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6화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사이클롭스가 살벌한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목표는 당연히 메이린. 그녀가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나와라.'
시몬이 가상의 레버를 잡아당겼다. 바닥의 아공간이 열리고 스켈레톤 두 기가 튀어나왔다.
'전진!'
스켈레톤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본 사이클롭스는 손에 든 통나무를 들어 올렸다.
사이클롭스는 도구를 쓰는 몬스터로, 나무를 뿌리째로 뽑아 방망이처럼 휘두르는 게 주력 공격수단이다.
부와아아앙!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스켈레톤 하나가 나무 방망이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측면으로 들어온 스켈레톤이 숏소드를 내질렀다.
차카악!
역시 단단하다. 검이 지나갔지만 피부에 살짝 긁힌 생채기만 생겼다.
분노한 사이클롭스가 재차 허리를 뒤틀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역시 이런 상황에선 한 마리만 쓰는 게 나아.'
시몬이 이를 악물고 팔을 뻗었다. 모든 정신력을 오로지 한 스켈레톤의 사념에 집중했다.
'숙여!'
시몬의 절대명령이 떨어졌다. 즉각 반응한 스켈레톤이 허리를 낮춰 방망이를 피해내더니, 재빠른 몸놀림으로 옆으로 내달렸다.
"나이스 시몬!"
딕의 외침이 들렸다.
시몬은 한 번에 두 기의 언데드를 컨트롤할 수 있었지만, 온전히 하나의 스켈레톤에만 집중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격분한 사이클롭스가 미친 듯이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후웅! 후웅!
스켈레톤은 널뛰기하듯 공격을 피해냈다. 뒤에서 지켜보던 세 사람은 물론, 관람하던 학생들의 입까지 벌어졌다.
원래 언데드로 시간을 버는 게 시몬의 역할이었지만, 시몬은 모두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었다.
"빨리! 오래 못 버텨!"
"준비 중이야!"
딕과 카미바레즈는 탈진 저주 이그저스트를, 메이린은 칠흑 원소 마법인 '다크 플레어'를 준비했다.
세 개의 마법진이 빠르게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쾅!
간질간질하게 버티면서 시간을 끌어준 스켈레톤이 결국 방망이에 부딪혀 박살 났다.
씩씩거리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위를 훑던 사이클롭스가 메이린을 발견하고는 뛰어들었다.
"큭!"
시몬이 아공간에서 추가로 스켈레톤 두 마리를 꺼내 보냈다. 그러나 소환수가 파괴되는 충격으로 인한 데미지가 회복되지 않았고, 사이클롭스의 전차 같은 돌진에 뚫리고 말았다.
"완성했어!"
딕이 소리쳤다. 카미바레즈도 두 팔을 번쩍 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그저스트(Exhaust)!"
"이그저스트(Exhaust)!"
두 사람의 마법진이 동시에 번쩍이며 발동했다.
저주는 정확하게 명중! 사이클롭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됐어요!"
딕과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확 밝아졌지만, 시몬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빨라!'
생각보다 저주로 줄어드는 속도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이클롭스는 계속 달려왔고, 메이린은 오른손에 이글거리는 흑염을 완성했다.
몬스터와 메이린과의 거리는 삼 미터. 그녀가 힘찬 기합성을 내지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칠흑의 불꽃이 연기를 쏟아내며 날아갔다.
화아아아아악!
흑염이 폭발하며 사이클롭스의 몸을 뒤덮었다. 모두가 환호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부우웅!
화염을 뚫고, 거칠게 휘둘러진 방망이가 그녀의 머리에 부딪혔다.
삐빅!
[시뮬레이션 실패]
소요시간 : 2분 11초
입힌 피해량 : 26%
배리어 게이지 : 0%
종합평가 : F
"......!"
자욱했던 숲이, 마치 다음 장의 페이지를 넘긴 것처럼 실내의 연습실로 돌아왔다.
사이클롭스의 방망이에 맞아 수 미터를 날아간 메이린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메이린!"
"괘, 괜찮아요?"
모두가 기겁하며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다행히 그녀는 멀쩡해 보였다.
인상을 찡그린 채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메이린! 메이린! 정말 괜찮은 거예요?"
카미바레즈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메이린의 손을 잡았다. 메이린은 애써 웃어 보이며 통증은 없다고 말했다.
-수고했습니다, 7조.
천장의 확성기에서 제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딕이 벌떡 몸을 일으켰고,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양쪽에서 메이린을 부축했다.
-7조는 처음 계획을 어느 정도 실현했군요. 특히 스켈레톤으로 사이클롭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소환술사의 활약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몬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나머지 조원들은 전체적으로 미흡했습니다. 이그저스트로 움직임을 봉쇄하고, 그사이에 다크 플레어로 사이클롭스를 쓰러뜨린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큰 문제는 숙련도 부족. 다크 플레어나 이그저스트를 시전할 때 미스를 최대한 줄이도록 하세요.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7조는 조교의 안내에 따라 터덜터덜 훈련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와아아아아아!"
대기실에 나오자마자 요란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까, 깜짝이야."
물론 환호성은 7조를 향한 게 아니었다.
바로 옆인 3조의 훈련실.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이클롭스가 보였고, 그 위에 당당히 올라타 있는 헥트로가 길게 숨을 내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의 바닥은 연신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뮬레이션 성공]
소요시간 : 4분 02초
입힌 피해량 : 100%
배리어 게이지 : 98%
종합평가 : A
"......자, 잡았어? 저걸?"
"배리어 게이지가 98%야. 사실상 한 대도 안 맞았단 소리잖아?"
유일하게 첫 시도부터 사이클롭스를 사냥한 3조의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조원들이 헥토르에게 다가오며 하이파이브했다.
-잘했습니다. 3조.
키젠 부총장인 제인의 사실상 첫 칭찬.
학생들이 부러운 듯 탄성을 터뜨렸고, 이 순간에는 덤덤한 헥토르마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제인의 세세한 코멘트가 끝난 후, 마침내 그들이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와아아아!"
"나이스 헥토르!"
헥토르의 파벌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다른 학생들도 손뼉을 치며 축하해 주었다.
"......."
그때 헥토르와 시몬의 시선이 마주쳤다. 헥토르가 눈동자를 올려 7조의 결과물을 보더니 픽 웃었다. 마치 '그것 봐라' 하는 표정이었다.
"우리."
메이린의 목소리에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이 불똥이 튄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꼭 이기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의기소침할 시간 없어요! 아직 세 게임이나 남았으니까요!"
"뭐가 문제였는지 천천히 따져보자."
7조는 비상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일단은 제인 교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숙련도 문제가 제일 커."
딕이 말했다.
"시몬이 스켈레톤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나랑 카미가 실수 없이 빠르게 이그저스트를 발동해야 해."
"그것도 그런데."
시몬이 입을 열었다.
"이그저스트는 쌓이면 쌓일수록 강해지는 저주잖아. 두 사람의 첫 저주가 먹혀도 사이클롭스가 확 느려지진 않더라."
그렇게 말한 시몬이 고개를 돌려 메이린을 바라보았다.
"메이린. 네가 피해야 해."
"응?"
"뒤에서 공격이 올까 안 올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네게 공격이 온다는 생각으로 사이클롭스의 움직임을 주시해. 나도 최선을 다해서 널 지킬게."
메이린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투학에서 배운 그거 할 줄 알지? 칠흑을 즈려밟는 감각."
"즈려밟는...... 뭐?"
"일어서 봐. 다시 알려줄게."
시몬이 메이린에게 이런저런 팁을 알려주었고, 딕과 카미바레즈는 둘이서 이그저스트 마법진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 지속력 수식은 빼자."
"그걸 빼면 안정성이 너무 떨어지지 않을까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야. 저주를 빠르게 쌓는 게 중요해. 어차피 메이린이 한 방이라도 맞으면 게임 끝이니까."
금방 한 바퀴가 돌았고, 다시 3조와 7조의 차례가 돌아왔다. 시몬 일행이 훈련실로 들어왔다.
"자, 힘내보자!"
"화이팅!"
다들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뒤숭숭한 기분을 다잡았다.
잠시 후 주위가 풀밭으로 바뀌며 사이클롭스가 포효와 함께 나타났다. 이것도 한번 겪어보니 꽤 긴장감이 줄어들었다.
사이클롭스가 메이린을 발견하고 뛰어드는 것으로, 전투는 시작됐다.
'전진!'
기다렸다는 듯 시몬의 스켈레톤들도 달려갔다. 이번에도 한 기가 먼저 당하고, 다른 한 기가 끈질기게 사이클롭스를 붙들고 있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확실히, 움직임이 조금씩 눈에 익어.'
사이클롭스의 공격패턴은 어렵지 않다. 위력과 속도는 있지만 동작이 단순하다. 어깨와 팔 근육의 움직임만 봐도 휘두르기인지 내려치기인지 분간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몬의 역량이 뛰어나도 뻣뻣한 스켈레톤의 몸으로 공격을 전부 피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결국 스켈레톤이 박살 나고 사이클롭스가 메이린에게 달려들었다.
"이그저스트!"
"이그저스트!"
이번에도 두 방의 저주가 성공적으로 꽂히며 사이클롭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메이린도 다크 플레어를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첫 시도보다는 여유가 생겼다.
"흐읍!"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흑염을 날려 보냈다. 사이클롭스가 멈칫하며 방망이를 세워 들었지만, 방망이에 폭발한 화염구가 사방으로 퍼지며 피부의 몸에 옮겨붙었다.
-캬아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검은 연기가 사이클롭스를 뒤덮었다.
'좋아! 제대로 들어갔어!'
다크 플레어는 확실히 효과적인 공격수단이다. 마나 투사기에 표시된 사이클롭스의 체력게이지가 빠르게 줄어드는 게 보인다.
"메이린! 지금부터 시작이야!"
"나도 알거든!"
살갗이 타들어 가는 엄청난 고통에, 사이클롭스의 시선이 메이린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러곤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몬이 스켈레톤들을 보냈지만, 고통에 눈이 돌아간 사이클롭스는 더 이상 언데드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스켈레톤들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오로지 이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메이린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때, 메이린은 두 번째 다크 플레어를 준비 중이었다.
'큭!'
메이린이 마법을 취소하고 무릎을 굽혔다. 하늘로 솟아오른 사이클롭스의 방망이가 대기를 가르며 내려왔다.
'즈려밟는...... 감각!'
터어어어어어엉!
방망이가 맨바닥을 때렸다. 제대로 칠흑을 일으켜 피해낸 메이린이 풀밭을 거칠게 굴렀다.
"다음 공격이 와! 피해!"
시몬이 외침을 들은 메이린이 다급히 몸을 일으키는 사이, 온몸에 불을 껴안고 날뛰는 악귀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메이린이 힘껏 몸을 날렸다.
까득!
방망이가 메이린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나 투사기에 '오른 다리 골절'이라는 표시가 떠올랐다.
"앗!"
"메이린!"
메이린이 다시 도망치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입고 있는 훈련복이 다리 골절 증상을 재현한 것이다.
"이그저스트!"
"이그저스트!"
다음 차례의 이그저스트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사이클롭스의 움직임이 느려진 게 눈에 보일 만큼 떨어졌지만, 메이린은 다리를 다쳐서 피할 수 없었다.
"아, 아아......!"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치고 있는 그녀의 머리 위로, 끈질기게 따라붙은 사이클롭스의 방망이가 떨어졌다.
[시뮬레이션 실패]
소요시간 : 3분 45초
입힌 피해량 : 42%
배리어 게이지 : 0%
종합평가 : E
"아깝다!"
숲이 실내로 돌아오며, 딕이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시몬도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리 골절만 아니었다면 저주로 움직임이 느려진 사이클롭스를 쉽게 요리할 수 있었으리라.
제인의 코멘트를 듣고 훈련실 밖으로 나오자, 이번에도 헥토르의 3조는 사이클롭스를 순조롭게 공략해 낸 뒤였다. 시간도 20초 가까이 절약했다.
"......다음이 마지막이네요."
카미바레즈가 중얼거렸다. 사기가 떨어졌는지 딕과 메이린도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모여봐."
시몬이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다음번엔 무조건 클리어할 수 있어."
시몬의 눈에 불이 붙었다. 이미 이전의 패배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
아니.
"나한테 필승법이 있어."
이 난관이 즐거워 죽겠다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