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4화
점심시간.
평소보다 식사를 빠르게 마친 시몬은,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L반 강의실에 들렀다.
'없네.'
강의실에 있는 L반 학생들 중에 시몬이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수업이 있는 건물까지는 제법 거리가 돼서, 너무 지체하면 수업을 놓치게 될지도 몰랐다.
'음, 내일 다시 와야 하나?'
초조한 마음에 강의실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에 분홍색 리본을 매달고, 교과서를 품에 끌어안은 예쁘장한 여학생이었다.
"저기. 미안한데 잠깐만."
"응?"
여학생이 눈을 끔뻑이며 걸음을 멈췄다.
"너희 L반에 로레인이라는 애 있지?"
"응응, 맞아. 로레인이 우리 반이야. 왜?"
시몬은 품에서 조심스럽게 편지봉투 꺼냈다.
"이걸 로레인한테 전해줬으면 해서."
"......?!"
마치 정지 버튼이 눌린 것처럼, 여학생은 입을 딱 벌린 채 멈춰섰다.
그러곤.
"꺄아아아악!"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네가 왜 비명을 지르는데!'
시몬은 기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주위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이목을 끌진 않았다.
"맞아, 기억났어!"
흥분한 듯한 그녀가 까치발을 세우고 시몬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너 신입생 대표로 선서했던 특례 1번이지?"
"......."
"맞지? 맞지? 꺄아아악! 어쩜 좋아! 역시 엘리트들은 끼리끼리 논다니까!"
그녀가 시몬의 손에서 낚아채듯 편지를 빼앗았다.
"응응! 알았어! 이건 내 목숨을 걸고 로레인에게 전해줄게!"
"......목숨을 걸 필요까진 없는데."
그녀가 엉큼한 미소를 흘렸다.
"너무 당연한 물음이긴 한데, 네가 누군지 로레인한테는 밝히면 안 되는 거지?"
"상관없어."
"어, 진짜? 밝혀도 돼?"
그녀의 눈이 부담스럽게 반짝였다. 시몬은 갑자기 몸서리쳐지는 위기감을 느꼈다.
"아, 아니. 역시 안 되겠다. 그냥 다른 말 없이 편지만 전해줘!"
"호호호! 알았어! 대담한가 싶더니 사실 부끄럼쟁이구나?"
그녀가 시몬의 팔뚝을 찰싹 때리며 요조숙녀처럼 웃었다.
지금 화제가 너무너무 재미있어 죽겠다는 반응이었다.
"......너 말이야."
시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이상한 착각하는 거 아니지?"
"응! 응! 당연히 아니지!"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 윙크는 왜 하는 건데.
갑자기 이 편지 심부름꾼이 무척 못 미더워졌지만, 시몬도 이제 수업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반대쪽 건물까지 전속력으로 달려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럼, 그 편지 잘 좀 부탁해."
"나한테 맡겨!"
시몬이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등을 돌리자마자, 여학생은 엄청난 속도로 강의실에 뛰어들어갔다.
"꺄아아아악! 애들아! 애들아! 내가 밖에서 뭘 받았게에?"
시몬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 * *
오늘 하루 모든 수업이 끝나고, 시몬은 홀로 교내 카페를 찾았다.
'여기는 또 처음이네.'
카페의 문고리를 잡고 열어젖히자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오니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사람이 많았다.
크고 작은 테이블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벽 쪽에 자리 잡은 학생들은 공부 삼매경이었는데 한 손으로는 경쾌하게 교과서를 넘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노트에 필기하면서, 입에 문 빨대로 쪽쪽 커피를 빨아 마시고 있었다.
주위에 저렇게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집중력이 망가지지 않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대단하네. 시험 기간엔 지금 이것보다 더 많다는 거지?'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 앉은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그때였다.
웅성 웅성 웅성.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방금 시몬이 들어왔던 카페의 문 쪽에서,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뜨린 여학생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와......!"
"맞지 맞지?"
그녀는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다른 학생들과는 달랐다.
도도한 걸음걸이, 세상을 초월한 듯한 붉은 눈동자, 그리고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
진짜 우리랑 같은 학생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에겐 함부로 말을 걸기 힘든 아우라 같은 게 있었다.
로레인 아크볼드.
세계의 절반을 통치하는 죽음의 마녀, 네프티스가 300년 만에 가진 유일한 딸.
유명인이 등장하자 주위는 그녀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로레인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구경났니?"
그 한마디에.
반경 수십 미터의 학생들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멀리 앉아 있던 학생들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주위가 순식간에 썰렁해지는 기적을 일으키며, 그녀는 또각또각 걸음을 옮겼다.
"......."
그리고 그녀의 걸음이 멈춘 곳은 시몬의 앞이었다.
시몬은 침을 꼴깍 삼켰다. 갑자기 긴장감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왜, 왜 이렇게 낯설지?'
분명 쇼핑도 같이하고, 밥도 같이 먹고,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본 키젠 교복 차림의 그녀는 무척이나 대하기가 어려웠다.
"오, 오랜만이야. 하하......."
"......."
용기를 내어 말을 붙여봤지만, 로레인은 여전히 싸늘할 만큼 무표정이었다.
당황한 시몬이 뭔가 실수한 게 있나 생각하고 있는 그때, 그녀의 눈가가 서서히 반달처럼 휘어지며 입가에는 호선이 그려졌다.
"안녕? 시몬."
시몬이 잘 아는 바로 그 미소였다.
* * *
두 사람은 주문한 커피를 들고 카페 3층으로 올라갔다.
바짝 긴장한 듯한 카페 사장이 직접 주문을 받았고, 로레인이 조용한 장소를 원한다고 말하자 즉각 닫혀 있던 3층을 열어주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널널한 야외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좋았다.
"랭거스틴에서 보고 처음이네."
마주 앉은 로레인이 밤하늘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은 시몬은 경직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 의외로 교복도 잘 어울리네."
"응?"
그녀가 본인의 교복 차림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이내 샐쭉한 표정으로 시몬을 응시했다.
"야, 그게 무슨 소린데? 내가 나이 많아 보인단 거야 뭐야?"
얼굴이 벌게진 시몬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지?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랭거스틴에서 만났을 때는 네 교복 차림이 잘 상상이 안 돼서......!"
"왜 상상이 안 돼? 내가 나이 많아 보이니까?"
'그게 아니라고!'
왜 이렇게 로레인과 이야기하면 말이 꼬이는 걸까.
시몬의 입장에선, 처음 만났을 때 갱들을 몰아넣는 로레인의 포스는 정말로 프로 네크로맨서 그 이상이었다.
그런 여자애가 이제 자신과 같은 교복을 입은 채로 앉아 있으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근데 이걸 말로 설명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시몬이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농담이야."
그녀가 빨대로 커피를 쪽쪽 빨아 마시며 눈을 찡긋했다. 가볍게 놀아났다는 걸 깨달은 시몬은 쓴웃음을 흘렸다.
"자, 그럼."
눈꺼풀을 내리깐 로레인이 천천히 다리를 바꿔 꼬며 말했다.
"만나자고 한 이유는?"
공기가 바뀌었다.
바로 이거다. 바로 이 범접하기 힘든 연상 같은 분위기.
시몬도 이제는 본론을 꺼낼 때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주위에 누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그는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키젠 내부에 배신자가 있어."
시몬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파수꾼들에게 쫓겨 금지된 숲에서 길을 잃었고, 그 장소에서 십자가를 놓고 기도하는 프리스트를 목격한 이야기를.
물론 피어의 도움을 받아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빼고, 위기에 빠졌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파수꾼들이 나타나서 살았다고 둘러댔다.
"......."
이야기를 들은 로레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로레인. 믿기 어려운 이야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믿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보다 네가 봤다는 그 십자가, 외형을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어, 음. 내 기억으로는 중앙의 가장 큰 십자가에 어떤 여자가 조각되어 있었어. 나체의 여인이 넝쿨에 둘러싸인 모습?"
"확실하네."
로레인의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게 바로 여신 데바(Dave). 에프넬의 프리스트들이 믿고 있는 유일신이야."
교황 직속의 신성 대학 '에프넬'.
네크로맨서들을 양성하는 키젠의 대척점으로, 이쪽에서는 프리스트를 양성하고 있다.
신성연방 내부에서는 키젠급의 인지도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최고 전력으로 손꼽히는 '성녀'들은 오로지 에프넬의 여학생 중에서만 뽑힐 정도로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키젠과 에프넬.
에프넬과 키젠.
어느 쪽이 더 강한가? 어느 쪽의 학생들이 더 우수한가?
이런 의문들은 전 대륙민들의 오래된 화젯거리였다.
"......감히."
빠직!
로레인이 쥐고 있던 유리잔이 악력에 박살 나며 커피가 줄줄 쏟아졌다.
"감히 씹어먹을 프리스트 따위가 키젠에 들어와?"
진심으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 시몬은 그녀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살기가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시몬."
"응."
"너 말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하고 금지된 숲에 같이 간 카미바레즈. 둘뿐이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보해 줘서 고마워. 바로 엄마한테 보고할게."
시몬이 일부러 이 사실을 비밀로 한 이유가 있었다.
키젠의 교수들도 엄연히 이번 사건의 용의자들이니까. 네프티스만이 알고 있어야 여러 방향에서의 수사를 진행할 수 있으리라.
"가자, 시몬!"
로레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디로?"
"금지된 숲. 네가 프리스트를 봤다는 그 현장에 뭔가 단서가 남아 있을지도 몰라."
시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금 바로?"
* * *
두두두두두두두!
늦은 저녁, 시몬은 생애 처음으로 '해골마'를 타보게 됐다.
이 해골마 한 필이 집 한 채 값이라는 데, 과연 비싼 이유가 있었다. 해골마는 말보다 빠른 건 물론, 지치지도 않고 탑승감도 쾌적했다.
"생각보다 잘 타네. 승마 배운 적 있어?"
옆에서 나란히 해골마를 몰고 있던 로레인이 물었다.
"그냥 고향에서 잠깐."
사실 승마술과는 관계없이, 시몬과 해골마는 무척 호흡이 잘 맞았다.
무엇보다 해골마가 시몬의 말을 잘 따르고 있었다. 시몬이 손만 내밀기만 하면 해골마는 애교를 부리며 슬쩍슬쩍 얼굴을 비볐다.
"이쪽이야. 로레인."
"응."
한번 겪었던 길이라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카미바레즈와 넘었던 계곡을 해골마로 훌쩍 뛰어넘어, 숲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이 근처야."
"안내 수고했어. 여기서부턴 걸어서 들어가자."
두 사람이 해골마에서 뛰어내렸다. 로레인이 허공에 아공간을 열자, 해골마들이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 사라졌다.
시몬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더 타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지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두 개나 생겼다. 첫 번째는 데몬의 뼈로 만든 스켈레톤이고, 두 번째는 해골마였다.
이제 두 사람은 기척을 죽인 채 금지된 숲을 걸었다. 시몬은 처음 카미바레즈와 왔을 때보다 훨씬 숲길이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오래 헤매지 않아 프리스트를 만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야?"
"응, 확실해."
두 사람은 진지한 얼굴로 수색을 시작했다.
'......흔적이 사라졌어.'
프리스트를 봤던 그 장소는 확실하다. 하지만 제단도, 장식도, 십자가도, 심지어는 피어와 프리스트가 싸우며 바닥이 뒤집힌 전흔까지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시몬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어때 로레인?"
"......."
그녀는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풀밭을 손바닥으로 훑어 내려가고 있었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할 만큼 아무런 흔적도 없어."
"......끙."
"그래도 흔적을 지웠단 것까진 확실하네."
몸을 일으킨 그녀가 팔짱을 꼈다.
"시몬, 네 이야기로 추정해 보면 녀석은 상당한 실력자야. 전투능력도 그렇고, 넓은 범위의 흔적을 깔끔하게 숨긴 것도 그래.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건, 꼴에 신을 섬기면서 코어를 몸에 심고 키젠에 들어왔단 사실이야. 걔들은 코어가 신을 부정하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코어를 개방해 버리면, 프리스트의 '신성'은 못 쓰는 거 맞지?"
로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걔들 논리에 따르면 칠흑은 저주받은 악마의 힘이고, 신성은 신의 믿음에서 나오는 힘이래. 뭐가 됐든 두 힘이 서로 충돌하는 건 사실이야."
그녀가 등을 돌렸다.
"상황이 심각하네. 키젠으로 돌아가자. 지금 당장 엄마를 찾아 뵈어야 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