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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7화 (8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7화

"흐응."

세르네가 미소를 흘렸다.

군단의 스켈레톤과 송장거미들이 그녀를 빈틈없이 둘러쌌다. 숫자에서 27:2로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그녀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뭐어, 이것도 즐거운 유흥이네요. 상대해 드리죠 군단장님."

그녀가 가늘고 긴 검지를 일자로 뻗었다.

사락.

손가락 끝에 이질적인 순백의 깃털이 올라왔다. 시몬은 잔뜩 집중하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저게 바로 세르네의 고유능력.'

이 대륙에서 극소수의 선택받은 존재만이 손에 넣는다는 힘.

흑마법도, 신성마법도, 순수마법도 뭣도 아닌 규격 외의 '초능력'. 하렌 코크가 사용하는 블랙핸드와는 격이 다르다. 그녀가 깃털을 가볍게 손으로 말아 쥐고는 던졌다.

'빨라!'

시몬이 이를 악물고 숏소드를 꺼내 휘둘렀다.

까드득!

쇳덩이와 깃털이 부딪쳤는데, 박살 나는 건 쇳덩이 쪽이었다. 그래도 간신히 방향은 틀어졌는지 깃털이 시몬의 뺨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 뒤쪽의 나무에 틀어박혔다.

두근!

시몬은 그 짧은 순간, 유황 지옥에서 불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1초 미만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신의 세포와 기관계가 반응하며 진통 효과를 위해 엔도르핀을 쏟아내고 있었다.

'뭐야 이게.'

등판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세르네가 말했다.

"이게 제 힘이에요. 저는 이 깃털에 감정을 담을 수 있답니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깃털이 틀어박힌 나무가 가지를 베베 꼬고 있다. 해충에 온몸을 갉아 먹히고 있다고 느끼는지, 줄기에선 해충을 쫓는 물질을 합성하고 해충의 천적을 유인하는 냄새를 만들어 공기 중으로 흩뿌린다.

시몬은 시큰한 나무액 같은 냄새를 맡았다. 식물계가 이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기쁨이나 분노, 즐거움 같은 일차적인 감정은 물론, 공포나 지배욕, 탈력과도 같은 것들까지 뭐든지 가능하죠."

그녀가 새로운 깃털들을 손에서 일으켰다. 여섯 장의 깃털들이 손 위에서 춤을 추었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단 한 장의 깃털만으로도 개처럼 기어 다니게 만들 수 있답니다. 한번 볼래요?"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됐다.

깃털들이 살벌한 속도로 날아왔고, 시몬은 기겁하며 몸을 띄워 피했다. 깃털이 바닥이 박힐 때마다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락!

그녀가 손끝에서 피어난 깃털 하나를 직접 손에 쥐었다. 깃털이 새까맣게 물들더니 아까의 배 이상의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막 착지한 시몬의 눈동자에 새까만 깃털이 비쳤다.

쩌억!

그때 시몬의 앞으로 뛰어든 피어가 대검으로 깃털을 갈랐다.

[크흐흐! 괜찮나?]

"역시, 에이션트 언데드의 반응속도는 무섭네요~"

세르네가 중얼거렸다. 피어가 순백의 대검을 고쳐잡았다.

[어떻게 할 거냐 소년.]

시몬이 진지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싸우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피어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세르네가 히죽 웃으며 깃털을 던졌다.

피어의 몸이 번뜩이며 위로 올라갔다가 각도가 확 꺾이며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그녀는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깃털을 머리 위로 세웠다.

카가가가가가가각!

검과 깃털이 부딪히며 격렬한 스파크를 뿜어냈다. 어느새 깃털은 방어 마법진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돌아다녔는데, 설마 여기서 에이션트 언데드를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흥!]

피어의 눈에 거친 불꽃이 솟구쳤다.

쾅!

피어의 대검이 방어진을 찢어발겼고, 그 틈에 세르네는 뒤로 도망쳤다.

'웹(Web)!'

시몬이 눈을 부릅뜨자, 곳곳에 흩트려둔 송장거미들이 일제히 거미줄을 발사했다.

그녀는 여유롭게 뒷짐을 쥔 채 사뿐거리는 스탭을 밟으며 피해냈다. 마치 살짝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창병 전진!'

촤아아아아아!

풀숲에 매복하고 있던 스켈레톤들이 창을 내질렀다. 세르네의 몸통을 향해 다섯 개의 창들이 지나갔지만, 그녀는 바닥에 눕듯이 해서 피했다.

"번거롭네요."

파바바바박!

그녀의 몸에서 피어난 깃털들이 주위의 스켈레톤들을 모조리 박살 냈다. 다시 일어난 그녀의 뒤로 이번엔 피어의 산더미만 한 참격이 덮쳐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틈을 주지 않는 정밀한 연계.

화력을 피해 공중으로 도망친 세르네의 앞뒤로,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송장거미들이 달려들었다. 기민하게 깃털을 날려 거미들을 격추시킨 세르네가 더 높은 공중으로 올라갔다.

'역시 깃털에 감정을 싣는 게 전부가 아니야.'

지켜보던 시몬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군단장은 수준이 다르긴 하네요!"

세르네가 지휘자처럼 손을 휘저었다. 바람결에 휘날리던 깃털들의 몸체가 칠흑으로 분해되고, 칠흑은 마법진으로 변형된다.

현역 네크로맨서들도 혀를 내두를 20개 이상의 다중영창이, 그녀에게는 손짓 한번 하는 정도의 난이도.

깃털 하나하나가 공격수단이자, 감정의 전달체이자, 마법진이다.

스무 개의 마법진을 일으킨 그녀가 미소 지었다.

"다크플레어."

"......뭐?"

콰콰콰콰콰콰쾅!

마법진에서 방출된 스무 개의 흑염이 지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스켈레톤들과 송장거미들의 몸이 압도적인 화력에 휩쓸려 일방적으로 터져 나갔다.

쿠웅!

시몬은 간발의 차이로 직격은 피했지만, 배리어 게이지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저게 다 다크플레어라고? 말이 안 되잖아!'

특례 2번, 세르네 아인다르는 이미 학생의 레벨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미적지근하군.]

그때였다. 하늘로 날아오른 피어가 세르네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꽈아아아아앙!

충격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빠르게, 먼저 땅에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피어가 대검을 휘둘렀다.

꽝!

세르네가 깃털을 방패로 바꿔 막아냈고, 피어가 미친 듯이 공세를 이어나갔다.

"큭!"

깃털을 연달아 희생해 막아낸 세르네가 뒤로 멀찍이 물러나며 손바닥을 펼쳤다.

허공 곳곳에 휘날리던 깃털들이 새까만 마법진으로 바뀌며 피어의 주위를 포위했다.

[후우웁!]

피어의 눈이 번뜩였다.

순백의 대검이 한 줄기 궤적으로 바뀌어 허공에 무수한 검로를 남겼다. 이내 하늘을 빼곡하게 뒤덮은 마법진들이 모조리 찢겼다.

[확실히 넌 학생의 수준을 넘어섰다!]

피어가 땅을 걷어차며 뛰어올랐다.

[고작 학생의 수준이지만 말이다!!]

순백의 대검이 세르네의 이마를 쪼갤 기세로 내려왔다.

우뚝.

"걸려 드셨네요."

간발의 차이로 대검이 멈췄다. 피어의 몸 곳곳에 스무 장의 깃털이 틀어박혀 있었다.

"공격을 유도하면서 미리 바닥에 깔아놓은 깃털을 올렸어요."

그녀가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와 손가락으로 두개골을 톡 두들겼다.

하지만 피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기력의 깃털 스무 장. 원래 제 힘은 언데드에게 통하지 않았겠지만, 에이션트 언데드라서 살았네요. 오랜 시간 존재해 온 만큼 사람처럼 사고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가진 존재."

그녀가 고개를 돌려 시몬을 보았다.

"자~ 군단장님? 최고의 카드가 봉인당했네요. 이제......."

시몬이 씩 웃었다.

"그건 네 희망사항이고."

[흐흐! 크흐흐흐흐!]

피어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세르네가 뒤를 돌아보았다.

피어의 몸에 붙어 있던 깃털이 투툭 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확실히 내게는 감정이란 게 존재한다, 소녀! 하지만 고작 이 정도에 흔들릴 정도로!]

쿠구구구구구구구!

피어의 몸에 폭발하듯 검푸른 칠흑이 솟구쳐 올랐다.

[내 의지는! 약하지 않다!!]

의지만으로 세르네의 힘을 파훼한 피어가 대검을 강하게 붙잡았다.

세르네는 급히 뒤로 물러나며 깃털들을 보내 방어 마법진을 펼쳤다.

[더는 손속은 없다! 죽어라!]

피어의 대검이 사방으로 빛을 흩뿌렸다.

<맹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참격이 세상을 반으로 갈아놓으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시몬이 지금까지 본 그 어떤 피어의 참격보다 거대했다.

'큭!'

맹렬한 후폭풍에 나무나 식물들이 뿌리째로 날아간다.

시몬은 팔로 얼굴을 가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피어! 정말로 죽이면 곤란해요! 상아탑 후계자라고요!'

[걱정도 팔자로군.]

피어가 대검을 어깨에 짊어지며 말했다.

[저건 네 생각 이상의 괴물이야.]

쿠구구구-

피어의 말대로, 연기가 걷히며 세르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왼쪽 어깨에 세 개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이 모습을 보이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것도 단 한 짝인 날개. 반대편인 오른쪽에는 날개가 없었다.

이게 바로 그녀가 가진 능력의 정체.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칠흑의 파장이 느껴진다.

'피어. 그 기술 한 번 더 쓸 수 있겠어요?'

[크흐흐! 당연하지!]

'제가 세르네의 시선을 끌면.......'

"근데 우리."

세르네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계속 이렇게 싸울 거예요?"

시몬의 눈이 커졌다.

방금 피어의 참격으로 주위에 쳐둔 세르네의 결계가 갈라진 것이다. 한번 붕괴가 시작된 결계는 쩍쩍 소리를 내며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곤란하다. 결계가 깨지면서 이제 옵저버들의 시야 반경에 들어온다.

'이런, 돌아와!'

시몬이 가상의 레버를 당겼다.

세르네를 포위하고 있던 군단의 스켈레톤들과 송장거미들이 신속히 아공간으로 들어왔다.

세르네도 날개를 보여서는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건지, 다시 몸 안으로 감추는 모습이었다.

'피어도 들어가요.'

[나까지?]

피어가 표정을 굳혔다.

[정체를 들키는 게 문제가 아니야! 저 여자의 깃털은 인간을 간단히 폐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이다!]

'괜찮아요.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시몬은 목에 메고 있는, 네프티스가 준 아티팩트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아공간은 열어놓을게요. 일단 들어갔다가, 혹시나 제가 위험에 빠지면 나와주세요.'

[음, 조심해라!]

피어도 아공간으로 들어가고 세르네의 결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주위가 초토화되어서 그런지, 하늘의 옵저버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 다시 시몬과 세르네만 남았다. 시몬은 가볍게 교복 넥타이를 고쳐맸다.

"이래선 네가 말한 마지막 선택지는 물 건너갔지?"

시몬을 제거하고 그 누구도 군단을 얻지 못하도록 묻어버리겠다는 선택지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위에 키젠의 눈이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러네요. 그럼 이런 건 어때요?"

세르네가 깃털 하나를 뽑아내 뺨에 댔다.

"홧김에 당신을 좋을 대로 가지고 놀다가 시험에서 아웃. 기억은 없애 드릴게요."

"하."

바람이 불었다. 깃털 하나가 살랑거리며 날아와 시몬의 발 앞에 툭 떨어졌다.

-당신은 앞으로 고통스러운 키젠 생활을 하게 될 거예요.

깃털이 마법진으로 바뀌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불운이 겹칠 거예요. 시험에도 떨어지고, 수행평가도 망치고, 그러다 키젠에서 퇴학당해 그들의 보호가 끝나면 제가 찾아가는 거죠. 어때요? 합법적이고 현명한 설득방법 아닌가요?

시몬이 피식 웃으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질기네. 지금까지 다른 애들한테도 그런 방식으로 해온 거지?"

그녀는 무슨 말이냐는 듯 웃는 얼굴로 눈만 깜빡거렸다.

뻔하다. 앞으로 키젠에서 주축이 될 만한 인재를 학교에서 떨어뜨리고, 낙심한 그 학생을 상아탑에서 슬쩍 영입하는 것이다.

인재 빼돌리기 같은 방식.

물론 걸리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녀에게는 키젠에서 퇴학당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어제 메이린의 말에 따르면, 세르네는 키젠 측과의 맹약 때문에 이곳에서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특례 입학은 누가 뭐래도 엄청난 특혜지만, 이 상황을 외교적으로 보면 또 묘하다. 상아탑 같은 대형 조직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후계자를 외부에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까놓고 말해 왕자나 공주가 볼모로 잡히는 느낌.

그런 그녀가 키젠을 싫어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세르네의 목표는 아마도 상아탑의 완전 독립.

'복잡한 일에 끼어든 느낌이네.'

키젠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다.

장차 암흑연합과 대륙을 좌지우지할 인재들이 가득한 곳.

대륙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와 중상모략들이 이 학교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세력다툼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할까. 시몬에게는 다시금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셈이었다.

"세르네."

"네."

"너의 그런 방식에 굴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시몬이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네 방식은 적을 늘리기만 할 뿐이야."

"감히 누구 앞에서 설교를 하시나요?"

세르네가 팔을 치켜들었다. 팔에서 흘러나간 스무 개의 깃털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차기 상아탑주. 대륙을 삼분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힐 자."

그녀가 손가락을 겨누자 깃털들이 총알처럼 날아갔다.

시몬이 칠흑을 밟고 피하려는 그때.

후웅!

허공이 일그러지며 누군가 시몬의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 사람이 취한 것은 팔을 떨쳐내듯 휘두르는 간단한 동작.

파앙!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찢어버릴 기세로 쇄도해 온 깃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 방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떨리는 위압감.

"누가 키젠에서 퇴학당해? 누가 보호를 끝낸다고?"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소름 끼치는 붉은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시몬은 내가 지켜. 상아탑의 개."

키젠의 유력한 차기 총수 후보이자, 암흑연합의 새로운 기둥으로 떠오르는 인물.

로레인이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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