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6화 (4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6화

시몬에게 붙잡힌 마담의 눈매가 서서히 가늘어졌다.

[망할, 조심해라!]

잔뜩 긴장한 듯한 피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시몬은 드레스 사이로 드러난 마담의 다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 허벅지에 매여 있는 밴드에 단검이 걸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손은 끝내 단검으로 향하지 않았다. 마담이 눈을 꾹 감으며 입을 열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팔을 놓아주시겠어요?"

시몬은 뒤늦게 그녀를 붙잡은 손목에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몬이 손을 놓자 마담은 다시 자리에 앉아 흐트러진 머리를 뒤로 넘겼다.

"좋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진실을 원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대신 정보 공유에 따른 리스크는 온전히 고객님이 지셔야 합니다. 괜찮으신가요?"

"네, 물론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담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방으로 걸어갔다. 살벌했던 분위기가 해소되고 시몬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피어. 찍어봤을 뿐이지만 역시 여기 뭔가 있긴 한가 본데요. 운이 좋으면 그대로 에르제베트의 위치를.......'

[으흐흐흐흐!]

옆자리에 앉은 피어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시몬이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물론 그런다고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약하게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가, 갑자기 왜 그래요?'

[긴가민가했지만 이제 확실해졌군. 정신 바짝 차려라! 소년!]

투구 속에서 피어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여자가 바로 에르제베트다!]

"......네에에?!"

시몬이 자신도 모르게 놀란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 도둑길드의 내부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서 술을 먹거나 포커를 치고 있던 사람들의 몸이 두둑 거리는 소리가 나며 부풀어 올랐다.

[크하하하하하! 정말 간도 크구나 소년! 에이션트 언데드를 눈앞에서 협박하다니! 내가 옆에 살기를 보내지 않았다면 벌써 네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찌익!

찌이이익!

사람의 얼굴 가죽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눈이 수십 개가 달린 거미들이 튀어나왔다.

시몬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키리리리리!

-키릭! 키리리리리!

언데드의 한 종류인 '송장거미'.

에르제베트의 권속이었다. 시몬과 피어는 순식간에 거미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멋진 박력이었어요. 키젠의 꼬마."

방으로 들어갔던 마담이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요염한 자태로 테이블에 올라서서 다리를 꼬았다.

그녀가 이마를 검지 끝으로 짚고 쭉 늘어뜨리자, 살이 옷처럼 밑으로 흘러내리며 이질적인 다홍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전부 죽여요.]

그녀의 목소리가 음침하게 변했다.

그 말을 신호로 사방에서 송장거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소년!]

피어가 외쳤다. 시몬은 재빨리 손가락에 낀 아공간을 발동시키고 피어의 대검을 불러왔다.

그 무거운 무기를 가뿐히 양손으로 틀어쥔 피어가 오른발을 내디디며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부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선이 허공을 일자로 갈랐고, 그 간격에 들어온 송장거미들의 몸이 수수깡처럼 두 동강 났다. 녹색 피가 허공으로 비산하며 바닥과 천장을 흥건하게 적셨다.

[에르제베트!]

쩌렁! 쩌렁!

피어의 외침이 지하를 무너뜨릴 기세로 울려 퍼졌다.

[어머나, 역시 당신이었군요. 피어.]

에르제베트가 다리를 바꿔 꼬며 미소 지었다.

[이런 촌구석에서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나! 군단은 부활했다! 헛짓거리는 그만두고 당장 복귀해!]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팔을 뻗었다.

[싫사와요.]

쿠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천장이 박살 나고, 거미줄에 매달린 송장거미들이 그들을 덮쳤다.

시몬이 눈치 빠르게 몸을 낮췄고 피어가 대검을 휘둘러 썰어버렸다. 핏덩이와 내장 잔해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피어, 당신은 멍청해요. 리처드는 우리를 좋을 대로 이용하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쳤어요. 그런 치가 떨리는 일을 겪었으면서도, 아직도 군단에 미련을 가진 건가요?]

[이런 멍청한!]

달려드는 거미 한 마리의 몸통을 대검으로 내리꽂은 피어가 소리쳤다.

[인간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사념이 썩어버리기라도 한 것이냐! 군단은 '힘'이고 '의지'다! 내팽개쳐졌다느니 치가 떨린다느니 군단의 대장이란 자가 그딴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느냐!]

[어찌 휘둘리지 않겠사옵니까.]

그녀의 다홍빛 눈에 거대한 증오심이 담겼다.

[고작 여자 따위에 홀려, 수십 년을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들을 사지로 밀어 넣은 리처드를 저는 죽을 만큼 증오하옵니다.]

언데드 거미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다. 사실 이 지하는 송장거미들의 천국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피어, 당신도 참 딱하옵니다. 딱 당신과 리처드가 만났던 때의 키젠 1학년 남자아이. 그를 대신해 말 잘 듣는 꼬맹이를 꼬셔서.......]

화아아악!

순간, 대기를 찢고 날아온 새하얀 대검이 에르제베트의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그녀가 다급히 두 손바닥으로 대검을 붙잡았다.

터어어어어엉!

그 충격파만으로 주위의 물건들이 날아가고 유리잔들이 깨져나갔다.

[듣자 듣자 하니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피어가 손을 펼쳤다.

대검의 손잡이 부분이 칠흑으로 일렁이더니, 엄청난 속도로 피어의 손안에 되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시몬이 눈을 빛냈다.

'스켈레톤의 인력!'

피어가 연결 동작처럼 허리를 뒤틀며 대검을 휘둘렀다. 쓰나미처럼 쏘아져 나간 참격이 다시 한번 에르제베트의 몸을 덮쳤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두 팔로 참격을 받아냈다.

[내 발밑에서 개처럼 기던 때를 벌써 잊었느냐! 감히 군단의 관리자에게 기어오르다니!]

그때 에르제베트의 손톱에 피처럼 붉은 칠흑이 모였다. 에르제베트를 벽 끝까지 밀어붙이던 참격이 쩍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이내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는 당신은 많이 약해져 있사와요 피어. 봉인이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녀가 무너진 잔해들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도망치는 것이냐!]

대검을 세워 든 피어가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송장거미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피어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이 잔챙이들이!]

[다음에 봐요 피어. 그리고.]

위에서 손을 흔드는 에르제베트의 시선이 시몬에게 꽂혔다.

[키젠의 소년.]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거미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된 거였군.'

이 영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도둑길드가 사실은 에르제베트와 그녀의 일당이었다.

정보의 통제와 변형은 식은 죽 먹기였을 터. 영주가 아무리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키리리리리리릭!

그건 그렇고, 에르제베트가 떠나고도 거미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피어가 분투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에르제베트를 놓칠지도 모른다.

"하아, 아쉽네요."

"......!!"

시몬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두 괴물이 싸우다 자멸하는 순간을 노렸는데."

도둑길드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던, 로브를 뒤집어쓴 여성이었다. 거미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에이~ 뭐 어쩔 수 없죠. 여기 있는 전원, 다 삭제하고 쫓아야겠네요."

번쩍!

그녀가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지팡이 끝에서 순백의 섬광이 솟구쳤다. 저 힘이 무엇인지 알아챈 시몬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키이이이이!

-끼긱! 끼긱!

거미들이 햇빛을 본 흡혈귀처럼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지팡이 끝의 하얀 빛이 점점 더 밝아지며 도둑길드 전체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져 나갔다.

'피어! 이 틈에 도망쳐요!'

[뭐?]

'빨리요!'

그녀가 높게 들어 올린 지팡이를 내리그었다.

"전부 안녕히 계세요!"

화아아아아아악!

신성 폭발이 터져 나가며 범위 안에 들어온 언데드 거미들을 모조리 가루로 만들었다. 도둑길드 전체가 새하얀 빛으로 휘감겼다.

"후."

신성 마법을 사용하고 어깨에 지팡이를 툭 올린 그녀가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그 큰 해골이랑 남자애는 놓쳤나 보네. 어쩔 수 없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에르제베트가 도망친 방향의 무너진 잔해로 뛰어올랐다.

* * *

[크흐흐! 여기서 프리스트가 난입하다니! 상황 참 개판이군!]

피어는 시몬을 어깨에 들쳐 맨 채 달리고 있었다.

'......프리스트.'

시몬은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파란색 의뢰서를 선택해서 암흑연합 측의 나라에 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프리스트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실력도 있어 보였죠? 그 숫자를 한 번에 쓸어버렸으니."

[그 여자의 로브 속에서 하얀 옷을 봤다. 틀림없이 에프넬의 교복이야.]

"......아!"

그냥 프리스트도 아니고, 키젠의 대척점인 에프넬 소속의 학생이라니!

키젠의 기준으로 치면 그녀는 검은색 의뢰서를 맡아 임무를 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암흑연합까지 왔다면 십중팔구 2학년이겠지. 조심해라 소년! 아직 네가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다!]

"네, 주의할게요."

그녀도 시몬처럼 에르제베트를 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르니쉬의 영주는 키젠과 에프넬. 두 쪽 모두에 이 임무를 의뢰했다는 뜻이다.

'이중의뢰. 나중에 한 번 만나서 따져야겠네. 그건 그렇고.'

파란 의뢰서치고는 스케일이 너무 커지고 있다.

군단을 적대하는 에이션트 언데드와, 에프넬의 학생까지.

이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게 최선일까.

"피어."

[왜 그러지?]

"에르제베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아까 오면서 이야기한 게 전부다.]

"아뇨. 능력이나 신체 스펙 같은 거 말고,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

시몬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희 아버지와 에르제베트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피어가 헛웃음을 흘렸다.

[크흐흐흐, 무슨 일이고 자시고. 망할!]

"네?"

[......그래, 말하마. 에르제베트는 리처드를 사랑했다.]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언데드가 인간을. 그리고 군단의 소속된 개체가 군단장에게 사적인 마음을 품은 거지.]

그렇게 말하는 피어는 무척이나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군단에 합류한 처음부터 유별났다. 언데드답지 않게 감정적이고, 그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성격이었지.]

피어는 에르제베트에 얽힌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에르제베트의 사랑. 리처드에 대한 집착. 그리고 안나에 대한 질투까지.

시몬은 눈을 감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다 왔다. 소년!]

피어가 내려준 곳은 아르니쉬 영지 근방의 숲 어딘가였다. 시몬은 울창한 침엽수림을 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물러나라!]

피어가 대검을 휘둘러 허공을 베었다. 그러자 공간이 찢어지듯 좌우로 쩍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거미줄에 둘러싸인 낡은 폐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흐흐! 여기가 놈들의 본거지다.]

"가보죠."

시몬과 피어는 문을 열고 폐성으로 진입했다.

'아......!'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상당히 적나라한 광경이 눈앞에 벌어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