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2화
시몬이 중앙으로 넘어온 타이밍은 절묘했다.
낮이 밝고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중앙의 케라섬으로 건너오기 위한 네 개의 다리는 살벌한 전쟁터로 변모했다.
강을 건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 학생들은 분쟁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단돈 50포인트에 모십니다!"
특히 서쪽 섬에서는 특례 7번 입학생 '엘리사'와 그가 속한 E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파벌이 다리를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은 텅패드의 포인트 전달 기능을 이용해 포인트를 통행료처럼 받았다.
그 덕분에 서쪽 섬에서 시작한 학생들이 한동안 섬 안에 묶여 버리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서쪽 섬에서 엘리사 파벌 타도를 목적으로 대규모 동맹이 일어났고, 엘리사는 눈치 빠르게 다리에서 후퇴했다.
그렇게 섬 전역의 전투 양상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전개되는 한편, 중앙 케라섬에 일찍 도착한 시몬은 느긋하게 빅크룸 수색에 전념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일랜드 서바이벌의 상위권 라인에 들어가는 것보다, 빅크룸을 찾아내 계약하는 게 시몬의 입장에선 더 중요했다.
"후우, 그런데 좀처럼 흔적을 찾기 힘드네요. 피어."
시몬이 수풀을 헤치며 말했다.
[어쩔 수 없다. 원래 놈은 흔적을 남기는 타입이 아니니까.]
교복에 매달린 피어의 분신이 말을 받았다.
[그래도 이제 키젠 학생들이 중앙섬에서 싸우기 시작하면, 자극받은 빅크룸이 나타날 확률도 자연히 높아지겠지!]
"그걸 기대해야겠네요."
피어의 정보에 따르면, 빅크룸은 평소엔 길바닥에 자생하는 버섯처럼 보일 정도로 작다고 한다.
하지만 위협을 받거나 분노할수록 몸집이 점점 더 커지고, 다 컸을 때에는 몸길이가 20미터를 훌쩍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눈에 띌 터, 무작정 흔적을 찾는 것보다는 빅크룸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분쟁지역에서 기다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앙을 향해 걷고 있으려니, 멀리서 까마득한 협곡이 보였다.
케라섬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중앙이 우뚝 솟은 산처럼 되어 있는데, 점점 경사가 높아지다가 바로 여기서부터 확 올라간다.
'확실히 높긴 높구나.'
이번 서바이벌 아일랜드의 최종 목적지인 '불괴의 저택'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 협곡을 넘어가야 했다.
협곡을 직접 기어오르는 건 관련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어렵다. 워낙 눈에 잘 띄어서 지상에서의 원거리 공격에 취약해진다는 문제점도 있다.
물론 평범하게 올라갈 루트가 없지는 않다.
시몬이 협곡을 따라 계속 걸으니 계단처럼 언덕이 층층이 형성된 지형이 나왔다. 고지대의 계단식 농지가 떠오르는 장소였는데, 조잡한 천막이나 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움집에서 작은 난쟁이 같은 것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어, 엄청 많네.'
2급 몬스터 케라족(Kera).
이 섬이 케라섬이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케라족은 대륙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고블린'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고블린보다 더 작고 깡마른 비실비실한 모습이다. 성체가 되어도 인간의 6~9세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도 몬스터답게 번식능력이 어마어마하고, 무기를 다룰 수 있다는 이점과 뛰어난 협력성으로 이 섬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개체들이다.
바로 이 케라족 몬스터들의 군락지가, 협곡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길목에 펼쳐져 있었다.
'혹시나 다른 애들이 정리하고 가지 않았을까 싶어서 일부러 늦게 왔는데.......'
곳곳에 움집이 불타고 망가진 흔적은 보인다.
하지만 이 대규모 군락지 전체 규모를 생각해 본다면 새 발의 피인 정도.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이곳을 돌파해야 했다.
부스럭.
군락지에 잠시 신경이 팔린 사이, 뒤쪽 수풀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시몬이 얼른 뒤돌아보며 칠흑을 끌어올렸다. 스켈레톤들도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경계했다.
"잠깐만! 공격할 생각은 없어."
수풀에서 키젠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순순히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나왔다. 이마를 시원하게 깐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였다.
"......누구?"
"C반의 빈센트 웨를리라고 해."
빈센트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저 케라족 주둔지를 넘어갈 생각이지?"
"......어. 그렇긴 한데."
"그럼 우리랑 손을 잡자! 솔직히 저 정도 규모면 혼자서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
"우리?"
빈센트가 슬쩍 웃으며 뒤를 가리켰다.
"네가 경계할까 봐 안 데려왔지만, 뒤에 여덟 명이 더 있어."
여덟 명이라니.
그 정도의 인원을 잘도 모았다고 생각하며 시몬이 말했다.
"난 혼자 가려고."
"......진심이야? 저긴 대놓고 팀플레이를 시험하려는 의도의 코스라고! 혼자 가는 건 미친 짓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힘을 합치자는 빈센트의 제안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난 다른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 미안해."
아직은 빈센트를 신뢰할 수 없다. 혼자서 돌파할 방법이 있는데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정도로 팀이 급한 것도 아니다.
시몬은 그 말만 남기고는 등을 돌려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빈센트는 혼자서 터덜터덜 동료들에게로 돌아왔다. 동료들은 적당한 장소에 앉아 시시덕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뭐래?"
동료의 물음에 빈센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 혼자 올라가겠다는데?"
"푸핫!"
"허세 부리는 거 봐. 아직 여기서 대가리 덜 깨졌네."
빈센트의 팀은 활기찬 분위기였다. 게다가 둘째 날에 바로 케라섬에 들어온 만큼, 한 명 한 명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따라가서 잡아 올까?"
팀원 한 명이 말했다. 빈센트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시간 낭비야. 그냥 우리 일이나 신경 쓰자."
"나중에 들여보내 달라고 애원하면 조져서 포인트나 챙겨야지."
"하하하!"
빈센트의 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동했다.
케라족 주둔지 앞까지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저 계단형 언덕 위에 난쟁이 같은 케라족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자, 이건 속도 싸움이야."
빈센트가 팀원들을 주목시키며 말했다.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한 발이라도 더 올라가는 게 더 중요해. 키젠인 우리가 케라족한테 당하진 않겠지만 한번 지쳐서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면 주둔지의 모든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할지도 몰라."
모두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에 이야기했던 포지션으로 맞추고, 바로 출발하자."
"오케이!"
"응."
그들은 즉시 돌파 진형으로 섰다. 마투학 지망생 두 명이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칠흑역학, 저주학, 혈류학 지망생 등이 자리를 잡았다.
리더인 빈센트는 진형의 딱 중간에 섰다.
"가자!"
여덟 명의 팀원이 일제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케륵!
-케르륵!
주위의 케라족들도 그들을 발견하고는 달려들었다. 아직 비상경계가 터지지 않아서 그런지 이제 움집에서 하나둘씩 뛰쳐나오고 있는 정도였다.
"케라족쯤이야."
선두의 마투학 지망생들이 주먹에 칠흑을 끌어모아 휘둘렀다.
쩌어억!
가벼운 펀치 한 방에 머리가 꺾인 채 수십 미터를 날아가는 케라족들이었다. 이어지는 후방 학생들의 화력까지 쏟아 부어지며 주위는 깔끔하게 초토화되었다.
"이쪽! 여기가 제일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야!"
빈센트가 팀원들을 이끌었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무서운 기세로 돌파했다. 몬스터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몰려들며 일행은 힘겹게 힘겹게 중턱까지 올라왔다.
"이제 절반이나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빈센트가 박수를 치며 팀원들을 독려했다. 온몸이 땀범벅인 학생들은 뒤늦게 이건 뭔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제 반밖에 안 왔다고?'
싸우면서 언덕을 오른다는 건 보기보다 상당히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덩치가 자신의 하반신 정도밖에 안 되는 재빠른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뒤에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모두가 이를 악물고 뛰었다.
"아아아악!"
무리하게 돌파를 감행하던 도중, 결국 문제가 발생했다.
팀원 중 한 명이 급하게 달리다가 발목이 삐었는지, 다리를 붙든 채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모두가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왜 그래?"
"으으으! 바, 발목이!"
제일 먼저 빈센트가 달려와 그의 어깨를 부축했다.
"이대로 두고 갈 순 없어! 힘내!"
"......고, 고맙다."
부상자가 발생해서 그렇지 않아도 느렸던 속도가 절반 가까이 줄어 들어버렸다.
선두의 마투학 학생은 몬스터들을 때려눕히면서도 찜찜했다.
'내가 쓰레기인가? 여기서 굳이 부상자를 데리고 가면 한 명 때문에 나머지도 전멸인데.'
어차피 진짜로 죽는 것도 아니고, 배리어 게이지가 0%가 되면 비상 방호막이 켜지고 즉시 텔레포트가 발동되어 안전한 장소로 이송된다.
지금은 전원이 멀쩡해도 주둔지를 뚫을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하는 상태.
굳이 다리를 다친 부상자를 데리고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 워낙 좋은 팀 분위기였기에 면전에서는 말을 못 했지만 비슷한 심정이었다.
"앞에 열 마리 더!"
"계속 온다!"
돌파하는 속도가 느려질수록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들도 많아졌다.
이제는 체력도 칠흑도 한계. 모두들 한계를 절감하며 포기해 버리려는 그때.
쿵! 쿵! 쿵! 쿵! 쿵!
난데없이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개미떼처럼 무수히 모여 있는 케라족의 촘촘한 밀집 지형을, 그냥 걸어서 돌파해버리고 있는 괴물이 있었다.
"고, 골렘이다! 저거 골렘 맞지?"
"위에 누가 타 있어!"
머드골렘에 올라탄 시몬이 시원한 맞바람을 받으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아래의 피어의 분신이 쩌렁쩌렁 웃음을 토해냈다.
[크하하하하하! 가라! 계속 가!]
몸집이 작은 케라족들에게 있어 골렘은 그야말로 거인 그 자체였다.
다른 공격수단이 필요가 없었다. 골렘이 달리는 것만으로도 무수한 케라족들이 짓밟혀 깔려 죽었다.
몬스터의 야영지를 저렇게 무식하게 돌파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하지만 더없이 효과적이었다. 그 공격적인 케라족들이 이제는 도망치기에 바빴다. 골렘은 마치 양 떼 속으로 들어온 늑대와도 같았다.
"아까 혼자서 올라간다는 애가 저 남자애 맞지?"
"미쳤다 와, 진짜 솔플로 끝까지 올라가겠네."
빈센트의 팀원들은 감탄 반, 부러움 반의 시선으로 시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는 비웃은 주제에 좀 그렇지만, 혹시나 우릴 구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몬과 골렘은 그들을 보지 못한 건지 그냥 쌩하고 지나쳐 버렸다.
그때였다.
-케륵! (무슨 일이냐?)
소란을 듣고 움집에서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케라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케륵! 케르르륵! (인간들이 침입했습니다!)
-케르륵! (내게 맡겨라!)
그는 바로 케라족의 족장이었다.
족장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케라족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갔다. 주위의 케라족들이 팔을 번쩍 들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족장이 손에 쥔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화염이 이글거리며 빠르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는 다름 아닌 마법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케라족!
그가 지팡이를 겨누며 마법을 발사하려는 순간.
뿌직!
달리는 골렘의 발에 치여 즉사했다.
시몬은 다른 곳을 보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 뭐지? 뭔가 부딪혔나?'
딱 그 정도의 반응.
그러나 시몬이 보스를 제거해 버린 이 사태의 파장은 컸다.
순식간에 대장이자 명령권자를 잃은 케라들이 혼란에 빠지며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뭐야. 이것들 왜 안 달려들어?"
변화를 눈치챈 건 빈센트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빈센트는 혼자 굳은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더니 앞으로 나갔다.
"뭔가 상황이 바뀐 것 같아! 일단 다들 숨 좀 고르고......!"
-케륵!
-케르륵!
그런데 갑자기 주위의 몇몇 케라족들이 빈센트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빈센트가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 치는데 갑자기 그의 목 앞으로 검이 겨누어졌다.
"허억! 무, 무슨 짓이야?!"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빈센트에게 검을 겨눈 남학생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너만 배리어 게이지가 100%인 건 아냐? 왜 너만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지 않지?"
"......!"
"100%라고? 진짜?"
다른 학생들도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웅성거렸다.
"일부러 우리 체력을 빼려고 빙빙 이상한 곳으로 둘러서 안내하고, 굳이 부상자를 데려와서 신파 찍으면서 속도 늦추고. 딱 보니 각 나오네. 너 설마......."
남학생이 빈센트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잡아 뜯었다.
빈센트가 기겁하며 팔을 뻗었지만, 남학생은 목에 검을 가까이 대는 것으로 그의 행동을 막고 목걸이의 외형을 찬찬히 살폈다.
"쟤들 케라족들이 끼고 있는 거랑 비슷하게 생겼네. 이거 '보급품'에서 나온 아티팩트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보급품에는 식량뿐만 아니라 이 아일랜드 서바이벌에서 도움이 되는 다양한 종류의 아티팩트가 들어 있다.
아마도 이건 케라들이 같은 편으로 생각하게 되어 공격을 받지 않게 되는 물건이거나, 혹은 존경을 받게 되는 효과를 가진 목걸이.
그가 손에 쥔 목걸이를 옆의 여학생에게 던져주었다. 여학생은 스스로 목걸이를 착용하더니 케라족을 향해 다가갔다.
주위의 케라족들이 움찔움찔하며 물러나다가 이내 그녀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여학생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릴 보기 좋게 속였구나? 빈센트."
"아, 아니! 다들 진정해! 내 말 좀 들어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우리가 전부 당한 뒤에 포인트를 챙기려는 수작이었네."
"어쩐지 쟤만 포인트가 많다고 했어."
"우리 말고도 피해자가 또 있는 거야?"
한번 의혹이 나오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목걸이를 낀 여학생이 신호를 주듯 손짓했다.
"더 말할 필요도 없겠네. 잘 가."
빈센트의 목에 겨누어진 검이 그대로 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