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7화
"경기 시작!"
경기가 시작되는 즉시, 에기르는 아공간을 열고 스켈레톤 세 기를 꺼냈다.
카미바레즈는 오른손을 총처럼 말아쥐고 에기르를 조준했다. '혈류탄'의 자세였다.
"죄송해요!"
공격을 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그녀였다.
카미바레즈의 검지 끝에 피처럼 붉은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반동과 함께 혈류탄이 쏘아져 나갔다.
"참. 에기르에게도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어."
딕이 말했다.
카미바레즈의 폭발하는 혈류탄이 에기르에게 적중하기 직전, 그의 스켈레톤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퍼어어어어엉!
시뻘건 폭발이 일어나며 주위를 뒤덮었다. 카미바레즈는 어깨를 움츠리며 연기 속을 주시했다.
[카미바레즈 : 100%]
[에기르 : 100%]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이내 연기가 걷히며 커다란 황금 방패를 든 스켈레톤 세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기르는 엄청난 갑부야."
딕이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하나에 몇백 골드나 하는 방패를 스켈레톤에 들려줬네. 게다가 소환수도 그냥 스켈레톤이 아니라 바닐라 브랜드의 '설원 놀'이고."
"야! 그거 엄청 중요한 특징이잖아!"
"당연히 카미에게도 전달했어."
값비싼 스켈레톤과 방패로 원거리 공격을 가드한 후, 이번에는 에기르가 공중에 칠흑화살을 띄워놓고 날렸다.
"으앗! 아앗!"
카미바레즈가 총총 뛰어다니며 공격을 피해 다녔다.
이 순간 경기를 보고 있는 남녀노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귀엽다.'
'뭔데 귀엽냐.'
맞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칠흑화살을 피하느라 카미바레즈가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 넘어졌다.
상대인 에기르는 생각을 바꿨다.
'보기보다 움직임이 좋아. 칠흑화살로는 못 잡겠어.'
에기르는 칠흑화살을 거두고, 손바닥에 새로운 마법진을 그렸다.
그 모습을 본 딕의 눈이 커졌다.
"저주를 준비한다! 카미! 어떻게든 해!"
카미바레즈가 이를 악물고 무릎쏴 자세로 혈류탄을 발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폭발하는 혈류탄이라고 해도 단순 직선 공격일 뿐이었고, 황금방패를 든 스켈레톤들에게 막혀 버렸다.
이대로는 저주가 완성되고 만다.
결국 그녀도 공격을 중지하고 새로운 마법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카미바레즈와 에기르 둘 다 마법진을 준비하며 스펠 대결 구도로 흘러갔다.
<블러드 실크>
먼저 흑마법을 완성한 건 카미바레즈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로 이루어진 양탄자가 펄럭이며 일어났다.
"으악, 이건 실책이야! 저런 공격력도 없는 마법으로 어쩌려고?"
딕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리자 메이린이 콧방귀를 뀌었다.
"볼 줄 모르면 그냥 믿고 지켜봐. 멍충아."
카미바레즈는 아공간 속에서 직접 제작한 포션 세 병을 꺼냈다. 블러드 실크가 그 포션병들을 감싼 채 에기르 쪽으로 내달렸다.
'뭔가 온다.'
에기르가 곧장 스켈레톤들을 보내 검을 휘두르게 했다.
부웅!
부우웅!
하지만 소환학 지망생이 아니라 그런지 컨트롤이 투박했다.
허우적거리는 몸놀림으로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카미바레즈의 마법을 막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블러드 실크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순간, 에기르도 가까스로 저주를 완성했다.
<바힐 리메이크 - 패럴라이즈>
마법진에서 검은 벼락의 형상을 한 저주가 쏘아져 나갔다.
블러드 실크를 컨트롤하는 중이던 카미바레즈는 피하지 못했고, 그대로 저주에 직격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도 끝까지 블러드 실크를 컨트롤했다.
피의 양탄자가 확 펼쳐지더니 포션을 에기르의 몸에 닿은 채로 깨뜨렸다.
쨍!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
포션을 흠뻑 뒤집어쓰게 된 에기르가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몸의 감각이 극도로 떨어져 있었다.
'설마 카미바레즈가 준비한 것도 마비포션이었나!'
에기르가 난감한 듯 인상을 찌푸렸고, 카미바레즈도 숨을 헐떡이며 다리를 덜덜 떨었다.
두 사람 모두가 마비 상태.
'저주와 포션. 먼저 풀리는 쪽은 당연히 포션 쪽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승리를 예감한 에기르가 오른팔을 뻗었다.
'이쪽은 스켈레톤이 남아 있지!'
에기르가 스켈레톤의 사념에 접속해 공격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다음 리메이크 패럴라이즈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카미바레즈의 판단은.
'......1스택 정도면 아직 괜찮아. 움직일 수 있어.'
돌진이었다.
그녀가 마비된 몸을 이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에기르의 스켈레톤들이 그녀를 막으려 검을 휘둘렀지만, 카미바레즈는 자세를 낮춰서 피하거나, 피하지 못하는 공격은 몸으로 맞으며 계속 달렸다.
'설마 근접전?'
에기르는 다급히 저주를 중지하고는 허공에 칠흑화살을 띄웠다.
카미바레즈는 두 팔로 머리를 세워 가리고는 악착같이 돌진했다. 그녀의 몸 곳곳을 칠흑화살이 긁으며 지나갔다.
[카미바레즈 : 58%]
[에기르 : 100%]
'저걸 다 몸으로 맞고 들어와?'
상황의 심각함을 느낀 에기르가 다급히 주먹에 칠흑을 끌어모았다.
마투학도 남들 정도는 하고, 저렇게 작은 여자애한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게다가 피차 마비가 걸린 상황.
"아아아!"
그러나 카미바레즈가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에기르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두 동공이, 마치 맹수의 눈처럼 세로로 갈라져 있었다.
와락!
두 팔을 벌리고 뛰어든 카미바레즈가 에기르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에기르가 휘청이며 자리에 넘어졌다.
"뭐, 뭐야!"
당황한 에기르가 얼굴을 붉혔고, 카미바레즈는 입을 앙 벌렸다. 송곳니가 반짝이며 날카로운 예기를 뿜었다.
덥석!
그러고는 에기르의 목덜미를 물었다. 물론 방호 슈트의 배리어가 목덜미에도 적용되어 아프지는 않았다.
'뭘 하나 했더니 결국 물기?'
에기르가 어이없는 얼굴로 카미바레즈의 머리를 밀어내려 했다. 그런데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윽, 이봐! 신성한 결투평가에서 뭐하는 짓......! 어?"
[카미바레즈 : 58%]
[에기르 : 84%]
고작 물어뜯는 것만으로도 게이지가 깎였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에기르가 주먹에 칠흑을 둘러 그녀의 머리를 마구 가격했다. 그러나 그녀 쪽에서도 푸르스름한 배리어가 적용되면서 게이지만 깎일 뿐이지, 타격은 없었다.
[카미바레즈 : 51%]
[에기르 : 64%]
'......말도 안 돼!'
게이지의 수치가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무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당황한 에기르가 어떻게든 카미바레즈를 때리고 떨어뜨리려 했지만 그녀는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카미바레즈 : 43%]
[에기르 : 21%]
"이런 미친! 뭐냐고 이게! 떨어져!"
마비 효과에 더해, 자세가 무너져서 그런지 주먹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게이지의 손실 수치는 점점 가속되어 늘어났고, 결국.
"경기 종료!"
심판이 소리쳤다. 최종결과가 나왔다.
[카미바레즈 : 37%]
[에기르 : 0%]
"승자는 카미바레즈 학생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져, 졌다.'
에기르는 멍한 얼굴이었다.
피차 마비에 걸린 순간 승리를 자신했는데, 돌진 한 번에 이렇게 쉽게 뚫려 버릴 줄은 몰랐다.
'결국 내 방심이야. 너무 쉽게 생각했어.'
에기르가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 그때, 목을 물고 있던 카미바레즈가 조심스레 떨어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나, 방금 뱀파이어에게 물릴 뻔한 거지?'
어쩐지 소름이 오소소 끼친 그가 카미바레즈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귓불까지 벌게진 채로 울먹울먹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정말 죄송해요! 이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다 보니 그만......!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어, 없는데."
"으아앙! 정말 죄송해요!"
"아니, 정당한 결투평가였는데 뭐가 죄송해? 너 정말 좋은 판단이었어."
갑자기 패자인 에기르가 승자인 카미바레즈를 달래는 꼴이 됐다. 그 모습을 본 관중석 곳곳에서 자작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울먹울먹하며 자신의 상처를 살펴주는 카미바레즈를 보며, 에기르는 갑자기 마음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와, 키젠에 이렇게 귀여운 애도 있었나?'
시간이 지나 카미바레즈가 진정했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리원들이 밀대로 바닥을 닦으며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 말이라도 몇 마디 붙여볼까?'
그녀와 친해지고 싶었던 에기르가 슬쩍 카미바레즈에게 다가갔다.
"카미! 괜찮아?"
그때 관중석에서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끄러움에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녀가 소리 난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얼른 손을 흔들었다.
"네! 시몬! 저 이겼어요~!"
폴짝폴짝 뛰며 햇살처럼 미소 짓는 그녀. 그러다 뒤늦게 에기르 쪽을 돌아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앗! 죄송해요! 옆에 계시는 줄도 모르고! 죄송해요!"
에기르는 괜찮다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속으로는 눈물을 흘렸다.
'......크흑, 짧은 시간이지만 좋아했다.'
한편 관중석에서도 카미바레즈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으하하하! 대단해! 저렇게 이길 수 있는 건 키젠에서 카미뿐일 거야!"
딕이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시몬이 덧붙였다.
"마비에 걸렸을 때, 공격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돌진한 결단은 대단했어."
"음, 그건 인정이지! 그러고 보니 마비도 이걸 위한 한 수였구나."
"우리 카미도 할 땐 한다니까!"
그때 마침 카미바레즈가 관중석에 올라왔다. 무척이나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여러부운~!"
그녀가 도도도 뛰어오는 모습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겨주었다.
"잘했어 카미!"
메이린이 카미바레즈를 와락 껴안았다.
"우웅, 작고 소중해~!"
"메, 메이린! 숨 막혀요!"
시몬과 딕도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다가와 카미바레즈의 머리를 쓰다듬고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7조 조원 전원, 결투평가에서 중요한 첫 승리를 따냈다.
네 사람 모두가 중급 스쿼드에서 결투평가를 시작하게 됐다.
* * *
이제 내일은 행복한 주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워낙에 쉴 틈 없이 달려왔으니까, 시몬은 이번 주말 정도는 휴식을 취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로체스트의 네크로맨서 상점에 가서 느긋하게 아이쇼핑도 하고.......
"응, 쉴 시간 없어."
메이린이 딱 잘라 말했다.
"다음 주 끝나고 중간고사인 거 알지?"
"어......?"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중간고사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아 있었다.
계속 결투평가만 신경 쓰던 시몬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번 중간에서는 메이린에게 자신 있게 말한 소환학 성적 뛰어넘기 미션도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시몬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교과서를 옆구리에 끼고 자습실로 향했다.
'......와.'
사람들 생각은 거기서 거기라고 하던가.
내일이 주말이고 결투평가가 끝난 밤인데도, 넓은 기숙사 자습실이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다들 숨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지 주위가 싸늘할 만큼 조용했다.
덩달아 위기감을 느낀 시몬도 얼른 하나 남은 빈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환학은 어느 정도 자신 있으니까. 오늘은 취약 과목을 보완해 보자.'
칠흑역학 교재를 펼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난 후.
'......부, 분명 수업시간에 배운 건데? 왜 하나도 모르겠지?'
그동안 줄곧 해온 소환마법 훈련과는 달랐다. 혼자 공부하려니 한계가 너무 명확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 * *
다음 날 아침.
"하아암."
파자마 차림에 입에 칫솔을 문 메이린이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설렁설렁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룸메 이것들은 무슨 샤워하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려."
뻔했다. 중간고사고 뭐고 또 로체스트에 남자 만나러 가는 거겠지.
메이린이 연신 투덜거리며 공용 목욕탕으로 가고 있는 그때.
"메이린 학생!"
평소 알고 지내던 기숙사 관리원이 그녀에게 뛰어왔다. 메이린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기숙사 입구 앞에서 어떤 남학생이 메이린 학생을 찾고 있어요!"
"네, 네? 이 아침부터 누가요?"
"이름은 못 들었는데, 귀엽게 생긴 미소년이었어요. 메이린 학생이 나올 때까지 입구 앞에서 기다리겠대요."
기숙사 관리원이 눈을 찡긋하며 메이린을 지나쳤다. 메이린은 '엑'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알고 지내는 남자애들이라고 해봐야 둘밖에 없는데.'
공용 목욕탕까지는 너무 멀었다
메이린이 재빨리 왔던 길로 달려가서 기숙사 방에 돌아왔다. 화장실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메이린이 문을 힘껏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만 쫌 하고 나와 이 기지배야! 나 똥 쌀 거야!"
"꺄아아아!"
힘으로 룸메이트를 쫓아낸 메이린이 화장실에서 신속하게 꾸민 듯 안 꾸민 듯 단장을 마쳤다. 그러곤 키젠 교복의 겉옷만 어깨에 걸치고 뛰어나갔다.
잠시 후.
"......."
메이린이 어처구니없는 미소를 흘렸다.
"그 귀엽게 생긴 미소년이란 게 너냐?"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