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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1화 (3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1화

내 재능을 꽃피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특별한 칠흑을 활용하기 위한 방향.

시몬은 바힐이 던진 화두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의 주위를 뒤덮은 푸른 꽃밭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네."

"방금 쓴 저주에서 피드백해 주실 만한 부분은 없을까요?"

"오호."

바힐이 미소 지었다.

"성과에 취하지 않고,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려는 건 좋은 마인드군요. 좋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당신의 저주엔 감정이 좀 더 들어가야 합니다."

"아, 언데드한테 명령을 내릴 때처럼요?"

순간.

바힐이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진 건 착각일까.

잘못 봤나 싶어서 시몬이 눈을 깜빡여보니 다시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바힐의 표정이 보였다.

"네, 비슷하죠. 감정은 흑마법 전체를 통틀어 아주 중요한 요소니까요."

바힐이 시몬의 어깨에 올린 손을 내렸다.

"제가 아까 한 이야기, 부디 잊지 말아주시길."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리며, 다시 주위 학생들의 떠들썩거리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바힐은 시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바힐 교수님!"

딕이 번쩍 손을 들었다. 바힐이 멈춰 서며 '무슨 일이죠?' 하고 물었다.

"저, 저도 보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꽃피우는 게 쉽지 않아서......."

"요행을 바라고 떠먹여 주기만을 기다리는 건 저급한 하수들의 마인드죠. 계속 반복해서 시도하세요."

"아...... 넵."

딕이 뻘쭘하게 손을 내리자, 옆자리의 메이린이 '푸훕!' 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

잠시 여운에 휩싸여 있던 시몬은 눈에 힘을 주며 두 손을 마주 보게 했다.

'좋아. 이번엔 나 혼자서......!'

그렇게 수업 종이 치기 전에,

시몬은 '전이의 저주'를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 있었다.

* * *

이어지는 시간은 홍펭의 마투학 수업이었다.

이번 수업도 여지없이 하마에 매달려 어딘가로 향했다. 오늘 홍펭이 수업 장소로 고른 곳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대나무 숲 공터였다.

언제나처럼 하드 런닝으로 몸을 푼 다음, 홍펭은 기본적인 정권이나 발차기 등의 격투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모두가 넉넉하게 거리를 벌리고 칠흑을 담은 주먹을 내지르거나 발을 뻗고 있었다. 조교들이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자세를 교정하거나 칠흑을 담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여기!"

찰싹! 찰싹!

"여기 더 힘을 주제요!"

마찬가지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시몬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홍펭이 시몬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찹찹 때리고 있었다.

"팔의 위치는 여기! 발을 뻗으면 반대쪽 팔이 축이 되는 거예요! 배에 힘! 배에 힘!"

"네, 넷!"

시몬에겐 무척 고역이었다.

교수가 학생의 몸을 만지면서 지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혈기왕성한 사춘기 소년에게 홍펭 같은 미녀가 바짝 밀착해 오는 상황은 내색하지 않는 게 쉽지 않았다.

"지몬! 자꾸 발끝에 힘 안 줄 거예요?"

"죄송합니다!"

또 맞을까 봐 시몬이 얼른 자세를 수정했다. 이제야 봐줄 만한 자세가 됐다는 듯 홍펭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회전 준비."

시몬의 다리가 움직였다. 왼발이 앞으로 나왔다.

"칠흑 운용."

칠흑이 허리의 중심으로 향하는 동시에 몸을 회전시킨다.

뒤꿈치가 자연스럽게 들리며 허리와 몸이 이상적인 자세로 틀어진다. 그리고 접혀 있던 오른발이 뻗어지며.

부우우우웅!

다리가 허공을 훑고 지나갔다. 발에서 흘러나온 칠흑이 물감처럼 길고 검은 궤적을 남겼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발차기였다.

"좋아요!"

홍펭이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시몬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회축은 해냈지만 기본 자제가 4개나 망가졌어요. 시선 불량, 허리힘을 제대로 못 썼고, 뒤꿈치도 더 돌아가야 해요. 그리고 타격할 때 방출되는 칠흑의 타이밍이 너무 빨라요."

"......죄송합니다. 더 신경 쓰겠습니다."

"음! 그래도 지몬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더 연즙하세요!"

홍펭이 시몬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다른 학생들을 봐주러 떠났다.

잠시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으으음."

풀밭에 퍼질러 앉아 있던 딕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카미."

"네? 딕."

"저주학 수업도 그렇고, 요즘 교수님들이 시몬을 좀 편애하는 것 같지 않아?"

옆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그녀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저 정도면 편애까지는 아니지 않아요?"

"으으음- 암튼 쫌 이상해."

"어휴, 찌질아."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체육복 차림의 메이린이 다가왔다.

언제나 곱게 늘어뜨리던 하늘색 머리카락을 오늘은 끈으로 질끈 묶은 모습이었다.

"니가 그러고도 키젠이야? 추하게 남 질투할 시간에 스스로 교수 눈에 들도록 노력해."

딕이 픽 웃었다.

"질투는 무슨, 의문을 제기한 것뿐이야. 그리고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 않아? 마투학 시간에 당당히 저주 풀고 언덕 올라간 메이린 학생."

메이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 그거 그만 좀 우려먹어 진짜!"

"시룬데~ 사골까지 우려먹을 건데~ 그리고 너 이번 수업 홍펭 교수님이랑 말 한 번이라도 붙여봤냐? 백퍼 찍혔다니까."

"그전에 네 머리나 찍히지 않게 조심하지?"

메이린이 발을 들어 위협하자 딕이 깔깔대며 풀밭을 데굴데굴 굴러서 도망쳤다.

"하여간."

한숨을 푹 쉰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야."

"왜?"

"너 나 좀 가르쳐 봐."

시몬이 그건 또 뭔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너 마투학 잘하잖아. 홍펭 교수님이 안 오시니까 너라도 자세 좀 봐달란 소리야."

그 말이었구나.

시몬이 대답 없이 웃자, 당황한 메이린이 얼른 덧붙였다.

"수, 수행평가 때 내가 사이클롭스 상대하는 거 알지? 네가 협력해 줘야 내 움직임이 더 좋아질 거고 그래야 우리 수행평가 점수도......."

"그런 말 안 해도 그냥 알려줄 테니까 걱정 마."

시몬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앞에 섰다.

"자세 잡아봐."

"......."

메이린은 무안해진 듯 재차 헛기침하더니, 누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땡큐' 하고 중얼거렸다.

이내 엉거주춤 발차기 자세를 취했다. 시몬은 자리에 쪼그려 앉아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엉망이네."

"나, 나도 알아!"

메이린이 빼액 소리 질렀다.

시몬이 손가락을 뻗었다.

"일단 너무 뻣뻣해. 자신감 없는 게 자세만 봐도 딱 나와. 몸에 힘을 조금 풀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시 자세를 취해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편하게 섰다. 뻣뻣한 느낌이 조금은 사라졌다.

"왼발을 조금만 더 뒤쪽에 두고, 양 주먹은 가볍게 주먹 쥐어서 앞으로...... 아니, 그건 오른발이잖아. 밥 먹는 손 반대편 발이 왼발."

"나, 나도 알아 바보야! 긴장해서 헷갈린 거거든!"

그녀는 따박따박 반박하면서도 얼른 자세를 바꿨다.

"허리에 칠흑을 끌어모은 채로 대기해. 응, 그거 맞아. 그리고 발 앞꿈치에 힘을 주고, 돌리는 거야."

"이렇게?"

"아니 아니. 팽이처럼 빙그르르 돌라는 게 아니라 허리힘으로 꺾듯이 돌려야 해. 그리고 돌릴 때 칠흑은 넓적다리 뒤쪽에......."

"여기?"

그녀가 손으로 다리를 짚자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위에."

"여기?"

"아니, 너무 나갔잖아. 조금만 더 아래."

"여기 맞지?"

"거긴 그냥 무릎이고."

"에이 씨! 맨다리도 아니고 체육복이잖아! 그냥 만져!"

그녀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런데 홧김에 지른다는 게 너무 소리가 컸다.

만져- 만져- 만져- 하고 메이린의 목소리가 산등성이를 타고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

"......."

곳곳에서 안테나가 세워졌다.

연애에 환장하는 여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카미바레즈마저 다소곳하게 입을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마구 팔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자세를 잡아달란 의미야! 자세!"

그러나 이미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소문이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메이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다급히 시몬을 돌아보았다.

"어, 어쩔 거야? 뭐라도 말 좀 해!"

"나도 몰라. 그보다 만지랬으니 만진다."

성큼성큼 다가온 시몬이 메이린의 체육복 위에 정확히 손을 올렸다.

"여기에 칠흑을 뭉쳐놓고."

그리고 발목을 잡았다.

"몸을 돌리면서 이쪽으로 옮기는 거야."

'이 미친놈아!'

지금이 이럴 때냐고!

얼굴이 한계치까지 시뻘게진 그녀가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는데 시몬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하란 대로 해."

"어, 어?"

"흥분해서 방방 날뛰는 건 역효과야. 오해란 걸 직접 보여줘야 풀릴 거 아냐."

시몬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일어나서 그녀의 팔과 어깨를 붙잡고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메이린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고쳤다.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온 학생들이 그 모습을 봤다.

"진짜 자세 잡아주는 거였네."

"메이린이 좀 유별나다니까."

"시몬 친절해~"

마침내 자세 교정을 마친 메이린이 몸을 돌리며 다리를 하늘로 차올렸다. 힘이 들어간 그녀의 다리가 붕 떠올랐다가 중심을 잃고 풀밭에 엉덩방아를 찍었다.

하하하! 지켜보던 주위에서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몬도 픽 웃으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갈 길이 멀지만 잘했어."

"......아, 응."

그때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학생들이 시몬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기들도 발차기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시몬이 친절하게 웃으며 그녀들의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대체 얘는 뭐야.'

메이린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투학 수업도 끝났다. 체력을 다 소모해 널브러진 학생들을 위해, 이번에도 키젠 측에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메이린! 소문 잘 들었어!"

딕이 뒷머리를 받친 채 낄낄거리며 나타났다. 카미바레즈와 이야기하고 있던 그녀가 찌릿 딕을 노려보았다.

"야, 하지 마. 진짜."

"아니, 너 말고 내 친구 이야긴데. 남녀 사이에 '만져'와 '자세'라는 대화가 오갔으면 과연 어떤......."

"하지 말라고!!"

메이린이 아공간에서 가방을 꺼내 딕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도망치려던 딕이 풀밭에 나자빠지며 비명을 질렀고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소리 내어 웃었다.

"으악! 으악! 보고만 있지 말고 얘 좀 말려봐!"

"가자, 카미."

"네!"

두 사람은 딕을 외면하고 얼른 텔레포트 마법진 줄을 서러 갔다.

"그런데 카미, 다음 수업은 뭔지 기억나?"

"아! 기억나요. 소환학이에요."

그 말을 들은 시몬이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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