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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8화 (7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8화

키젠 트레이닝 센터.

푸우우우.

늦은 저녁 시간까지 묵직한 대형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새까만 덤벨이 올라갈 때마다 상반신과 팔 근육이 빵빵하게 부풀었다가,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옆에서 아령을 깔짝대던 남학생이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말했다.

"헤, 헥토르."

터어어엉!

대형 바벨이 떨어지며 바닥이 울리는 커다란 소리가 났다. 학생이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푸우우우......."

헥토르는 목에 맨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바벨에 일렁이던 검은빛이 사라지며 다시 원래의 철제기구 형태로 돌아왔다.

"애들은?"

"어...... 어! 옆 건물에 전부 모여 있어."

"긴말 할 것도 없다. 내 말을 전달해."

우드득 우득.

헥토르 목을 만지자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섬 생존평가에서 반드시 시몬 폴렌티아를 잡는다."

헥토르의 눈에 불길이 치밀었다.

드디어 시몬을 꺾을 기회가 왔다. 결투평가에서 놈이 매칭되기만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너희들도 이번 사이클롭스 평가에서 알았겠지만, 놈이 두 눈 뜨고 멀쩡히 있는 이상 우리는 절대 A반을 장악할 수도, 반 최고 성적을 거머쥘 수도 없다."

"그, 그렇지."

"A반은 무려 키젠 부총장이 직접 담당하고 있는 반이다. 이 반을 장악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해."

이야기를 듣던 남학생은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키젠에서 정적이나 경쟁자를 제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파벌들도, 동맹들도 납득할 수 있는 목표다.

그런데 헥토르가 시몬을 대하는 건 정적 제거 이상의 뭔가가 느껴졌다.

그는 왜 이렇게 시몬의 억제에 집착하는 걸까. 무어 가문과 폴렌티아 가문의 악연 같은 게 있기라도 한 걸까.

"알았으면 가라."

"어, 응!"

헥토르가 다시 대형 바벨을 들어 올리자 바벨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체력과 칠흑 운용을 동시에 단련하는 훈련법이었다.

"후욱!"

헥토르의 몸에 땀에 비 오듯 흘렀다.

독기가 잔뜩 올라 있는 모습이었다.

* * *

키젠 외곽지역.

수년간 방치되어 낡고 먼지가 쌓인 폐건물은 금방이라도 폭삭 무너질 것만 같았다. 구멍 난 천장으로 달빛이 새어들어 들어왔고, 중간중간 깜빡거리는 전구가 음침한 분위기를 더했다.

바로 이 폐건물에, 짜증스럽게 거미줄을 걷으며 들어오는 남학생이 있었다. 다름 아닌 시몬과의 결투평가에서 깨졌던 하렌 코크였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자신을 부른 그 사람은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간 낭비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손에 들고 있던 구깃구깃한 편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하렌이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시몬 폴렌티아.'

아직도 마지막 순간, 그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

-네가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네 힘이 아닌 '그런 힘'으로는 절대 날 못 이겨.

뿌득!

이가 갈린다. 마치 전부 알고 있다는 투.

시몬은 자신이 바힐에게 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위험했다. 왜 아직도 키젠에 알려서 문제 삼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상 빠르게 쳐낼 필요가 있었다.

하렌이 주먹을 꾹 쥐었다.

'이 힘.......'

시몬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이 힘은 누가 뭐래도 진짜다.

저번 주 결투평가에서는,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던 학생을 힘으로 찍어누르고 중위 스쿼드로 올라왔다.

그 일로 하렌 코크는 반 학생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았고, 최근에는 잘 나가는 학생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자존감이 미친 듯이 오르고 있는 하루하루였다.

'하지만.'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바힐은 이 힘이 유지되는 기간은 기껏해야 두 달이라고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바힐 교수님의 눈에 들어야 해.'

유일한 방법은 바힐의 직속제자가 되는 것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저번에 실패한 임무를 완수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시몬을 꺾고, 바힐에게 가치를 증명해 보이리라.

"거, 거기 누구 있어요?"

그때 폐건물에 낯선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렌이 말했다.

"나 혼자 있어. 누구지?"

"아."

고개를 빼꼼 내민 여학생이 하렌의 교복 차림을 보고는 안도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너도 편지를 받고 온 거야?"

"너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제시카 카나노르. H반이야."

"G반의 하렌 코크. 너도 시몬에게 원한이 있냐?"

그녀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 사과도 받았고, 원한 같은 게 있는 건 아닌데......."

"근데 왜?"

"그냥......."

제시카는 시몬과의 결투를 보고 느낀 게 많았다.

까마득하게 높은, 태생 자체가 다른 괴물을 상대하는 기분. 그때를 돌이켜보면 묘한 고양감이 있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었다.

따앙-

그때 폐건물에서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발소리가 났다.

따앙- 따앙-

하렌과 제시카가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렌이 소리쳤다.

"누구냐!"

그때 발소리가 뚝 끊겼다. 두 사람이 코어에서 칠흑을 끌어올리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그때.

화아아아악-

폐건물의 천장에서 달빛이 흐드러지게 쏟아졌다.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급히 눈을 가렸다.

하늘에서.

누군가 내려왔다.

온몸을 가리는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머리 아래까지 눌러썼기에 정체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었기에 체격과 나이, 성별도 추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이질적인 힘이 느껴졌다.

"누, 누구......?"

제시카가 겁먹은 얼굴로 동공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편지를 보낸 사람 같았다.

그는 대답 대신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펄럭!

"......!"

입고 있던 로브의 뒤로 커다란 날개가 펼쳐졌다. 그가 후드를 손끝으로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당신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습니다."

후드 너머의 모습을 본 하렌이 눈을 부릅떴다.

"다, 당신은......!"

* * *

아일랜드 서바이벌 당일.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상기된 표정의 키젠 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도합 14개의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이 준비되는 중이었고 A반도 그중 하나에 올라서 있었다.

중앙에 커다란 대형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그 주위로 작은 마법진들이 나뭇잎처럼 퍼져 나가는 형태였다. 학생들은 작은 마법진 위에 올라가 있었다.

"조, 조금 불안하네요."

카미바레즈가 어깨를 떨며 말했다.

"저만 여러분들이랑 떨어지면 어쩌죠?"

"위치랑은 상관없어 카미. 완전히 무작위 이동이래."

시몬이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불안하면 자리 바꿔줄까?"

"아, 아녜요!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여자애들아."

딕이 팔로 뒷머리를 받치며 물었다.

"니네 진짜 몬스터 고기 해체해서 먹을 거냐?"

"저, 저는 그냥 낚시 연습했어요. 헤헤......."

카미바레즈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메이린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배고프면 배운 대로 몬스터를 먹어야겠지만, 일단은 최대한 보급품을 노려봐야지 뭐."

보급품은 아일랜드 서바이벌의 세부룰 중 하나다. 서바이벌 진행 중에, 가끔 하늘에서 대형 마법진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정확히 1분 후에 마법진에서 보급품이 내려온다. 식량은 물론, 이 서바이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아티팩트도 들어 있다고 한다.

경쟁은 상당히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 근방에 있는 학생들은 다 보급품을 노리고 온다고 보면 된다.

"자! 준비해 주십시오!"

그때 하수인들이 뛰어다니며 전파했다.

"이제 섬으로 텔레포트하겠습니다!"

"절대 마법진 원 밖으로 나가지 말아 주십시오!"

학생들이 긴장한 얼굴로 마법진 안에 다리를 모으고 기다렸다.

시몬이 두근두근하며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헥토르가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이 보였다.

'쟤랑 만나면 또 대판 싸우겠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부딪힐 수밖에 없다면, 이번에 붙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웅!

우웅!

그때 마법진에서 불이 들어왔다. 곳곳에서 환호와 비명이 교차했다.

"다, 다들 파이팅이에요!"

카미바레즈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흐흐, 다들 잘 살아남고 키젠에서 봐!"

"내가 말했다? 괜히 중앙으로 가겠다고 나대다가 죽지만 마! 최하점만 어떻게든 면해!"

화아아아아악!

마지막까지 잔소리를 하는 메이린의 목소리가 흩어지며, 마법진의 빛이 점점 더 거세졌다.

시야가 뿌옇게 변하며 두 다리가 두둥실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 * *

한동안 눈부신 빛뿐이던 세계에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시각보다 몸의 촉각이 먼저 돌아오며 바람이 몸을 간질이는 게 느껴졌다. 시몬은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시각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위를 살폈다.

"......와아."

정말로 정글 한복판에 뚝 떨어졌다.

여길 봐도 초록빛, 저길 봐도 초록빛이다. 이렇게 울창하고 식물의 생식밀도가 높은 장소는 처음이었다.

이파리가 큼직큼직한 열대 식물들과, 무분별하게 자라나 나무를 뒤덮은 덩굴들까지. 게다가 무척이나 고온다습한 기후. 공기가 무거웠고 비가 왔는지 흙이 축축했다.

"여기서 나흘간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지?"

시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묘한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터질 듯한 카타르시스가 마구마구 샘솟는다.

"재밌겠다!!"

시몬의 외침에 깜짝 놀란 새들이 푸드덕 날아갔다. 교복에 매달려 있던 피어의 분신도 깨어나 시몬을 보았다.

[도착했나 보군. 그런데 왜 그렇게 흥분해 있나?]

"모험이 저를 부르고 있어서요."

[......미친놈. 설마 우리의 목적을 잊은 건 아니겠지?]

시몬이 씩 웃었다.

"물론이죠. 거인부대의 대장, 빅크룸을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내야 하잖아요?"

시몬은 그렇게 말하며 다리를 들더니 강하게 바닥을 짓밟았다.

찌직! 하고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

시몬이 허리를 숙여 그것을 들어 올렸다.

[윽! 뭐냐? 그 징그러운 건!]

시몬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제 간식이에요."

그물 무늬의 커다란 뱀이 축 늘어져 있었다. 시몬은 신이 나서 죽은 뱀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쉽게 간식거리도 구하고, 스타트가 좋네요!"

[......소년, 너 평소보다 심하게 들떠 있는 것 같은데.]

"네."

주위의 정글을 한번 둘러본 시몬이 씩 웃었다.

"누가 뭐래도 여긴 제 무대니까요."

레스힐의 미친 생존전문가가 케라섬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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