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4화
쿵! 쿵! 쿵! 쿵!
발소리가 점점 더 빨라진다. 시몬 일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방을 경계했다.
이내 주위의 수풀을 뚫고 거칠게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러슬락보다 컸다.
"놈이 보스야!"
"......확실히 크긴 크네."
짜리몽땅한 일반 너슬락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고, 몸에 무수한 상처들이 보였다. 할퀴어진 상처 부위엔 털이 자라지 않고 흉흉한 맨살이 드러났다.
-구룩! 구루루루룩!
놈이 자세를 낮췄다. 뱃살이 툭 튀어나온 앞모습과는 달리 뒷모습은 척추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마르고 유연해 보였다.
놈의 시선은 골렘의 핵으로 향해 있었다.
시몬이 골렘을 준비하는 동안 주위의 칠흑이 요동치는 걸 감지하고 나타난 것이다.
"온다!"
너슬락이 돌진했다. 시몬도 앞으로 뛰어나가며 말했다.
"딕! 방패!"
"오케이!"
딕이 인챈트를 건 방패를 시몬에게 던졌다. 시몬은 방패의 손잡이를 붙잡고 턱 끝까지 당긴 다음, 너슬락과 격돌했다.
터어어엉!
"우왓!"
시몬이 힘 싸움에서 밀려 뒤로 날아갔다.
그 충격 때문인지, 완성 중이던 골렘의 팔 부위의 흙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시몬!"
딕이 검을 쥐고 달려가며 말했다.
"이 녀석은 우리한테 맡기고 골렘의 완성에 집중해!"
"알았어."
"엄호할게요!"
시몬이 물러나는 동시에 카미바레즈가 혈류탄을 발사했다. 날아오는 투사체를 본 너슬락이 가볍게 옆으로 뛰어서 피해냈다. 그 모습을 본 딕이 식은땀을 흘렸다.
'보기보다 반사신경이 좋아!'
너슬락이 다시 골렘을 노리고 움직였다. 딕이 정면으로 달려가 막으려는데, 그보다 더 빠르게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소녀가 있었다.
화르르르륵!
그녀가 손짓하자 검은 불꽃이 비처럼 쏟아졌다. 화염은 주위의 풀들을 불사르며 타올랐고, 너슬락도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저건 우리가 먹을 거라니까! 불태우는 건 좀 참아!"
딕의 외침에 메이린이 발끈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지금 그게 문제니? 아니, 그보다! 먹는다고 해도 어차피 불로 익힐 거잖아!"
파밧!
너슬락이 불이 없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메이린과 딕도 너슬락을 따라 달리고 있는데, 딕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초벌구이로 하면......."
"집중 좀 해! 미친놈아!"
"난 언제나 집중하고 있어."
터엉!
너슬락이 바닥을 강하게 딛더니 두 사람을 뛰어넘을 기세로 높이 도약했다.
그 모습을 본 딕이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는 동시에, 몸을 회전시키며 뒤쪽으로 그것을 던졌다.
촤아아악!
허공의 넓은 범위에 새하얀 그물이 펼쳐지며 공중에 뜬 너슬락의 정면을 가렸다.
딕이 그대로 흑마법을 발동했다.
'인챈트!'
그물 전체가 칠흑으로 새까맣게 물들었다. 딕은 기민한 몸놀림으로 금속 말뚝을 꺼내 바닥에 박은 다음 그물을 말뚝에 걸었다.
"비켜!"
메이린이 팔꿈치에 칠흑을 끌어모아, 그대로 말뚝 위를 강타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말뚝이 바닥 깊게 박혔다.
"아얏!"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팔꿈치를 쓸었다. 딕은 얼른 고개를 들어 너슬락을 살폈다.
그물이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결국 힘이 떨어진 너슬락에 바닥에 떨어졌다.
"됐어! 잡았다!"
지직!
그러나 워낙 크고 구멍도 숭숭 뚫려 있는 그물의 특성상 인챈트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위가 있었다.
찢어진 부위를 귀신같이 찾아낸 너슬락이 그쪽으로 빠져나가 시몬을 향해 달려갔다.
"딕! 이 밥팅이가 진짜......!"
쩌어어어어어어엉!
메이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굉음이 일며 너슬락의 몸이 기역 자로 꺾인 채 날아갔다. 이내 나무를 몇 개나 박살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모두가 입을 딱 벌리며 뒤를 바라보았다.
"기다렸어?"
시몬이 주먹을 뻗은 채로 씩 웃어 보였다. 그의 위에는 커다란 머드 골렘이 시몬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으하하! 나이스 커버 시몬!"
"마무리 부탁해 시몬. 그리고 딕, 넌 좀 이따 보자."
-구루룩! 구루루루룩!
피범벅이 되어 바닥에 처박혀 있던 너슬락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격분한 듯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알아서 와주면 나야 좋지."
시몬이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너슬락이 머드 골렘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손톱의 길이가 세 뼘이 될 정도로 길어졌다.
촤락!
골렘의 몸체에 세 갈래의 할퀸 상처가 났다.
그러나 딱 그 정도뿐.
머드 골렘은 두 팔을 깍지 낀 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 시몬."
딕이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거 오늘 우리 저녁이니까 살살......."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골렘의 깍지 낀 두 손이 그대로 너슬락을 내리꽂았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며 바닥이 깊게 파였다.
"아이고."
"꺅!"
주위에 있던 딕과 카미바레즈가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 그런 충격을 받고도 살아 있는지, 너슬락이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번엔 머드 골렘이 다리를 들어 올렸다.
콰아아아아앙!
이어지는 짓밟기.
그 모습을 본 딕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다진고기 볶음으로 하면 되겠다."
"......넌 갑자기 왜 그렇게 먹을 생각에 집착하냐?"
* * *
홍펭의 임무는 무사히 완수했다.
보스를 사냥하고 나머지 잔당까지 깔끔하게 청소한 시몬 일행은, 이제 휴식을 취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때, 누군가가 수풀을 뚫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들 여기 계셨군요."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짧은 크루컷 헤어스타일, 그리고 어쩐지 뚱한 표정의 남자.
홍펭 휘하의 조교, 브레드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했으니 홍펭 교수님께서 기다리는 곳으로 넘어가시죠."
"네!"
드디어 끝났다!
다들 화기애애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며 브레드의 뒤를 따랐다. 수풀 너머 바닥에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조교 선생님!"
"먼저 갈게!"
메이린, 딕, 카미바레즈가 순서대로 마법진을 밟고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시몬이 마법진을 밟으려는데.
"잠시만."
브레드가 팔을 들어 막았다.
"그쪽은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
"잠깐이면 됩니다."
시몬이 그를 돌아보았다.
"글쎄요. 하실 말씀이 있다면 넘어간 뒤에 하시죠?"
"......."
브레드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푹 쉬더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쩍!
우지끈 소리와 함께 나무 한 그루가 통째로 쓰러졌다. 그의 뒤로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왔다.
"야."
브레드의 눈빛이 흉흉하게 변했다.
"두 번 말 안 한다. 조교고 키젠 학생이고 나발이고, 그냥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하잔 거야."
"......."
분위기를 보니 단단히 벼르고 나온 모양이다.
아무래도 간단히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앞장서시죠."
두 사람은 텔레포트 마법진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 마주 보고 섰다.
브레드가 분위기를 잡으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아, 요즘 애새끼들은 X발 개념이 없어도 너무 없어. 나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네 진짜."
브레드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화를 삼켰다.
"제가 잘못을 한 게 있다면 알려주시죠."
"뒤질라고 진짜."
브레드가 인상을 확 구겼다.
"네가 뭔데 홍펭 교수님을 부려먹어? 뭐 X발? 서바이벌 스킬을 가르쳐 주세요? 하하하! 개념 처 밥 말아 먹었네 진짜. 홍펭 교수님이 무슨 네 개인과외 선생이냐?"
시몬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받았다.
"저와 교수님 사이의 일을, 조교 선생님께서 왈가왈부하는 건 월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의 아니게 주말에 불려와서 저희를 데리러 오신 건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
파악!
시몬이 입을 다물었다. 브레드가 걷어찬 돌멩이가 시몬의 옆에 있던 나무에 틀어박힌 것이다.
나무가 움푹 들어가며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지금 그딴 지랄 하려고 부른 줄 알아?"
브레드가 두꺼운 손가락으로 시몬을 가리켰다.
"넌 X발 지금 홍펭 교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있는 거야."
"......네?"
"하! 자각도 없네 이 새끼는."
브레드가 퉤! 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특례 1번 입학이라고 아주 세상이 만만해 보이지? 교수님이 네게 직속제자 제안을 했다는 건 알고 있다. 넌 계속 그걸 가지고 살살 간 보면서 교수님을 이용하고 있는 거야."
시몬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아저씨는 대체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이런 X발 더러운 새끼! 교수님이 얼마나 마음이 여리신 분이신데! 직속제자를 미끼로 그렇게 사람 마음을 이렇게 농락하......."
"오해가 있으십니다."
시몬이 그의 말을 끊으며 정정했다.
"교수님이 제게 직속제자 제안을 한 건 사실이지만, 저는 바로 거절했습니다."
브레드의 눈이 부릅떠졌다.
"거절했다고?"
"예. 애매하게 둘러댄 게 아니라 확실히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교수님은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교수님 개인적으로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꼭 직속제자가 아니어도, 제자로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해주셨습니다. 조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교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브레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몬이 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번에 오두막에 초대해 주신 것도, 감사하게도 교수님이 먼저 제안해 주신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야."
브레드의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지금 그걸 나더라 믿으라고 지껄이는 소리냐? 그럼 홍펭 교수님이 아무 이득도 없는 일에 일부러 수고로움을 하고 있단 소린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브레드가 탕! 하고 자신의 가슴을 쳤다.
"나는 교수님을 5년 모셨다. 무려 5년! 교수님의 생각에 대해선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이제 1개월짜리 신입생이 뭘 안다고 지껄여?"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틀렸다. 말이 안 통하는 타입이다.
무슨 말을 해도 죽어도 자기가 옳다고 줄줄 늘어놓겠지.
'아니.'
시몬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투기를 느꼈다.
처음 접근했을 때부터 이 남자는 대화로 풀 생각이 없었다.
"입어라."
브레드가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 시몬에게 던졌다.
방호 슈트였다.
"결투평가나 시뮬레이션에서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순도 방호 슈트다."
"......."
"피차 주절주절 늘어놓을 필요 없이, 그냥 이걸로 정하자고."
브레드가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방호 슈트의 배리어가 깨지기 전에, 네가 날 딱 한 대라도 칠 수 있다면 이 이야기는 없는 거다. 그리고 사과든, 보상이든, 은퇴든, 네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다 하겠다."
"그럼, 제가 한 대도 못 치면요?"
브레드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홍펭 교수님의 직속제자 제안을 받아들여라."
"......!"
시몬의 눈이 커졌다.
'이건 좀 의외네.'
전형적인 질투에 눈이 먼 멍청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마음보다 홍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까?
"그 마음은 안타깝긴 한데요."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당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누가 뭐래도 저급한 쓰레기 짓입니다. 그리고."
시몬은 방호 슈트를 입었다.
"저도 승부라면 물러설 생각은 없습니다."
잠깐 장단에 어울려주는 척하면서,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
시몬의 머리가 비상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