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3화 (3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3화

"잘했다."

부러져 바닥에 떨어지는 대나무를 보며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그냥 뼈로 조르는 수준이지만, 파괴된 스켈레톤을 공격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네게는 완전히 새로운 카드가 생긴 셈이다. 실전에서도 쓸 수 있도록 꾸준히 훈련하도록."

"감사합니다 교수님!"

행복감에 젖은 시몬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론은 손가락에 낀 시가를 툭툭 털고는 말했다.

"제인 교수님이 수행평가로 사이클롭스 사냥을 넣었다지?"

"네, 맞아요."

"출전이냐?"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같은 조의 메이린이라는 학생이 출전조원입니다."

"현명하군."

아론이 시가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말했다.

"팀원의 서포트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배울 점이 많을 거다."

"네!"

"그리고."

다 태운 시가를 근처의 쓰레기 바구니에 던져놓은 아론이 등을 돌렸다.

"이건 추가수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론은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시몬은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 * *

아론의 과외가 끝나고, 시몬은 조원들과 만나기로 한 실습실에 도착했다.

이미 조제는 시작했는지 솥 안의 내용물들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솥 주위로 각자의 개성대로 앉아 있던 세 사람이, 시몬을 발견하곤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시몬!"

"어떻게 됐어?"

모두가 헐레벌떡 다가왔다. 시몬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별일 아니었......."

"맞았니? 맞은 거야? 역시......!"

"아직 학생 보호기간인데 체벌이라니! 너무해요!"

"키젠의 체벌이 살벌하기로 소문났대. 학생을 사슬에 묶어놓고 상의를 벗긴 다음에 긴 채찍으로......."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길 하고 있던 거야.

"그냥 추가 수업해 주셨어."

"뭐?"

세 사람의 시선이 중간에서 모였다.

"그 아론 교수님이 과외를 해줬다고? 그럴 리가!"

메이린이 부정했다.

"채찍에 머리를 심하게 맞은 게 아닐까."

딕이 턱을 짚었다.

"시몬, 정말 괜찮은 거예요?"

카미바레즈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두 손을 모았다.

"......."

설명을 해줘도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시몬은 그냥 세 사람을 지나쳐 솥으로 걸어갔다.

"포션 진행도는 어때?"

"완벽하지! 누가 만들었는데!"

순식간에 원래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온 메이린이 검지를 흔들었다.

"물의 양, 재료 검량, 끓이는 시간과 이물질 걷어내는 것까지 퍼펙트! 이제 약불에 20분만 더 졸이면 완성이야."

"잘했네."

"흥! 이제 다들 알았지? 너희들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딕이 자리에 앉아 다리를 툭툭 두들겼다.

"아, 이 '자세'로 서 있었더니 뻐근한데 다리 좀 '만져'볼까."

"야!!"

메이린과 딕이 왁왁 소리 지르면서 티격태격하는 사이,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사이좋게 포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과서 모서리로 딕을 응징한 메이린이 두 사람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응- 너희들 뭔가 좀 친해졌다?"

"그래?"

시몬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카미바레즈는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솔직히 불어. 파수꾼에 쫓긴 거 말고, 그날 밤에 너희들끼리 무슨 일 있었지?"

넉다운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던 딕이 슥 고개를 들었다.

"여윽시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억!"

메이린이 기다렸다는 듯 교과서를 집어 던졌다. 딕이 곡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하여간 평민들은 다 저급해."

"......그, 그런 편견은 좋지 않아요 메이린."

메이린이 다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야기 안 해줄 거야?"

카미바레즈가 힐끔 시몬의 눈치를 살폈고, 시몬은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

"별일 없었어. 숲에서 길을 잃어서 오래 걸렸을 뿐이야."

"그래?"

메이린은 시몬과 카미바레즈의 몸 곳곳에 붙어 있는 밴드와 붕대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다행히 메이린은 더 묻지 않고 넘어갔다. 그때 딕이 빈 병을 들고 다가왔다.

"포션 다 끓었어. 이제 담자!"

딕은 솥에 연결된 핸들을 돌려서 솥을 기울이고는, 조심스럽게 병을 대고 액체를 담았다. 모두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들 정말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효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카미바레즈가 말했다. 딕이 다 채운 한 병을 메이린에게 내밀었다.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지? 그럼 우리 조장님이 대표로 직접 취음해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너 진짜 깝죽거리다가 뒤지게 맞는다?"

메이린이 도끼눈을 뜨자 딕이 얼른 고개를 숙이고 작업을 재개했다.

"어휴, 키젠이 아니라 밖이었으면 귀족 모욕죄로 체포시키는 건데."

"모욕죄유? 쇤네는 무식해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서유."

"두 사람 다 싸우지 마세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병에 포션을 다 담으니 다섯 병이나 나왔다.

세 병은 메이린이, 남은 두 병은 시몬이 각각 아공간에 보관하기로 했다.

"이걸로 다음 초급 흑마법 수업 때 발표할 거 생겼네."

"만난 김에 내일 제인 교수님 수업 때 어떻게 말할지 정하고 가자!"

"좋죠!"

네 사람은 주위를 정리하고 바로 빈 강의실을 찾아 떠났다.

* * *

프리스트 사건이 잠시 시몬의 머릿속에 까맣게 잊힐 만큼, 키젠의 학교생활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두 번째 초급 흑마법 수업에서는 제인 앞에서 각 조의 전략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메인 딜러 하나, 소환사 하나, 저주술사 둘."

7조의 자료를 살펴보던 제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앞에는 시몬과 조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조원들의 전공이 모두 다른데, 역할군이 다채롭지는 않군요."

올 게 왔다.

메이린이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조원들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면 좋겠지만, 사이클롭스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잡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정했습니다."

"이 포지션이 최선이라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제인이 고개를 돌렸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생각은 어떤가요?"

'윽.'

갑자기 훅 들어오기냐.

시몬은 긴장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제인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저희 조가 흑마법의 조합 파트에서 창의성이 부족하단 건 인지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학생 보호기간이다.

이 발표는 학생들의 전략을 채점하는 게 아니라 바로잡아주는 시간.

그렇다면 교수의 의견에 흔들리는 것보다, 지금의 팀워크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어떤 조보다 안정적으로 사이클롭스를 사냥하고, 저희들만의 강점에서 높은 점수를 따 창의성에서의 감점을 만회하겠습니다."

속으로 나이스를 외친 메이린이 주먹을 꽉 쥐었다. 제인은 훗 하고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학생."

"네, 넷!"

카미바레즈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공격의 핵심을 맡아야 할 혈류학 지망생이, 저주 지망생에게 출전을 양보하고 본인이 대신 저주 서포트를 하고 있는 이 상황.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군요."

......세다.

소심한 카미바레즈가 감당하기엔 너무 센 질문이 아닐까 싶었다.

시몬이 곁눈질로 슬쩍 그녀 쪽을 보자, 예상대로 동공 지진이 진행 중이었다.

'카미, 진짜 대답 잘해야 해.'

만약 메이린이 더 뛰어나니까 내가 출전을 양보했다, 라는 뉘앙스로 대답을 해버리면 이건 키젠 학생 실격이다.

만약 그게 현실일지라도, 제인 앞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때 카미바레즈의 눈동자가 힐끔 시몬에게로 향했다. 간절해 보이는 눈빛이 마치 '나 어떻게 해요?' 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교수를 앞에 두고 대답을 해줄 수는 없다.

정답을 줄줄 알려줄 시간도 없다.

하지만 이 정도는.

시몬은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사이클롭스.'

라고.

그러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려 제인을 보았다.

"저, 저희 조가 상대하는 사이클롭스라는 몬스터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그렇지! 이번엔 시몬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사, 사이클롭스의 질기고 단단한 가죽은 혈류계 마법으로 공략하기 어렵습니다. 산 채로 불태울 수 있는 메이린 학생의 다크플레어 쪽이 사이클롭스 공략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메이린과 딕의 표정도 확 밝아졌다.

"그렇습니까."

제인이 턱을 괴며 묘한 미소를 흘렸다.

"그럼 사이클롭스가 아니라 다른 몬스터가 적으로 나온다면."

"그, 그, 그때는......!"

그녀의 손이 긴장으로 파르르 떨렸다.

카미바레즈는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이럴 때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했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그때는 제가 메인 딜러를 할 거예요-!"

'거예요!' 하고 내지르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컸다. 마지막 말끝에는 살짝 삑사리까지.

얌전하던 여학생이 소리를 지르자 주위의 조교들도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그 발언은 기억하겠습니다."

제인이 슬쩍 웃었다.

메이린이나 시몬의 대답보다 좀 더 만족스러워하는 눈치.

어떻게 보면 최상의 결과였다.

'잘했어 카미!'

그녀는 부끄러움을 못 견디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푹 덮었다. 참 미워할 수 없는 소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딕 헤이워드."

제인의 부름에 끝에 서 있던 딕이 힘차게 대답했다.

"예! 교수님."

딕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젯밤에 삼백 가지의 예상 질문 패턴과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 왔다. 뭘 물어봐도 척척 대답할 자신이.......

"수업시간에 옆 사람이랑 떠들지 마세요."

"......네?"

"이상입니다."

그녀가 서류 뭉치를 툭툭 두들기며 조교에게 넘겼다.

"카미바레즈 학생과 중복되는 질문은 할 필요도 없겠죠. 7조 수고했습니다. 다음 8조 앞으로."

긴장되던 발표 시간이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7조는 조교의 안내에 따라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딱 필요한 조만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왔고, 발표가 끝난 조는 그대로 자유시간이었다. 키젠다운 자유로움이었다.

그리고.

"어머, 시몬? 너 내 옆자리에 있네?"

메이린이 윙크하며 신호를 보냈고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옆 사람이랑 떠들지 마세요!""

"꺄하하하핫!"

간만에 딕의 약점을 잡은 메이린은 그동안 당한 것을 복수하듯 열심히 되돌려 주고 있었다. 딕이 똥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야, 그게 웃겨? 별로 웃기지도 않구만."

"아닌데? 엄청 웃긴데! 오호호호!"

시몬은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사실 이렇게 메이린이 놀리는 것도, 딕이 덤터기를 쓰는 것도, 모두 카미바레즈를 배려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카미바레즈는 아직도 제인 앞에서 했던 실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카미."

시몬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점심으로 훈제치킨이랑 스테이크. 어느 쪽이 좋아?"

"......아."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내리며 얼굴을 드러냈다.

"저, 저는...... 오랜만이니까 치킨이......!"

"치킨! 점심은 치킨이다!"

딕이 소리치며 앞장섰다. 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웃고 떠들며 식당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