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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59화 (5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9화

같은 시각, 바힐의 연구실.

와장창창!

까앙!

눈이 시뻘게진 바힐이 손에 집히는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조각상, 트로피, 연구기구 따위가 바닥에 부딪혀 깨져 나갔다.

"허억! 허억......!"

순식간에 주위는 난장판이 되었다.

바힐은 벽에 손을 짚으며 거친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수석 조교 체헤클은 이런 광경이 익숙한 듯, 벽에 등을 딱 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후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녀가 눈을 떴다.

"분풀이는 다 끝나셨습니까? 바힐 교수님."

"......."

바힐이 성큼성큼 걸어가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그러곤 탁자에 팔을 뻗어 담뱃대를 쥐더니 흑마법으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한 모금 빨아 마셨다.

"후우우우......."

담배 연기가 길게 뻗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체헤클이 인상을 구겼다.

"교수님, 실내에서는 금연......."

"이번 한 번만 못 본 척 넘어가 주십시오. 체헤클."

그러나 바힐은 잘 피우고 있던 그 담뱃대마저도 홱 집어 던져 버렸다.

벽에 부딪히자마자 담뱃대가 가볍게 산산조각이 났다.

"......왜!"

바힐이 소리쳤다.

"왜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겁니까! 시몬 폴렌티아!"

그가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긴 숨을 토해냈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은 지 갑자기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당신은 천재입니다! 몇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중의 천재! 그 미친 재능을 왜 소환학에 썩히고 있는 겁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소환학은 낡고 케케묵은 학문이야! 소환학으로 아무리 잘되어 봐야! 제2의 아론 선배가 될 뿐이란 걸 왜 몰라!!"

답답함을 참지 못한 바힐은, 마치 온몸이 가려워진 사람처럼 마구 몸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당신의 최대치가! 아론 선배란 겁니다! 키젠의 특례 1번 입학생이자, 전설적인 재능을 가진 그 사람이 지금 키젠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봐!"

그의 두 팔이 경련이 일어나듯 부들부들 떨리다가 이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힐의 시선이 한 차례, 저 멀리 빛바랜 액자로 향했다.

"......."

그곳에는 키젠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자신과 아론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모습이 보였다.

두 소년의 얼굴엔 어떤 고민도 없어 보였다. 그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

하지만 바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저 때로 돌아가기엔,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을.

"하나같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빛나는 재능들이 스스로 나락 속으로 처박히고 있는 꼴이라니!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꼴은 못 봅니다! 나만이 시몬을 회생시킬 수 있어! 나만이 그 원석을 깎아, 이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보석으로 가공할 수 있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교수님."

"솔직? 그것도 좋군요."

바힐이 벌떡 일어났다.

"가지고 싶다."

그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걸렸다. 주먹을 쥔 손에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미친 듯이 가지고 싶습니다! 시몬 폴렌티아! 반드시 내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또 시작이구나.

체헤클이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를 위해, 내 영혼을 깎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가 가진 최상의 재능을 만개시켜 제2의 네프티스를 만들어낼 겁니다!"

바힐이 두 팔을 벌렸다.

"내 헌신! 내 노력! 내 정성! 내 영혼! 내 목숨을 걸고 그를 신의 영역에 올려다 주는 대가로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웃었다.

"그가 나만을 스승으로 섬기는 겁니다."

"......어휴."

"누군가가 시몬에게 어떻게 정상에 오르게 됐냐고 물어봤을 때, 시몬은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전부 나의 스승 바힐 교수님 덕분입니다'라고! 아아아......! 생각만 해도 전율이......!"

광기에 몸을 떠는 바힐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체헤클이 몸을 돌렸다.

"전 갈게요."

"체헤클."

바힐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나는 손에 놓고 싶은 건 반드시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바힐이 그녀의 팔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그러곤 품에 안겨 들어온 그녀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바로 자네처럼."

"......."

마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눈이었다.

반면에 한심하다는 듯 바힐을 쳐다보던 체헤클이 구둣발로 힘껏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바힐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러났다.

"직장 내 성추행입니다. 바힐 교수님."

"학생 때도 그렇고, 여전히 귀염성이 없군요. 체헤클."

바힐이 셔츠깃을 바로 하며 말했다.

"내 뒤를 이어야 할 인재가 그렇게 딱딱해서야."

"바힐 교수님의 뒤를 잇는 건 시몬 폴렌티아로 정정한 거 아닙니까?"

"오, 그럴 리가."

바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몬 폴렌티아는 내 뒤를 잇는 정도가 아니라, 언젠가 나를 뛰어넘을 재목입니다! 네프티스 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죠! 저는 교육자로서 정당한 욕구를 표출할 뿐입니다! 아니, 명색이 교육자란 자가 그런 재목을 봤는데 피가 끓지 않는 게 비정상적이죠. 그런데 당신은 계속 내 소유욕이 저질스럽다고만 할 겁니까?"

"한 학생을 가르칠 권리를 독점하려는 게, 저질스러운 소유욕이 아니면 뭔가요?"

"이런이런, 한마디도 안 지는군."

바힐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으며 고개를 젖혔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또 뭔가요."

"지금 시몬 폴렌티아는 자신의 소환학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어요. 제인 교수의 사이클롭스 실전에서도 소환학으로 승승장구했지. 애초에 그게 문제였습니다!"

바힐이 눈이 다시금 광기로 번들거렸다.

"지금 시몬이 겪어야 할 건, 쓰디쓴 패배입니다. 그래야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가 잘못됐는지, 그러고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겠죠!"

"......일리는 있네요. 그래서, 그런 천재에게 어떻게 패배감을 안겨줄 거죠?"

바힐의 입가가 악귀처럼 찢어졌다.

"그거야 너무 쉬운 일 아닙니까?"

* * *

수업은 나날이 빠듯하게 진행됐다. 물론 결투평가 때문이었다.

룬어의 기원부터 가르칠 정도로 철저한 이론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칠흑역학 수업의 교수, '에릭 아우라'마저도 전투 실습으로 넘어갔다.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건지, 미래의 전공 학생들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지, 대부분의 교수들이 이번 주는 전투 흑마법 위주로 가르쳤다.

덕분에 학생들의 결투평가 레퍼토리는 크게 다양해졌다. 물론, 이 조건은 키젠 1학년 전 학생이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오전 수업을 듣고 이른 점심식사까지 끝낸 시몬은, 딕과 함께 다음 수업 장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수업 전부 혈류학이구나.'

그간 교수의 사정으로 밀려 있는 혈류학 수업은 일주일 내내 배정되어 있었다. 교수들이 현역 네크로맨서라는 점 때문에 이렇게 시간표가 극단적인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번 주는 소환학이 하루도 없네."

시몬이 한숨을 푹 쉬었다. 딕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아론 교수님, 출장 가셨다나 봐."

아쉬웠다. 결투평가 시즌인 만큼, 아론도 틀림없이 공격마법을 가르쳐 줬을 테고 시몬에 큰 참고가 됐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소환학으로 어떻게 다른 학생들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을지 물어볼 기회도 있었으리라.

"어?"

후식으로 샌드위치를 한입 깨물고 있던 딕이 걸음을 멈췄다.

"시몬! 저기 봐!"

"응?"

"결투평가 대진표 떴다!"

딕이 가리킨 방향에 커다란 게시판이 보였는데, 벌써 학생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두 사람도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다.

'키젠에 와서 첫 번째로 대결하는 상대.'

시몬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살폈다.

'몇몇 괴물들만 피하면 될 것 같은데.'

네프티스의 딸, 로레인 아크볼드.

상아탑 후계자, 세르네 아인다르크.

거인 혼혈, 샤텔 마에르.

무조건 피하고 봐야 할 삼인방이었다. 그 사람들 외의 상대는 어떻게든 싸워볼 만은 하다고 생각했다.

'아, 찾았다.'

[제2경기장 - 1라운드 12차전]

A반 시몬 폴렌티아 vs G반 하렌 코크

'하렌 코크가 누구지?'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 딕도 마찬가지인 듯 끌끌 웃고 있었다.

"리강 초프라? 거 이름 참 특이하네. 샤헤드 출신인가?"

"딕, 너도 모르는 사람이야?"

딕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몬의 상대를 보았다.

"G반의 하렌 코크...... 내가 한번 알아봐 줄까? 주특기나 지망과목 같은 거."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너한테 너무 미안한데."

"아니, 리강도 G반이라서 알아봐 주는 김에 겸사겸사하려고. 너도 상대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좋잖아?"

"응.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시몬은 다시 게시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렌 코크. 과연 어떤 흑마법으로 싸우는 학생일까? 결투평가라고해서 단순히 치고받고 싸운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른 학생과 자신이 흑마법을 주고받으며, 피차의 성취를 가장 확실하게 비교할 수 있는 무대.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었지만 동시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빨리 수업 끝났으면 좋겠다."

시몬의 혼잣말을 들은 딕이 눈을 깜빡였다.

"엥? 갑자기 왜? 너 수업 듣는 거 좋아하잖아."

"저녁에 개인적으로 훈련할 게 있어서."

딕이 낄낄 웃었다.

"이 자식 이거 또 양학하려고 하네. 또 뭔 훈련? 솔직히 네 마투랑 살인 발차기에 대응할 수 있는 애들이 얼마나 있겠냐?"

"......살인 발차기라고 하지 마. 그리고 난 이번에 마투가 메인이 아니야."

"그럼?"

"소환학으로 싸워보려고."

딕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씩 미소 지었다.

"메이린 버전으로 해줄까. 카미 버전으로 해줄까."

"......그게 뭐야."

"아무튼 골라봐."

"메이린?"

딕이 새침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더니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억지스러운 여자 목소리로 말했다.

"난 분명히 말했다? 마투로 싸우라고."

"푸핫!"

시몬이 입에서 침까지 흘리며 웃었다.

친구의 만족스러운 리액션에 당당히 미소 짓고 있던 딕이, 갑자기 옆으로 날아오는 가방에 맞아 쓰러졌다.

"그냥 죽어!"

메이린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옆에는 카미바레즈도 입을 가린 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 왜! 니가 들어도 똑같잖았...... 으아악!"

"죽어어어!"

* * *

오늘 하루 수업이 끝나자마자, 시몬은 케빈의 마구간 루트를 이용해 로체스트로 넘어왔다.

'한밤중의 로체스트는 오랜만이네.'

주말에는 그렇게 활기 넘치던 거리가 어둡고 조용하니 조금은 낯선 느낌이었다.

괜히 키젠 학생인 걸 들키면 좋을 게 없었으니 겉에 로브까지 걸쳤는데, 척 봐도 시몬처럼 로브들 뒤집어쓴 소년 소녀들이 많았다.

'일단은 네크로맨서 상점부터.'

시몬은 얼마 전에 갔던 네크로맨서 상점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저번에 왔을 때는 로웬이 아르바이트 중이었는데, 이번에는 외눈 안경을 쓴 청년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이분이 가게 주인이구나.'

딕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키젠 2학년까지 올라왔지만 경쟁에서 밀려났고, 현재는 로체스트에 자리 잡고 상점을 운영하는 네크로맨서.

시몬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가게 주인이 무안한 듯 웃었다.

"하하, 선배라니요. 키젠 학생이나 되시는 분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2학년까지 올라가셨다고......."

"낙오자니까요. 늙은 퇴학생보다는 현 키젠 1학년이 훨씬 더 가치 있죠."

그래도 내심 기분은 나쁘지 않은지 미소 짓고 있었다. 사실 로체스트에서 자리 잡고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 중에는 이런 키젠 출신이 많았다.

빛나던 키젠 학생 시절을 잊지 못했는지, 아니면 어떤 그리움이나 향수가 있어서 떠나질 못하는지, 더 이상 키젠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 주위에서라도 남아 생활하는 사람들.

고위 귀족이 대부분인 키젠 학생들이, 로체스트에는 함부로 난동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무엇을 찾으시나요? 학생."

상점 주인의 물음에, 시몬이 눈을 빛내며 단칼에 대답했다.

"스켈레톤 아처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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