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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7화 (4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7화

폐성 입구에는 거미들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거미줄에 포획된 채 대롱대롱 고치처럼 매달려 있었다. 아무래도 이들이 영지에서 실종됐다는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시체도 하나 보였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바로 그 말라 비틀어진 시체였다.

역시 실종사태는 에르제베트가 벌인 짓이 확실해 보였다.

"사람! 사람이다!"

그때 영지민 중 누군가가 시몬을 발견했다.

"사, 살려줘! 이것 좀 풀어주게!!"

"거미 괴물들이 우릴 잡아먹으려고 해요!"

한바탕 아우성이 일었다.

시몬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공간에서 검을 꺼내서 거미줄을 잘라냈다.

"피어도 도와주세요."

[헹, 쓸모없는 것들.]

피어가 혀를 차며 대검을 휘두르자,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 다섯 명이 한꺼번에 풀썩풀썩 떨어졌다. 거꾸로 매달린 채로 떨어지는 바람에 곳곳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피어, 살살."

[저런 한심한 것들에게 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대검을 한 번 더 휘둘러 사람들을 바닥에 떨어뜨려 주는 피어였다.

시몬은 숏소드로 사람 한 명을 묶은 거미줄을 잘라낸 다음, 그에게 검을 넘겨주었다.

"이걸로 나머지 분들도 다 풀어주세요. 저희는 그 거미 괴물들을 잡으러 가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그들이 서로를 거미줄에서 풀어주는 사이, 시몬과 피어는 다시 폐성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소년! 명색이 네크로맨서인데, 포로 따위에 너무 자비로운 것 아닌가?]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럼 네크로맨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데요?"

[당연히 보이는 족족 죽여 버려야지! 그리고 스켈레톤으로 일으켜 전력으로 쓰는 거다!]

"......키젠에서는 언데드로 만드는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건 금지라니까요."

[여기는 현장이고, 목격자도 없을 텐데 뭐 어떠냐! 네놈이 그런 관념에 얽매이는 성격은 아닐 텐데?]

시몬은 옆머리를 긁적이며 쓰게 웃었다.

"사실은, 아버지가 항상 귀에 딱지가 박이도록 해주신 말씀이 있어서요."

[그게 뭐지?]

"괴물이 되지는 말라고."

그 말에 피어가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선을 정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하셨죠."

피어의 입꼬리가 무섭게 올라갔다.

[리처드라서 할 수 있는 조언이군.]

"네?"

[크흐흐흐! 아무것도 아니다! 네 의지가 그렇다면야 기꺼이 군단의 관리자로서 존중하마!]

두 사람은 복도를 지나 고성의 널찍한 공간으로 들어왔다.

유리창은 엉망으로 깨져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

저 멀리서 커다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에르제베트의 모습이 보였다.

[크흐흐! 도망치는 건 포기했나?]

피어가 검을 세워 들며 말했다.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빙그레 눈웃음 지었다.

[그럴 리가요, 피어. 어차피 당신이 제 칠흑을 감지해 버렸으니, 어디로 도망쳐도 대륙 끝까지 쫓아올 거잖아요?]

[잘 아는군!]

[그렇다면 여기서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와요.]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천장과 깨진 유리창 너머로 거미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시몬과 피어는 재빨리 등을 맞대고 섰다.

[그리고 당신이 내 장난감들을 풀어줬으니, 아무래도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녀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시몬을 보았다.

[당신이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있는 저 키젠의 소년을, 당신이 보는 앞에서 희롱하면 즐거운 여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나요?]

피어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려는 순간, 시몬이 팔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괜찮아요. 피어."

[소년!]

"저는 군단장이잖아요. 지금부터는 제가 직접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시몬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왔다.

거미들이 키릭 거리는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취했지만 시몬은 신경을 쓰지 않고 말했다.

"전 군단의 대장, 에르제베트."

[......?]

그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제 군단에 들어와 주세요."

[하.]

그녀가 실소를 흘렸다.

[아까 피어랑 하던 이야기 못 들었나요? 저는 이미 한번 버림당한 군단에 다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사와요. 더군다나.]

그녀가 검지 끝이 시몬을 척 가리켰다.

[당신같이 아무런 근본도 없는, 피어의 과거 추억팔이로 선택된 네크로맨서의 아래로 들어가라? 저급한 농담은 싫사옵니다.]

큭! 크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뒤에서 피어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르제베트의 표정이 무섭게 구겨졌다.

[뭐가 그렇게 우스우신가요? 피어.]

[흐흐흐흐흐! 내가 리처드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저 소년을 선택했다고? 어처구니가 없구나! 넌 이 녀석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녀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제는 숨길 필요도 없겠죠."

시몬이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리처드 폴렌티아와 안나 폴렌티아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

그녀의 표정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리처드와 안나의......!]

자신을 버린 원수와. 이 세상에서도 그 누구보다 증오하는 여자.

그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그 두 사람이 결합한 흔적.

"다시 말합니다. 에르제베트."

시몬은 펄펄 끓는 기름에 물을 들이붓듯,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제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그만.]

"그러니 그분의 아들이자, 군단장인 제가 당신을 거두는 게 마땅합니다."

[그마아아아안!]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 꼭꼭 묻어뒀던.

지금은 '잊었다'라는 생각으로 떠올리지 않고 있던.

그 곪아 썩어들어 가고 있던 감정이 터져서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에르제베트가 고통스럽게 온몸을 뒤틀었다.

그녀의 손톱이 목과 어깨를 벅벅 긁고 찢으며 피가 흘러나왔다. 몸이 퍽퍽! 소리를 내며 퍼져 나가고, 허벅지와 옆구리에서 거대한 여섯 개의 다리가 튀어나와 바닥을 디뎠다.

얼굴을 뒤덮은 가면은 사라지고, 몬스터와 같은 눈을 가진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거미. 이것이 언데드로서 에르제베트의 본모습이었다.

[죽어! 죽어버려어어어어어!]

폭주해 이성을 잃은 에르제베트가 일직선으로 시몬에게 뛰어들었다.

당장에라도 이 끔찍한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칠흑이 맺힌 그녀의 손톱이 길게 늘어나 시몬의 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몬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잘했다! 소년!]

펄럭!

순간, 시몬의 시야를 피어의 등과 망토가 가렸다. 망토 너머로 쩍! 하는 크고 적나라한 절단음이 들렸다.

이내 망토가 아래로 내려가며, 대검을 휘두른 피어와 네 개의 다리가 잘려 나간 채 지상으로 추락하는 에르제베트가 보였다.

'찬스!'

이번엔 시몬이 움직였다.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창을 손에 쥐었다.

'칠흑 강화.'

창끝이 칠흑으로 검게 물들었다. 피어가 씩 웃으며 비켜서고, 시몬이 번개처럼 뛰어나가 창을 내질렀다.

푸우욱!

그대로 시몬의 창끝이 에르제베트의 몸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관통하진 못했다. 에르제베트가 오른팔로 창끝을 붙잡으며 버텼다. 시몬은 거칠게 에르제베트의 얼굴을 짓밟으며 창에 힘을 주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시몬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군단에 들어올 겁니까,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소멸할 겁니까."

[흥!]

그녀가 아직 남아 있는 반대쪽 다리들을 송곳처럼 뻗었다. 피어가 재빨리 시몬의 앞으로 뛰어 들어왔다.

촤아아악!

[크으!]

얼마나 강력한지 피어가 입고 있던 플레이트 아머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시몬은 이를 악물고 창끝에 힘을 주었다.

한 인간과 두 명의 언데드가 얽혀진 각축장의 사이로, 송장거미들이 주인을 구하러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위로.

우웅!

하얀 빛무리가 떠올랐다. 피어가 그 모습을 보고는 외쳤다.

[망할! 피해라!]

이내 빛무리가 거대한 속도로 확장하더니 지상에 내려앉았다.

눈부신 빛의 산란이 퍼져 나가며 주위의 모든 것들을 찢어발겼다.

쿠구구구구구구!

[쯧!]

폭발의 반경에서 물러난 피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시몬을 내려주었다.

폭발에 휘말린 거미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에르제베트는 반쪽 다리가 잘려 나간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피했는지, 벽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깝네요~ 완벽한 타이밍이었는데!"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무너진 한쪽 벽 너머에서 지팡이를 든 소녀가 보였다.

[프리스트 따위가!]

에르제베트가 거칠게 손을 뻗었다. 천장의 거미들이 그대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에이 뭐 어쩔 수 없죠~"

그녀가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자 빛의 송곳들이 날아가 거미들의 몸에 박혔다. 거미들이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며 비명을 토해냈다.

'역시 강해.'

시몬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래된 악령들도, 징그러운 거미 떼도, 모조리 이 자리에서 소멸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품에서 보석 같은 것을 꺼내 머리 위로 던지고,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지팡이로 툭 때렸다.

보석이 깨져나가며 거대한 신성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안녕히 계세요!"

화아아아아아아악!

팽창하던 하얀 빛무리가 이내 무수한 빛의 송곳으로 바뀌어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졌다. 시몬과 피어는 얼른 기둥 뒤에 몸을 숨겨 피했다.

묵직한 빛의 송곳들이 무차별적으로 바닥에 내려꽂히고, 송장거미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 나갔다.

'......어렵네.'

시몬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에르제베트는 죽이지 않고 생포해야 한다. 그녀 하나 상대하기도 까다로운데 거미들은 계속 몰려들고, 거기에 에프넬의 학생까지.

[소년! 이렇게 된 이상 프리스트 쪽을 먼저 쳐야 한다!]

"이길 수 있어요?"

[흥, 신성이 귀찮을 뿐이지 저 정도는 일격이면 충분해!]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를 잘라 기동력을 봉쇄한 에르제베트는 이미 잡은 거나 다름없다. 피어가 기둥 뒤로 돌아가 은밀하게 움직였다.

"어머!"

그때 프리스트가 지팡이를 빙그르르 돌리며 미소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에르제베트 쪽으로 향해 있었다.

"다리가 편찮으신가 보네요!"

다친 다리 때문에 피하지 못한 듯 에르제베트의 몸 곳곳에 빛의 송곳이 박혀 있었다.

프리스트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뻗자 순백의 마법진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신성으로 만든 창이 나타났다.

"임무 완료!"

후우우우우우웅!

신성의 창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에르제베트가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푸우우욱!

[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시몬이 두 팔을 벌린 채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에르제베트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큭......!"

신성의 창은 정확히 시몬의 등을 관통해 가슴까지 삐져나와 있었다.

물리적인 타격은 없었지만, 몸에 코어가 있는 네크로맨서나 자연형 언데드에게 신성은 극독보다 치명적이었다.

[어, 어째서 당신이?]

에르제베트는 여전히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시몬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지독한 고통과 함께 시야가 핑핑 돌았다.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지며 시몬이 자리에 쓰러졌다.

* * *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에 시몬은 천천히 눈을 떴다.

'......?'

아까의 난리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조용한 분위기였다. 고개를 움직이자 난데없이 눈 여러 개 달린 송장거미가 바로 코앞에서 보였다.

시몬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키리. 키리리......!

그러나 거미는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몬의 팔에 얼굴을 비비다가 빤히 올려다보는 모습이 마치 괜찮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오! 정신이 들었나? 소년.]

바닥에 대검을 꽂은 채 앉아 있던 피어가 미소 지었다.

시몬은 멍한 눈으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그 폐성 내부.

그 무시무시하던 거미들은 얌전하게 바닥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피어도 딱히 거미들을 공격하진 않는 모습이다.

그리고.

'......에르제베트.'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시몬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꽤 부상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행히 무사한 모양이었다.

"콜록! 콜록!"

위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자, 그 프리스트가 거미줄에 꽁꽁 묶인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고, 공자!"

아래에서 올라오는 모닥불 연기 때문에, 그녀는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있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으허어어어엉! 콜록! 콜록!"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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