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6화
딕의 경기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빠져들 듯 지켜보게 되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도 관중석에서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지만, 메이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아, 분명히 같은 조원이 이긴 건데 왜 이렇게 부끄럽지?"
"하하하!"
-A반 메이린 빌렌느 학생. C반 이반 바르샤니 학생은 대기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방송을 들은 메이린이 몸을 일으켰다.
"뭐, 가볍게 이기고 올게."
"화이팅이에요! 메이린!"
"잘하고 와."
메이린이 대기실로 향하고 있는데, 관중석으로 올라오던 딕과 마주쳤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딕이 '예이~'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려 손바닥을 펼쳤지만 새침하게 코웃음 치며 지나가는 메이린이었다.
"쯧! 쟤는 붙임성이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딕이 투덜거리며 다가와 시몬과 카미바레즈와 하이파이브했다.
세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결투평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메이린이 경기장 중앙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메이린의 상대는 C반의 이반 바르샤니. 탄탄한 몸을 가진 마투학 지망생이었다.
"이번 승부도 재밌겠네."
딕이 양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말했다.
"이반이 붙느냐. 붙기 전에 메이린이 쳐내느냐."
"힘내요! 메이린!"
심판의 지시에 따라, 메이린과 이반은 서로에게 다가와 악수했다.
"첫판부터 이런 거물이랑 붙을 줄 몰랐네."
이반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이 순간을 가문의 영광으로 기억하는 게 좋을 거야? 평민."
메이린이 손을 빼며 도도하게 팔짱을 꼈다.
"나중엔 내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도 못하게 될 테니까."
"음, 그럴지도. 그래도 지금 평민한테 짓밟혀 보는 게 너한테 좋은 경험이 될 거라 믿어."
"웃겨."
가볍게 신경전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등을 돌려 걸어갔다.
권투사 출신. 수많은 훈련과 단련을 통해 온몸이 실전 근육으로 이루어진 이반.
그리고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았을 것 같은 여리여리하고 얇은 선의 메이린.
그 두 사람이 마침내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두 학생의 상태를 번갈아 보며 확인한 심판이 팔을 내리며 소리쳤다.
"경기 시작!"
시작이라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이반이 바닥을 딛고 메이린을 향해 돌진했다.
'아무것도 못 하게! 숨 막히게 밀어붙여......!'
순간 그의 동공이 커졌다. 돌진하고 있는 정면으로 갑자기 검은 불길이 일어난 것이다.
화아아아아악!
이반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방향을 틀었다.
위험했다. 방호 슈트를 입고 있었지만 후끈한 열감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어머, 참 단순하네."
메이린이 검지 끝에 검은 불꽃을 일으키며 말했다.
"무식하게 선공필승으로 이길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했어?"
화르륵!
메이린이 연달아 화염을 쏟아붓고, 이반이 그것을 피하며 빈틈을 노리는 전개로 전투 양상이 흘러갔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시몬이 감탄성을 흘렸다.
"대단한데. 다크플레어를 저렇게 빨리 완성한 거야?"
"아니."
딕이 고개를 저었다.
"저건 다크플레어보다 아래 단계에 있는 칠흑원소계 마법이야. 다크플레어는 시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려."
칠흑 원소계.
지금은 사장된 순수 마법사들의 원소 마법을, 칠흑을 이용해 현대식으로 재현한 마법이다. 화염이든 얼음이든 살짝 검은빛이 감도는 게 특징이다.
순수 마법사와 네크로맨서가 같은 시간에 주문을 시작해도 칠흑원소계가 훨씬 더 빠르게 완성된다. 위력도 더 강하며, 변수의 통제에 유리하다.
그야말로 완전한 의미의 상위호환.
"역시 상아탑답네."
상아탑은 과거엔 마법사들의 성지였다. '마탑'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아탑도 변화했고, 현대에 들어서는 네크로맨서 출신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고유한 옛 성격은 남아 있는지, 상아탑의 네크로맨서들은 대부분 칠흑역학을 기반으로 한 칠흑 원소계 마법이 특기다.
물론 메이린도 마찬가지였다.
"하아아!"
메이린이 팔을 휘두르자 화염이 벽처럼 길게 뻗어 나가며 이반의 진입을 막았다. 간발의 차이로 물러난 이반이 숨을 헐떡였다.
[메이린 블렌느 : 100%]
[이반 바르샤니 : 71%]
'확실히 까다롭네. 피하기만 했는데 벌써 게이지가 이렇게.......'
이반이 손으로 입가를 닦으며 체내의 칠흑 운용량을 배로 늘렸다. 몸이 점점 더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이렇게 신경을 분산시키면서 큰 흑마법을 못쓰게만 하자. 딱 한 번. 한 번의 찬스만 잡으면......!'
"내가 아까도 말했지? 평민."
메이린이 미소 지으며 등 뒤에 숨겨놓은 왼손을 펼쳤다.
화르르르르륵!
"생각이 단순하다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의 흑염이 그녀의 왼손에서 솟구쳐 올랐다.
이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 어느 틈에 다크플레어를!'
사실 메이린이 다크플레어의 '다중시전'을 완성한 건 바로 최근의 일이었다.
오른손으로는 가벼운 칠흑화염계를 연사하면서, 왼손으로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다크플레어를 준비한 것이다.
이번 성장으로, A반 1위인 그녀는 한 발 더 완전무결의 경지에 올라섰다.
이제 다크플레어를 보유했으니 자잘한 견제를 할 필요도 없어졌다.
메이린은 오른손을 늘어뜨리며 왼손의 불꽃을 키웠다.
"승부는 났네. 계속할 거야?"
"그런 소릴 하기엔 좀 이르다고 생각하는데!"
이반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체내의 혈액이 들끓는다.
'아무리 강력한 흑마법이라도 못 맞추면 그만!'
이반이 바닥을 딛고 몸을 날렸다. 마치 잔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상당한 속도였다.
메이린이 정면으로 왼손을 휘두르려는 찰나, 이반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졌다.
그녀가 움찔하며 왼손을 회수했다. 만약 이대로 시전했으면 힘들게 완성한 다크플레어를 그냥 날릴 뻔했다.
'흐흐, 죽어도 못 던질 거다!'
이반은 여러 마투학 지망생들 중에서도, 체내 칠흑 운용을 기반으로 한 스피드 타입이었다. 최대치로 템포를 끌어올린 이 1~2분 동안은 키젠의 누구보다 빠를 자신이 있었다.
후웅! 후웅! 후웅!
이반은 메이린을 농락하듯 그녀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메이린은 다크플레어를 앞세운 채 열심히 고개와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좀처럼 이반을 포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알겠냐 귀족! 흑마법의 수준과 실전에서의 승리는 완전히 다른 문제야!'
이반은 가속을 순간적으로 멈춰서 메이린의 등 뒤를 잡고는, 그대로 섬광처럼 쇄도했다.
칠흑을 강화한 그의 주먹이 메이린의 뒤통수로 향했다. 이반은 승리를 예감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그러나.
메이린의 어깨가 자연스럽게 틀어지며 고개가 옆으로 젖혀진다.
'이걸 반응한다고?!'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그녀와 이반의 눈동자가 교차했다.
그녀가 보란 듯이 미소 지었다.
"내 마투가 약하다고 생각했어?"
그녀의 왼손에서 부글거리는 흑염이 순식간에 이반의 몸을 집어삼켰다.
화아아아아아악!
두 사람이 교차하며 빠져나왔다.
거대한 폭발음과 열기에 가까이 있던 관중들이 팔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메이린 블렌느 : 94%]
[이반 바르샤니 : 0%]
심판이 팔을 세워 들었다.
"경기 종료! 메이린 빌렌느 학생의 승리입니다!"
화륵!
검은 불길에 휩싸인 이반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메이린은 귀밑머리를 넘기며 생긋 웃었다.
"더 노력해~ 평민. 하위 스쿼드에서 말이야."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기 운영에 관중석 곳곳에서 박수와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아- 진짜."
딕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재수 없긴 한데, 잘해서 깔 수가 없네."
시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젠은 실력 지상주의니까."
시몬도 관중석에서 메이린을 보고 있으려니 많은 생각이 났다.
한 경기 한 경기 이겨 나가다 보면, 언젠가 메이린과도 싸울 때도 오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그녀의 다크플레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오른쪽이 유난히 조용했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달달달달.
카미바레즈가 창백해진 얼굴로 다리를 떨고 있었다.
"......카미?"
"이제 제 차례네요."
그녀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시몬도, 딕도, 메이린도 이겼네요. 저만...... 저만 잘하면......."
"너,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메이린도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경기에서 이긴 뒤라 무척 신이 난 얼굴이긴 했지만, 덜덜 떨고 있는 카미바레즈를 보고는 그렇게 티를 내진 않았다.
그렇게 메이린이 관중석으로 돌아오고 두 경기가 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미바레즈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애들아! 저기 봐!"
딕이 팔을 뻗었다.
"실라지 교수님이야! 경기 보러 오셨......!"
시몬이 얼른 딕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메이린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딕을 노려보았다.
"하여간 눈치 드럽게 없어요."
혈류학 교수인 실라지가 우르슬라 가문이자 뱀파이어인 카미바레즈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실라지를 본 카미바레즈의 떨림이 더 심해졌고, 딕이 무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A반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학생. C반 에기르 아틀리에 학생은 대기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다, 다녀올게요!"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세 사람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그녀를 달래고 응원했다.
"에기르는 어떤 스타일이야?"
카미바레즈가 떠나고 시몬이 물었다. 슬슬 시몬도 이 결투평가에 재미와 흥미를 붙여가고 있었다.
"정석 그 자체."
딕이 깔끔하게 요약했다.
"특출나게 뛰어난 분야가 없어서, 아마 다양한 기본기를 조합해서 싸울 거야. 극단적인 공격형 혈류술사인 카미가 어떻게 뚫을지 기대되네."
"스펙은 우리 카미가 압도적이야. 우르슬라니까."
메이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문제는 얼마나 긴장을 안 하느냐인데......."
"응."
잠시 후, 카미바레즈와 에기르가 경기장 중앙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에기르는 훤칠한 키와 말끔한 인상의 남학생이었다. 두 사람이 심판의 지시에 따라 악수했다.
"잘 부탁해."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오......."
잔뜩 긴장한 얼굴에, 자신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난폭한 우르슬라 뱀파이어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던 에기르는 완전히 다른 상대의 모습에 당황했다.
'진짜 우르슬라 맞아?'
축 처진 소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살짝 가엾다는 생각도 나긴 했지만, 절대 봐줄 수는 없었다.
이내 두 사람은 거리를 벌렸고, 코어를 가동시키며 전투를 준비했다.
"두 학생 모두 준비됐습니까?"
"예!"
"네에......."
심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학생과 에기르 아틀리에 학생의 결투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심판이 팔을 떨어뜨리며 외쳤다.
"경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