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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3화 (5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3화

시몬은 에프넬의 '스파이'로 추측되는 그 정체불명의 프리스트를 잡기 위해 함정을 쳐두기로 했다.

그 프리스트를 목격한 금지된 숲 근처에 송장거미를 쭉 풀어놓고 기다리는 것이다.

만약 프리스트가 나타나면 시몬에게 즉각 사실이 전달되고, 에르제베트와 피어가 출동한다. 에르제베트는 프리스트 고위 신분으로 위장해 그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뜯어낸다.

[송구하옵니다만, 상대가 프리스트라면 제가 언데드라는 건 금방 들통나지 않을까요? 신성을 다루는 프리스트는 언데드에 민감하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아닐걸. 녀석은 칠흑을 썼으니까."

칠흑과 신성은 상반되는 양자택일의 힘.

언데드를 감지하는 프리스트 특유의 감각은 신성이 있어야만 생긴다. 그리고 그 배신자 프리스트는 칠흑을 쓰기 위해 신성을 포기했다.

들켜도 상관없다. 피어와 군단 전체가 모두 덤벼들어 프리스트를 협공할 것이다.

상대가 정말로 교수급이라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해도, 적어도 피어와 에르제베트 둘이 빠져나오는 정도는 문제없으리라.

[알겠사와요. 지금부터 상류층 프리스트들의 외모와 행동을 연구하겠습니다.]

"응, 잘 부탁해."

함정을 설치했다. 아마 당분간은 그 프리스트도 조심할 테니 직접 숲에 들어오진 않겠지만, 언젠가는 걸려들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시몬은 유적에 언데드들을 풀어놓고 키젠으로 돌아왔다.

* * *

임무 기간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키젠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몬이 오랜만에 강의실에 들어와 보니, 분위기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밝고 활기차 있었다.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다들 임무에서 겪었던 썰을 푸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아마 이 화젯거리가 전부 소진되려면 오늘 하루로도 시간이 모자랄 듯했다.

'다른 애들은 안 왔나?'

딕은 같이 등교하다가 급설사를 호소하며 화장실로 뛰어갔고, 시몬 혼자 강의실에 도착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메이린!"

여학생 두 명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시몬을 발견하자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얼른 등 뒤로 뭔가를 숨겼다. 두 여학생들이 쿡쿡 웃으며 그녀의 팔을 찌르자 메이린이 하지 말라며 왁왁 화냈다.

"무슨 일 있어?"

시몬이 다가오자 메이린이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 여학생들은 시몬과도 반갑게 인사하고는 메이린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럼 우린 방해꾼이니까 물러가 줄게~"

"오호호호!"

"야!! 니들 진짜 죽어!"

그녀들이 꺄르르 웃으며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고개를 들어 살짝 시몬을 째려본 메이린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너 은근 뻔뻔한 구석도 있다?"

"뭘?"

"......그냥 둔감한 거야 뭐야."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며 등에 감추고 있던 걸 휙 내밀었다.

"자."

"음......?"

그녀가 선뜻 내민 것은 예쁜 포장지에 담겨 있는 당근 케이크 세트였다. 시몬이 눈을 끔뻑였다.

"나 주는 거야?"

"차, 착각하지 마! 제발! 그냥 같은 조라서 주는 거니까!"

그녀가 케이크를 시몬의 품에 안기듯 떠넘기고는 팔을 확 뺐다. 그러곤 화끈거리는 얼굴을 돌리며 파닥파닥 손 부채질을 했다.

"고마워. 근데 갑자기 웬 선물이야? 나 오늘 생일도 아닌데."

"......."

그녀가 '진짜 모르는 거냐' 같은 표정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오늘 케이크 데이잖아."

"케이크 데이?"

"그래! 여자가 남자한테 케이크 주는 날!"

시몬의 두뇌가 빠르게 돌아갔다.

케이크 데이라니, 생전 처음 듣는 날이다.

레스힐에서 기념일이라고 해봐야 추수감사절, 염소 특식 챙겨주는 날, 잡초 뽑는 날, 뭐 그런 거밖에 없었는데. 어쩌면 도시만의 문화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메이린의 반응을 보면 이걸 모르는 사람이 바보고, 촌놈이 되는 분위기니까 괜히 사서 바보짓은 안 하는 게 현명하리라.

의식의 흐름에 따라 상황 파악을 마친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신경 써줬구나. 고마워 메이린."

"......."

파닥파닥 손 부채질하던 그녀의 손이 더 빨라졌다.

"신경은 무슨! 그냥 불쌍해서 주는 거야, 불쌍해서! 너랑 딕은 같은 조 여자애들한테도 못 받으면 그냥 끝......."

"안녕~ 시몬!"

그때 같은 A반의 여학생 두 명이 다가왔다.

"자! 레몬 케이크야!"

"내거는 홍차 케이크! 저번 마투학 수업 때 마투자세 가르쳐 줘서 고마워!"

그녀들이 메이린의 케이크 위에 자신들의 케이크를 하나씩 올려두었다. 시몬은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이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애들아! 그때 내가 도움이 됐다니 기뻐."

"......아."

갑자기 여학생들의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잘 먹을게."

"아, 응!"

살짝 어색하면서도 묘한 공기가 흘렀다. 그러다 그녀들 쪽에서 먼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허둥지둥 다른 곳으로 떠났다.

"......제, 제법인데."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메이린이 땀을 삐질 흘렸다.

"하지만 내 거를 포함해서 모두 감사 인사였잖아? 이제 그 세 개가 끝이......."

"시모오오온!"

이번에는 또 누구야?

시몬이 뒤를 돌아보자, 얼굴에 생크림을 묻힌 카미바레즈가 우다다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커다란 케이크가 담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아, 카미."

시몬 앞에 선 그녀가 크게 심호흡했다. 그러곤 눈을 힘에 주며 케이크를 내밀었다.

"......시몬! 그, 그, 그동안 정말 폐 많이 끼쳤고, 고, 고마웠고! 이번 학기 동안 계속 잘 부탁해요!!"

그러곤 척 허리를 숙이며 대형 케이크를 내밀었다.

'아니, 대체 케이크 데이가 뭔데. 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준다고?'

시몬은 뭔가 짠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와 슬쩍 본 메이린의 눈도 덩달아 휘둥그레졌다.

"와! 수제 케이크? 대박......."

그 말에 얼굴이 더 빨개진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 아녜요! 수제라뇨! 그냥 로체스트에서 사온......."

"카미."

시몬이 다가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러곤 뺨 옆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주었다.

"잠깐만, 여기 뭐 묻었어."

"......!!!"

그녀의 얼굴이 한계치까지 달아올랐다. 이내 케이크를 시몬의 품에 떠넘긴 그녀가 도망치듯 강의실 밖으로 사라졌다.

"왜 그러지?"

"......하아, 넌 진짜."

메이린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잠깐의 해프닝이 벌어진 뒤, 시몬은 자리에 앉아서 선물 받은 케이크들을 가지런히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숨 돌리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강의실 곳곳이 알록달록한 케이크들로 가득했고, 케이크를 주고받는 남녀 사이에서 핑크빛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시몬이 처음 느꼈던 그 활기찬 분위기는 임무 이후 만난 반가움 플러스, 케이크 데이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기 강의실 구석 끝에는 헥토르가 보였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그는 무척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는데, 그 험악한 표정과는 별개로 우스꽝스러운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책상 앞에는 케이크 상자들이 산을 쌓고 있었다.

"아, 안녕. 헥토르!"

그때 한 여학생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다른 반 여자애였다.

"이, 이거! 준비했는데......."

"......아무 데나 놓고 꺼져."

"꺄아아아앙!"

그녀가 케이크 산 위에 또 하나의 케이크를 추가하고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강의실 밖으로 도망쳤다.

저 헥토르가 화도 못 내고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는 모습이 어쩐지 재미있었다.

'쟤도 힘들겠네.'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며 교과서를 꺼내고 있을 때였다.

"안녕~ 시몬."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아, 반장."

제이미 빅토리아.

맹독학 시간에서 반 대표로 경례를 한 뒤로, A반 학생들에게 반장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 여학생이었다.

짧은 녹색 머리카락에 호리호리한 인상이었는데, 그냥 겉으로 슥 보면 여자인지 미소년인지 잘 구분이 안 되기도 했다.

"치즈 맛이랑 바닐라 맛이랑 시나몬 맛. 어떤 게 좋아?"

그녀가 등에 짊어진 꾸러미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나는 시나몬인데......."

"오! 이거 인기 없었는데 골라줘서 고마워!"

그녀가 컵케이크 박스를 시몬에게 내밀며 말했다. 시몬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물었다.

"A반 남자애들한테 다 돌리는 거야?"

"응! 한 학기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그럼!"

그녀가 눈을 찡긋하고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몬의 바로 뒷자리에서 케이크 하나 없이 불쌍하게 앉아 있던 남학생 두 명이, 제이미가 다가오자 구세주라도 본 듯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시몬, 너 말이야."

옆자리에 짐을 풀고 앉은 메이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케이크 데이 몰랐지?"

시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 반응을 보고 확신한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해두는데. 여기 학교야, 학교. 또래 애들한테 무시당하기 싫으면 이런 기본적인 기념일이나 최신유행 같은 건 숙지해 두는 게 좋을걸."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념일이 또 있어?"

"당연하지!"

"다음번엔 아마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 날이겠고. 무슨 데이인데?"

메이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액세서리 데이."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불공평해."

"에이, 양심이 있으면 여자애들이 케이크 같은 거 주고, 진짜 보석 박힌 장신구를 받길 원하겠어? 그냥 장난감 같은 거 주고받는 거지."

"그런가?"

"응, 응."

그녀가 생글생글 웃었다.

"물론 남자애들이 정 주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

* * *

어수선한 수업 준비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키젠에서의 첫 수업이 시작됐다.

첫 수업은 제인의 초급 흑마법이었다.

"A반 전원이 무사히 키젠에 복귀했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담당교수로서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제인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우선 중요한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그녀가 조교로부터 새로운 문서를 받아 읽었다.

"네. 바로 이번 주부터 결투평가가 시작됩니다."

아-

곳곳에서 부담스러워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케이크 데이로 활기가 넘치던 분위기가 빠르게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인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결투평가는 1학기 내내 진행될 겁니다. 룰은 간단합니다. 여러분은 같은 키젠 1학년 학생들과 1:1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A반뿐만이 아니라 가장 멀리 있는 N반까지. 14개 학급이 전부 경쟁자가 됩니다."

칠판으로 다가간 그녀가 분필을 손에 쥐고 간단한 그림을 그렸다.

"승리한 쪽은 상위 스쿼드로 이동하고, 패배한 쪽은 하위 스쿼드로 이동합니다."

상위 스쿼드 30%

중위 스쿼드 30%

하위 스쿼드 30%

최하위 스쿼드 10%

"스쿼드는 일주일마다 갱신됩니다. 그리고 1학기가 끝날 때까지 최하위 스쿼드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그녀가 학생들을 돌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전원 퇴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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