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3화
아론은 성큼성큼 걸어와 연구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몬은 조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론 교수님도 농담을 하시는구나.'
시몬은 몰랐지만, 사실 다른 조교들이 봤으면 까무러칠 광경이었다.
그렇게 시몬은 처음으로 아론의 연구실에 들어왔다.
눈을 두는 곳마다 온갖 정체를 알 수 없는 언데드 재료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론이 얼마나 소환학을 사랑하는지, 이 방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연구실 전체를 휘감고 있는 용의 뼈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처럼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었는데,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스켈레톤 상태인 것 같았다.
"적당히 아무 곳에나 앉아라."
아론이 바지를 훌러덩 벗으며 말했다. 이내 그 바지를 던져서 강의실을 휘감고 있는 용뼈의 목에 걸어두었다.
용뼈가 질색하듯 목을 흔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반항하진 못했다.
시몬은 웃음을 참으며 앉을 자리를 찾았다.
벽에 걸려 있는 건 물론 바닥에도 온통 가치 있는 언데드 연구물이라, 시몬은 한 발짝 한 발짝을 조심해야 했다. 이내 소파를 찾아내서 옆에 기대어져 있는 구울 모형을 살짝 치우고 앉았다.
"그래, 뭘 물어보고 싶다고 했지?"
어느새 상의를 전부 탈의하고,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아론이 달칵거리며 차를 끓이고 있었다.
시몬은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결투평가에서, 소환학만으로 이기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아론의 움직임이 한 차례 멈칫했다. 그것도 잠시뿐,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잔에 차를 따랐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예......?"
"시몬 폴렌티아. 네가 마투학이나 다른 과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아론이 다가와 찻잔 하나를 시몬 쪽으로 밀었다.
"이번 평가를 쉽게 넘어갈 방법이 빤히 있는데, 굳이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시몬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아론이라면 저렇게 말할 줄 알았다. 소환학 첫 수업에서도, 아론은 스스로 소환학을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을 했으니까.
그래서 더 이상하다.
이 연구실을 보면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이렇게나 소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자신의 전공에 열정을 쏟고 있는 사람이, 어째서 키젠의 학생들에게는 그런 소리를 한 걸까.
"그럼 반대로 교수님께 묻고 싶습니다."
시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소환학 지망생이 소환학으로 이기겠다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
아론이 동작을 멈추고 시몬을 응시했다. 시몬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간의 정직이 흘렀다가, 아론은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목이 탔던 시몬도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첫맛은 씁쓰레했지만, 입안에 은은히 머무는 여운이 달았다.
"내가 해결책을 털어놓길 원하나. 아니면."
찻잔을 내려놓은 아론의 입가에는, 믿기 힘들지만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네가 택한 해결책을 보완해 주길 원하나."
동시에 시몬도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후자입니다. 교수님."
* * *
드디어 결투평가 당일.
키젠에서는 결투평가를 위해 5개의 실내 경기장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다.
딕과 메이린, 카미바레즈는 그중에서 제2 경기장에 와 있었다.
오전에 시험을 치르는 건 7조에서 시몬뿐이었다. 다들 시몬을 응원하러 들른 것이다.
그런데.
"얘 대체 어딨는 건데!"
관중석의 메이린이 발을 동동 굴렀다. 카미바레즈도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제 곧 시몬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는데 그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니들은 여기 있어."
결국 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나가서 찾아보고 올게."
그렇게 딕이 밖으로 나간 사이에 벌써 또 하나의 경기가 끝났다.
승리한 학생은 두 손을 번쩍 들며 기뻐했고, 배리어 게이지가 0이 된 학생은 고개를 푹 숙였다.
결투평가 룰은 사이클롭스 수행평가와 비슷했다.
앙 측 학생들은 전신 방어막 효과가 있는 '방호 슈트'를 입고 싸우고, 배리어 게이지가 0이 되는 쪽이 패배한다.
그렇게 오늘 결투에서 이긴 학생은 중위 스쿼드에서 시작하고, 진 학생은 하위 스쿼드에서 시작하게 된다.
만약에 다음 주 하위 스쿼드에서도 진다면, 성적에 따라 최하위 스쿼드로 내려가게 된다. 즉, '키젠 퇴학'이 가시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실 때문에 학생 모두의 부담감은 최고조였다.
관중석에서는 친구를 응원하러 온 학생들이나, 정보를 수집하러 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물론 키젠 학생들 외에도 암흑연합 곳곳에서 출입권을 받아 들어온 어른들도 있었다. 키젠 학생은 앞으로 대륙을 이끌어 나갈 차기 인재들이니, 각 기관이나 조직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제2 경기장에 와 있는 스카우터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이제 곧 올해 특례 1번을 볼 수 있겠군요."
"시몬 폴렌티아라,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출신지도 불분명해요. 갑자기 네프티스 님에 의해 선발된 학생이랍니다."
"소환학 지망이라는데."
"소환학? 키젠 교수들은 뭐 하는 거야. 진짜로 소환학에 특례 1번을 처박을 생각은 아니겠지?"
관중석에서 어른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스카우트 목록을 작성하는 가운데, 가장 불안해하는 건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였다.
두 사람은 좀처럼 앉아 있지 못하고 대기실을 훑고 있었다.
그때 천장의 확성기에서 안내음이 들렸다.
-A반 시몬 폴렌티아 학생. G반 하렌 코크 학생은 경기장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상대방인 하렌 코크가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카미바레즈가 달달 떨며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시몬!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 * *
하렌 코크는 경기장으로 나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렌의 혈액을 채취해간 검사관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바힐의 말대로 도핑검사에도 걸리지 않았다.
'하아아, 진짜 온몸에 힘이 넘쳐.'
지금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하렌은 언제나 누군가의 등을 쫓는 생활만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상 만물이 자신의 발 아래에 있는 것 같은 기분.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다 갈아엎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몬 폴렌티아.'
A반의 특례 1번.
특례 중의 특례.
안 그래도 특례입학 학생들은 하나같이 아니꼬웠다. 하렌이 속한 G반의 8번 특례도 그렇고, 전부 거만하고 포악한 성격이었다.
부모 잘 만나서 호의호식하고, 굶주린 적도 없고, 엄청난 지원을 한 몸에 받으면서, 별다른 노력을 안 해도 유전자빨로 재능 철철 넘치게 태어난 사람들.
'두고 봐.'
지금 관중석에서 구경하고 있는 스카우터들 태반이 시몬을 보러왔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결투평가가 끝나면 생각이 바뀌리라. 온 대륙이 자신을 주목하게 되리라.
그리고 하렌의 시선이 관중석 한쪽으로 움직였다. 관중석 끝에, 하얀 수트 차림의 바힐도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지?'
하렌은 이 힘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바힐의 서포트를 받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 어떻게든 바힐의 직속제자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적어도 팔다리 한 짝씩은 철저히 고장 나게 해주마.'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들은 평생 누리고 있을, 이 기회의 한 톨을 힘겹게 붙잡았다.
아마도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찬스.
이제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
-A반 시몬 폴렌티아 학생. 경기장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상대가 조금 늦는다.
이제는 제2 경기장 내 방송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시몬을 찾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각? 하여간 특례 새끼들은 다 이런 식이라니까.'
하렌이 팔짱을 꼈다. 경기를 주관하는 심판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일정이 지체되는군요. 5분 후에도 오지 않으면 시몬 폴렌티아 학생은 실격패. 이번 결투는 하렌 코크 학생의 승리로 하겠습니다."
곳곳에서 아쉬운 탄성과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일이 터진 게 틀림없다. 딕이 찾지 못하면 누구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5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리고, 손목시계를 확인하던 심판이 말했다.
"시간 다 됐습니다. 이번 경기는 하렌 코크 학생의......."
"잠깐만요!"
터엉!
극적인 순간에 대기실 문이 열리며, 퀭한 얼굴의 시몬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딕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오!"
"저기 왔다!"
빅매치가 캔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다리던 스카우트 관계자들이나 학생들이나 모두가 미소 지었다.
"시몬!"
"이 바보야!!"
카미바레즈와 메이린이 크게 안도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시몬도 그녀들을 발견하고 괜찮다는 의미로 살짝 손을 들어 보였다.
"혼자 걸을 수 있어. 딕."
"나 참."
부축을 풀어준 딕이 시몬의 등을 탁 때렸다.
"잘해라."
"응."
시몬은 경기장으로 걸어가서 심판에게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뭐, 괜찮습니다. 빨리 준비하세요."
기다리고 있던 하수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시몬의 몸에 방호 슈트를 입히고 혈액을 채취해 갔다.
결투평가 준비는 빠르게 끝났다.
"양 선수, 악수."
심판의 지시에 따라 시몬과 하렌이 중간에서 만나 손을 맞잡았다.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늦어서 미안해."
"......."
하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몬의 상태를 살폈다.
퀭한 얼굴, 짙은 다크서클. 잔뜩 흙이 묻은 교복.
'딱 봐도 컨디션이 개판이군. 낙승이겠는데.'
두 사람은 악수를 마치고 거리를 벌렸다. 마나 투사기에서 화면이 펼쳐졌다.
[시몬 폴렌티아 : 100%]
[하렌 코크 : 100%]
"어느 한쪽이 정신을 잃거나, 배리어 게이지가 0%가 되는 순간 경기는 종료입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취했다.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경기장 전체에 감돌았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도 고개를 쭉 빼고 기다리고 있는데, 관중석으로 올라온 딕이 땀을 줄줄 흘리며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딕! 정말 수고했어요!"
"넌 또 왜 그래? 시몬은 어디 있었던 거야?"
딕의 교복 곳곳에 흙이 묻어 있었다. 딕이 털썩 자리에 앉아 묻은 흙을 털어냈다.
"시몬은 경기장 뒤편에 있었어."
"응?"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게. 일단 지켜보자."
경기장의 시몬은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우우우."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다시 원래의 집중력이 돌아와 있었다.
'괴물 같은 새끼.'
하렌이 쓴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더 낮췄다. 높게 들어 올린 심판이 팔이 떨어졌다.
"경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