방문'이라고 써놓았다.
바스락.
키젠 정문을 나서서 날은 어두워질 즈음에 금지된 숲에 도착했다. 키젠에서 이 숲의 출입을 금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몬스터 출몰 지역.'
레스힐 산맥에도 몬스터들이 살았지만, 로크섬의 몬스터들은 어떤 것들이 돌아다니는지 아직 미지수였다.
시몬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동쪽에 개울이 흐르고 서쪽에 키젠의 성벽이 보여. 오케이, 제대로 가고 있다.'
지도를 꼼꼼히 확인하며 걸으니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하지만 점점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동물의 울음소리가 빈번하게 들렸고, 배설물들도 발견됐다. 나뭇가지로 쑤셔보니 물기가 있고 질척거리는 게 최근까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스읍, 그냥 돌아가고 싶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지만 시몬은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 느리더라도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걸었다.
그리고.
-크르르르르.
바로 근처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몸이 바짝 굳은 시몬은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자세를 낮췄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나무 그늘아래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캐치했다. 놈은 킁킁 소리를 내며 코를 벌렁거리고 있었다.
'몬스터다.'
그때 코를 벌렁거리던 몬스터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안광이 시몬을 응시했다.
타다닥!
'빠르다!'
시몬이 다급히 허리춤의 단검에 손을 올렸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가 번뜩이더니 은빛의 궤적이 쐐액! 소리를 내며 접근했다.
시몬은 단검을 뽑아 그 궤적을 향해 휘둘렀다.
깡!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시몬의 몸이 벌러덩 넘어갔다. 재차 휘둘러진 발톱이 나무에 긴 흉터를 남기며 지나갔다.
'웨어울프!'
어지간한 일반인은 만나는 게 사형선고라고 할 만큼 위험한 녀석이었다. 다행히 성체는 아닌지 덩치는 작았다.
'키젠에 들어오기 전이라면 도망쳤겠지만......!'
시몬은 단검을 고쳐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반지에 칠흑을 흘려놓고 가상의 레버를 당겼다.
드르륵.
바닥에 아공간이 열리고, 그 안에서 뼈들이 튀어나왔다.
'복원!'
공중으로 비산하던 뼈들이 두개골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내 시몬의 앞으로 완성된 두 기의 스켈레톤이 바닥을 디뎠다.
'됐다!'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실전에서 처음 써보는 네크로맨서의 기술.
무척이나 든든했다. 전력을 떠나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 자체에 심적으로 안도가 됐다.
이걸로 눈 깜짝할 사이에 3:1. 숫자에서 밀리게 된 웨어울프가 움찔하는 낌새를 보였지만, 이내 이를 드러내며 싸울 의지를 드러냈다.
퉁. 퉁.
시몬은 다시 아공간에서 낡은 숏소드 두 자루를 튀어나오게 했다. 공중으로 날아오는 검들을 스켈레톤이 붙잡았고.
-캬아아악!
웨어울프가 뛰어들며 전투가 시작됐다.
서걱!
스켈레톤이 휘두르는 검격에 웨어울프의 복부에 긴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놈은 그대로 뛰어들어 오른팔로 스켈레톤의 상체를 후려쳤다.
콰앙!
일격에 뼈로 이루어진 상체 절반이 날아갔다. 언데드와 연결되어 있던 시몬은 머리에 시큰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바로 이 틈을 타, 옆으로 돌아온 스켈레톤이 텅 빈 웨어울프의 옆구리에 숏소드를 찔러넣었다.
-캬아아악!
웨어울프가 고통에 겨운 비명을 토해냈다. 시몬은 거칠게 오른팔을 뻗었다.
'복원!'
박살 난 뼈 잔해들이 흔들리더니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처럼 다시 스켈레톤의 몸뚱이를 이루었다. 복원된 스켈레톤이 즉각 웨어울프의 가슴에 숏소드를 꽂았다.
"지금이야! 돌진!"
두 마리의 스켈레톤이 검을 꽂은 그대로 웨어울프를 끌고 달려나가 뒤쪽의 나무에 밀어붙였다.
쿵! 소리와 함께 나무가 크게 들썩이며 나뭇잎들이 내려왔다.
'이때다!'
단검을 든 시몬이 마지막으로 달려들었다. 나무에 고정된 웨어울프가 거칠게 팔을 휘두르며 스켈레톤들을 박살 냈지만.
푸욱!
스켈레톤의 힘이 떨어지는 것보다, 시몬의 검이 웨어울프의 목덜미에 꽂히는 게 빨랐다.
살과 근육이 갈라지는 끔찍한 감각이 손목을 타고 흘렀지만, 지금은 피차 생사가 걸린 상황.
시몬은 악착같이 손잡이에 힘을 가했다.
꾸드득. 꾸득.
마침내 웨어울프의 몸이 축 늘어졌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뒷걸음질 치던 시몬은 이내 다리에 힘이 풀리며 엉덩방아를 찍었다.
'......위, 위험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전투의 긴장감으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럴 시간 없어. 빨리 뒤처리부터.'
방금의 소란과 피 냄새로 다른 몬스터들이 몰리면 곤란했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시몬이 '복원'을 시도했다. 한쪽 스켈레톤은 너무 손상도가 심해서 실패했고, 나머지 한 기는 간신히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시몬은 복원한 스켈레톤을 아공간에 집어넣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이게 키젠에 들어오고 나서 첫 전투네.'
고작 사흘 만에 시몬의 전력은 크게 늘어나 있었다.
이곳에서 1년, 아니, 3년을 버티면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는 걸까. 그런 상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20분 정도를 더 걸은 끝에.
'여기다.'
지도에 해골마크로 표시된 지역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이 휑했다.
이상한 점을 꼽으라면, 이 장소만 나무와 풀들이 자라나지 않았다는 것뿐.
'역시 땅을 파봐야겠지?'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 기숙사 정원관리원에게 빌린 삽을 꺼냈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삽을 멋지게 붙잡은 시몬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팍! 팍!
보는 사람이 있다면 감탄했을 만큼 무척 능숙한 삽질이었다.
작업은 오래가지 않았다. 삽 끝에 뭔가 단단한 뭔가가 부딪혔다.
시몬이 쪼그려 앉아 바닥을 슬슬 쓸어보았다.
'돌바닥이네.'
검은빛을 띠는 특별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이었다.
흙을 치우며 바닥을 살펴 나가던 시몬은 이내 바닥 한가운데에 보이는 움푹 파인 자국을 발견했다. 그것도 사람의 손 모양으로 홈이 파여 있었다.
슬쩍 오른손을 올려보니 크기가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열리는 형태의 유물은 아닐 것이다.
눈을 감고 코어를 가동한 시몬이 칠흑을 손바닥에서 뿜어냈다.
우우우우우웅!
시몬의 칠흑이 유물로 흘러나가자 바닥에 불이 들어왔다. 그러곤 거짓말처럼 드드득! 소리가 나며 바닥이 열렸다.
'계단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시몬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연 여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왜 네프티스는 이 장소로 부른 걸까?
시몬은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