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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68화 (6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8화

메이린이 이맛살을 구겼다.

"아, 닥쳐. 그건 그렇고, 무슨 용건이길래 여자 기숙사까지 온 거야?"

시몬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손뼉을 쳤다.

"메이린, 오늘 스타일 좋네. 머리 새로 한 거야?"

"야!!"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질렀다.

"자꾸 그 딕 냄새나는 칭찬 그만하고 용건을 말해!"

시몬이 바로 대답했다.

"이번 주말에 같이 스터디하자."

"하아, 역시 속셈이 있었군."

메이린이 이마를 덮으며 한숨을 쉬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난 혼자 공부하는 게 편해."

"같이 하면 좋잖아. 잘하는 과목도 다르니까 서로서로 물어보고...... 아, 물론 넌 전 과목 다 잘하겠지만, 그래도 다른 애들도 가르치면서 하면 너도 기억에 잘 남을 거 아냐."

"그건 그렇긴 한데......."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누구누구 오는데?"

시몬이 손가락을 접었다.

"카미바레즈는 바로 오기로 했고, 딕은 로체스트에 내려갔는데 늦어도 오후에는 온다고 했어."

"알았어. 나도 하던 공부가 있어서 지금 바로는 안되고, 한두 시간 뒤에 들릴게."

"그럼 그때 보자."

메이린과 헤어진 시몬은, 관리원에게 부탁해서 허락받은 빈 강의실로 향했다. 적당히 책상 네 개를 모아놓은 다음에 교과서를 펼쳤다.

'세팅도 끝났고, 한번 해볼까!'

시몬이 쭉 기지개를 켜며 전의를 다지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몬! 여기 계신가요?"

"아, 카미. 들어와."

문이 달칵 열리고 사복 차림의 카미바레즈가 강의실에 들어왔다.

화사한 파스텔색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생글생글 미소 지으며 시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주말에도 같이 공부할 수 있다니! 너무 설레요!"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너 공부 진짜 좋아하는구나."

"......."

그녀는 눈동자를 슬슬 굴리다가 갑자기 시몬이 펼쳐놓은 교과서 쪽으로 시선을 휙 돌렸다.

"아! 혈류학 공부하는 거예요?"

"응. 네가 있으니까 혈류학부터 해보려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데, 괜찮지?"

"네! 네! 얼마든지요!"

카미바레즈는 가방에서 소환학 교재를 꺼내며 생긋 웃어 보였다.

"그럼 저도 시몬한테 물어봐도 되죠?"

"당연하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같이 고민해 줄 수는 있어."

두 사람은 바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평화로웠다.

강의실 안에는 사각사각 깃펜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고, 창밖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잠시 완벽한 공간처럼 느껴져서, 시몬은 깃펜을 멈추고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셔 보았다.

"시몬~"

그때 카미바레즈가 시몬을 불렀다.

"저 이거 잘 모르겠어요."

"어떤 건데?"

시몬은 그녀가 별표를 쳐둔 문제를 확인했다. 그의 얼굴이 확 펴졌다.

"아, 좀비 관련 문제구나! 이 문제는 부패공식을 써서 푸는 거야."

"부패공식이요?"

"응, 나도 어제 알게 된 건데......."

아는 문제가 나온 시몬은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카미바레즈는 고개를 기울이며 시몬의 설명을 들었다.

"이렇게 수식을 적용해서 풀면 돼. 하지만 문제를 다시 읽어보면 계절이 고온다습한 여름이라고 나와 있잖아? 여름철에는 부패가 더 빨리 진행되니까 가속값을 고려해서......."

'.......'

카미바레즈는 홀린 듯한 눈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바람이 들어오며, 시몬의 머리카락과 셔츠 자락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집중하고 있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표정. 문제를 설명하면서 셔츠의 팔 부분을 걷을 때 보이는 도드라진 힘줄.

잠시 말이 막히고 어떻게 풀어 설명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아이처럼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는 모습까지.

"자, 이렇게 더해서 풀면 돼. 이해했어?"

시몬이 고개를 들며 묻자 카미바레즈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네! 잘 들었어요! 부패공식이랑, 거기에 계절에 대한 가속값까지 고려해야 하는 거죠?"

"맞아! 잘 이해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

시몬은 다정하게 웃어준 후 다시 자신이 풀던 문제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작게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아으으, 어쩐지 더 집중하기 힘든 것 같아.'

두 사람은 다시 시험공부를 재개했다. 서로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고 대답해 주며 보완점을 찾아냈다.

키젠에 들어오기 전, 학교 공부란 걸 전혀 해본 적이 없던 시몬은 카미바레즈의 노하우가 많은 도움이 됐다.

"이 부분은 꼭 체크해 주세요. 실라지 교수님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으니까요."

"알았어."

시몬이 노트를 펼치고 카미바레즈가 말한 포인트를 필기하고 있는 그때였다.

달칵!

"다들 안녕!"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메이린이 손을 흔들며 강의실에 들어왔다.

"왔어?"

"어서 오세요! 메이린!"

두 사람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맙게 생각해. 같은 조니까 특별히 도와주는 거야. 니들 중 누가 퇴학이라도 당하면 남은 사람들끼리 조 운영하기 힘들어지니까."

메이린이 중얼중얼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리에 앉아 짐을 꺼냈다.

시몬은 그녀가 꺼내는 교재와 노트를 보며 깜짝 놀랐다. 그동안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확실히 공부량이 상당한 듯, 한 과목당 사용하는 노트가 2~3권이 넘었다.

노트들을 쭉 펼쳐놓고, 머리끈으로 머리까지 질끈 묶은 그녀가 깃펜에 잉크를 채워 넣었다.

"근데 여기 되게 좋다~"

메이린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공간도 널찍하고 떠드는 소음도 적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오는 게 공부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다.

"기숙사 자습실보단 낫다고 생각해. 오길 잘했지?"

"......몰라."

그녀가 민망한 듯 둘러대며 교재를 꺼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시선을 마주하며 조용히 웃었다.

"아, 아무튼! 모르는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

메이린이 그렇게 말하며 카미바레즈의 교재를 힐긋 보았다. 별표가 처져 있는 문제가 있었다.

"이거 부패공식 쓰는 거네."

"네! 시몬이 설명해 줬어요!"

메이린이 눈을 깜빡였다.

"카미, 너 부패공식 진짜 몰라? 저번 테스트 소환학 80점대면 당연히......."

순간.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속내를 들킨 사람처럼 시뻘겋게 물들었다.

"모, 몰랐어요!!"

"아, 깜짝이야."

"사, 사실 부패공식은 조금 알았는데 답이 틀리게 나온 거예요! 계절값 대입하는 걸 몰라서! 그, 그래서......!"

갑자기 중얼중얼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에 메이린은 '얘가 왜 이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몬은 다음 문제를 푸는 데 열중하느라 듣지 못했다.

똑똑.

그때 마침 세 번째로 강의실 문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말했다.

"네, 들어오세요."

"......."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문도 열리지 않았다.

"시몬."

메이린이 깃펜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 또 오는 사람 있어?"

"이제 딕뿐이야. 근데 딕은 로체스트에 내려가서 벌써 오진 않았을 텐데. 누구지?"

시몬이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우붑! 우부부붑! 우부붑!

문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

카미바레즈가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움츠리자, 시몬은 괜찮다는 의미로 손바닥을 세운 후 문을 열어젖혔다.

"므 해! 쁠리 여르즈!"

"딕!"

딕은 품에 커다란 박스 같은 것을 두 팔로 안고 있었다. 입에도 포장지를 물고 있었다.

"웃차차."

그가 빈 책상에 박스를 내려놓았다.

"이게 다 뭐야?"

"다음 결투평가 대비를 위한 물건들. 그리고!"

딕이 뭔가를 휙 던졌다. 자리로 돌아온 시몬이 얼른 팔을 들어 붙잡았다.

"같이 먹을 군것질거리지!"

"꺄아아! 고마워요 딕!"

"흐응. 뭐, 눈치는 있네."

딕은 이것저것 로체스트에서 사 온 군것질거리들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흐흐, 시험공부도 뭔갈 좀 먹으면서 해야 잘되지 않겠냐."

"꼭 그런 말 하는 애들이 공부 못한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포장지를 뜯고 있는 메이린이었다.

"야! 딕! 이거 어떻게 뜯어!"

"그냥 다른 것부터 해."

"나 이거 먹고 싶다고!"

메이린은 최애로 선택한 곡물쿠키 포장지를 붙들고 힘으로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시몬이 팔을 내밀어 포장지를 건네받더니, 뒤쪽 절취선을 따라 스르륵 뜯어냈다.

"......."

괜히 민망해진 메이린이 포장지를 돌려받으며 조그맣게 '땡큐' 하고 중얼거렸다.

"다 됐다! 먹자!"

"잘 먹을게!"

"감사히 먹겠습니다 딕!"

딕은 군것질거리라고 했지만 사실상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는 구성이었다. 디저트나 과자류에서 시작해서 닭튀김 같은 것도 있었다.

네 사람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간식을 먹었다.

"근데 로체스트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 빨리 왔네."

시몬이 딕의 팔꿈치를 툭 치며 말했다. 딕이 닭튀김 하나를 입에 넣으며 넉살 좋게 웃었다.

"적당히 진행 상황만 보고 왔지! 시험 기간이니까 나도 공부 좀 해야 할 거 아냐."

"네크로맨서 상점 갔을 때, 사장님이 너 안부 물으시더라. 언제 키젠에서 잘리고 오냐는데?"

"하하하하하하!"

시몬의 농담에 딕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다가 턱을 쓸었다.

"흠, 이 몸이 로체스트 상인회 영입 1순위긴 하지."

"그럼 빨리 나가등가. 왜 여기서 시험공부하고 있냐."

메이린이 과자 포장 두 개를 한꺼번에 뜯으며 말했다. 딕이 손가락을 휘휘 흔들었다.

"그야 내가 키젠 학생이어야 진행되는 사업도 있으니까."

"그런데요 딕! 말 나온 김에 어떤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신 거예요?"

카미바레즈가 물었다.

"워낙 준비하는 게 많아서 설명하기 복잡한데, 가장 간단한 건 배송서비스야."

"배송이요?"

"엉. 평일인데 당장 로체스트에 내려가서 사야 하는 물건들이 있을 수 있잖아? 나나 시몬처럼 맨날 파수꾼들 피해 내려갈 수도 없고. 그래서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받아서 리스트화 한 다음에, 다음 날 기숙사 용품 들여올 때 같이 얹어서 키젠 내부로 들여오는 거지."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그거 기숙사 측이랑 이야기가 된 거야?"

"당연하지! 사감님이랑 다 이야기했어. 내가 또 수완을 발휘해서 주문품목 팸플릿도 다 만들었지."

"대단해요 딕!"

그때 카스텔라를 집으려던 딕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어, 뭐야. 여기 있던 카스텔라 어디 갔어?"

딕이 포장지를 들어 내부를 살폈지만 텅 비었다. 그가 순수하게 감탄한 표정으로 메이린을 보았다.

"와, 이걸 혼자 다 먹었다고? 돼지냐?"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발끈했다.

"뭐, 돼지? 죽고 싶냐?"

"공부 못하는 놈 어쩌고 하더니 먹성 살벌하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어서 그런 거거든!"

"아하하! 싸우지 마세요!"

시험공부가 다소 뒷전이 된 느낌이었지만, 시몬은 이렇게 다 함께 웃고 떠드는 지금 이 순간에 높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생활이란 걸 조금만 더 일찍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똑똑똑.

그때 강의실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났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야, 시몬. 이제는 더 올 사람 없는 거지?"

"응. 진짜 없는데."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그러자 문밖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나야!"

"......?

그 성의 없고 적나라한 대답을 듣는 순간, 시몬은 문 앞에서 정지 버튼을 눌린 것처럼 멈춰섰다.

이 여자아이 목소리는 설마.......

아니, 근데 이 사람이 여긴 왜?

시몬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그때, 달칵! 하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며 그림 같은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조그만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손을 번쩍 올리며 방긋 웃었다.

"안뇽 시몬! 오랜만이야!"

예상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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