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화
시몬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네, 네프티스 님?'
"아! 먹을 거다! 먹을 거!"
네프티스가 총총걸음으로 뛰어가 시몬의 의자 위로 낑낑대며 올라왔다. 이내 눈을 반짝이며 군침을 꼴깍 삼켰다.
"꺄아아아! 누구야 얘는?"
"너무너무 귀여워요!"
네프티스를 본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네프티스는 순진한 눈망울을 말똥말똥 뜬 채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모르는 건가?'
시몬이 기겁하며 팔을 뻗었다.
"자, 잠깐만 얘들아!"
"과자 먹고 싶니?"
"응!"
네프티스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자 메이린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미바레즈가 얼른 딕을 돌아보았다.
"먹여도 되죠? 딕?"
"어? 어어......."
"와아아!"
허락이 떨어지자 네프티스가 허겁지겁 군것질거리들을 집어 입에 넣기 시작했다.
복슬복슬한 두 뺨이 탱탱하게 부풀었다. 그녀가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싰서!"
"꺄아아아아아!"
"이것도 먹을래?"
메이린이 포장지를 벗기고 쿠키를 내밀었다. 네프티스가 입을 앙 벌리며 한입 크게 깨물었다.
"냠냠!"
"먹었다아!"
"저도! 저도 해볼래요!"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시몬이 다급하게 말했다.
"잠깐만 얘들아! 이분은......!"
"너무 귀여워~ 이름이 뭐니?"
카미바레즈의 상냥한 물음에 정신없이 음식들을 입안에 넣고 있던 그녀가 활짝 웃었다.
"응! 난 네프티스라고 해!"
"꺄르르르!"
"귀여워!"
......전혀 안 믿는 눈치다!
키젠 관계자가 아닌 대륙민들은 300살 먹은 네프티스의 정체가 작은 꼬마 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수십 년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고, 키젠이라는 이름 뒤편에서만 움직였다. 가끔 모습을 드러내야 할 때는 소녀가 아닌 다른 모습을 취했다.
무엇보다, 네프티스라는 네 글자가 갖는 이름의 무게와 공포는 수많은 상상과 억측을 낳았다.
대륙민들은 네프티스가 인간을 초월한, 인간과 괴물 사이에 있는 어떤 끔찍한 마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물론, 네프티스가 작은 소녀의 모습이란 이야기도 알려지긴 했지만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지금 그런 의심을 전혀 못 하고 있었다.
여기서 네프티스가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어, 어쩌지?'
시몬은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한편, 정보력이 뛰어난 딕은 이미 상황파악을 끝냈는지 그녀들을 외면하며 다른 자리로 옮겨가고 있었다.
'딕! 어떻게든 좀 해봐!'
시몬이 눈짓 발짓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딕은 시몬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들과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딕?"
뒤늦게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돌려 딕을 보았다. 그는 굳은 얼굴로 의자 위에 꿇어앉아 있었다.
"왜 갑자기 거기서 무릎 꿇어요?"
"무, 무슨 소리야! 난 평생 이렇게 앉아왔는데!"
딕이 진땀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네프티스가 중간중간 묘한 시선을 딕에게 보내며 그의 입을 막고 있었다.
"맛있니?"
메이린은 오랜만에 또래 소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자 네프티스가 기분 좋은 듯 헤헤 웃었다.
"응! 마시써!"
"아으으, 심장 아파......."
"이렇게 예쁜 애는 처음이에요!"
마음껏 과자를 먹고 작은 배를 퉁퉁 두들기던 네프티스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곤 시몬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시몬! 잠시 나 좀 볼래?"
"......아, 넵."
두 사람은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시몬이 얼른 말했다.
"네프티스 님.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애들이 못 알아봐서......."
"헤헤, 괜찮아! 맨날 겪는 일인데 뭘! 과자도 맛있었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시몬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몬도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기다렸다.
"흐응."
그녀가 삐딱하게 미소 지었다.
"드디어 네 군대를 손에 넣었구나. 시몬."
"......!!"
시몬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는 다시 아이처럼 웃는 얼굴로 돌아와 시몬의 손을 잡았다.
"여기서 이야기를 하기엔 좀 그러니까. 장소를 옮겨볼까?"
"네?"
네프티스가 시몬의 손을 잡은 채로 뛰어올랐다.
시몬은 순식간에 두 다리가 붕 떠오르는 부유감과 함께, 마치 차원을 뛰어넘는 기분을 느꼈다.
눈을 뜨니, 다른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여긴 또 어디야?'
누군가의 방이었다.
크림색 컬러와 핑크 컬러의 조합이 어우러진 벽지와 프릴 달린 커튼, 선반에는 귀여운 동물 인형이나 아기자기한 장식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무척 좋은 냄새가 났다.
'설마.'
시몬은 고개를 돌려서 외형적으로 이 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녀를 보았다.
"네프티스 님, 이런 취향이......."
"여기 내 방 아닌데에."
"네?"
그때 뒤쪽에서 사락 하고 이불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시몬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의 붉은 눈동자와, 물기가 살짝 남아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소녀가 보였다.
"로, 로레인!"
시몬의 얼굴이 화아악 달아올랐다.
로레인은 집에서 입는 편한 반바지 차림에 상의는 속옷이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팔로 몸을 가리고는, 네프티스를 바라보았다.
"엄마."
"응!"
"텔레포트로 제 방에 남자애를 데려오시는 건, 그냥 대놓고 저 골탕 먹이는 거죠?"
"그게 무슨 소리야!"
네프티스가 양 허리에 손을 올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너희들한테 동시에 할 말이 있으니까 여기로 온 거지!"
"하아아."
한숨을 푹 쉰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뜩였다.
"엄마는 항상 그런 식이에요."
"흥, 너야말로!"
네프티스가 방방 뛰었다.
"시험 기간인데 또 늦잠 잤지? 시몬은 직접 조원들 모아서 그룹스터디까지 하는데!"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안 그래도 요즘 교수들한테 계속 찔 들어오는 거 몰라?"
"그깟 공식 같은 거 좀 몰라도 제 실력이랑은 아무 상관 없잖아요!"
그녀들 사이에서 살벌한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이야기 내용으로 보면 전형적인 잔소리하는 엄마와 반항하는 딸의 싸움이었지만, 또 한발 물러나 보면 겉보기엔 영락없는 자매 싸움이었다.
'......기숙사에 가고 싶다.'
졸지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모녀간의 싸움에 껴버린 시몬은 창백해진 얼굴로 벽에 붙어 있었다.
"빨리 끝내줘요 엄마. 그리고 시몬?"
"아, 응."
"자꾸 힐끔힐끔 눈 돌리지 말아줄래?"
시몬은 속으로 눈물을 머금었다. 나도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고.
로레인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옷걸이에 걸려 있는 아무 겉옷이나 꺼내 몸에 둘렀다. 시몬은 이제야 제대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자, 시몬? 일단은 네가 제보해 준 이야기 말인데."
네프티스가 근처의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며 말했다.
"제보요?"
"응! 키젠에 잠입한 스파이 말야."
로레인에게 들었구나.
시몬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단은 믿을 만한 심복들에게 수사 의뢰를 해놨어. 조금씩 단서도 찾아가고 있고."
"아, 다행이네요."
"하지만 널 찾아온 건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서야."
네프티스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배신자가 아무래도 네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시몬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네프티스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저번 사이클롭스 평가 기억나지? 그때 너희 조가 상대했던 사이클롭스가 특별히 강했던 건, 생포 당시의 약물이나 저주 부작용이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손을 썼기 때문이야."
"......!"
네프티스가 빙긋 웃었다.
"당연히 그 의도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사고사 위장.
시몬은 침을 꼴깍 삼켰다.
"시몬."
이번엔 로레인이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사람을 금지된 숲에서 만났다고 했으니까, 스파이는 키젠 본부 쪽보다는 학교에 있을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 네가 여기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생명의 위협을 받을지도 몰라."
"응, 그런 거지."
네프티스가 눈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우리 로레인이 너 걱정 많이 하더라!"
"엄마!!"
"암튼, 정말로 키젠의 보호 조치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
"......."
시몬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키젠에서 퇴학당하는 게 걱정이라면, 네 룸메이트인 카쟌처럼 유급처리해 줄 수도 있어.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고향에 돌아가서 있다가, 내년에 다시 시작하는 거야."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제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시몬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금의 제 생활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학교에 남게 해주세요. 저 나름대로도 단서를 찾고 있으니 도움이 될 거예요."
로레인은 입술을 꾹 깨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고, 네프티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당연히 그렇게 말할 거라고 예상했어! 넌 리처드의 아들이니까."
그녀가 아공간에서 은빛의 목걸이를 꺼냈다. 시몬이 저게 뭘까 싶어서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몸을 낮춰달라는 듯 손짓했다.
시몬이 얼른 한쪽 무릎을 꿇었고 네프티스가 까치발을 들어 시몬의 목에 목걸이를 직접 매주었다.
"이게 뭐예요?"
"아티팩트야."
그녀가 말했다.
"최근에 대륙에 뒤숭숭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중이라, 나도 온전히 너한테만 신경 쓸 수가 없거든. 그러니 이걸 줄게. 이 목걸이에 담긴 힘이 널 지켜줄 거야."
시몬은 목걸이에서 흐르는 영롱한 빛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가 가진 그 어떤 물건보다 비싸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에 이 아티팩트가 위험을 경고하면, 넌 지체없이 하고 있던 모든 걸 그만두고 그 장소에서 이탈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네프티스가 고개를 돌려 로레인을 보았다.
"너도 우리 시몬 신경 좀 써주고."
"......알고 있어요 엄마."
로레인이 새침하게 대꾸했다. 그때 네프티스가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일어나앙! 빨리 일어나아!"
"아, 아파요!"
"시몬."
네프티스가 로레인의 팔을 잡아당기며 시몬을 돌아보았다.
"다시 스터디하던 곳으로 보내줄 테니까 애도 쫌 데려가! 요 게으름뱅이!"
"엄마!"
로레인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내가 거길 왜 가요!"
"흥! 이렇게라도 안 하면 집 밖에 안 나갈 거잖아!"
"스터디라면서요! 내가 끼면 뻘쭘하기만 하고 시몬 친구들한테도 민폐예요!"
로레인이 그렇게 소리치며 힘주어 네프티스의 팔을 뿌리쳤다. 네프티스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훌쩍.
갑자기 그녀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흐윽. 흑! 으아아앙! 딸이라고 있는 게 맨날 내 속만 썩여어어! 바보! 바보! 로레인은 바보오오!"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우는 네프티스의 모습은 전형적인 꼬마애의 떼쓰는 모습이었다.
시몬은 어쩔 줄 몰라서 눈치만 볼 뿐이었고, 로레인은 조금 찔리는지 이마를 누르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아, 알았어요. 갈게요."
"응응! 그럼 우리 로레인 잘 부탁해 시몬!"
바로 울음을 뚝 그친 네프티스가 침대에서 폴짝 내려왔다. 완벽한 태세전환에 시몬은 조금 당황했지만, 로레인은 익숙한 듯 투덜거리며 옷장 문을 열었다.
"두 사람 다 준비 끝나면 밖으로 나와!"
네프티스가 콧노래를 부르며 방 밖으로 나갔다. 로레인은 옷장에서 교복을 꺼냈다.
"미안, 그냥 조용히 한 시간 정도만 있다 갈게."
"아냐, 아냐. 스터디 인원이 늘어나면 우리야 환영이지."
로레인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시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왜 그래?"
"나 옷 갈아입는 것까지 보려고?"
그 말에 얼굴이 시뻘게진 시몬이 다급히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 * *
그렇게 잠시 후.
7조의 스터디에 로레인이 합류했다.
"......."
"......."
메이린, 카미바레즈, 딕은 유명인인 로레인을 알아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게 다섯 명이 마주 앉은 강의실에서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힐끔힐끔 눈동자만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메이린은 시몬에게 설명을 요구하듯 지그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딕은 심장이 열 개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방금 네프티스를 봤다가, 이번에는 로레인이라니!
"이쪽은 L반의 로레인이라고 해."
반면 시몬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로레인을 소개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같이 스터디를 하고 싶은데, 괜찮지?"
세 사람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아도 무조건 괜찮아야만 했다.
무감정한 얼굴로 주위를 슥 훑어본 로레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