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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8화 (4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8화

피어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에르제베트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대신 받은 시몬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피어와 에르제베트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임시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힘을 합쳐 프리스트를 사로잡았다. 피어의 말에 의하면, 무척 싱거운 전투였다고 한다.

"일단 내려줘 봐요."

시몬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모닥불 연기에 질식사하기 전에 천장에서 내려온 프리스트는 거미줄에 꽁꽁 묶인 채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으허어어엉! 너무 무서웠어요!"

목놓아 우는 그녀는 역시나 어렸다. 딱 봐도 자신의 또래이거나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였다.

"아직 감사 인사를 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

"네! 훌쩍!"

"넌 에프넬의 학생이야?"

꽤 중요한 질문이었다. 키젠과 에프넬은 휴전 중이긴 하지만 엄연히 적대관계고, 시몬이 그녀를 풀어주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저, 절대 아니에요!"

[크흐흐! 첫 질문부터 거짓말이군.]

피어가 히죽 웃으며 대검을 그녀에게 겨누었다. 프리스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기상.]

겁에 질린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피어는 대검으로 로브 자락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잘라 올라갔다.

갈라진 로브 사이로 하얀 다리가 드러났고, 순백의 스커트가 보였다. 그 위로 더 올라가자 누가 봐도 명백히 알 수 있는 복장이 보였다.

첨단 방어 흑마법으로 무장한 키젠의 교복을 능가한다는, 성해포로 제작한 에프넬의 교복.

교복에 붙어 있는 에프넬의 문양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하여간, 교활한 프리스트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와요.]

에르제베트가 프리스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녀가 '히익!' 소리를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네요. 당장 죽여 버리고, 우리끼리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죠.]

"믿어주세요! 저, 저, 사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내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2년 전에 에프넬에서 퇴학당했어요."

'......응?'

2학년이 아니었던가? 의외의 대답에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피어와 에르제베트는 심드렁한 반응이었지만 시몬은 반응이 있었다. 그녀가 간절한 눈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제발 믿어주세요! 에프넬에 잠깐 다닌 건 맞아요! 하지만 1학년도 다 못 버티고 쫓겨난, 세상에 널린 그냥 그런 범재라구요! 저 같은 걸 죽여도 키젠에는 아무런 득도 없어요!"

"그런데 왜 아직도 에프넬의 교복을 입고 있어? 퇴학당하면 회수해 가는 거로 아는데."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빨갛게 물들었다.

"......사, 사칭. 했어요."

"사칭?"

"네. 당시엔 정말 너무 힘들고, 에프넬에서 쫓겨났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래서 가짜 학생증이랑 교복을 위조하고 에프넬의 학생으로서 임무를 받고 돈을 벌었어요! 정말 그뿐이에요!"

그녀의 표정이 수치심과 서러움으로 일그러졌다.

"그런데 신성연방에는 이제 소문이 나버려서 일이 안 들어오고...... 그래서 위험한 암흑연합 일까지......."

[지금 그런 뻔한 거짓말을 믿으라고 지껄이는 것이옵니까?]

에르제베트가 비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상의 자락을 붙잡았다.

소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는데 에르제베트가 그대로 힘주어 옷을 잡아 뜯었다.

지이익!

"꺄아아아악!"

놀란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에르제베트는 손에 들린 찢어진 옷조각을 보며 인상을 썼다.

[......진짜 그냥 천쪼가리잖아?]

소녀가 훌쩍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험하게 대하지 마세요."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녀는 더더욱 움츠러들면서 찢어진 부위가 보이지 않도록 반대쪽으로 몸을 틀었다.

사락.

시몬은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괜찮아? 이걸로 가리고 있어."

"아...... 감사합니다!"

프리스트의 눈이 감격으로 그렁그렁해졌다.

그리고.

[.......]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에르제베트는 순간, 무척이나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다시 질문할게."

시몬이 느긋한 걸음걸이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일단은, 음. 이름이 뭐야?"

무척이나 상냥한 물음이었다. 그녀는 얼른 시몬 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대답했다.

"에, 엘렌 자일입니다!"

"이 임무는 어떻게 받게 됐지?"

"국경을 드나드는 브로커를 통해서...... 암흑 연방에 보수가 많은 언데드 퇴치가 있다고 해서요."

에르제베트는 시몬이 심문하는 내용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르니쉬의 영주를 본 적 있어?"

"아, 네! 그에게 직접 임무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어요."

"혹시 영주에게 임무를 받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을까? 문서라든가, 선금이라든가."

모든 게, 무척이나 거슬렸다.

프리스트 따위에게 살갑게 대하는 시몬이나.

시몬을 호감 어린 눈으로 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프리스트나.

'.......'

보랏빛 꽃잎이, 휘날린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 사이에서, 에르제베트는 어떤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선명하다. 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핀 벌판에서 두 남녀가 서로 소곤소곤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모습이.

그녀가 한때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 리처드 폴렌티아.

그런 남자를 자신에게 빼앗아간 여자, 안나 크로스.

그때도 그랬다. 나쁜 예감이 들어 리처드의 뒤를 밟던 에르제베트는, 풀숲에 숨어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가,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았다.

[.......]

잊은 줄 알았는데.

마음이, 이 마음이라는 끔찍한 것이 다시 한번 그녀의 가슴속에서 영겁의 지옥을 형성하고 있었다.

"좋아, 이거면 되겠네."

시몬은 브로커가 제공한 문서와 영주에게서 받은 선금, 위조된 에프넬 학생증까지 손에 넣었다.

엘렌도 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돈 같은 건 아깝지 않았다. 뭐가 어찌 됐든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소년. 그런 건 어디에 쓰려고?]

"좀 이따 영주한테 찾아가려고요."

시몬이 씩 웃었다.

"뜯을 수 있는 건 다 뜯어내야죠."

[크하하하하! 좋군, 좋아. 역시 리처드의 아들이야!]

"저, 저기......."

엘렌이 시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전 이제......."

[시몬 폴렌티아, 라고 했죠?]

에르제베트가 엘렌의 말을 끊고 말했다.

[군단에 들어오라는 당신의 제안. 좋아요, 받아들이겠사와요.]

시몬의 눈이 커졌다.

"정말인가요?"

[네, 대신 딱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그녀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였다.

[당신의 손으로 저 프리스트를 목 졸라 죽이세요. 지금 당장.]

엘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 조건은 단지 그것뿐입니다.]

"......."

시몬은 고개를 똑바로 들어 에르제베트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하자 에르제베트는 가슴이 급격히 뛰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닮았다.

그 남자와.

틀림없이 혐오스러울 줄 알았다. 리처드와 입에 담기도 싫은 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니.

하지만 아니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이 미친 듯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마음의 지옥을 허물어뜨리고 따뜻한 봄을 드리우게 만든다.

그녀 본인도 스스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리처드야?

결국 못 잊은 거야?

증오한다 증오한다 말뿐이었던 거야?

자존심도 안 상해?

반은 그 여자의 피가 흐르고 있는데?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로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미,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전 거미 군단의 대장, 에르제베트."

마침내 시몬의 입이 열렸다.

"제가 엘렌의 목을 졸라서 죽여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증명이옵니다.]

에르제베트가 말했다.

[제가 당신을 주인으로서 섬길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사옵니다.]

"그러니까."

시몬의 목소리는 완전히 착 가라앉아 있었다.

"왜 내가 당신에게 섬길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네?]

"뭔가 크게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시몬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한때 아버지의 군단 소속인 건 맞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고, 저는 저예요. 저는 저 나름대로의 판단과 잣대를 가지고 군단을 꾸릴 겁니다. 그런데 잠시 지켜본 바로는 당신은......."

시몬의 싸늘한 목소리가.

"결격사유야."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가슴을 부수고 마음의 지옥을 다시 불타게 했다.

"당신은 언데드면서도 사념에 감정이 너무 많아요. 감정에 휘둘려서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지. 내가 저 여자를 목 졸라 죽이는 행위가, 대체 뭘 증명할 수 있다는 건데요?"

뜨끔하는 마음과 함께, 심장이 철렁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증명해 보란 것도 결국 핑계겠죠. 당신은 그냥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할 뿐이야. 즉흥적이고 저급한 욕망에 따라 날 조종하고 싶은 거겠지. 난 그런 당신을 믿을 수도, 신뢰할 수도 없어요. 내 새로운 군단에 그렇게 불안한 존재는 일말의 가치도 없습니다."

시몬이 등을 돌렸다.

"이만 돌아가죠. 피어, 엘렌."

[.......]

시몬의 등이 보이는 순간.

에르제베트는 자신도 모르게 팔을 뻗을 뻔했다.

"아무래도."

뒤를 슬쩍 돌아본 시몬의 눈빛은 너무나 차가웠다.

"아까운 시간만 낭비한 것 같네요."

* * *

밤이 늦어가는 시간, 폐성에서 빠져나온 시몬은 피어, 엘렌과 함께 영주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년.]

피어가 말했다.

[에르제베트는 정말로 포기할 건가? 그녀의 능력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데.]

"에이, 그럴 리가요."

시몬이 슬며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건 그냥 주도권 싸움이에요. 앞으로 그 집착적인 성격의 에르제베트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는 나중에라도 절 찾아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피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다는 건 설마, 그 신성창을 맞은 것도 전부 네 각본이냐?]

"그 부분은 노코멘트 할게요."

피어가 낄낄낄 웃어댔다.

[하여튼 쬐끄만 꼬맹이가...... 이상한 잔머리 굴리는 건 지 애비랑 똑같군! 크하하하!]

옆에서 슬그머니 시몬의 눈치를 보고 있던 엘렌이 끼어들었다.

"그때 공격은 죄송했어요."

"아냐, 엘렌. 날 조준하고 쏜 것도 아닌데 뭘."

"그런데 상처는 정말 괜찮아요? 신성창에 가슴이 관통당하셨는데......."

시몬이 본인의 가슴을 슥슥 만지며 말했다.

"멀쩡해. 다행히 그 창이 코어를 직접 관통한 건 아닌 것 같아."

"아, 다행이네요!"

사실.

시몬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신성창은 제대로 코어를 꿰뚫었다.

피어도 그 모습을 목격했다. 어처구니없이 계약자를 잃은 분노로 에르제베트든 프리스트든 전부 다 갈기갈기 찢어버릴 생각이었지만, 상태를 확인해 보니 시몬의 코어는 멀쩡했다. 군단의 계약 또한 어떤 타격도 받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피어도 그냥 운 좋게 코어에 맞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사의한 일이군.'

신성에 관통당해도 파괴되지 않는 코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피어? 거기서 혼자 뭐 해요?"

[아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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