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6화
1교시가 끝나고 다음 수업이 진행되었다.
오늘 A반은 짧은 두 시간짜리 수업이 네 개 계획되어 있었는데, 두 번째 수업은 사령학이었다.
"기합으로! 오늘도 기합 넣고 들어가자아아아아!"
굵직한 목소리로 교실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움브라 워프레임'.
특이사항으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몸이 흐릿흐릿했는데, 심지어 다리 부분은 유령처럼 사라진 채로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혼령화 마법에 심취해서 현실과 영혼계의 경계를 자주 왔다 갔다 했더니 결국 이런 모습이 됐다나 뭐라나.
그러곤 얼굴엔 실물 같은 늑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실물 같은지, 학생들 사이에선 저게 진짜 본인 얼굴이라느니 움브라가 늑대인간 혼혈이라느니 하는 소문도 돌았다.
움브라가 가르치는 사령학은 '스피릿'이라고 부르는 영혼체를 다루는 학문이다. 다들 무척이나 세심하고 조용한 수업이 될 줄 알았지만, 완전히 착각이었다.
"근성이 부족하다! 정신이 썩어 빠졌어! 왜 다들 벌써 안된다고 단정 짓고 있나! 자! 팔을 들어!"
움브라는 열혈파 교수였다. 흐물렁거리는 유령 몸뚱이답지 않게 힘과 에너지가 넘쳤다.
시몬이 스피릿을 느껴보겠답시고 집중하고 있는데 움브라의 폭탄 같은 목소리에 깨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어떤 학생이 물었다.
"교수님! 아무리 해도 스피릿이 안 느껴지는데 어떻게 합니까?"
움브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느껴! 안 된다 생각하지 말고 느껴! 그냥 무조건 느껴라! 자네는 아직도 노력이 부족해!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서!"
......별로 도움이 되는 조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움브라의 저 말도 그렇게 틀린 건 아닌 게, 스피릿을 느끼는 건 힘이나 지식, 노하우 같은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영혼에 감응하는 '영감력'은 사람마다 다르고, 작은 영감력으로 스피릿을 느낄 수 있느냐 마느냐도 개인 체질 차이다.
그리고 재능 하면 어디든 빠지지 않았던 시몬도.
'......왜 안 느껴지냐고.'
사령학만큼은 젬병이었다.
시몬은 원탁에 둘러앉은 학생들과 '위저보드'라고 하는 오컬트 도구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주문 읊을 차례지?"
제이미 빅토리아가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A반의 명예 반장이자 모든 과목에서 출중한 그녀마저도 아직 스피릿을 못 느끼고 있었다.
사령학의 기본은 '스피릿'이다. 이걸 느끼지 못하는 이상, 그 어떤 수업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움브라는 반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팀은 움브라의 수업을 따라가면서 스피릿의 운용을 배우는 교육팀.
두 번째는 준비팀이었다. 아직 스피릿을 느끼지 못하기에, 수업시간 내내 각종 도구로 스피릿을 느끼기 위한 행위만 주구장창 반복한다.
수업시간 내내 위저보드를 돌리거나, 오컬트 도구를 들고 괴이한 춤을 추며 영혼을 부르는 의식을 하거나, 관 속에 시체처럼 들어가서 명상을 하거나(물론 잠들거나 졸면 혼난다), 이런 이상한 행동들만 반복하고 있었다.
"근성이 없다!"
가끔 움브라는 교육팀 학생들을 실습시켜 놓고 직접 준비팀의 상태를 보러오기도 했다.
"좀 더 기합을 넣어!"
학생 다섯 명이 손잡이에 손을 모으고 위저보드 돌리고 있는데 움브라가 큼지막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었다.
"손잡이를 더 힘주어 잡고! 이렇게! 이렇게! 온 힘을 다해 정성껏 돌리도록!"
"네!"
얼마나 힘이 센지, 혼자서 돌리는데 10대 학생 다섯 명의 힘을 압도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작다!"
"네!!"
제이미 빅토리아가 눈을 질끈 감고 큰 목소리로 혼령을 부른다는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움브라의 시선이 돌아갔다.
"아니,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움브라의 시선이 이번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휘적휘적 의식의 춤을 추고 있는 카미바레즈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다리를 더 들어! 번쩍번쩍! 그렇지! 영혼을 부르는 의식은 장난이 아니야! 동작을 더 크게 하도록!"
"네에에!"
무릎을 휙휙 올리며 기괴하기 짝이 없는 춤을 추는 그녀의 눈가에는 작게 눈물도 맺혀 있었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솔직히, 여자애가 출 만한 춤은 아니었다.
숭구리당당 숭당당도 아니고, 고개를 마구 흔들고 어깨는 왔다 갔다, 팔은 코브라 모양으로 꼬면서 앞뒤로 휙휙. 대체 저게 어떻게 영혼을 부르는 춤인지 모르겠다.
벌써 학생들 사이에선 닭 모이춤, 오징어 구애춤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부, 불쌍해 카미.......'
시몬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을 때였다.
"자! 조교들! 교체다!"
"네!"
조교들이 위저보드를 돌리고 있는 시몬 일행에게 다가와 말했다.
"모든 물건 그대로 자리에 놓고 일어나세요. 의식의 춤을 추러 이동하겠습니다."
결국 차례가 왔다.
시몬은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며 아까 카미바레즈가 춤을 추고 있던 그 장소. 시트가 깔린 강의실 뒤편에 섰다.
이것도 포지션 같은 게 있어서, 학생들끼리 거리를 조금 둔 채로 마주 보고 서야 했다. 그리고 시몬의 앞에는 하필이면 여학생인 제이미 빅토리아가 서 있었다.
"춤은 이제 다 외웠을 거라고 믿을게요. 시작하겠습니다."
조교들이 해골이 달린 괴이한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삐리리리~ 이상한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마음을 비우자.'
솔직히 제정신으로 출 수 있는 춤은 아니었다. 시몬은 마음을 텅 비우고 배운 대로 몸을 움직이며 스탭을 밟았다.
다리가 앞으로 나갔다가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쑥 올라간다. 팔다리를 웨이브하듯 휘적거리다가 상체가 쭉 나가며 온몸을 연체동물처럼 휘적거린다.
슬쩍 실눈을 뜨고 움브라의 눈치를 살피려던 학생들은 시몬의 격정적인 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쟤는 무슨...... 이런 것도 열심히 추냐.'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네.'
시몬은 아무 생각 없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실상 물아일체의 경지.
움브라도 그 모습을 보고는 껄껄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주 좋다! 훌륭해! 스피릿을 못 느껴도 바로 그런 집념과 노력이 있으면 되는 거야!"
움브라는 이번 주말에 예정된 골리앗 사망일 50주년 행사에 시몬을 데려가서 영혼의 춤 아르바이트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춤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췄다.
'......칭찬해 주시는 것 같은데 전혀 기쁘지 않아.'
시몬은 열심히 춤을 추다가 슬쩍 눈을 떴다.
반장 제이미 빅토리아가 휘적휘적 어눌한 몸짓으로 닭 모이춤을 추고 있었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의 얼굴이 민망함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제, 제발 이쪽 보지 말아줘......."
그녀의 애원에 시몬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런 짓을 시키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감히 움브라에게 항의하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조교들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그때마다 조교들이 하는 말은 비슷했다.
'꼬우면 니들도 교육팀 가던가.'
라는 이야기를 에둘러서 말했다.
사실 준비팀 학생들도 본인 실력이 모자라서 여기 있는 거니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제일 신기한 건, 닭 모이춤을 추고 위저보드를 돌리다가 진짜 스피릿을 느껴서 손을 번쩍 드는 학생들이 한 수업에 1~2명은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축하합니다. 교육팀으로 가실게요."
드디어 이 민망 지옥에서 교육팀으로 탈출하는 학생들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환호했다.
학생들은 이쯤 되면 오컬트 의식의 효과가 좋다기보단, 수치사하기 싫으니 이 악물고 하다가 스피릿을 느끼게 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렇게 힘겨운 사령학 수업도 끝났다.
'으어어.......'
준비팀 코스를 다 돌고, 시몬은 연체동물처럼 휘적거리는 팔다리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야, 너 진짜 괜찮아?"
메이린이 놀라서 물었다. 시몬은 흐느적거리는 팔을 들어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너희 교육팀은 뭐 배웠어?"
"당연히 공격마법이지."
왼쪽에서 걷고 있던 딕이 팔로 뒷머리를 받치며 말했다. 믿기 힘들지만 딕도 첫 수업 만에 스피릿을 느끼는 데 성공했다.
"결투평가 때문에 모든 교수님들이 이론 대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공격마법 위주로 가르치시고 있어. 아마 다른 수업도 마찬가지일걸."
"음, 다음 수업이 뭐였지?"
딕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혈류학이야."
지금까지 실라지의 임무 스케쥴과 개인 사정이 겹쳐 계속 미뤄졌던 바로 그 수업.
A반은 오늘이 첫 수업이었다.
* * *
혈류학 수업은 '마탄 사격 실습관'이라는 건물 안에서 진행됐다.
교수는 그 유명한 실라지 비사바르. 시몬을 황천고래에 태워서 키젠으로 데려다주었던 바로 그 중년 교수였다.
여전히 병마와 싸우는 환자처럼 창백한 얼굴빛에, 움푹 들어간 볼살. 이제는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보다 더 많았고 두 손은 노란빛이었다.
시몬은 처음 봤을 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쿨럭, 쿨럭. 혈류학은 피를 매개로 사용하는 흑마법입니다."
시몬을 비롯한 일곱 명의 학생들이 사선에 섰다. 그들의 200m 앞에는 표적지가 붙어 있었다.
"세간에는 뱀파이어나 혈랑족의 비기를 재현하는 정도의 학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크음! 사실이 아닙니다. 칠흑에 있어 가장 호환성이 좋은 물질이 바로 시전자의 혈액인 만큼, 긴 역사를 자랑하죠."
사선에 선 학생들은 사격 준비를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실라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칠흑과, 칠흑 운용자의 피는 어떤 방식으로든 궁합을 이룹니다. 네크로맨서는 '인위적으로' 칠흑과 혈액을 섞어 다양한 마력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라지가 두 손을 펼쳤다. 한 손에는 칠흑으로 이루어진 방울이, 다른 한 손에는 핏물이 흘러나왔다.
핏방울과 칠흑이 허공에서 만나자, 맹렬한 반응을 일으키더니 엄청난 속도로 펑펑 튀어 다녔다.
학생들이 감탄성을 터뜨렸다.
"쿨럭쿨럭! 내가 혈류학 교수인 것을 떠나서, 네크로맨서가 '피'를 사용하지 않는 건 전력의 낭비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습니다. 술사 본인의 체력이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혈류학은 네크로맨서에게 가장 빠르고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조교의 통제에 따라, 사로에 선 학생들은 한 손을 말아쥐고 오른쪽 검지만 쭉 빼서 표적지를 향해 겨누었다.
이들 모두 팔에 링거 같은 장치를 달고 있었는데, 조교들이 장치를 작동시키면서 학생의 손가락 앞에 마법진을 펼치면, 마법진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이게 바로 혈류학의 기본기인 '혈류탄'이다. 이 링거 장치도 간단히 말하면 '마법진 교정구'의 혈류학 버전이었다.
"크음. A반은 오늘이 첫 시간인 만큼, 진도가 많이 미뤄졌군요. 오늘 수업은 여러분이 어떤 속성의 피를 가졌는지, 이 피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혈류탄의 실전 사용까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수업이 많이 밀렸다지만 대체 몇 개를 동시에 하는 거야?
시몬은 그런 생각을 하며 200M밖에 떨어진 표적지를 바라보았다. 표적지는 하나만 세워진 게 아니라 그 뒤에 10개까지 세워져 있었다.
실라지가 뒷짐을 진 채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제 실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