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8화
다음 날 주말.
시몬은 처음으로 로체스트에 내려왔다.
"와."
로체스트는 무척이나 젊고 활기찬 도시였다.
곳곳에서 즉석 연주회와 이벤트가 열렸고, 사복 차림의 키젠 학생들이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며 즐겼다.
물론 대도시 랭거스틴에 비하면 조촐한 규모였지만, 그래도 시몬은 로체스트 쪽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단 시몬은 지도를 펼치고 네크로맨서 상점에 들렀다. 딕이 이 집이 제일 싸다며 직접 추천해 준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젊은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오세...... 어어?"
종업원이 환하게 웃었다.
"시몬! 시몬 맞지?"
......누구더라?
갑자기 아는 척하는 종업원 때문에 시몬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다행히 저쪽에서 먼저 자신을 밝혔다.
"나야 나! 입학식 첫날에 만났던 로웬!"
"아......!"
같이 황천고래를 타고 왔던 그 엄청난 수다쟁이. 이래 봬도 키젠에 들어와 사귄 첫 친구였다.
"안녕!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반갑다 야! 너 A반이지? 난 D반이야! D반도 개빡세! 거인 혼혈 샤텔 마에르가 우리 반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니까! 근데 A반에는 특례 1번이 있...... 아 참! 네가 특례 1번이었지! 와, 맞아. 맞아 그랬지! 입학식 때 네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또 시작됐다.
더 골치 아파지기 전에 시몬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보다시피 아르바이트 중."
로웬이 어깨를 으쓱했다.
"용돈 벌어야지. 로체스트 알바 자리는 페이가 꽤 센 편이라 좋아."
'아르바이트라, 괜찮네.'
시몬도 슬슬 자금문제가 걱정되던 차였다. 학교에서 달마다 주는 금액으로는 수업 재료를 준비하는 것도 벅찼다.
"나도 아르바이트 자리 구할 수 있을까?"
"음, 솔직히 지금은 한발 늦었지! 저번 주에 알바 빈자리는 다 찼을걸? 워낙 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아쉽네."
물론 자금도 중요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었다.
시몬이 스켈레톤 세트를 사러 왔다고 말하자 로웬이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아일랜드 랫맨 스켈레톤 20세트.'
시작부터 많은 돈이 깨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 주 사이클롭스 수행평가에서는 많은 스켈레톤이 필요했으니까.
물론 스켈레톤의 수명이 다해도 군단의 전력으로 편입하면 되니까 손해 볼 일도 없었다.
그 외에 몇 개 연습해 보고 싶은 언데드 재료를 구매한 시몬은 네크로맨서 상점을 나왔다.
'자, 다음은.'
시몬은 준비물을 적어둔 쪽지를 부스럭거리며 꺼냈다.
'스켈레톤들이 쓸 무기.'
이번에 향한 곳은 무기상점이었다.
네크로맨서 상점에서도 무기를 살 수 있었지만 그쪽에서 구매하면 비싸다는 딕의 깨알 팁이 있었다.
"어서옵셔!"
무기상점을 운영하는 중년 남성이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빠르게 시몬의 교복 차림을 훑어본 그의 미소가 한층 더 깊어졌다.
"무엇을 보러 오셨슴까? 요즘은 흑요석으로 제작한 칠흑검이 신모델이 잘 빠지게 나왔습죠!"
상점 주인은 대뜸 벽에 걸린 검 한 자루를 시몬의 손에 쥐여주더니, 검집을 빼보라고 했다.
시몬이 살짝 힘을 주자 찰칵 소리와 함께 검집이 열리며 새까맣고 빛나는 검신이 보였다.
"조, 좋은 검이네요. 그런데 전 이런 것까진 필요 없고......."
"아니면 이건 어떻습니까! 마투학 전용 전투장갑! 최신형 모델이라 화력이......!"
"스켈레톤용 무기를 사러 왔는데요!"
시몬이 재빨리 말했다.
상점 주인의 표정이 급격히 식어가더니, 자리에 털썩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가게 구석을 가리켰다.
선반에 싸구려 검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몬은 기분 좋게 선반 쪽으로 달려갔다. 대부분이 실패작이거나 중고품이었지만 언데드가 쓰기엔 딱이었다.
시몬은 신중하게 검을 열어보거나 날붙이를 만져보고 손끝으로 튕기는 등 품질을 확인했다.
그렇게 검과 창을 다섯 자루씩, 방패도 두 개 샀다.
"이거 다 계산해 주세요!"
시몬이 카운터에 무기를 와르르 쏟았다.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상점 주인이 깜짝 놀라 물었다.
"이, 이걸 전부 사실 겁니까?"
"네."
상점 주인이 한결 풀어진 얼굴로 무기의 가격을 더해나갔다. 그러면서도 조금 걱정되는지 넌지시 말했다.
"이걸 다 어디 쓰려고요? 1학년 아닌감? 스켈레톤이라 해도 두세 마리 동시에 운용하는 게 끝일 텐데."
"미리 좀 많이 사두려구요. 워낙 날이 잘 상하잖아요."
시몬이 고른 무기들을 살피던 상점 주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나마 다 상태 좋은 것들로만 쏙쏙 고르셨네. 키젠에 오기 전에 칼밥 좀 먹으셨나 봐?"
"그런 건 아니고, 아버지께 좋은 무기를 고르는 법을 배웠어요."
"이야아,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네!"
상점 주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요즘이 아무리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의 시대라지만 근본이란 게 있습죠. 근본이! 남자라면 허리에 근-사한 검 한 자루 따악 차고 다니면서, 어? 그걸로 자기 한 몸은 지킬 줄 알아야지!"
"그럼요."
아무래도 이 아저씨는 본인 직업에 상당한 사명감이 있는 모양이다.
시몬이 적절하게 맞장구를 쳐주자 상점 주인은 기분이 좋아진 듯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스켈레톤 전용 무기 세트 검 다섯 자루 250실버. 창 다섯 자루 200실버. 목재방패 두 개 100실버. 다 합쳐서 550실버인데, 500실버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고맙죠. 젊은 귀족분이 천한 것들 분위기도 맞춰주시고. 아!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뒤로 돌아간 장비 상인이 화살과 화살통을 가져왔다.
"흑단나무로 만들어져 칠흑 효율이 높은 활과 화살세틉니다. 원래 1골드는 받아야 하는데, 내 이번엔 그냥 내주도록 합죠."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무, 무료로요? 이렇게 비싼 건 못 받아요!"
"어허! 로체스트에서 장사 한두 번 하나. 내 천한 것이라도 사람 보는 눈은 있습죠. 딱 보면 누군 금방 집에 가겠구나. 누군 3학년까지 살아남겠구나. 그런 것들 보입디다."
상점 주인이 시몬의 무기 꾸러미에 활을 올려두며 말했다.
"3년 동안 무기 사러 올 거면 우리 가게 단골이나 해줍사. 하는 의미에서 드리는 겁니다. 겸사겸사 친구들한테 소개도 해주면 더 좋고."
"그래도 1골드짜리는......."
"어차피 활은 키젠에서 잘 팔리지도 않아. 부담가지지 말고 가져가요. 쓰는 법은 알죠?"
"네. 그렇긴 한데......."
이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안 받는 것도 실례다. 시몬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다음에 또 옵쇼!"
알뜰한 쇼핑을 마친 시몬은 즐거운 기분으로 다음 장소로 향했다.
맹독학을 비롯한 다른 수업에서 필요한 수업재료들도 몇 가지 구매해서 아공간에 넣었다.
'피어, 이제 출발할게요.'
[알겠다!]
이제 피어와 훈련하러 유적으로 향했다.
금지된 숲에 다시 들어가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친절하게도 피어가 숲에 마중 나와 있었다. 피어에 등에 올라타니 몇 분 만에 유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따닥!
딱!
"다들 잘 있었어?"
시몬이 들어오자 군단화된 스켈레톤들이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다가왔다. 시몬은 웃으며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피어. 여기, 군단화할 스켈레톤들이요."
시몬이 아공간에서 망가진 스켈레톤들을 꺼냈다.
피어가 흘흘 혀를 찼다.
[부상자들이 많군.]
"저번 시뮬레이션 전투 때문에 많이 부서졌거든요."
피어가 망가진 스켈레톤의 두개골에 손을 얹자, 그들의 눈구덩이에 검푸른 불꽃이 횃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이제 군단의 스켈레톤은 8기까지 됐다.
[이제 좀 왁자지껄한 분위기군!]
"좋네요."
손상된 스켈레톤들의 군단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자리에 마주 앉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번 훈련은 꽤 빡셀 거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네, 물론입니다!"
사이클롭스 수행평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주말 동안 스켈레톤의 운용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우선 시몬은 네크로맨서 상점에서 사 온 스켈레톤들을 조립했다.
이내 시몬의 앞에 6기의 스켈레톤이 무기를 든 채로 섰고, 그 반대편에는 군단화된 스켈레톤 6기가 섰다.
시몬의 소환형과, 피어의 자연형이 각각 한 팀이다. 스켈레톤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따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로를 향해 신경전을 벌였다.
[지금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는 스켈레톤의 숫자가 두 기라고 했지?]
"네."
세 기 이상을 동시에 컨트롤하려고 하면 머릿속의 사념이 뒤엉키고 명령체계에 혼란이 왔다.
무엇보다 정신력이 급격히 깎여 나가며 미친 듯한 두통이 일어나 견딜 수가 없었다.
[흐흐흐,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다! 중요한 건 동시에 몇 마리를 컨트롤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한두 마리라도 얼마나 잘 다루냐니까!]
"알겠습니다."
[나도 동시에 두 마리까지만 컨트롤하겠다! 덤벼라 소년!]
"네!"
시몬이 오른팔을 척 뻗었다.
'돌진!'
검을 든 두 마리의 스켈레톤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피어도 검을 든 두 기의 스켈레톤을 돌진시켰다.
까앙!
깡!
이어지는 격돌. 검이 부딪치며 거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이 다음엔 어떻게 움직일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창을 든 피어의 스켈레톤 두 기가 창을 내질러 왔다.
'......윽, 물러서!'
시몬의 스켈레톤들이 간발의 차이로 물러났다. 그러자 선두의 검을 든 피어의 스켈레톤들이 물러나느라 중심이 무너진 스켈레톤들을 밀어붙였다.
까앙! 깡!
시몬의 스켈레톤들은 허리가 꺾인 위태위태한 자세로 검을 받아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을 든 스켈레톤들이 돌아와서 창대로 다리를 후려쳤고, 그대로 시몬의 스켈레톤들이 바닥에 나자빠지며 제압당했다.
'......졌다.'
아쉬움을 삼키며 팔을 내린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치사해요 피어! 한 번에 2기만 쓴다고 했잖아요!"
4:2니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시몬이 항의에 피어가 껄껄 웃었다.
[무슨 소리냐! 나도 너처럼 두 기씩만 컨트롤한 거다!]
"네? 그게 무슨...... 아!"
그랬다.
피어는 먼저 검을 든 스켈레톤을 움직이고, 그다음에 창을 든 스켈레톤을 움직였다.
다시 검을 든 스켈레톤으로 돌아왔다가, 창을 든 스켈레톤을 교차하며 움직이는 것을 반복.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교차 운용이라고 하지! 스켈레톤들의 통제권을 빠르게 옮겨 다니면서 제한적인 컨트롤의 폭을 넓히는 거다.]
"......아."
[동시에 다수의 스켈레톤에 접속할 수 없다면, 한 번에 두 마리씩 운용하면서 다수의 스켈레톤들을 모두 움직이도록 하는 게 핵심이지! 이해됐나?]
저벅저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몬의 스켈레톤들 중에서 창을 든 스켈레톤들 두 기가 앞으로 나왔다.
'집중.'
검을 든 스켈레톤들에게 손바닥을 펼치게 했다. 그리고 창을 든 스켈레톤으로 넘어가 그 손에 하이파이브한다.
"이렇게 하는 거 맞죠?"
[.......]
잠시 가만히 있던 피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푸흐흐흐! 확실히 가르치는 맛이 있군!]
"네?"
[아무것도 아니다. 감을 잡았으면 바로 실전으로 넘어가마!]
"아, 넵! 오시죠!"
* * *
주말 첫째 날에는 피어와 함께 언데드 컨트롤과 교차 운용을 단련했다. 실력이 늘었는지 이제 시몬은 최대 3기까지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다음 날 오후에는 키젠으로 들어왔다. 메이린, 카미바레즈, 딕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실전을 치르기 위한 연습을 했다.
시몬이 어떻게든 언데드로 시간을 끌고, 네 개의 이그저스트와 하나의 다크 플레어를 동시에 사이클롭스에게 먹이고 전투를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사이클롭스를 약화시켜 나가면서 두 방의 다크 플레어를 추가로 더 먹이면 전투는 승리로 끝나게 된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같은 패턴으로만 반복 연습했다.
아발론 시뮬레이션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싸우는 가상 전투였지만 그것만으로 진이 빠졌다. 다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생수를 들이켜고 있었다.
"시몬! 그 주말에 로체스트에서 받았다는 과외,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
카미바레즈의 물음에 시몬이 뜨끔하며 말했다.
"그, 그냥 아버지 소개로 만난 사람이야. 왜?"
"시몬의 언데드 컨트롤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서요!"
"맞아. 확실히 그래."
공터에 대자로 누워 있던 딕이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 스켈레톤 세 마리를 동시에 쓰더라고. 단시간에 그렇게 실력이 느는 게 가능한 거야?"
메이린도 관심이 생겼는지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떤 분이셔? 프로 네크로맨서? 키젠 소속?"
갑자기 세 사람이 시선이 한꺼번에 집중되었다. 시몬이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변명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