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0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몬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호, 정신을 차렸느냐!]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불타는 눈을 가진 큰 키의 해골이었다. 시몬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피어! 어, 어떻게 된 거예요?"
[계약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네 몸의 변화를 느껴보아라!]
시몬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코어가......!'
코어의 크기가 커졌다. 그뿐일까, 소량만 조금만 머물러도 몸에 부담이 되던 칠흑이 이제는 포근한 물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떤 근본적인 뭔가가 변화한 기분이었다.
[세상에 단 일곱뿐인 '군단장'이 된 것을 축하하마! 소년!]
피어가 히죽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시몬은 몰려드는 현기증에 손바닥으로 이마를 덮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네 몸은 거대한 변화를 거쳤으니.]
"아, 넵."
그 계약이란 걸 진행하는 동안 시몬은 몇 번이고 까무러칠 뻔했다.
온몸이 알 수 없는 이질감으로 범벅이 되는 그 끔찍한 기분, 차라리 혀 깨물고 죽어버릴까 몇 번이고 생각했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당분간은 못 움직이겠네. 오늘 밤은 꼼짝없이 여기 있어야겠다.'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며 피어를 보았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피어."
[고하라, 소년!]
피어가 팔짱을 끼며 엄숙하게 말했다.
"군단이란 게 뭔가요?"
[.......]
잠시 유적에 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뭐냐! 네놈은 그런 것도 모르고 나와 계약한 거냐!]
"네."
아버지의 전우인 네프티스가 알려준 장소라서 들어왔고, 아버지의 언데드인 피어를 만나서 거두었다. 단지 그뿐인 이야기였다.
피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너라는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제법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구나! 좋다. 설명해 주지!]
피어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전에, 언데드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지?]
"음...... 키젠 1학년 신입생만큼요."
[하! 신입생 주제에 겁도 없이 여기까지 혼자 왔군! 역시 리처드의 아들다워!]
피어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에 언데드는 세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첫 번째는 소환형 언데드.
네크로맨서들이 부리는 언데드들은 모두 이쪽이다. 흑마법을 통해 시체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네크로맨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흑마법의 효력이 다하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리고 두 번째가 자연형 언데드.
네크로맨서나 흑마법과는 관계없이 자연 생성된 언데드들이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경우인데, 산 자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와 극도의 공격성 때문에 대륙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인간이 지정한 '몬스터'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군단이다!]
피어가 목소리를 높였다.
[군단은 '소환형 언데드'와 '자연형 언데드'의 딱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존재다! 각자의 코어로 자립이 가능한 자연형 언데드이면서도, 네크로맨서와 상위 개체의 명령에 복종하는 소환형 언데드이기도 하지!]
"군단형 언데드......."
시몬이 되새기듯 중얼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군단은 이 세상에 단 7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군단을 컨트롤할 수 있는 네크로맨서도 세상에 7명뿐이다. 소년, 너를 포함해서 말이다!]
피어의 이야기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보통의 소환계 네크로맨서들은 소대 단위의 언데드들을 이끈다고 한다.
중대 단위의 언데드 부대를 움직이는 네크로맨서도 있고, 키젠급 정도 되는 고위 네크로맨서는 다소 비효율적이긴 해도 대대 단위의 운용도 가능하다.
이런 숫자의 제약이 있는 이유는 네크로맨서들이 이끄는 언데드가 모두 '소환형 언데드'이기 때문.
이들을 소환하는 것도, 컨트롤하는 것도 모두 칠흑과 정신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자체적인 마력으로 움직이는 군단은 이런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군단에는 한계가 없다! 십만 대군이든, 백만 대군이든 무한히 운용할 수 있지! 네가 대규모 언데드 대군을 이끄는 네크로맨서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틀림없이 군단장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
시몬은 기쁘기도 하면서도 조금은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세상에 일곱 명뿐인, 병력에 한계가 없는 네크로맨서가 됐다고? 들어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이제 궁금증이 다 풀렸나?]
"넵."
[좋다! 계약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우리는 좋든 싫든 한 배를 타게 됐다. 이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좋아요, 피어."
삐딱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피어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 모습을 본 시몬도 몸을 바르게 하고 앉았다.
[너와 나는 피차 특수한 상황에 속해 있다. 맞나?]
"예, 저는 키젠에 입학해 있습니다."
[키젠에서 나올 생각은?]
"당장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거스르는 일이고, 무엇보다 키젠에서는 아직 배울 것들이 많습니다."
[음, 좋지! 나도 키젠에 이용가치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피어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그럼 이번엔 군단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짚고 가마.]
"군단이 한번 해체됐다는 거요?"
[그건 당연한 부분이다. 군단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너와 계약할 일도 없었겠지.]
피어의 눈구덩이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이 한결 강해졌다.
[현재, 우리는 네크로맨서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있다. 수배 중이라고 표현해도 좋겠군.]
"그건 어째서죠?"
[전 군단장, 너의 아버지 리처드가 저지른 죄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아버지의 죄라고?
[리처드는 흑마법계에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군단도 공조자로서 그 죄를 저지르는 것을 도왔지.]
"대체 그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게......."
피어가 눈을 감았다.
[배반 행위. 리처드는 프리스트를 사랑했다.]
"아......."
시몬은 망치로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당시엔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 간의 100년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아주 민감한 시기였지! 그럼에도 리처드는 사랑하는 프리스트를 지키고자 군단에 명령을 내렸다. 그녀를 죽이러 온 동료 네크로맨서들을 공격하도록 했지.]
시몬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많은 인명피해가 나왔다. 리처드와 군단에 말살령이 내려졌고, 그것은 리처드가 군단을 해산한 뒤인 지금까지도 유효할 것이다. 이게 군단이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피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시몬은 군단에 대한 책임감이 훨씬 더 강하게 생기는 기분이었다.
피어와 군단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가진 리스크를 함께 짊어지는 건, 리처드와 안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당연한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피어가 입을 찢으며 웃었다.
[군단은 철저히 군단장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리처드의 군단과 시몬의 군단은 다르다. 아마 네크로맨서들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겠지.]
"그렇다면......!"
[하지만 너는 완전한 제3자가 아닌 리처드의 아들이다. 원로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피어가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시몬의 이마를 쿡 찔렀다.
[고작 키젠의 1학년생 따위가 '군단'을 소유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어떻게 움직일 것 같으냐?]
시몬이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아버지의 세력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제가 더 강해져야겠네요."
[그렇다.]
피어가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지금은 얌전히 키젠의 지식을 주워 먹으며 강해져라! 군단도 서서히 이전의 위세를 회복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네."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몬과 피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관리자인 내가 군단의 새로운 운용법을 제안한다!]
"어떤......?"
피어가 팔을 들어 손짓했다.
시몬이 아까 소환해서 랜턴을 들게 했던 스켈레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어, 피어가 제 스켈레톤도 컨트롤할 수 있는 거예요?"
[물론이지! 이제 우리는 하나의 칠흑을 공유하고, 네 칠흑으로 소환한 언데드들은 모두 군단의 소속이다. 군단장인 네가 제1 명령권자고, 내가 제2 명령권자라고 할 수 있지. 다만.......]
피어가 턱을 슥슥 쓸었다.
[이 언데드는 아직 '군단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군단화요?"
스켈레톤이 피어의 앞으로 다가왔다. 피어는 팔을 들어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짚었다.
화아아아아악!
시몬 특유의 검푸른 칠흑이 불꽃처럼 솟구치며 스켈레톤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허공을 어지럽게 수놓던 칠흑이 한꺼번에 두개골 안으로 빨려 들어가 마치 '뇌'처럼 구체를 이루었다.
잠시 후, 스켈레톤이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이게 바로 군단화된 언데드다!]
스켈레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외형은 별 차이 없었지만, 눈구덩이에서 피어와 같은 검푸른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피어가 말하는 군단화는 '소환형 언데드'가 '자연형 언데드'가 되는 과정이었다.
이 언데드들은 각자의 코어를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소환시간 제한이 사라지고, 시몬이 신경 쓰지 않아도 영원히 존재할 수 있었다.
"근데 티가 확 나네요."
[그렇다.]
시몬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키젠에 이것들을 데려가면 바로 들키고 말 것이다.
[그러니 모든 언데드들을 '군단화'할 필요는 없다! 나처럼 오랜 시간 존재해 온 언데드가 아닌 이상, 전투 효율은 소환형이 더 뛰어난 게 상식이다. 소년! 너는 평소처럼 소환형 언데드를 활용하도록 해라. 그러다 스켈레톤의 유지시간이 끝나거나, 손상되어 못 쓰게 되면 내게 가져와라. 군단화해서 이곳에 주둔시키도록 하지.]
"아, 그런 운용방식이라면 좋네요!"
스켈레톤이나 좀비 같은 일반적인 언데드들은 일회용에 불과하지만, 시몬은 이제 창고처럼 언데드들을 영구 보존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심각하게 손상된 게 아니면 군단화로 자가재생이 가능하다.
[그러니 더 강해져라 소년! 네가 더 우수한 언데드들을 소환할 수 있으면, 군단의 전력도 올라간다!]
"네, 물론입니다."
시몬은 내친김에 아까 웨어울프와 싸우느라 손상된 두 기의 스켈레톤도 피어 쪽에 편입시켰다.
그렇게 자연형 언데드가 된 스켈레톤은 행동 패턴도 바뀌었다.
원래는 시몬의 명령이 없으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멍하니 있었지만, 이제는 머리를 긁적이거나 뜬금없이 주위를 뛰어다니는 등 약간의 동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시몬이 부르면 신속하게 뛰어왔다.
명령권은 제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군단의 운용계획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끝나도, 밤은 길었다.
나란히 마주 앉은 시몬과 피어는 잡담을 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소년. 키젠에 들어온 지는 얼마나 지났나?]
"이제 사흘이네요."
[그렇군. 조금만 더 참아라!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1학년도 키젠에서 내려오는 '임무'를 받는 게 가능해진다. 로크섬은 물론,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대륙 전역을 다닐 수 있지!]
피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때는 나도 함께 가겠다! 너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군단을 운용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임무를 명목으로 대륙 곳곳에 흩어진 군단의 옛 세력들을 규합하는 거지! 리처드의 아들이라면 모두 기꺼이 네 밑으로 들어올 거다!]
시몬이 의외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어는 키젠에 대해 잘 아네요."
[흐흐흐, 당연하지! 나는 네 아버지의 키젠 생활을 쭉 지켜봐 왔다! 놈은 키젠에서 악명 높은 문제아였지.]
이건 네프티스의 발언과 겹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리처드의 이야기를 하는 피어의 얼굴에는 아련한 감정이 흘러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 그때가 좋았지.]
이 감성도 네프티스와 겹치는 부분이었다. 시몬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피어는 제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아요?"
[원망? 원망이라고? 하하하하! 원망이란 나약한 감정 따윈 군단에 존재하지 않는다! 군단은 군단장의 지시에 움직일 뿐, 너희 아버지가 프리스트를 선택하고 우리를 버림수로 써도, 우리는 기쁘게 그 명령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군단!]
그렇게 말하던 피어가 멈칫하며 턱을 쓸었다.
[근데 그 아들이 또 그런 지랄을 반복하면 빡이 칠 수는 있겠군. 안 그런가?]
"......아하하."
시몬은 피어와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많은 화제들이 있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네프티스에게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적나라했다.
[뭘 숨기겠나? 너희 아버지는 희대의 쓰레기였다!]
피어가 껄껄 웃었다.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학생 앞에서, 보란 듯이 어제 새로 사귄 여학생의 속옷을 던지면서 가지고 놀았지!]
"......."
시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제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너무 과장해서 말하는 거 아니에요?"
[......과장이라고? 크하하하하하! 난 지금 리처드의 체면을 생각해서, 적당한 수위의 에피소드만 말하는 중이다! 그 인간이 울린 여자만 마차로 몇 대인지 아느냐?]
그럴 리가 없어. 시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했다.
[그래. 그런 희대의 개망나니가.......]
피어의 목소리에 묘한 여운이 섞였다.
[키젠의 교수진도 혀를 내두르던 그 쓰레기 놈이...... 한 여자와 만난 뒤로 모든 게 바뀌었다. 아예 다른 사람처럼 말이다. 세간에 흔히 말하는 사랑의 힘이니 뭐니, 그딴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변화가 아니었다. 그건 마치.......]
그때 피어의 목소리가 우뚝 멈췄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시몬을 빤히 바라보았다.
[잠깐, 잠깐, 잠깐! 아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뭐가요?"
[네, 네놈이 분명 리처드의 아들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설마......!]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넵, 제 어머니는 안나 폴렌티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