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8화
파수꾼들의 불빛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사냥개들도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다.
'나와라.'
시몬은 아공간에서 스켈레톤 한 기를 꺼냈다. 정지 명령을 내리고, 풀밭에 엎드리도록 했다.
"카미. 이쪽으로."
시몬이 떨고 있는 카미바레즈의 손목을 잡고 자세를 낮췄다. 이어서 한 차례 랜턴 불빛이 지나간 뒤, 그녀를 데리고 나무 뒤에서 널찍한 바위 쪽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새로운 스켈레톤 한 기를 꺼내 엎드리게 했다. 현재 시몬은 최대 두 기까지의 스켈레톤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 해.'
시몬은 바닥의 돌들을 주워 아공간에 집어넣는 동시에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며 최대한 많은 상황 정보들을 머릿속에 담았다.
파수꾼이 몇 명인지, 그중에서 랜턴을 든 사람은 몇 명인지. 사용하는 무기, 사냥개의 품종, 습성, 지형지물, 바람의 방향, 계곡이 흐르는 소리.
지금은 바람을 등지고 있어서 개들이 헤매고 있지만, 바람의 방향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이제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였다.
'지금!'
시몬이 눈을 부릅떴다. 나무 아래에 엎드려 있던 스켈레톤이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저쪽이다!"
파수꾼들이 즉각 반응했고, 사냥개들이 큰 소리로 짖으며 스켈레톤을 쫓아갔다.
"반만 쫓아! 나머지 반은 계속 전진!"
"다른 개들은 아직 냄새를 맡고 있어!"
과연 사냥의 전문가들답게 속임수 한 번에 홀라당 넘어가진 않았다. 시몬은 이번엔 바위에 웅크려 있는 스켈레톤을 달리게 했다.
"저게 진짜다!"
"잡아!"
파수꾼들과 사냥꾼들이 측면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카미, 뛰어!"
바로 이때다.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그대로 등을 돌려 내달렸다.
'완전히 못 따돌렸어. 우리 쪽에 붙은 사람들도 있다!'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 시몬은 뒤를 돌아보았다. 파수꾼들 몇몇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힘내 카미!"
"네!"
컹! 컹!
냄새를 맡은 사냥개들이 풀밭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사람이 빨라도 개를 추월할 수는 없다.
"카미! 뭐든 좋으니까 혈류계 마법을 개들이 오는 방향으로 뿌려!"
"알겠어요!"
카미바레즈가 달리면서 흑마법을 시전했다. 검지 끝에 피어난 작은 마법진에서 선혈이 솟구쳤다.
그녀가 허리를 꺾으며 뒤쪽으로 팔을 휘두르자 칠흑 섞인 핏물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풀밭을 적셨다.
컹! 컹컹컹!
으르르르!
뱀파이어의 피 냄새는 고급 향수의 재료로 쓰일 정도로 향이 강했다.
진득한 혈향에 개들이 흥분하고 날뛰면서 풀밭을 헤집기 시작했다. 이 틈에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더욱 속도를 내 거리를 벌렸다.
두근! 두근!
긴장감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슬슬 카미바레즈의 체력이 걱정됐지만, 그녀도 악착같이 달리며 시몬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저기 있다!"
랜턴의 불빛이 한 차례 시몬과 카미바레즈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활시위가 팽팽히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푹!
파악!
난데없이 화살들이 날아와 바닥에 박히자, 카미바레즈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지, 진짜 쐈어요! 어쩌죠?"
"괜찮아."
시몬이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 교복을 봤어. 아무리 그래도 하수인이 키젠 학생을 상처입힐 순 없을 거야."
시몬의 말대로, 화살들은 두 사람이 달리는 방향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박히고 있었다. 위협사격의 성격이 짙었다.
"저것들이......!"
"멈춰! 멈추라고 했다!"
너라면 잡혀주겠냐. 시몬은 씩 웃으며 가상의 레버를 당겼다.
터엉!
바닥에서 아공간이 열리고, 아까 넣어뒀던 돌들이 최대출력으로 쏟아졌다. 그냥 돌팔매질에 불과했지만 달려오던 파수꾼들은 흑마법이라 생각했는지 걸음을 멈추며 경계했다.
"카미, 이쪽!"
"네!"
시몬이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조금 더 시간을 벌었다.
방향성 없이 아무렇게나 달린 것 같지만, 사실 시몬은 물소리를 따라왔다. 드디어 계곡에 도착했다.
'이런.'
그런데 하필이면 절벽이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는 계곡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고 반대쪽 절벽까지는 거리가 제법 됐다.
"카미! 마투학에서 배운 그 도약기술 기억나지? 쓸 수 있어?"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마투학 수업 때도 절벽을 뛰어넘지 못한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컹! 컹!
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이 순간에도 개들의 짖는 소리와 랜턴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시몬. 전 괜찮아요."
카미바레즈가 힘겹게 미소 지으며 시몬의 가슴을 밀어냈다.
"먼저 가세요. 제가 잡혀도 시몬에 대해서는 절대......."
"실례할게."
번개처럼 다가와 그녀의 몸을 번쩍 안아 든 시몬이 그대로 등을 돌려 풀밭을 내달렸다.
'칠흑을 즈려밟는 감각!!'
터어어어어엉!
발끝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폭발처럼 터져 나오며, 시몬은 하늘을 날았다.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위는 커다랗게 떠오른 보름달.
차가운 맞바람과 두 다리 밑에 아무것도 없다는 스릴감.
잠시 완벽한 기분을 느끼며, 시몬의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촤아아아악!
바닥을 긁으며 간발의 차이로 반대편 언덕에 착지했다.
시몬은 얼른 언덕 아래의 경사로 뛰어 내려가 카미바레즈를 내려주었다. 두 사람 다 최대한 몸을 바닥에 밀착시켰다.
"놈들은?"
"사라졌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랜턴 불빛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몇 분간 꼼꼼하게 주위를 훑던 불빛이 이내 거두어졌다.
"저쪽으로 가보자."
"움직여! 얼마 못 갔을 거야!"
컹! 컹! 컹!
불빛과 개들의 짖는 소리가 점점 더 멀어지더니, 이내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몬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우우...... 카미, 괜찮아?"
카미바레즈는 어쩐지 넋을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시몬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에서 방울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왜 그래? 어디 다친 곳이라도......."
당황한 시몬이 상체를 일으키자,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보이곤 소매로 눈물을 슥슥 닦았다.
"정말 붙잡히는 줄 알았어요. 고마워요. 구해줘서 고마워요......!"
이내 통곡 같은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였다. 시몬은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저렇게 무서워하고 있었으면서, 자기는 잡혀도 괜찮다고 한 거야?'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카미바레즈도 진정됐다. 두 사람은 몸을 일으키며 교복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돌아가자. 파수꾼들을 피하려면 조금 둘러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지?"
"네."
두 사람은 다시 어둠에 잠긴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몬스터나 파수꾼에게 들킬 염려가 있었기에 랜턴은 켜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하늘에 뜬 달이 밝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숲을 걸은 지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여긴 또 어디야?'
정신없이 걷다 보니 생각보다 숲의 깊은 곳까지 들어와 버린 것 같았다.
숲에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주위는 을씨년스러웠다. 갈수록 키가 커지는 나무들은 빼곡한 잎으로 밤하늘을 가렸고, 곳곳에서 짐승들인지 몬스터인지 모를 눈동자들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반복했다. 음산한 울음소리에 어깨가 움찔거리고 신경이 곤두섰다.
차라리 파수꾼들에게 찾아가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을 만큼, 한밤중의 숲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다.
뱀파이어인 카미바레즈도 겁에 질렸는지, 시몬의 소매 끝을 살짝 붙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지도는 분명히 머릿속에 들어 있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어.'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아무리 걸어도 계속 같은 곳을 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치기도 했고, 체온도 계속 내려가고 있다. 어쩌지?'
"......시몬."
카미바레즈가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부엉이 소리?"
"아뇨."
시몬 쪽으로 몸을 밀착한 그녀가 공포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소리......."
"......."
시몬은 입을 다물고 청각에 집중했다.
확실히.
어렴풋하지만 들린다.
그냥 들짐승인지, 몬스터인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분간할 수 없는 어떤 음성이 반복적으로 들리고 있다.
"가보자."
로크섬에는 숲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만약 사람이라면 도움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
걸으면서 귀에 집중했다.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가 선명히 들리기 시작한다.
-@$%@^불쌍히 여기시옵고.
-$톰í숙명을 없애시옵고 @%#$^@ 전능하신 @$@%어머니.
목소리는 차갑고, 단조로웠으며, 메말랐다.
-$††@^경배하오며 @%@$$^거룩하시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인상을 구기며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는데.
"......시몬."
시몬은 깜짝 놀랐다.
카미바레즈가 공포에 젖은 얼굴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입꼬리 끝은 올라간 채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은 조금 괴기하기까지 했다.
"왜 그래? 카미."
"......도망가요."
-#$^$#*#홀로 높으신 어머니 %@%* 영광을.
"......도망가야 해요."
"도망?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으. 아으. 아아. 아아아으......!"
그녀가 발작을 일으키며 허우적거렸다. 시몬은 그녀를 챙기고 소리가 들리는 반대쪽으로 달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비를 베푸소서. 세상의 죄를#@$@#$@.
정신없이 수풀을 헤치며 걷던 시몬은, 마침내 목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제단이 보였다.
긴 회색의 로브를 입은 누군가가 바닥에 엎드려 있다.
두 팔을 땅에 대고 손바닥은 하늘로 향해 있다.
제단의 위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과 짐승의 내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그 아래에는 단검에 가슴을 찔려 꿈틀거리고 있는 짐승이 제물로 바쳐져 있다. 질척이는 핏물이 주위를 시뻘겋게 적셨다.
그리고 제단의 중앙.
뭔가 커다란 게 놓여 있다.
시몬은 그것이 뭔지 알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절대로 로크섬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절대로 키젠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십자가.
십자가다. 왜 십자가가 여기 있지?
십자가에는 나체의 여성이 괴기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고 가시넝쿨이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
제단 밑에 엎드린 자는 상체를 일으켜 기도문을 읊고 다시 몸을 바닥에 붙여 절하며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시몬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프리스트!'
프리스트가, 키젠에 와 있다.
키젠의 영토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기도문을 읊고 있다.
'도망쳐야 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
들키면 끝장이다.
이 적나라한 광경을 본 카미바레즈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다행히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았다.
시몬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돌아가려는 찰나.
바스락.
바닥의 풀이 밟히며 소리가 났다.
기도를 올리던 프리스트의 동작이 멈칫했다.
"......."
"......."
목구멍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을 느끼며, 시몬은 고개를 삐걱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
프리스트가 선 채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로브를 뒤집어쓰며 드러나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의 안광이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시몬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도망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