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3화
식사를 마친 A반 학생들이 초급 흑마법 두 번째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돌아왔다.
"뭐야, 벌써 결과가 나왔어?"
그리고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난리가 났다. 한쪽 벽면에 방금 친 A반 전원의 시험 결과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와! 진짜 빨리 나왔네!"
"비켜봐!"
우르르르!
학생들은 강의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가방을 내팽개치고 달려갔다.
자신의 성적은 물론, 다른 학생들의 성적까지 전부 공개되어 있었다.
"꺄아아악! 저주학 85점!"
"으, 혈류학이 평균 다 깎아 먹네."
"나 진지하게 전공 바꿔야 하나?"
"봤지? 내가 마투학 5번으로 밀라고 했냐 안 했냐!"
"너 내숭 극혐이야 진짜. 저주학 망쳤다고 울었으면서 80점 뭔데?"
시장바닥 저리 가라 할 만큼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시몬은 본인 성적을 확인하기 싫긴 했지만, 현실도피를 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성적을 확인했다.
[시몬 폴렌티아]
저주학 : 40
칠흑역학 : 33
소환학 : 76
사령학 : 25
혈류학 : 20
맹독학 : 20
마투학 : 43
신성방어학 : 40
'......역시는 역시나구나.'
마음의 각오는 했지만 처참한 점수대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70점대로 선방한 소환학 정도? 주말에 공부한 덕분인지 성적이 잘 나와준 모양이었다.
"시몬! 시몬! 테스트 성적은 어때?"
딕이 헐레벌떡 다가와 물었다.
"소환학 76점. 나머진 다 꽝이야."
"와! 76?"
딕이 시몬의 어깨를 탁 쳤다.
"잘했어! 솔직히 선행학습 안 한 것치곤 기대 이상인데? 어중간하게 평균만 높은 것보단 잘하는 과목 하나 있는 편이 훨씬 나아!"
"넌 어때?"
"제일 높은 건 칠흑역학 74점이고, 나머진 60~70점대로 평이해. 평균 70은 찍을 듯."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너 공부도 잘하는구나."
"그냥 딱 안 잘릴 정도까지만 공부해 놨지 뭐."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 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우리가 예상 못 한 전개야. 첫 시간부터 다른 애들 성적까지 싹 공개됐어."
딕의 계획은 피차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능력 좋은 조원들을 빠르게 선점하는 거였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의 성적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면 다른 학생들도 눈에 보이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조원들을 고를 것이다.
"저, 저기 여러분!"
성적 공개에 폭주해 버린 학생들은 통제 불능이었다. 여조교가 쩔쩔매며 말했다.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조금 있으면 교수님이 오시니까......!"
"내버려 두십시오."
드륵.
마침 강의실 문이 열리며 제인이 들어왔다.
그녀의 등장에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뚝 끊겼다. 그래도 시선은 어쩔 도리 없이 성적표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30분 드리겠습니다."
제인이 가방을 교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본인 성적을 확인한 뒤 4인 1조로 조를 만드세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 조는 한 학기 내내 유지될 겁니다."
A반 전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부터 바로 시작한다고?
"이후 초급 흑마법은 조별수업으로 진행되며, 각 조원들이 힘을 합쳐야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 주어질 겁니다. 개인 점수와 조 점수는 따로 계산됩니다. 물론 개인이 출중해도 조원들 간의 팀워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감점 대상입니다."
후우. 하고 넥타이를 흔들어 고쳐 맨 그녀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 조원을 잘 골라야겠죠?"
그 한마디에, 학생 모두의 머릿속에 비상 스위치가 켜졌다.
"30분입니다. 그때까지 조를 정하지 못한 학생들은 그 사람들끼리 묶어서 별도의 조를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시작하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자스민! 자스민이 누구야?"
"난데?"
"너 저주학 성적 높더라! 우리랑 같이할래? 칠흑이랑 사령 지망 있어!"
"저칠소 세 명 구한다! 60점 이상!"
"사령학 상위권 데려갈 조 없어?"
벌써부터 조원 구하는 경쟁이 살벌하게 전개됐다. 시몬과 딕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로 갈라져서 움직였다.
'영입 1순위 제이미는 딕이 직접 갈 테고.'
시몬은 영입 2순위인 클라우디아를 찾아 움직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벌써 다른 두 명의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기된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벌써 홀라당 넘어간 모양.
3순위의 저주학 지망 로젠탈은 자신이 직접 조장으로 움직이며 조원을 구하고 있었고.
4순위인 혈류학 지망 캐서린은 그 로젠탈이 설득 중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조들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대론 안 돼.'
제이미에게 찾아간 딕도 고전하고 있다.
이번 테스트로 성적이 잘 나온 학생들은 일종의 권력을 가지게 된 셈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중심이 된 조를 구성하길 원했다.
특히 모든 조가 3대 학문인 '저칠소'를 최우선으로 채우려 하다 보니, 저주학 지망생들이 빠르게 빠지고 있었다.
이건 위기였다. 학점 배율이 높은 저주를 채우지 못하면 공백이 너무 컸다.
'침착하자.'
시몬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초조한 감정을 지우고 차분히 상황을 분석했다.
'아직은 초반, 4명이 완성된 조는 하나도 없어.'
'탐색전 분위기는 아냐. 시간제한이 있어서 다들 급해. 자신과 성적이 비슷하거나 다른 전공이기만 하면 일단 합치고 보는 경향이 있어.'
'중간 성적의 애들끼리 조가 빠르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고, 최상위권은 일단 관조 중.'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침내 시몬이 목표를 정하고 움직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뒤섞여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흔들림 없이 그 사이로 걸어갔다.
간혹 몇몇 학생들이 말을 걸어왔지만 시몬은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한 사람이었다.
'찾았다.'
드디어 시몬의 눈에 타겟이 들어왔다.
급하게 돌아다니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그녀는 마치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자리에 앉아서 유유히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주위의 다른 학생들이 슬쩍슬쩍 그녀의 눈치를 보았지만,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60~70점대의 어중간한 성적으로 그녀를 설득해 데려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런 망설임의 틈을 과감하게 파고든 시몬이, 마침내 그녀의 앞에 다가왔다.
"메이린 빌렌느."
A반 1위.
입학 필기성적 전교 1위.
그리고 이번 테스트 유일무이한 전 과목 평균 90점대의 성적 보유자.
"우리 조에 들어와 줬으면 해."
시몬은 처음부터 톱의 영입을 노렸다.
주위에서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시몬을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 야, 시몬!"
어느새 학생들을 뚫고 들어온 딕이 '무모하다'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사실 영입 1순위가 메이린이 아니었던 이유는, 딕이 그녀를 데려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었기 때문이었다.
시몬은 내게 맡기라는 듯 슬쩍 손을 들었다.
"......웃겨."
차디찬 빙하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시몬의 얼굴을 슥 훑었다.
"특례 입학이라고 뭐라도 되는 줄 아니?"
찬바람이 쌩쌩 날리는 듯한 목소리.
"특례라고 해봐야 결국은 인맥이잖아? 난 내 눈에 보이는 것, 명확한 수치만 믿어."
단호하고 방어적인 태도.
"그리고 미안하지만, 너 같은 평균 30점따리는 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으로 냉정히 가슴을 파고드는 현실.
하지만 시몬은 묵묵히 감내했다. 톱을 얻기 위한 협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선은, 떡밥을 던진다.
"너, 소환학이 좀 약하더라. 85점."
그녀의 눈썹이 꿈틀했다.
소환학은 메이린의 유일한 80점대 과목이었고, 역린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고 반격했다.
"네가 그런 말 할 처지야? 아무리 그래도 내 소환학 성적이 너보단 높거든?"
물론 알고 있다. 시몬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약속할게."
"......?"
"한 달. 딱 한 달 안에 소환학으로 널 뛰어넘겠어."
주위의 웅성거림과 함께 그녀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미쳤어? 그딴 허세, 말로는 누가 못......!"
"만약 못 넘으면."
시몬이 그녀의 말을 끊고 말했다.
"키젠을 그만두겠어."
특례 1번의 충격 선언. 곳곳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특례 1번 입학자가 자기 발로 학교를 나간 적은 키젠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메이린은 '하' 하고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지만, 입꼬리 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너 진짜 미쳤구나? 망신당하기 싫으면 빨리 취소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했을 뿐이야."
시몬은 무척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
메이린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시몬이 순식간에 주도권을 헤집어놓으며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고 있었다.
'날 뛰어넘겠다고?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게.'
그녀의 시선이 구경 온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는 헥토르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시몬과의 신경전은 별개로, 그녀도 그녀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메이린은 무슨 일이 있어도 1학기 내내 A반 톱을 유지해야만 했다.
이에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헥토르. 이번 테스트 성적도 좋았고 무엇보다 필기보단 실전에 강한 타입이다. 곧 있을 결투평가와 수행평가 등이 성적에 반영되면 A반 톱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별수업에서 무조건 압살해야 해.'
한 가지 걸리는 점은, 헥토르는 이번 테스트에 소환학 88점으로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8개 과목 중 유일하게 필기로도 메이린이 밀리는 과목.
그렇기에 메이린은 이 조별수업에서 자신을 도와줄 소환학 에이스를 보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헥토르는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A반의 유일한 90점대 소환학 에이스, 피에르 버클리 영입을 성사시켰다.
피에르 외에 나머지 소환학 전공자들은 고만고만했다.
그녀와 소환학 성적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
그렇다면.
'......시몬 폴렌티아.'
선행학습은 안 했지만 첫 소환학 수업에서 보란 듯이 헥토르를 이겼다. 많은 A반 학생들이 그렇듯, 메이린에게도 시몬의 그 모습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메이린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였다.
안전하게 다른 80점대의 소환학 지망생을 구하느냐.
아니면, 헥토르를 정면으로 이긴 적이 있는 시몬이라는 조커를 품고 가느냐.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몬이 메이린을 뛰어넘겠다고 한 발언은 도발이나 허세의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가 고민하는 후자 선택지에서의 어필.
마치 그녀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은 발언이었다.
"......하아."
마침내 오랜 고민 끝에.
생각을 정리한 메이린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약속, 진짜 지킬 수 있지?"
시몬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무조건 지켜."
그녀는 마지못한 척 시몬의 손을 붙잡았다.
모두가 원하던 A반의 톱이자, 유일한 90점대 학생인 메이린이 시몬의 조에 들어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