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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0화 (5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0화

결국 영주 레이먼드는 병사들을 물리고 시몬의 발밑에 엎드렸다.

아들뻘인 소년 앞에 이러고 있는 꼴이라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언데드 군단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키젠이라도, 이런 식의 무력행사는 곤란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완벽히 굴복한 건 아니었다. 영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암흑연합은 연합 소속의 국가와 영지의 자치권을 확고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키젠이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란 말입니다! 외교적 문제로 발전하면 어떻게 수습하실 생각이십니까?"

영주석을 차지하고 앉은 시몬이 옅은 미소를 흘렸다.

"본론을 말씀드리죠."

그가 품에서 증거품들을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브로커의 계약서, 엘렌에게 낸 선금, 그리고 에프넬의 찢어진 교복 잔해까지.

"에프넬의 프리스트와 내통하셨더군요."

레이먼드는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심지어 키젠 측에 의뢰를 맡긴 상태에서 말입니다. 반역죄는 물론,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의 충돌을 유도했다. 이렇게 해석해도 될까요?"

"......아, 아니 그건!"

시몬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리고 제 행동이 외교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논리면 당신의 행동은 대륙 전역의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아닙니까?"

레이먼드는 식은땀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가 어떻게 해서든 시몬을 영지성에 붙잡아두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중의뢰로 인한 키젠과 에프넬의 충돌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미 키젠 측에 들켜 버렸다.

고민했다. 이대로는 죽는다. 나뿐만 아니라 영지 전체가 몰살당한다.

'뭐라도 해야 해. 이렇게 된 이상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레이먼드가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엄하다!"

그러곤 버럭 소리 질렀다.

"키젠 소속이란 것 외에 한 톨의 권력도 없는 자가! 어찌 이런 조잡한 증거품으로 반역을 논하는가!"

시몬이 픽 웃음을 흘렸다. 이젠 아주 목을 내놓고 달려드는 꼴.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모든 카드를 다 틀어쥔 채로, 이렇게 상대의 발버둥을 보는 것도 그럭저럭 즐길 만한 유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흐흐흐! 드디어 본 성격이 나오기 시작하나 소년!]

'......골 울리니까 조용히 해주세요 피어.'

시몬이 피어를 돌아보며 고개를 까닥했다. 그러자 피어가 몸을 감싸고 있던 로브를 벌렸다.

"어...... 어어?"

레이먼드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못됐다.

이건 정말로 한참을 잘못됐다.

피어의 로브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초점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는, 고개를 기울인 채 입에서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엘렌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이마 위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임무 도중 에프넬의 프리스트를 생포했습니다."

시몬이 사형선고를 내리듯 말했다.

"저주를 걸어서 잠시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키젠에 보내서 심문하도록 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털썩.

레이먼드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사태는 일단락됐다.

레이먼드는 모든 죄를 고백했고, 자신의 목을 내놓을 테니 이 영지만큼은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금 의외인 부분이었던 게, 레이먼드는 영지민들 사이에서 명망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영지의 발전에 자신의 모든 정치적 생명을 걸었고, 직접 발로 뛰며 상단의 투자를 유치했다. 심지어 올해는 왕태자의 방문도 어렵게 주선했다.

하지만 실종사건이 발목을 잡아버렸다. 이게 이슈화되면 왕태자의 방문을 비롯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레이먼드는 정보길드를 운영하던 에르제베트와 손을 잡고 외부로 유출되는 모든 정보를 차단했다(이때 에르제베트가 사건의 장본인이란 사실은 전혀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비밀리에 각종 용병단, 이름 높은 기사들, 그리고 키젠에 의뢰를 요청했다.

하지만 키젠에서는 세 달간 응답이 없었고, 초조해진 레이먼드는 결국 브로커를 통해 프리스트와 접촉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키젠에서도 폐기하려던 의뢰를 시몬이 덥석 물고 개입하게 되며, 상황은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이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바닥에 엎드린 레이먼드가 눈물을 줄줄 쏟았다.

"사실 처음부터 브로커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에프넬의 프리스트라고는 했지만, 그 정도나 되는 사람이 브로커를 통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정말로 에프넬의 프리스트가 올 줄은...... 제 생각이 너무 안일했습니다."

위엄 있는 척하며 앉아 있던 시몬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소파에 누워 기절한 척하고 있던 엘렌도 뜨끔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의 이마에 그려진 마법진도 가짜였다.

"이번 일은 오로지 제 독단입니다! 제 목숨은 얼마든지 거두어 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부디 이 영지만큼은......!"

조금씩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 시몬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좋아요.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

레이먼드는 바닥에 이마를 붙인 채 미동이 없었다. 어떤 처벌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

"영주 레이먼드. 저와 거래하시죠."

"......예?"

"여기 온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저는 그럭저럭 이 영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성연방과 가까운 최전방. 전면전이 벌어지면 수많은 병사들을 지원해야 할 이런 전략적 요충지가 쑥대밭이 되는 꼴을, 저는 원치 않습니다."

레이먼드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물론 절차대로 일이 진행되면 키젠은 이 영지에 몸담았던 모든 것을 말살할 겁니다."

"아......."

"하지만 저는 영주님이 악의를 가지고 사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제 선에서, 영지에 피해가 가지 않을 만큼만 덮겠습니다."

"저, 정말로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한번 해보겠습니다. 대신."

시몬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조금 비용이 들 수도 있습니다."

레이먼드가 얼른 이마를 바닥에 붙이며 소리쳤다.

"제 모든 재산을 털어서라도 지불하겠습니다!"

그렇게 시몬은 최초 의뢰비 50골드의 10배인 500골드를 손에 넣었다. 두둑한 돈주머니를 아공간에 넣은 시몬은, 극진한 안내를 받으며 접대실을 나섰다.

[뭐냐, 소년. 그렇게 악독하게 굴더니 생각보다 짜게 먹었군.]

"괜찮아요. 트러블의 대가로 이 정도 털어내는 정도로 만족하려고요."

시몬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실 이거 전부 영지민들의 피 같은 세금이잖아요? 우리가 악인의 돈을 터는 것도 아니고요."

피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 군단장 리처드의 아들인 만큼 비슷한 구석이 많았지만, 결국 이 소년은 리처드와는 근본적인 뭔가가 달랐다.

"엘렌도 수고했어."

피어의 로브 안에 들어가 있던 엘렌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헤헤! 저 연기 어땠어요? 좋았죠?"

"입에 침은 좀 닦고 말할래?"

"아, 아앗!"

민망해진 그녀가 얼른 다시 로브 안으로 들어갔고 시몬이 킥킥 웃었다.

그렇게 한 건 해결했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영주성을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빨리빨리 움직여!"

"서둘러라!"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어딘가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한 모양이군.]

"가보죠."

시몬도 병사들을 따라 달려나갔다.

"......!"

성의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성문 앞에 무수한 송장거미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익숙한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시몬은 빠르게 등을 돌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소년! 천천히 좀 가라!]

"꺄아악! 아파요!"

시몬은 두 사람보다 빠르게 달려와 성문 앞으로 왔다. 마침 중무장한 병사들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시몬의 물음에, 투구를 쓰고 있던 경비대장이 시몬을 발견하고는 얼른 군례를 올렸다.

"언데드입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영주성을 공격하려는 것 같습니다. 위험하니 어서 안으로......!"

"성문을 살짝 열어주세요. 제가 한번 가볼게요."

"예, 예?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시몬이 씩 웃으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아직 배우는 입장이긴 하지만 일단은 저도 네크로맨서예요. 언데드를 다루는 게 일이니까 한번 믿어보세요."

"음......."

결국 경비대장이 성문을 조금 열어주었다. 그 사이로 시몬이 빠져나왔고, 뒤따라온 피어와 엘렌도 합류했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대장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성문을 닫았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줄은 몰랐네.'

시몬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성을 포위한 거미 떼 앞으로, 와인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보였다.

도둑길드의 마담.

동시에 전 군단의 대장 에르제베트.

"무슨 일입니까? 에르제베트."

[전 군단장, 리처드 폴렌티아의 아들, 시몬 폴렌티아.]

그녀가 절도 넘치는 동작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저, 에르제베트는 당신을 주인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하여, 당신의 군단에 합류할 기회를 간청하고 시험을 받고자 하옵니다.]

피어가 낄낄 웃으며 팔짱을 꼈다.

시몬은 표정관리를 하며 헛기침했다.

"부하들을 물려주세요.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죠."

* * *

시몬은 숙소로 이동하기 전에 엘렌과 헤어지기로 했다. 직접 그녀의 두 팔을 묶은 밧줄을 풀어주었다.

"오늘 일은 피차 알려져서는 좋을 게 없으니까, 앞으로도 비밀로 해줘."

"......."

그녀가 빤히 시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응? 왜 그래?"

"아, 그...... 역시 제가 들은 네크로맨서들의 소문과는 조금 달라서요."

피어가 히죽 웃으며 대검을 들어 올렸다.

[비밀 유지를 위해 해골로 만드는 이야기라면, 지금 바로 실현시켜 줄 수도 있는데!]

"히익!"

그녀가 깜짝 놀라며 시몬의 등 뒤로 숨었다. 피어는 깔깔 웃어댔고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에르제베트는 입술을 깨물며 무섭게 엘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거."

시몬이 아공간에서 주머니를 내밀었다.

"아까 빼앗았던 네 몫의 의뢰금이야."

"아......!"

"동생들 잘 챙겨주고."

주머니를 가슴에 끌어안은 그녀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해요 시몬!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어디로 간다고 했더라?"

"신성연방의 로하론이라는 영지예요."

"그래, 무사히 신성연방으로 돌아가길 바랄게."

"네! 고마워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시몬이 등을 돌려 떠나려는데, 엘렌이 큰소리로 외쳤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겠죠?"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다음에 만날 땐 전장 아닐까?"

"하하......."

정말 선 하나는 똑 부러지게 긋는다고 생각하는 엘렌이었다.

"혹시나 내가 신성연방에 갈 일 있으면, 그때는 안내 부탁할게."

"네! 물론이에요!"

그녀는 진심으로 감격한 듯, 시몬 일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프리스트를 살려주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쥐여주고 보내는군.]

"네."

[이유가 뭐지?]

시몬은 슬쩍 미소 지으며 팔짱을 꼈다.

"언젠가 검은 의뢰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때, 프리스트 쪽 인맥을 만들어놓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돈을 쥐여줘야 진정한 의미의 공범이 되는 거고, 저를 진심으로 신뢰하겠죠."

[크흐흐! 네 행동을 가만 보고 있으려면 선인지 악인지 구분할 수 없군!]

"글쎄요."

시몬은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고개를 젖혔다.

"꼭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딱딱 맞춰서 구분해야 할까요?"

[.......]

"제 피의 절반은 프리스트예요. 반대쪽에 사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미워할 생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어요. 이번에 엘렌을 보내준 것도 그렇고, 영지의 돈을 조금 뜯어낸 것도 그래요. 굳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갈 필요가 없잖아요? 저는 중간에서 제 이득만 취하면 그만이에요."

피어의 입꼬리가 깊게 올라갔다.

[역시 너라는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릴 것 같구나!]

시몬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에르제베트."

[예.]

"제가 무사히 풀어준 엘렌을, 거미군단을 풀어서 습격하는 짓은 안 하겠죠?"

그녀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무, 물론이옵니다.]

"알았으면 됐어요."

시몬은 다시 피어와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둘을 뒤따르고 있는 에르제베트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직도 신성창을 대신 받아주던 시몬의 등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시몬에게 한번 거절당한 때에, 에르제베트는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다.

군단에 들어가 봐야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었고, 괜히 귀찮은 계약에 묶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결국 다시 내 발로 지옥으로 들어가는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스스로의 감정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에르제베트?"

[아, 네. 가겠사와요.]

그래도.

설사 후회한다고 해도,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해도, 그 끝이 더없이 참담하다고 해도.

그녀는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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