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9화
시몬은 아공간에서 랜턴을 두 개 꺼냈다. 하나는 자신이 들고, 다른 하나는 스켈레톤의 손에 쥐여주었다.
"가자."
스켈레톤이 앞장섰고, 시몬이 뒤를 따랐다.
유적 안으로 들어와 보니 온통 암흑뿐이었다. 돌바닥의 냉기가 발을 타고 다리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난간 같은 것도 없었기에 떨어지면 즉사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이건.......'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벽면에 해석 불가능한 글자들이 새겨진 게 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글자가 익숙했다. 최근에 본 적이 있던가?
시몬은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그래, 고대 룬어!'
칠흑역학 시간에 에릭이 설명했던 바로 그 고대 룬어와 흡사했다.
그럼 여긴 고대의 유적인가? 이게 왜 키젠의 근처에 있는 거지?
풀리지 않는 수많은 의문들을 떠올리며, 시몬은 계속 내려갔다.
탁.
마침내 계단을 모두 내려와 바닥을 디뎠다. 꽤 깊게 내려온 건지 랜턴으로 위를 비춰도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수색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었다. 시몬은 두 번째 스켈레톤을 소환해서 랜턴을 쥐여주고는 탐색명령을 내렸다.
시몬 자신도 랜턴으로 주위를 비추며 걸었다. 벽면과 바닥에 온통 고대의 룬어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룬어라면.......'
이 유적 자체가 거대한 마법장치나 다름없었다.
딱! 딱!
그때 스켈레톤이 뭔가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시몬이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게 뭐야?'
룬어가 빼곡한 유적 가운데에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는 두개골이 올려져 있었다.
시몬은 랜턴을 제단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두개골을 쓸었다.
'.......'
찌릿찌릿 알 수 없는 전율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언데드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시몬이었지만 이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세월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됐고, 끔찍하게 위험한 언데드의 유골이라는 것을.
시몬은 조심스럽게 두개골을 들어 올렸다.
후두두두둑!
"우왓!"
두개골을 들자 천장에서 뼈들이 쏟아졌다. 시몬은 얼른 뒤로 물러나 피했다.
"노, 놀래라."
스켈레톤들이 다가와 랜턴으로 바닥을 비췄다. 물끄러미 아래를 응시하던 시몬이 바닥에 떨어진 뼈 하나를 주워들었다.
"......2번?"
시몬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것을 두개골 아래에 꽂았다.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정확히 딱 맞아떨어졌다.
"......."
가슴 깊은 곳에서 묘한 흥분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언데드를 조립해 보고 싶었다. 만약 이 언데드가 깨어났을 때 놈이 어떻게 나올지, 자신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뭔가를 과감하게 배팅해야 하는 때가 있다면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결심이 선 시몬은 제단 위에 두개골을 내려놓고, 그 아래에 보이는 손바닥 표시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까처럼 칠흑을 일으켰다.
우우우우우우웅!
"큭!"
살짝 칠흑을 일으켰을 뿐인데, 체내의 칠흑까지 제단에 쑤욱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제단이 웅웅 검푸른 빛을 뿜어내며 두개골의 눈구덩이에 실낱같은 푸른 불이 떠올랐다.
'음. 이걸로는 완성이 아닌 건가?'
시몬이 두개골에 2번 뼈를 가져다 대보았다.
착! 소리와 함께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스켈레톤 계열 언데드 특유의 '인력'이 작용하고 있다.
'좋아.'
시몬은 두개골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작업을 개시했다.
홀린 것처럼 뼈를 착착 맞춰 나갔는데, 어느 때보다 손맛이 좋았다.
경추, 흉추, 요추, 전추, 미추를 차례대로 연결해 척추를 만들고, 그 앞으로 견갑골과 쇄골 상완골을 잇고, 늑골을 더해 상체를 조립해 나간다.
아래로는 볼기뼈를 집어서 미추 아래에 더해 골반을 형성한다. 대퇴골, 경골, 슬개골이 이어지며 다리의 형태가 조금씩 잡혀간다.
'역시 아침부터 소환학만 판 보람이 있었어!'
100% 확실하진 않지만 이 스켈레톤은 '인간'의 뼈대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시몬의 직감에 소환학의 지식이 더해지며 막힘없이 뼈를 조립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스켈레톤은 키가 너무 컸다.
무릎을 꿇고 조립하던 시몬은 이내 쪼그려 앉았다가, 무릎을 폈다가, 까치발을 들고 섰다가, 급기야 제단 위에 올라가 낑낑대며 조립해야 했다.
스켈레톤이 몸을 굽혀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그의 명령을 듣지는 않았다. 다리가 완성되자마자 멋대로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그냥 팔부터 조립할걸!'
시몬은 낑낑대며 나머지 팔까지 완성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벅찬 마음으로 스켈레톤을 바라보았다.
"와아아......."
2미터가 넘는 커다란 스켈레톤이 떡 하니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광경이었지만, 여전히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시몬이 팔짱을 끼며 고민하고 있는 그때.
화아아아아아악!
천장에서부터 눈부신 달빛이 빛의 커튼처럼 쏟아져 내렸다.
스켈레톤의 두개골 위를 달빛이 비추는 순간, 눈구덩이의 불빛이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흐.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거대한 웃음소리와 함께 유적의 바닥과 벽면이 출렁거렸다. 이내 벽면의 룬어들이 벗겨져 나와 흐름을 형성하고, 비단옷처럼 스켈레톤의 몸을 덮었다.
룬어들이 스켈레톤의 뼈마디로 빨려 들어가 흡수되고 있다.
[드디어! 드디어 내가 돌아왔다!]
쩌렁쩌렁한 외침에 시몬은 귀를 틀어막았다. 스켈레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은 난폭한 파도를 연상케 했다.
[누가 나를 깨웠는가!]
스켈레톤의 고개가 삐끄덕거리며 움직였다. 그러곤 벽을 짚고 서 있는 시몬을 보았다.
저벅. 저벅.
거대한 존재가 시몬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고개를 쭉 내밀어 시몬의 코앞에서 그를 관찰했다.
시몬은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이름을 대라, 인간.]
"시,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옆으로 기울였다.
[네놈이 폴렌티아라고......?]
크하하하하하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유적 전체를 울렸다. 시몬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군! 설마 리처드의 후손이냐!]
"아뇨."
시몬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분의 아들입니다."
[하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그런 거였군! 어쩐지 익숙한 칠흑이라고 생각했다! 날 깨우는 건 리처드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스켈레톤이 등을 돌렸다. 그를 감싸고 있는 무영의 망토 같은 것이 펄럭이는 게 보였다.
"......당신은 누구죠?"
이번엔 시몬이 물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스켈레톤이 씩 웃었다.
스켈레톤에 표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지만, 틀림없이 그랬다.
입가가 벌어지고, 코가 벌렁거리고, 이글거리는 눈빛에는 강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인간과도 같았다.
[나는 피어. 군단의 관리자다.]
피어가 말했다.
[한때 너희 아버지 리처드와 함께 대륙을 뒤엎고 다녔지!]
시몬의 눈이 이채가 서렸다.
저게 아버지의 언데드라니!
호탕하게 웃던 피어가 고개를 쭉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그전에 물으마. 누가 널 이곳으로 인도했지?]
어쩐지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마치 시험받는 듯한 느낌에 시몬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네프티스 아크볼드."
[아아.]
피어의 입가가 올라갔다.
[으흐흐, 그렇게 된 거였군! 그 여자라면 또 그럴 수도 있지! 좋다!]
후우우우우우웅!
실내에 폭풍처럼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 유적 전체에 빛이 들어오며 대기가 비명을 질러댔다.
[나와 계약해라, 시몬 폴렌티아! 그리고 '군단'을 이끌어라!]
아버지의 언데드가 두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군단은 네 의지가 되어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밟을 것이다! 세상 만물이 네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흥분에 찬 목소리가 유적을 윙윙 울렸다.
[다만 너는 필연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니! 그것 또한 숙명이니라! 리처드의 아들이여, 군단을 이끌 각오가 되어 있느냐!]
시몬이 고민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피어가 시몬의 주위를 걸으며 히죽 웃었다.
[두려운가? 공포스러운가? 힘을 앞두고 무엇을 머릿속으로 재고 있느냐? 소년!]
한때 아버지의 힘이라고는 하지만 미지의 능력.
군단이 무엇인지, 피비린내는 길이 무슨 뜻인지, 계약의 조건도, 어떤 핸디캡을 가졌는지도 시몬은 모른다.
다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대답이 아닌 질문이 돌아왔다. 피어의 얼굴이 불쾌한 듯 구겨졌다.
[말하라.]
"저는 당신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몰라요. 그 군단이란 건 강한가요?"
우뚝.
피어의 걸음이 멈췄다.
[흐. 흐흐흐흐흐! 푸훟! 크흐흐!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쩌렁쩌렁!
대기가 울리고 천장에서 흙이 후두둑 떨어졌다.
쓸모, 쓸모라니!
이 소년은 의문과 공포를 가지고 헤매는 게 아니었다. 감히 군단을 '평가'하는가!
[멋진 질문이다 인간! 강하냐고? 원한다면 이 키젠이라도 무너뜨려 볼까?]
고오오오오오!
곳곳에서 음산한 망자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시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좋다! 질문에 답하마!]
피어가 힘을 거두어들이고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이미 한번 군단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봉인됐지! 그리고 네가 다시 관리자인 나를 깨우는 것으로 군단은 '첫 순간'을 맞이했다.]
"첫 순간."
[그렇다! 하지만 흩어진 군단의 세력을 규합하고, 다시 이전의 세력을 복구해 나간다면.]
피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대륙의 누구도, 너를 막지 못하리라.]
"좋아요."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하겠습니다."
[크흐흐흐흐!]
피어가 시몬의 허리를 감고 뛰어올라, 제단 위로 올라왔다.
[내 '코어'에 손을 올려라!]
피어의 갈비뼈가 벌어지고, 그 안에서 마치 심장의 박동처럼 두근거리는 칠흑의 마력 덩어리가 나타났다.
시몬은 순순히 손바닥을 올렸다.
[이 계약이 끝나면, 네 삶은 송두리째 바뀔 것이다! 두렵지 않으냐!]
"두려울 것도 없어요."
시몬이 덤덤히 말했다.
"당신들이 정말로 아버지의 군대라면, 내가 거두는 게 당연합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좋구나!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겸손해 보이는 평범한 소년이지만 드문드문 표출되는 패왕의 자질.
'아들 하난 잘 키웠구나! 리처드! 이 녀석은 너와는 다르다!'
당장의 흑마법의 숙련도는 낮아 보였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 그리고 리처드와는 달리 자아와 정서가 올바르게 정립된, 멘탈적 측면에서 완성된 존재.
피어는 이 소년이 퍽 만족스러웠다.
[지금부터 계약을 진행하겠다! 죽지 마라! 시몬 폴렌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