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2화
시몬은 오랜만에 아론의 소환학 수업을 듣게 됐다.
그리고 수업 주제는 '복원'. 저번 시간에 만들어두었던 아일랜드 랫맨 스켈레톤을 무너뜨리고 다시 복원하는 수업이었다.
"스켈레톤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복원력이다."
오늘도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에 후줄근한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한 아론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후웅!
훙!
교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뼈들이 엄청난 속도로 허공에 모여들었다.
초 단위 만에 공중에서 조립된 스켈레톤이 바닥에 착지해서 멋들어지게 인사까지 하자, 사방에서 학생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복원의 원리는 어렵지 않다. 스켈레톤의 몸은 강한 충격을 받아 흩어지더라도, 뼈에 잔여 칠흑이 남아 있다."
아론이 스켈레톤의 뼈 하나를 손으로 뽑아냈다.
"이 칠흑을 활성화해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려는 '인력의 성질'을 극대화하면 된다."
그러곤 손에서 힘을 빼자, 뼈가 다시 날아가서 자석처럼 원래의 자리에 철썩 달라붙었다.
"자, 실습 시작이다."
수업 내용이 복원이라서, 시몬은 졸지에 예습을 해온 셈이 됐다.
다른 학생들이 몸통, 팔, 다리를 구분해서 복원을 연습하는 가운데, 시몬은 한 방에 스켈레톤 전체 복원에 성공했다.
메이린은 물론, 헥토르마저도 복원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연습과 훈련만으로 100%에 도달할 수 없는 철저한 재능의 영역. 스켈레톤 복원만큼은 A반에서 시몬이 독보적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수업을 따라가기에도 바빴던 시몬은 간만의 여유를 만끽했다. 딕과 카미바레즈의 복원을 봐주고도 시간이 남아서 교과서를 끄적거리는 중이었다.
"야, 너 그렇게 놀아도 돼?"
메이린이 심술이 났는지 툴툴거렸다.
시몬은 대답 대신 손을 허공에 한 바퀴 휘저었다. 책상에 흩어져 있던 뼈들이 차차착 맞춰지며 스켈레톤의 몸통이 완성됐다.
"......자, 잘하네."
메이린은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뒷자리에 앉은 딕이 고소하다는 듯 깔깔 웃어대다가, 지나가던 조교의 눈치를 받고 조용해졌다.
"보, 복원 좀 잘한다고 잘난 척하지 마!"
메이린이 경쟁심을 불태우며 말했다. 그녀는 어떤 수업이든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다음 달에 내 소환학 점수 못 넘으면 키젠에서 나가겠다고 했지? 같은 조가 됐다고 내가 쉬엄쉬엄할 거라 생각하면......!"
"걱정 마. 무조건 넘을 테니까."
시몬이 턱을 괴고 교과서를 넘기며 대답했다.
그녀는 분한 마음에 주먹을 부르르 떨었지만, 적어도 이번 복원수업에서는 시몬을 뭐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하아, 20번 문제만 풀었으면 소환학도 90점대였을 텐데......."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소환학 20번이면 제일 뒷장 문제?"
"응."
"그거 쉽던데."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야. 너 갑자기 왤케 나대? 니가 나보다 소환학 더 잘해?"
"아니."
"그런데 20번은 어떻게 풀었단 거야? 공식을 써서?"
"그런 거 몰라."
말도 안 된다.
20번은 테론 공식을 응용해서 푸는 문제였다. 그 문제를 틀린 메이린은 직접 아론에게 찾아가서 풀이를 들었다.
그런데 선행학습도 안 해온 시몬이 테론 공식도 모르고 20번을 풀었다고?
"답이 뭐로 나왔는데?"
"1,200,146."
메이린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답은 '1,200,000'이었으니 사실상의 정답이었다.
"빨리 불어! 대체 어떻게 푼 거야?!"
"그동안 키젠에서 배운 수식들을 최대한 조합했어. 으으음,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서 설명을 못 하겠네."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중에 반드시 문제 복사본을 카피해서 다시 풀어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이린이 조용해지자 시몬의 관심은 다시 교과서로 옮겨갔다.
소환학은 봐도 봐도 흥미로운 내용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 다루게 될 새로운 언데드들과 흑마법들을 훑어보는 것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골렘은 최대한 빨리 만들어보고 싶은데. 로체스트에서 재료만 사면 독학할 수 있지 않을까?'
"시몬 폴렌티아."
난데없이 귓가로 파고든 목소리에, 시몬은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지금 뭐 하고 있지?"
아론이 흉흉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딴짓하는 걸 들켜 버렸다! 다른 학생들과 아예 다른 페이지를 펼쳐놓고 있었으니 뭐라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대답해라."
아론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화가 나 보였기에, 시몬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복원에 성공해서 잠시 다음 수업 내용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
물론 아론도 알고 있었다.
시몬이 유일하게 이 반에서 한 번에 10초대 완전 복원을 성공시킨 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문제와는 달리 아론의 표정은 무척이나 살벌해 보였다.
"수업 끝나고 강의실에 남도록."
아론은 그 말만 남기고 등을 돌려 떠났다. 짙은 두려움이 시몬의 몸을 휘감았다.
"시, 시몬...... 너 설마 찍힌 거야?"
딕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메이린이 입술을 삐쭉인 채 팔짱을 꼈다.
"그러게 난 말했다? 그렇게 놀아도 되냐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못내 신경은 쓰이는 듯, 슬금슬금 시몬의 눈치를 살피는 메이린이었다.
물론 시몬은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 *
소환학 수업이 끝났다.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때였지만, 시몬은 강의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텅 빈 강의실에서 무슨 벌어질지 걱정하고 있는 시몬의 앞으로, 아론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다가왔다.
"따라와라."
두 사람은 강의실을 나섰다. 시몬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의 뒤를 걸었다.
'......그냥 복원 연습이나 계속할걸.'
아론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었으니 어떤 질책도 달게 받을 수 있었지만, 아론은 마치 시몬을 없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이런 정적이 시몬에겐 더 괴로웠다.
두 사람은 건물을 지나 텅 빈 공터에 들어섰다. 주위가 나무로 둘러싸인, 아무도 없는 널찍한 공간.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아론이 주머니에서 낡은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손가락을 팟 하고 튕기자 불똥이 튀며 시가 끝에 불이 붙었다.
이내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아론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시몬은 더더욱 움츠러드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의지가 있음에도, 내 수업에서 배워가지 못하는 학생."
"......예?"
"스켈레톤을 꺼내라."
저게 무슨 말이야?
시몬은 당황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아공간에서 스켈레톤을 꺼냈다.
"내 앞에서 복원해 보도록."
아론이 시가를 쥔 손의 반대쪽 손을 튕기자 스켈레톤이 펑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연결이 끊기자 시몬은 시큰한 두통을 느끼며 휘청였지만,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뻗었다.
'복원!'
바닥에 떨어진 두개골을 중심으로 뼈들이 자석처럼 달라붙으며 빠른 속도로 스켈레톤이 완성됐다.
"......그래. 네가 복원 분야만큼은 독보적이라는 건 알겠다. 그럼 이제 복원의 상위 기술을 가르쳐 주지."
시몬의 눈동자가 커졌다.
"호, 혼내시려는 거 아니었어요?"
"추가 수업이다."
아론이 물고 있던 시가를 손가락에 끼고 말했다.
"혹시나 이상한 뜻으로 받아들일까 하는 말이지만, 정규수업의 성취를 넘어선 학생에게 추가수업을 제공하는 것도 교수의 역할이지."
감격에 젖은 시몬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아론 교수님!"
"빨리 자세 잡아라. 내 퇴근 시간 더 까먹지 말고."
"아, 넵!"
시몬은 활짝 밝아진 얼굴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아론은 자신의 아공간에서 스켈레톤을 꺼냈다.
'와.'
시몬의 것보다 훨씬 크고 정교해 보이는 스켈레톤이었다.
뼈는 검은색에, 사용되는 뼈의 가짓수도 아일랜드 랫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고 정교했다. 등에는 적색 망토를 둘렀으며 각종 병장기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데몬의 뼈로 제작한 스켈레톤이다."
"멋져요!"
멋진 검. 화려한 방어구. 아름다운 말.
그 어떤 재물에도 덤덤하던 시몬이었지만, 저 스켈레톤에는 엄청난 소유욕을 느꼈다.
"두 번 보여주지 않을 테니 잘 봐라."
아론이 손가락을 튕겨 스켈레톤을 무너뜨렸다. 그러곤 팔을 들어 올려 근처의 나무를 가리켰다.
들썩들썩!
바닥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던 뼈들이 들썩거리더니 이내 쏜살같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퍼버버버버버벅!
수백 개의 뼈가 나무를 꼬챙이처럼 관통했다.
"복원을 이용한 공격기. 본 피어싱(Bone Piercing)."
근처에서 열매를 갉아먹던 다람쥐가 깜짝 놀라며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아론의 가느다란 팔이 휘적거리며 그 다람쥐를 가리켰다.
촤차차차차착!
빛살처럼 날아간 뼈들이 다람쥐의 주위를 빈틈없이 틀어막았다.
"복원을 이용한 속박기. 본 프리즌(Bone Prison)."
아론이 검지를 치켜세우자 감옥이 위로 날아가 흩어졌고, 그사이에 다람쥐가 도망쳤다.
"마지막으로."
아론이 주먹을 꾹 쥐었다.
하늘에서 비산하던 스켈레톤의 뼈들이, 이번에는 아론의 몸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차작!
착!
아론의 몸이 뼈로 뒤덮여 갔다. 마지 뼈로 만든 수트로 갈아입는 듯한 모습이었다.
빈 이음쇠가 착착 맞춰졌고, 뼈와 뼈 사이의 빈 공간에는 칠흑이 흘러나와 섬유처럼 가로막았으며, 등 뒤는 적색 망토가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투구처럼 아론의 머리를 덮었다.
"복원을 이용한 방어기. 본 아머(Bone Armor)다."
"와......!"
시몬은 소름 끼치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스켈레톤을 입은 아론의 모습은 정말로 눈이 부실 만큼 화려했다.
'멋있어!'
아론이 오른팔을 뻗었다. 그러자 갑주가 살아 있는 옷처럼 촤르륵 벗겨지며 한쪽 무릎을 꿇은 스켈레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스켈레톤은 네크로맨서의 역량에 따라 무기도, 감옥도, 갑옷도 될 수 있지. 이게 전부 복원을 응용한 흑마법이다. 이해했나?"
시몬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복원 기술들은 2학년 때나 배울 수 있지만...... 너는 복원에 대한 성취만큼은 탁월하다. 조금 어레인지해서 너도 쓸 수 있는 사용법을 알려주지."
"가, 감사합니다!"
"일단 지금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기술은 본 피어싱 정도겠군. 준비해라."
아론은 다시 한번 시몬에게 복원을 시켜보고는 분석했다.
"두개골을 중심으로 복원을 전개하는군."
"네."
"지금 이 순간부터 그 버릇은 고쳐라. 원하는 방향에 스켈레톤이 가도록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팁을 알려주지."
피어의 도움을 받아 의지를 훈련했던 경험도 있었기에, 아론의 설명을 들은 시몬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앞으로 모여!'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흩어진 스켈레톤의 뼈들이 시몬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스켈레톤의 핵심인 두개골이 도달하는 속도에 따라 후속 뼈들의 속도도 정해졌지만, 일단은 원거리 복원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복원과 본 피어싱은 엄연히 다르다. 복원력을 응용할 뿐이지 완전히 다른 기술이라고 생각해라."
"복원으로 불러모을 때는 뼈를 옆으로 기울이는 습관을 들이도록. 그래야 날카로운 부분이 적의 살점을 파고들어 간다."
"뼈에 머무는 칠흑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면 날카로운 날붙이처럼 만들 수 있다. 찌를 부위가 없는 뼈들은 그냥 타겟의 몸의 부착하는 느낌으로 진행하도록. 그것만으로 상대에게 상당한 속박효과를 준다."
시몬은 아론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였다. 이어서 바로 실전 훈련으로 넘어갔다.
차자자자자작!
근처의 대나무에 스켈레톤 뼈들이 들러붙었다. 뼈의 날카로운 부위들은 나무의 겉을 파고들었고, 다른 뼈들은 자석처럼 들러붙었다.
'복원!'
그 상태에서 시몬이 주먹을 움켜쥐자, 뼈들이 대나무를 점점 더 강하게 조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뿌득!
대나무를 부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아자!"
시몬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통쾌한 기합성을 내질렀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새로운 신기술을 습득해 낸 것이다.
'아으으, 너무 행복해!'
전신이 부르르 떨릴 만큼의 거대한 성취감.
이것은 정말로, 마약처럼 중독적인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