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5화
브레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위세는 좋구나. 간다!"
브레드가 흙바닥을 강하게 내려 앉히며 돌진해 왔다. 시몬은 그 모습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움직임이 특이하다. 고릴라 같은 몸집의 사내가 몸을 좌우로 뒤틀며 다가오는 모습은 대단히 위압적이었다.
'오른손 스트레이트.'
시몬의 고개가 움직이려는 순간, 브레드의 팔이 슉! 하는 소리와 함께 중간 동작 없이 눈앞에 도착했다.
쩌억!
쓰나미 같은 충격이 배리어를 넘어 얼굴을 강타했다.
시몬이 타격을 받는 동시에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내질렀으나 브레드는 이미 자세를 낮추고 시몬의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쩌엉!
다시 오른쪽.
빠아아악!
다시 왼쪽.
"크윽!"
시몬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방호 슈트가 없었더라면 한 방 한 방이 기절이나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타격이었다.
"하하하! 뭘 하고 있나!"
시몬이 입가를 슥 닦고는 어떻게든 상대의 움직임을 쫓았다.
'이 새끼, 진짜로 날 이길 생각이냐?'
그 모습을 본 브레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솔직히 브레드 본인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무슨 변명을 해도 이건 키젠 5년 차 조교가 1학년 신입생을 두들겨 패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야기를 들은 백중 백이 자신을 비난할 것이다. 분풀이, 혹은 괴롭힘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화가 안 가라앉아!'
쩌어어어억!
제대로 된 일격이 복부에 틀어박혔다. 시몬의 몸이 크게 꺾였고, 이어지는 브레드의 엘보가 시몬의 뒤통수를 가격해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 새끼가 홍펭 교수님의 직속제자가 된다. 그럼 더더욱 지금 버릇을 고쳐놔야 해!'
브레드가 다리를 들어 시몬의 머리를 짓밟으려는 순간.
터업!
오히려 시몬이 브레드의 발목을 비틀어 붙잡았다.
'......무슨!'
화악!
동시에 시몬의 두 다리가 구불거리는 뱀처럼 브레드의 다리를 휘감았고, 연결 동작으로 몸을 뒤집으며 힘을 가했다. 브레드의 몸이 휘청이며 등을 보이는 자세가 됐다.
'관절기?'
그리고 시몬의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스켈레톤이 브레드에게 창을 던졌다.
'요놈 봐라.'
불안정한 자세였지만 브레드는 기민하게 손바닥에서 칠흑을 모아 폭발시켰다.
마투학의 기술인 '풍쇄'의 응용. 거친 풍압이 창과 스켈레톤을 날려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시몬은 브레드의 다리를 풀면서 반대쪽으로 빠져나갔다.
"능숙하군. 키젠에 오기 전엔 격투가였나?"
브레드의 물음에 시몬이 두 주먹을 세워 들었다.
"그냥 아버지 밑에서 영주일 공부했습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브레드가 재차 돌진해 왔다. 시몬은 스켈레톤 두 기를 꺼내 좌우로 보내고는 자세를 낮췄다.
'다른 조건은 생각할 필요도 없어. 한 대만 맞추면 내 승리야.'
브레드가 달려오는 속도에 더해, 시몬도 칠흑을 밟고 냅다 돌진했다.
거의 충돌할 정도로 두 사람의 거리가 좁아지자 시몬이 팔을 뻗었다.
"......!"
브레드의 몸이 아래로 확! 사라졌다. 시몬의 팔이 허공을 가르는 동시에 허리를 강하게 붙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네놈이 어떻게 나올지야 뻔하지!'
완벽한 저먼 수플렉스의 자세. 브레드가 몸을 뒤집으며 그대로 허리를 새우처럼 꺾었다.
시몬의 머리와 목이 바닥에 처박히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어났다.
가뿐히 기술을 성공시킨 브레드가 팔을 풀고 일어났다.
부우우웅!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시몬의 다리가 브레드의 팔에 팍! 소리를 내며 막혔다.
'쓰러지면서 발차기라니. 이 새끼는 충격도 없나?'
이 킥은 페이크. 브레드는 재빨리 반대쪽 팔로 얼굴을 가렸다.
터어엉!
예상대로 시몬의 반대쪽 다리가 부딪치며 충격파가 일어났다. 다시 시몬의 다리가 되돌아가며 무수히 많은 발들이 뻗어 나왔다.
발차기 계열의 연타 기술이었다.
후웅! 후웅! 후웅!
브레드는 뒤로 물러나면서 어깨를 젖혀 피해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하긴 해. 진짜 이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지?'
쪽팔리는 일이긴 했지만, 고작 신입생을 상대로 피가 끓었다.
전형적인 공부만 잘하는 특례 1번 쭉정이라고 생각했는데, 홍펭 교수님이 왜 이런 녀석에게 쩔쩔매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새끼는 피지컬도, 타고난 센스도 있어. 하지만 자세가 불안정하고,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전문가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
홍펭 교수님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눈앞에 이런 천재가 있는데 가르치고 싶어 안달 나지 않을 수가......!
우지끈!
브레드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는 자신에게로 두 그루의 나무가 X자를 그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시몬이 보낸 스켈레톤들이 도끼로 나무를 쳐서 쓰러뜨린 것이다.
'어느 틈에 스켈레톤을......!'
감히 자신을 상대하면서 사념에 접속할 여력이 있다니.
브레드는 시몬의 발차기를 피하는 동시에 두 주먹에 칠흑을 휘감았다.
스릉. 스릉.
브레드가 주먹을 펼치자, 톱니 모양의 칠흑이 칼날처럼 날아가 나무를 가뿐히 두 동강 냈다.
이번엔 마투학 기술 '착검'의 응용이었다. 반으로 갈라진 나무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브레드가 자세를 다잡았다.
"후웁!"
시몬이 계속 돌진해 왔다.
'이만 끝내자.'
브레드가 허리를 뒤틀며 힘껏 주먹을 뻗으려는 순간, 시몬은 이를 악물고 이마를 먼저 들이댔다. 브레드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새끼가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
"본 네일."
시몬이 손가락을 까닥 끌어 올렸다.
퍼벅. 퍽.
"......!!"
브레드의 경악한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스켈레톤의 날카로운 뼈마디가 허벅지에 상처를 냈다.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뭐야. 이게 왜 여기서......!'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바닥에 쓰러진 나무 표면에 스켈레톤의 뼈들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처음부터 다 설계된 상황이었나!'
잠시 상황파악에 온 신경이 팔려 있던 브레드가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부아아아아아앙!
허공에서 몸을 뒤튼 시몬의 다리가 거대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브레드가 다급히 팔로 머리를 가렸다.
빠아아아악!
"커흑!"
얼마나 빠른지 제대로 못 막았다. 코에 핏물이 튀어 오르며 브레드가 뒷걸음질 쳤다.
시몬이 바닥에 내려와 씩 웃었다.
"이걸로 다른 변명도 못 하겠죠? 제가 이겼습니다."
뚝.
하고.
브레드는 이성을 붙잡고 있던 인내심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흐. 하하. 하하하하하!"
쿠구구구구구구구!
브레드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세의 칠흑이 솟구쳐 올랐다.
공중으로 뻗어 나가던 칠흑들이 이내 그의 몸을 의복처럼 휘감았다.
마투학 전공자의 상징 '흑의(黑衣)'.
어느새 브레드는 새까만 갑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인정. 인정이야."
브레드가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졌고, 약속은 유효하다. 어떤 처분이든 네 말에 따르겠다. 하지만 키젠을 떠나기 전에!"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여기서 널 조져놓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말이야!"
"......."
시몬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약속과 다르지 않나요? 어디까지 추해지실 생각입니까?"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
"네,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시몬이 두 팔을 축 늘어뜨리자 브레드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하는 거냐! 당장 자세를 잡아라!"
"당신과 어울려 주는 것도 이제 인내심의 한계가 오네요. 저도 제 마음대로 할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빨리 두들겨 패시던가요."
"이 새끼가......!"
브레드가 살기를 흩뿌리며 다가와 시몬의 멱살을 붙잡은 그때.
"브레드!!!"
쩌렁쩌렁!
고막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외침이 섬을 뒤흔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브레드가 고개를 돌렸고, 이내 그의 입이 딱 벌어졌다.
"호, 홍펭 교수님......?"
홍펭이 살벌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브레드는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을 느끼며 재빨리 흑의를 해제했다.
"브레드 조교."
홍펭이 다가와 브레드를 노려보았다. 평소의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이게 무즌 일인지 설명하제요."
브레드가 열중쉬어 자세로 땀을 뻘뻘 흘렸다.
"시, 시몬 학생에게 대련 지도를......."
짜아아악!
홍펭이 브레드의 뺨을 때렸다. 그것만으로 브레드의 몸이 수십 미터를 날아가 흙바닥을 뒹굴었다.
'아.......'
바닥에 쓰러진 브레드가 뺨을 감싸 쥐었다.
5년간 홍펭을 모시면서,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맞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한 방으로 깨달았다. 이 힘은 홍펭이 확실하다.
"일어나제요."
그녀의 말에 브레드가 꼿꼿하게 몸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뺨은 시뻘겋게 부어 있었다.
"뒤를 돌아요."
브레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조교에게 있어 가장 고통즈러운 모습으로 있으제요."
"예, 예? 고통스러운 모습이라면......."
"실시."
그 말에 브레드가 즉시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몸을 쭉 들어 올렸다.
그 상태로 손가락 끝으로 몸을 밀어 올리더니 손가락 하나로 몸무게를 유지하고는 흑의로 만든 옷자락들을 펼쳐서 하늘로 세웠다.
체력과 칠흑을 둘 다 운용해야 하는 상태. 딱 봐도 미친 듯이 고통스러워 보이기는 했다.
"지몬!"
홍펭이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이 깊은 안도감으로 물들었다.
"다친 곳은 없나요?"
"네, 괜찮습니다. 방호 슈트를 입어서......."
"얼굴이 많이 부은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시몬의 뺨을 두 손으로 꽉 붙잡더니 마사지하듯 빙글빙글 돌렸다.
"교, 교수님?"
"여기는 괜찮아요? 여기는?"
그러면서 한 손으로 시몬의 팔뚝과 복부를 마구 더듬었고, 다른 손으로는 시몬의 뺨을 붙잡아서 찰떡처럼 늘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심 가득한 손길.
시몬은 이를 악물고 소리 죽여 말했다.
"흐즈므르......."
사실 이 여자는 홍펭이 아니다.
홍펭으로 변신한 에르제베트다.
원래는 시몬의 명령으로 너슬락의 시체들을 수거하러 왔다가, 시몬과 브레드의 싸움이 터지는 바람에 홍펭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개입한 것이다.
에르제베트는 언젠가 키젠에서 탈출할 때를 대비해 키젠 교수들 및 중요 인물들의 목소리를 기억해 두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기울여 시몬에게만 들리도록 그의 귀에 귓속말했다.
"어떤가요? 이제 소녀도 군단장님에게 도움이 되지 않사옵니까."
"......덕분에 살았고 고맙긴 한데, 좀 떨어져 줘."
그녀가 히죽 웃더니 시몬의 교복 셔츠의 단추를 붙잡고는 홍펭의 목소리를 냈다.
"지몬. 여기 상처를 좀 봐야 할 것 같아요."
"......거긴 아무 상처도 없습니다 교수님."
시몬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브레드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말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시몬이 얼른 가자고 손짓하자, 에르제베트는 아쉬운 얼굴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브레드 조교."
"예, 옛! 교수님!"
브레드는 급기야 칠흑으로 만든 흑의로 스스로의 몸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라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이다.
"이번 일은 정말 실망했어요. 지금부터 20지간 동안 그 형태를 유지하다가 돌아가제요."
"알겠습니다!"
20시간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냐?
시몬이 그런 눈으로 물었지만, 에르제베트는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듯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내일부터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절대로 나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이번 일을 입에 담거나 떠올리는 행동을 하지 말아주제요. 그냥 아예 없었던 일처럼 행동하란 거예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찢어 죽이고 싶을 것 같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지몬 학생에게 손대지 마제요. 만약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두 번의 관용은 없어요."
"......예, 알겠습니다."
"가요. 지몬."
에르제베트가 시몬의 손을 잡고는 데려갔다.
브레드는 감히 뒤를 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