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5화
시몬과 피어가 아르니쉬에 도착했다.
우뚝 솟은 영주성을 중심으로 구불구불한 주택가가 거미줄처럼 형성되어 있는 도시였다.
신성연방 측 영토와 가까운 것도 그렇고, 워낙에 험지라 그런지 영지의 규모는 작고 집들도 낡았다. 그래도 시몬은 묘한 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대도시보단 이런 동네가 좋다니까.'
지금까지 본 도시 중에서 그나마 가장 레스힐에 가까웠다.
[너! 무! 갑갑하다! 망할!]
그때 갑옷 안에 들어가 있는 피어가 불평을 토해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금속이 부딪히며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참아요. 피어."
[다음엔 좀 더 큰 걸로 사 와라! 역시 이 사이즈는 아니야!]
"네, 그럴게요."
살도 없으면서 사이즈가 작다니, 엄살이 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웃어넘기는 시몬이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최근 뒤숭숭한 사건이 일어나서 그런지 거리에는 활기가 없었다. 집집마다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창가에는 커튼까지 쳐졌다. 다들 몸을 꽁꽁 사리는 느낌이었다.
"음, 막막하네요. 여기서 어떻게 언데드를 찾죠?"
[크흐흐! 내가 또 리처드와 다니면서 이런 임무를 많이 해봤지.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피어는 사이가 잘 벌어지지 않는 건틀렛으로 손가락을 세웠다. 끼이익 하고 낡은 소리가 났다.
[첫 번째는 의뢰자를 만나는 거다. 의뢰자가 영주라고 했으니, 네가 키젠임을 밝히고 지금까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요구해라! 아마 자금이나 인력 쪽으로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
"오,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하지만 의뢰자가 지금까지 이 일을 해결 못 했던 건, 언제나 주위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시몬은 피어의 말에 담긴 속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의뢰자에게 접촉하면 변수가 개입할 요소가 생긴다는 소리였다.
[둘째는 탐문 수사. 리처드의 말을 빌리면 맨땅의 헤딩이지!]
"으음, 역시 그건 좀......."
[하지만 내 경험상, 의외로 이런 방법이 진실로 향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 때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어가 세 번째 손가락을 세웠다.
[도둑길드에서 정보를 사는 거다.]
"도둑길드요?"
[요즘은 다르게 부르나? 정보길드라고 생각해라. 어지간한 규모의 도시라면 정보를 사고파는 정보상들이 있게 마련이다. 놈들만큼 이슈에 민감한 녀석들은 없지!]
"흐음."
피어의 조언을 들은 시몬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했다.
"좋아요. 일단 잘 곳을 구하고, 도둑길드를 찾아봐요."
[그건 반가운 소식이군! 빨리 이 엿 같은 갑옷을 벗고 싶다!]
시몬과 피어는 광장 주위의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워낙 험지라서 그런지 도시 규모에 비해 여관의 수가 적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여관 한 곳을 찾아냈다.
"어서 옵쇼!"
문을 열고 들어오자 여관 주인이 인사해 왔다. 딱 봐도 이 지방 토박이에, 잔뼈 굵어 보이는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크고 깨끗한 방 하나로 부탁해요."
"예이, 알겠습니다! 1박에 300실버 되겠습니다. 식사도 필요하십니까? 밀빵과 수프를 드시면 50실버, 고기 요리로 드시면 150실버가 추가됩니다."
'여관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숙박비가 비싸네.'
시몬은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1골드짜리를 꺼내 손가락으로 튕겼다.
"내일 아침 식사. 밀빵이면 충분해요."
여관 주인이 동전을 붙잡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1골드 동전 하나에 1,000실버였다.
"거슬러 드릴까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요. 대신 도둑길드의 위치가 궁금합니다."
여관 주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아, 아하! 정보를 사시려는 거군요. 외부인이신 것 같은데, 혹시 어떻게 오신......."
시몬은 천천히 손바닥 펼쳤다.
"......?"
"고객의 신원을 막 물어보시네요. 정보 값으로 1골드는 받아야겠습니다."
낄낄낄낄!
옆자리에 서 있던 피어가 허리를 뒤틀며 웃어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가 아주 어른을 가지고 노는군!]
여관주인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눈치껏 알 수 있었다. 1골드가 문제가 아니고, 1골드를 돌려주며 정체를 묻는 순간 목이 달아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이 외부인들은 대체 뭘까.
여관주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동전을 품에 넣었다.
"도, 도둑길드의 위치가 궁금하신 거지요?"
팅!
시몬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금빛 동전 하나가 더 날아가 여관주인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실종 사태'에 대한 정보까지 전부."
시몬이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뭔가 알고 계시는 눈치네요. 그렇죠?"
"......."
여관 주인은 역력히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시몬에게까지 들리는 듯했다.
"......1골드는, 돌려드리겠습니다."
여관 주인이 시몬에게 다가오려는 순간.
스릉!
어느새 순백의 대검이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여관 주인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고, 검을 겨눈 갑옷남의 투구에서는 낄낄낄낄! 음침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꿈에 나올 것만 같은 끔찍한 웃음소리였다.
"왜 그러시나요?"
시몬은 여전히 손바닥을 내민 채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돌려주러 오시는 거 아니었어요?"
'......크, 크윽!'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던 여관주인은 그대로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정보제공자라는 사실은...... 꼭 비밀로 해주십쇼."
시몬은 피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피어가 대검을 회수해 자신의 어깨에 짊어졌다.
"일어나세요. 그렇게 할게요."
사건 해결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고작 5일, 이것저것 재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다.
시몬과 피어는 이번 임무만큼은 터프하게 나가기로 했다.
시몬은 여관 주인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실종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까지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영지 사람들의 실종사건이 일어난 뒤, 몇 달 후 바짝 마른 미라로 발견된다."
"......예."
"실종 피해자는 젊은 남자들이 많지만, 정작 미라 시체로 발견되는 건 여자들이 많다."
"그, 그렇습니다."
시몬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감이 딱 잡힌다고 할 만큼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혹시 피해자 여성분들, 그...... 몹쓸 짓을 당한 흔적 같은 건 있었나요?"
"영주님도 영지 내 갱들의 성범죄를 의심했는데, 그런 흔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갈수록 머리가 아파지는 시몬이었지만, 옆에서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피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낄낄거리고 있었다.
'......피어?'
[흐흐흐흐! 확실하다! 확실해!]
피어가 입꼬리를 올렸다.
[에르제베트, 그 녀석이 이 도시 어딘가에 있는 게 틀림없다! 100%야. 이렇게 쉽게 찾아내다니! 크하하하하!]
피어는 확실히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에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아, 옙! 요즘 영지가 뒤숭숭한 만큼 조심하십시오."
시몬과 피어가 밖으로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여관 주인이 알려준 도둑길드였다.
"피어. 어떻게 이번 일이 그 에이션트 언데드의 짓이라는 걸 확신한 거예요?"
[그거야 뻔하지!]
피어가 씩 웃었다.
[젊은 남자는 노리개로 가지고 놀고! 여자는 별 관심 없으니 빨아먹어 죽인다! 딱 그 마귀할멈이 벌일만한 짓이야!]
"......진짜 언데드가 그런다고요? 인간 아니에요?"
[내가 말했지 않느냐! 언데드는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오랜 시간을 살아온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더더욱 괴짜지!]
"으음."
시몬은 턱을 짚고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저도 일단은 그 젊은 남자잖아요. 절 미끼로 그 마귀할멈을 끌어내는 건 어때요?"
투구 너머로 피어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가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하하하하!]
피어가 손바닥으로 시몬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시몬이 입술을 삐쭉였다.
"......제가 뭐 어때서요."
[넌 그 녀석의 취향과는 거리가 압도적으로 멀다는 뜻이다! 수염을 붙여봐도 애매해.]
"끙."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마침내 도둑길드 앞에 도착했다. 일단 겉보기에는 평범한 술집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 형식의 술집. 잘생긴 중년 바텐더가 잔을 닦고 있었고, 테이블을 차지한 수염 난 아저씨들이 술 한잔 거하게 걸치고 있었다. 텅 빈 거리와는 달리 이쪽은 바글바글했다.
'근데 정보를 판다는 분위기는 어디에도 안 나네. 그냥 동네 술집이야.'
시몬과 피어는 적당히 바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엇으로 드릴까요?"
바텐더의 물음에, 시몬은 손가락을 뻗어 허공에 T자를 긋고는 은화 하나를 꺼내 슥 내밀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정말로 된다!'
여관 주인한테 들은 대로 하니 쉬웠다.
시몬과 피어는 바텐더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가게 뒷문으로 빠져나오자, 지하실로 가는 문과 계단이 보였다. 바텐더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바로 돌아갔다.
"후우."
시몬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돌바닥 울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지하 특유의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계단을 모두 내려오자, 가면을 쓰고 석궁을 든 두 명의 남자가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을 별말 없이 비켜서며 문을 열어주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이곳의 분위기는 위층과 사뭇 달랐다. 로브를 머리끝까지 눌러쓰거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조용히 탁자에 앉아 있었다.
마주 앉아서 포커를 치는 중년 남성 셋,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청년 둘.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한 명, 그리고 혼자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젊은 여자도 한 명 보였다.
술집 뒤에는 문이 여러 개 보였는데, 바로 저기서 정보를 구매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시몬과 피어는 벽에 붙어 있는 조용한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어서 오세요."
젊은 마담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몸에 착 달라붙는 와인색 드레스 차림에, 풍성한 금발 머리카락은 거품처럼 꼬여 있었다.
또각. 또각.
드레스 사이로 보이는 하얀 다리에는 검은색 밴드를 차고 있었는데, 그 밴드 옆으로 은밀하게 빛나는 날붙이가 보였다.
시몬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 그럼."
맞은편 의자에 앉은 그녀가 영업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 길드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외지인 여러분."
"......여기 온 이유야 뻔하죠."
시몬이 말했다. 분위기에 휩쓸리면 될 것도 안된다.
"정보를 구매하러 왔습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나요?"
"영지에서 행방불명되는 사람들과, 미라처럼 말라붙은 시체들. 이 사건에 대해 당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
마담이 미소 지었다.
"모든 것?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키젠 1학년생이 그걸 다 감당할 수 있겠어요?"
'......!!'
시몬은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간단한 추론이죠."
그녀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영주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혈안이 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에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그중에 키젠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리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작은 영지에서 키젠 본부의 네크로맨서를 부를 여력은 없을 거고, 학생들에게 의뢰를 넣는 방법을 택했겠죠."
그녀의 몸이 시몬 쪽으로 기울여졌다. 한쪽 무릎이 의자 위로 올라오고, 짙은 장미향이 물씬 풍겨왔다. 미소를 짓는 얼굴 뒤로 잘록한 곡선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키젠에는 1학년 신입생들밖에 없어요. 의뢰를 받은 학생들은 학생 보호기간이 끝난 1학년 학생들. 그리고 딱 타이밍 좋게 우리 영지에 나타난......."
그녀가 은밀한 손길로 시몬의 후드를 벗겨냈다.
"앳된 얼굴의 외부인."
"......."
시몬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린 그녀가 싱긋 웃었다.
"제 말이 틀렸나요?"
......무례하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다. 키젠에서 왔다는 정보를 스스로 정보길드에 헌납하는 일일 뿐이다.
"물론 돈이 부족하시다면 정체를 드러내시는 방법도 있겠네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저희들을 무릎 꿇리고, 힘으로 정보를 얻어내시죠. 키젠이란 이름은 그만큼 위대하잖아요?"
"......."
시몬은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팔을 뻗어서 자신의 턱을 붙잡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을 역으로 붙잡았다.
"재미있는 추론이네요. 그럼 이번엔 제가 해볼까요?"
"......네?"
시몬은 그녀의 손을 천천히 끌어당기며 몸을 기울였다.
"영지 전체가 뒤흔들리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영주는 위기에 빠졌고, 마담의 말처럼 수많은 조직에 도움을 요청했죠."
그녀를 붙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웃는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이 영지에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정보길드. 영주 측이든, 의뢰를 받은 사람들이든, 모두가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을 들렸겠죠. 결론을 말하자면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시몬이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고, 이번에는 그녀 쪽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뺐다.
"똑같은 사건이 몇 년째 발생하고 있는데, 해결은커녕 범인이 누군지도 몰라. 이상할 만큼 정보가 적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정도면 정보가 통제된 게 아니라, 주어진 진실 속에서 중간중간 들어가는 교묘한 거짓말 때문에 모두가 헤매고 있었던 거죠."
이 영지에서 이 도둑길드가 어떤 인식과 영향력을 가졌는진 모르겠지만, 외부인인 시몬이 보기엔 상식적이지 않다.
딱딱하게 굳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몬이 차갑게 말했다.
"내 말이 틀려요? 사건 현장 한복판에 자리 잡은 도둑길드가, 지금까지 핵심 정보를 몰랐을 리가 없지. 무능함? 아니, 당신을 보니 무능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본색을 드러낸 시몬의 손바닥이 그녀의 뒷머리를 짚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신의 얼굴 쪽으로 밀며 속삭이듯 말했다.
"다 뒤집어엎기 전에, 진실을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