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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0화 (8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0화

아공간 팔찌에서 피어를 불러낸 시몬은, 이번엔 자신의 아공간을 열었다.

"자, 지금이에요. 아무도 없을 때 제 쪽으로 들어와 주세요. 피어."

피어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갑갑하다! 밖에 나오자마자 또 들어가야 하나?]

"어쩔 수 없어요. 누가 보기 전에 빨리요."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으로 군단을 옮긴 이유가 있었다.

섬으로 텔레포트 되기 전에, 키젠에서는 1학년 전체의 아공간 검사를 예고했다.

하지만 시몬의 입장에선 새로운 대장인 '빅크룸'을 설득하기 위해 어떻게든 피어를 데려가야 했고, 그래서 약간의 트릭을 썼다.

"군단장니이임~"

갑자기 들린 굵직한 목소리에, 시몬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조교 브레드가 달려오고 있었다.

저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몸집의 대머리 사내가, 양팔을 옆으로 흔들며 앙증맞게 달려오는 모습은 숨이 턱 막히는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보고 싶었사와요!"

브레드가 시몬의 팔에 매달려 애교 섞인 목소리를 냈다.

시몬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위화감에 인상을 쓰며 말했다.

"왜 온 거야? 에르제. 옆에 조교 선생님도 계셨잖아."

"그 여자한텐 그냥 볼일 보고 온다고 했사와요."

"으...... 들키기 전에 빨리 돌아가."

일의 경과는 이렇다.

저번 주 주말, 시몬은 브레드가 먼저 제안한 내기 결투에서 승리했고, 그에게 어떤 일이든 시킬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시몬은 브레드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찾아갔다.

당시의 브레드는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짐을 싸고 있었다.

-왜 궁상맞게 이러고 있어요? 저는 조교 선생님께 은퇴를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브레드가 고개를 들어 시몬을 보았다.

-그 대신, 지금부터 제 체스말이 되어주셔야겠습니다.

시몬은 브레드의 약점을 확실히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브레드는 즉각 반발했다.

-감히 신입생 따위가 나를 종처럼 부릴 생각이냐!

-싫으시면 어쩔 수 없죠. 홍펭 교수님께 가서 모든 사실을 말하겠습니다.

그 말에 브레드의 얼굴이 즉각 굳어졌다.

-명색이 교육자의 입장인 당신이 내기 대련을 명목으로 키젠 학생을 구타했죠. 그리고 가장 가관인 건 당신이 이겼을 때의 조건이.......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홍펭 교수님의 직속제자로 들어가는 거였죠?

-.......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그건 교수님을 위한 일이 아니라, 교수님의 결정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홍펭은 이미 시몬의 직속제자 거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브레드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자신이 이기면 홍펭의 직속제자로 들어가라며 냅다 시몬을 두들겨 팼다.

이건 홍펭의 뜻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위다.

-교수님은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단순한 다툼 정도로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 얼마나 당신에게 실망할지......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시리라고 믿어요.

-큭......!

사실상 시몬에게 그런 내기를 강요한 것부터가, 브레드 스스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은 셈이었다.

그렇게.

시몬은 브레드라는 훌륭한 체스말을 손에 넣었다. 마침 브레드는 섬에 함께 들어가는 조교 멤버로 선발된 상황이었다.

시몬은 그의 아공간을 빌린 다음, 아일랜드 서바이벌 기간 동안 절대로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잠적해 있으라고 명령했다.

-......나를 사칭할 생각이군.

-어떻게 아셨어요?

-키젠 학생들의 수작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살벌한 바닥에 대역쯤이야 흔한 일이야.

브레드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거기서 네놈이 들켜도 내 탓은 아니다.

-물론이죠.

그렇게 브레드는 잠적했고, 에르제베트가 대신 브레드로 변신해서 이 섬에 왔다.

피어는 브레드의 팔찌 아공간에 들어가 있다가 무사히 섬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조교들의 아공간은 검사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다들 소녀의 연기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사와요!"

에르제베트가 브레드의 걸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떨어질 것 같으니까 제발 그만해."

"아무튼! 이제 빅크룸을 만나러 가는 거죠? 저도 따라가고 싶어요."

"절대 안 돼."

시몬이 단칼에 거절했다.

"갑자기 브레드가 자기 위치에서 사라져 버리면 학교에서 의심할 거야. 이번 일은 나랑 피어면 충분해."

[크흐흐! 소년의 말이 맞다! 얼른 꺼져!]

"피어까지! 다들 너무하옵니다."

에르제베트가 풀이 죽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돌아가겠사와요."

"......."

막상 풀죽은 그녀의 모습을 보니, 시몬은 조금 양심이 찔리는 것을 느꼈다.

이번 작전은 브레드 영입에서부터 사칭까지, 사실상 에르제베트가 다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좀 냉정하게 대한 것 같기는 했다.

[뭐 하냐, 소년.]

그때 피어가 시몬의 머릿속으로 말을 걸었다.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포상을 내려라. 부하의 공을 치하하는 것도 군단장의 역할이니!]

'네? 무, 무슨 포상요?'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텐데.]

물론 알고는 있었다.

시몬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우락부락한 남정네가 세상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르제. 잠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볼래?"

"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명령대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몬이 뻣뻣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군단장님?]

그러곤 두 팔을 뻣뻣하게 뻗어 그녀의 어깨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

너무 놀란 에르제베트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했다. 시몬은 그녀에게만 간신히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 수고했어. 에르제."

에르제베트의 동공이 커졌다.

마음이.

마음이란 것이 아이스크림처럼 줄줄 녹아 흘러내렸다.

"흠흠."

얼굴이 시뻘게진 시몬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제 다시 브레드로 변해서 위치로 돌아가. 괜히 의심받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시몬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피어의 분신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큰 소리로 낄낄낄 웃어댔다.

[.......]

잠시 멍하니 시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에르제베트가 어깨를 스르륵 쓸었다. 그러곤 두 뺨을 붉게 물들인 채 얼굴을 감쌌다.

[......정말로 사랑스러우신 분.]

아무래도 백번 천번 충성을 맹세해도 모자랄 듯했다.

* * *

밤이 다가오고 있다.

키젠 학생들은 낯선 환경과 몬스터에 대해 조금씩 적응했고, 이제는 중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

으레 열대지방이 그렇듯, 케라섬의 일교차는 무척이나 컸다.

후덥지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쌀쌀함을 느낄 정도로 추워졌다. 게다가 밤이 되면 몬스터들의 활동이 더 왕성해진다는 건 기본상식이었다.

"밤을 보내려면 결국 집을 지어야겠는데."

"일단 불부터 피우자!"

체온 유지와 숙면을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집을 지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학생들은 집터를 찾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정글 한복판에서 자기엔 몬스터들의 공격이 무섭고, 강이 있는 곳이나 너무 탁 트인 평지는 다른 학생들의 기습을 받을 염려가 있었다.

머리를 써서 나무 위에 집을 지으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문제는 기술이 없었다.

"와, 허리야. 진짜 죽겠다."

"어차피 하룻밤 있을 거잖아? 그냥 이 지랄을 안 하는 게 힘을 아끼는 방법이 아닐까?"

나무를 잘라서 끌고 오던 학생들 중 몇몇은 짙은 회의감을 느꼈는지 야영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질수록 온도는 뚝 떨어져 갔고, 어떻게든 바람 정도는 막는 게 현명해 보였다.

그렇게 학생들이 여러 수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동안.

따악! 따악! 따악!

스슥. 스스슥.

시몬의 집은 거침없이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균등한 크기의 나무들을 깔고 튼튼한 줄기로 몇 번이고 칭칭 휘감아 묶어 단단히 고정시켰다.

기둥을 올리고 미리 파둔 홈 위에 지붕을 얹어 뼈대를 구축한 다음, 아공간에서 꺼낸 큰 나뭇잎을 지붕처럼 덮었다.

"넌 저기 펜스를 묶어. 가져온 나무들은 오른쪽에 두고."

따닥. 딱.

한 명의 인간과 네 기의 언데드가 힘을 합치자 뚝딱 집 한 채가 완성됐다.

크기는 시몬 혼자 들어갈 만큼 작았지만, 하루 지낼 집 정도로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퀄리티였다.

시몬이 만든 집은 키젠 학생들의 진행방향과는 정반대인 해변가에 가까운 곳에 지었다.

해변가 근처라서 육식 몬스터들의 주요 행동반경에서도 살짝 빗겨나가는 위치. 여러모로 완벽했다.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가 없어서 좋네."

모닥불도 눈치 보지 않고 피웠고, 벌레나 뱀을 막는 약초를 잘 짓이겨서 물에 살짝 섞은 다음 집 근처에 고루고루 발랐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 시몬은 바로 완성된 나무집으로 쏙 들어가 보았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무척이나 아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이제."

시몬이 반듯하게 누워서 나뭇잎 이불을 덮었다.

"자야지."

[뭐? 벌써 잔다고?]

피어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렇게 늦은 저녁도 아니지 않으냐!]

"일찍 자고 내일 새벽부터 활동하려고요. 아, 참!"

자리에서 일어난 시몬이 교복에 매달려 있던 피어의 분신을 꺼내서 집밖에 장식처럼 매달아두었다.

[뭐냐! 이게 무슨 짓이냐 소년!]

"불침번 좀 서주세요 피어. 언데드는 잠이 없잖아요."

[큭! 있을 수 없다! 나는 군단의 관리자다! 감히 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부탁드려요~ 그리고 여기 이거 둘 테니까 새벽 4시에 깨워주세요."

시몬은 손목에 찬 시계를 피어의 분신이 볼 수 있도록 내려놓고는 집안으로 쏙 들어갔다.

[나를 알람으로 이용하다니!!]

시몬은 아예 언데드들의 사념까지 끊은 뒤, 나뭇잎을 덮고 잘 준비를 했다.

잠시 몸을 뒤척이던 그가 순식간에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졌다.

* * *

[일어나라 소년! 네놈이 말한 시간이다!]

피어의 분신이 외치는 소리에 시몬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추운지 어깨를 쓸며 코를 훌쩍였다.

"우흐. 밤은 춥긴 춥다. 고마워요 피어."

[내 반드시 이번 굴욕을 기억할 것이다!]

"돈 들어오면 바로 군단에 병력 충원할게요."

[이제야 포상을 내릴 줄 아는군.]

시몬은 밖으로 나오며 하품을 했다.

청록빛으로 아름답게 물든 새벽하늘이 보였다. 건너편에 얼핏 보이는 바다에서 쏴아아- 하는 시원한 소리가 났다. 퍽 운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럼 출발해 볼까요?"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는 스켈레톤 네 기를 꺼냈다.

"자, 셋을 세면 드는 거야. 하나, 둘, 셋!"

시몬은 스켈레톤들에게 집을 통째로 들어 올리게 했다.

처음부터 가볍게 1인용으로 만든 집이라 어렵지 않게 들렸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말씀드렸잖아요?"

시몬이 씩 웃었다.

"한 방에 중앙으로 내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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