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5화
아무리 시몬이 무서워도 일은 해야 했다. 조교가 손가락을 펼쳤다.
"굳이 모의 결투를 해본 이유가 있어요. 학생처럼 자신의 장기가 무엇인지 몰라 헤매고 있는 사람들은, 한계까지 밀어 붙여보면 결국 답이 나오거든요.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순간,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죠."
"아......."
"학생의 경우엔 본인의 의지로 소환학 기술로 시작했죠? 하지만 궁지에 몰리기 시작하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마투학으로 나왔어요. 이쪽에 재능도 있어 보이고요. 더 고민할 필요 있나요?"
"......."
찔리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그쪽이 가까이 붙었으니 마투학을 쓴 거다'라고 답하기에는, 시몬은 스켈레톤 세 기를 보내면서도 칠흑 신체 강화를 마치고 근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당장 답을 내라는 게 아니에요. 천천히 고민해 봐요~"
"감사합니다. 조교 선생님."
시몬이 떠나고, 조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침 멀리서 그녀의 선배 조교가 한 학생을 지도해 주는 모습이 보였다.
선배는 방호 조끼를 입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방호 조끼를 입은 학생이 멍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미 한바탕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조언을 들은 학생도 감사 인사를 하며 떠났다. 지금이 기회다.
"으아앙! 언니이!"
조교가 달려와 선배의 품에 와락 안겼다.
"너무 무서웠어요!"
혀짧은 소리를 내며 앙탈 부리는 후배를, 선배는 인상을 구기며 밀어냈다.
"네가 대련 지도 스타트 끊으니까 학생들이 다들 싸워달라면서 난리잖아! 귀찮게 시리."
"......히잉."
"그건 그렇고, 뭐가 무서운데?"
조교가 마치 엄마에게 일러바치듯 손끝을 뻗어 시몬을 가리켰다. 그는 혼자 구석진 곳에서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아, 특례 1번의 시몬."
"귀욤귀욤하다고 생각했는데 무서워요. 애들이랑 대련하다 심장이 철렁한 적은 처음이야."
칭얼대는 철없는 후배를 떼어낸 그녀가 팔짱을 꼈다.
"그래서, 뭐라고 지도했는데?"
"너 마투학 존X 잘하고, 그거 하면 되는데 왜 소환학에 집착해? 라는 이야기를 둘러 말했죠 뭐."
"흐음."
확실히 1학년 초반부에 배운 소환마법 몇 가지로는 당장의 결투평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초반 결투평가에서 유리한 과목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저주학과 마투학이었다. 소환학과 사령학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케이스였다.
'소환학 지망이라서 고민 중인 건가? 하긴, 그런 배부른 고민도 지금이나 할 수 있는 거지.'
지금 백날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 하위 스쿼드로 떨어져서 마음이 더 절실해지게 되면 생각도 달라질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천재답게.......'
그녀의 머릿속이 잠시, 사이클롭스와 맞서는 시몬의 모습을 떠올렸다.
'새로운 방법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네.'
* * *
조교와의 모의 결투 이후, 시몬은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 기분이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고 있는 느낌.
그래도 한 가지 명확해진 게 있다면.
'이번 결투평가에선, 스켈레톤만으로는 안 돼.'
조교와의 대련을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솔직히 말해, 스켈레톤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시몬에게 저주를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에게 역이용당했다.
바뀌어야 한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해야 한다.
시몬에게 새로운 과제가 생긴 순간이었다.
"시몬!"
열심히 고민에 빠져 있던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환하게 미소 짓는 카미바레즈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나란히 오고 있는 딕과 메이린은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투닥거리고 있었다.
"헹, 헹, 어쩜 한 대도 못 치니?"
메이린이 혀를 쏙 내밀며 놀렸고, 딕은 분한 얼굴로 이를 갈았다.
"아, 그냥 여자라서 봐준 거라고!"
"응~ 다음 한 대도 못 친 놈~"
딕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메이린은 꺄르르 웃으며 시몬의 뒤로 도망쳤다.
"그러고 보니 시몬. 넌 혼자 생각할 게 있다더니, 어느새 또 조교랑 붙고 있더라?"
"응.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
"이겼어?"
시몬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조교 선생님을 어떻게 이겨."
그렇게 말하는 시몬의 시선이 조교 쪽으로 향했다.
마침 저쪽도 시몬을 보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시지?'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근데 결투평가 이거 너무 스트레스 아니냐?"
딕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네크로맨서들이 죄다 싸움만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학자파도 있고, 연구파도 있잖아. 아무리 오랜 전통이라지만 너무 무식해."
카미바레즈가 동의한다는 듯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메이린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웃었다.
"네가 약하니까 스트레스겠지."
"아까는 봐준 거라니까!"
그녀가 택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이건 내 생각인데, 아무리 학자파니 뭐니 해도 전투능력 최하위 10%에 들 정도면 그냥 실력이 없는 거야. 키젠 네크로맨서 실격이지."
그 말에 카미바레즈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등 뒤의 팔랑거리고 있던 날개도 축 처졌다.
"아!"
뒤늦게 카미바레즈를 의식한 메이린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왔다.
"아, 아니! 네가 그렇단 소리가 아냐! 넌 뱀파이어고, 위대한 우르슬라 가문이잖아!"
"하지만 저...... 싸움에는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걱정 마! 내가 책임지고 단련시켜 줄게!"
두 여자들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는 사이, 딕은 한숨을 푹푹 쉬며 시몬의 옆으로 왔다.
"그래도 넌 좋겠다. 결투평가에 부담 없어서."
"아냐. 나도 걱정돼."
"흐흐, 그래? 슬쩍 돌아다녀 보니까, 다들 너랑 붙는 건 무조건 피하고 싶어 하는 눈치인......."
그 순간,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오른손이 머리 옆으로 팟! 하고 올라가는 동시에 뭔가가 날아와 부딪혔다.
터어어엉!
"흐억!"
딕이 깜짝 놀라며 헛숨을 들이켰다. 얼마나 강하게 날아왔는지 주위에 먼지가 흩어지고 있었다.
시몬은 눈동자를 움직여 그것을 보았다. 방호 조끼였다.
저벅. 저벅.
"시몬 폴렌티아."
헥토르가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파벌들이 마치 호위병처럼 뒤따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입어라. 한판 붙자."
"......."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조끼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파아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조끼가 이번엔 헥토르의 손에 부딪혔다.
간신히 손을 뻗어 받았지만 헥토르의 이마에 땀방울이 떨어졌다.
"꺼져. 지금 너한테 신경 쓸 기분 아니니까."
"......이 새끼가!"
헥토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목에 핏줄이 투둑 불거지며 주먹이 칠흑으로 물들었다.
격분한 그가 성큼성큼 다가왔고, 시몬도 피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 마. 헥토르."
그때 시몬과 헥토르의 사이를 메이린이 뛰어와 가로막았다.
"......낄 데 껴라. 상아탑."
헥토르가 싸늘하게 말했다.
"애도 아니고 대체 왜 이러는데? 자꾸 이딴 양아치 짓 하면 교수님 부를 거야."
방해를 받은 헥토르의 입술이 분노로 떨렸다. 그러다 툭 내뱉듯 말했다.
"세르네의 꼬봉 따위가."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딕이 눈을 부릅떴고,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으며, 파벌들도 움찔하며 헥토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이린의 눈이 돌아갔다. 그녀의 손바닥에 다크플레어 마법진이 펼쳐졌다.
'위험해!'
헥토르는 맨몸이고, 학생 보호기간도 끝났다. 게다가 수업시간에 무방비한 헥토르를 향해 공격마법을 사용했다간 그냥 징계 정도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몬은 재빨리 그녀를 향해 뛰었다. 헥토르는 할 테면 해보라는 듯 입꼬리를 올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만."
시몬, 메이린, 헥토르가 동시에 멈칫했다.
어느새 조교가 그들 사이로 들어와 미소 짓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요?"
인지할 틈도 없을 만큼 빠른 접근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시몬은 재빨리 메이린의 손바닥을 덮었고, 헥토르는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조교 선생님. 신경 쓰이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헥토르는 학생들 사이에선 폭군이나 다름없는 존재지만, 교수나 조교들의 입장에선 깍듯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헥토르가 등을 돌리며 '가자'하고 중얼거렸다. 그의 파벌들이 조교와 헥토르를 휙휙 번갈아 보다가 얼른 헥토르의 뒤를 따랐다.
"......흐음."
조교가 메이린 쪽을 돌아보았다. 메이린은 멈칫해 있다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헥토르 학생, 메이린 학생. 두 사람 다 경고니까 조심하세요. 방금, 제인 교수님이 제일 싫어할 만한 일을 할 뻔했네요."
다행히 조교는 문제 삼지 않고 떠났다. 숨 막히던 분위기가 풀어지자 딕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 헥토르 뚝배기 마렵다 X발. 딱 한 대만 제대로 쳐보고 싶네. 저 미친 또라이 새끼."
"메이린! 괜찮아요?"
"아, 응. 괜찮아 카미."
그녀가 심호흡하며 말했다.
"조금...... 그...... 평정심을 잃었을 뿐이야."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메이린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리고, 너 말이야."
"응."
"민망하니까 이제 좀 놓아줄래?"
시몬은 아직도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놓았다.
"하아, 진짜."
그녀가 다가와 시몬의 손을 두 손으로 덥석 붙들더니 손바닥이 보이도록 돌렸다.
화상 때문에 손바닥이 시뻘겋게 되어 있었다.
"너 진짜 미쳤지? 다크플레어 마법진이었는데 이걸 그냥 맨손으로 잡아?"
시몬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메이린이 인상을 굳히며 시몬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애 데리고 잠깐 양호실 갔다 올게."
"아, 네! 다녀오세요!"
* * *
양호실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경미한 화상이었다.
연고를 바르고 붕대로 감는 정도에서 조치는 끝났고, 두 사람은 다시 훈련실로 내려왔다.
"......시몬."
"응."
"내 손바닥 가려준 거, 왜 그런 거야?"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한 걸 묻네. 마법 쓰려고 한 거 조교 선생님한테 들켰으면 큰일 나잖아."
그녀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아까는-"
"고마웠어 메이린."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그녀가 휙 고개를 돌렸다.
"나랑 헥토르가 싸우려 할 때 앞에서 말려줘서."
"......."
"그러다 정작 네가 헥토르랑 싸울 뻔했지만, 이번엔 내가 말린 거고. 이렇게 또 쌤쌤이네."
시몬이 킥킥 웃었지만, 메이린은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여간 시몬. 넌 그게 문제야."
"......?"
"너무 지나치게 친절하다고. 알아? 세심해서 기분 나빠. 하지만."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와 시몬의 어깨를 붙들었다.
"이번에는 안 통해."
"......?"
그러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고. 마. 워!"
그렇게 소리치고는, 혼자서 도망치듯 훈련실로 뛰어가 버리는 그녀였다.
"......."
당황해서 잠시 멍해 있던 시몬이 피식 웃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군.]
피어의 분신이 쯧쯧 혀를 찼다.
시몬은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가락으로 분신을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