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9화
세르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제가 왜 그쪽을 도와야 하죠?"
시몬이 로레인의 해골마 뒷자리에 올라타며 대답했다.
"내가 빚 하나 진 거로 칠게."
시몬은 그 말만 남기고는 로레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고삐를 잡아당기자 해골마가 거침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헛소리.'
세르네가 싸늘한 표정으로 깃털 한 장을 일으켰다.
깃털이 마법진으로 분해되며 커다란 요격용 발리스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정치는 서툴지?
순간, 시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네 방식은 적을 늘리기만 할 뿐이야.
'.......'
세르네가 이를 빠득 갈았다.
궤변이다.
그녀는 언제나 강자였다.
약자는 취해지느냐 아니면 죽느냐 단둘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정신계 능력이 극의에 다다른 그녀에게 타인의 생각이란 건 결코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방식이, 서툴다고?'
그녀의 시선이 다시 하늘로 향했다.
해골마에 올라탄 시몬과 로레인이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 * *
"몬스터가 폭주했다는 거지?"
"그래."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너 혹시 최근에 네프티스 님께 내 이야기 들은 거 있어?"
"응? 무슨 이야기?"
눈을 깜빡이며 되묻는 로레인의 모습은 알기 쉬웠다. 네프티스는 군단에 대해 로레인에게도 이야기해 준 적이 없다.
시몬과 네프티스만의 비밀. 물론 이번에 한 명 더 알게 됐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아무것도 아냐. 사실 A반 수업에 외부강사로 유명한 트레저 헌터가 방문한 적 있었는데, 그분의 자료에 실려 있던 몬스터야. 가이드북에는 없어."
로레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원래 이 섬에 서식하지 않은 인공적인 몬스터일 수도 있겠네."
"그럴 가능성도 있지."
시몬이 그간 얻어낸 정보들을 로레인에게 브리핑을 하는 사이, 빅크룸과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현재 폭주한 가짜 빅크룸은 거의 20미터를 육박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이제는 강을 건너 남쪽 섬으로 들어왔다.
"이런 미친!"
"저건 또 뭔데?!"
외곽지역에서 조용히 몬스터를 사냥 중이던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초대형 몬스터의 출현에 도망치기 바빴다.
빅크룸이 그들 사이로 지나가며 발길질을 하자 지면이 뒤집히고 나무들이 뿌리뽑혔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대재앙이었다.
"꺄아아아아!"
빅크룸이 걸음을 멈추고 비명을 지른 여학생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거대한 발을 들어 올렸다.
"아......!"
거인의 발바닥이 하늘을 뒤덮으며 다가오자, 여학생은 공포에 질려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후우우우우웅!
바로 그때 빅크룸의 발바닥을 향해 용감하게 날아오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후으읍 숨을 들이마신 그가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꽝!
그러자 그 거대한 빅크룸의 몸이 순간적으로 기우뚱하더니, 중심을 잃으며 뒷걸음질 쳤다.
-오오오!
-브레드 형님! 나이스입니다!
그의 정체는 물론 브레드가 아니라, 브레드로 변신한 에르제베트였다.
그녀의 귓가에는 마력 신호기가 달려 있어서, 이걸로 실행본부 및 다른 조교들과 통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바닥으로 내려오자 여학생이 감격한 얼굴로 소리쳤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교 선생님!"
에르제베트는 이마에 검지를 툭 얹고는 가볍게 튕기는 시늉을 했다.
"여긴 위험하니 멀찍이 물러나 있으렴."
"네!"
두 뺨이 상기된 여학생이 힐끔힐끔 브레드를 돌아보다가 숲속으로 도망쳤다.
'아차, 이거 브레드의 스타일이 아니지?'
브레드는 단순한 근육 바보였다.
잠시 스스로의 컨셉을 되새길 시간을 가진 에르제베트가 마력 신호기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여기는 조교 브레드. 교전으로 알아낸 정보에 대해 전파하겠슴다."
에르제베트 본인이 생각해도 완벽한 목소리 흉내였다.
"해당 몬스터는 사람이 내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 도망치면서 나는 소리는 괜찮지만 비명이나 함성은 위험합니다. 학생들에게 전파해 주십쇼."
-여기는 본부! 수고했다. 즉각 전파하겠다.
-그걸 벌써 알아냈다고? 요즘답지 않게 왜 이렇게 유능하심까?
-그러게. 뇌까지 근육인 줄 알았는데.
다른 조교들의 반응을 보니 직장에서 유능한 타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에르제베트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교들은 내 밑으로 다 아가리 다물도록."
-으하하! 역시 형님!
"그리고 본부. 한 가지 더 전달 사항이 있슴다. 교전은 무조건 피하고 학생들 구조활동 위주로 작전을 펼쳐야......."
에르제베트가 말하고 있는 사이, 다른 한 조교가 빅크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야, 브레드!
칠흑역학 조교의 카리스였다.
-니가 뭔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어차피 학생들 중에 이거 잡을 사람도 없어. 그냥 내가 잡는다!
공중으로 떠오른 그가 거칠게 낫을 휘둘렀다. 무려 10m가 넘는 반달 모양의 검기가 날아가 빅크룸의 등을 베어냈다.
-오케이! 내가 잡......!
빅크룸은 멀쩡한 모습으로 뒤를 돌아보더니 벼락같은 펀치를 날렸다.
쩌어어어엉!
엄청난 속도! 얻어맞은 카리스가 즉각 수백 미터를 날아가 지면에 처박혔다.
-크억! 쿨럭 쿨럭! 아 씨! 이 새끼 겁나 아파아아아아!
신호기로 들리는 외침에 한가득 고통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슴까 카리스 선배. 본부, 다시 전파하겠슴다."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놈은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전은 무조건 피하고 학생들 구조활동 위주의 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카피.
에르제베트도 한때 빅크룸과는 동료 사이였으니 이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었다. 통신기를 끈 그녀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우리 군단장님. 상황 꼬였나 보네.'
빅크룸이 완전히 폭주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하게 된다.
설득도 실패한 모양이고, 이렇게 되면 최대한 피해 없이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괜히 사고로 사망자가 나와서 키젠 본부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지면 일이 귀찮아질 수도 있었다.
'일단은 군단장님과 합류해야겠어.'
* * *
"꽉 잡아 시몬!"
해골마를 탄 로레인이 뒤쪽으로 팔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괴물의 입처럼 위아래로 갈라지더니, 그녀와 똑같은 붉은 눈동자의 실루엣들이 드러났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그 안에서 시뻘건 빛의 기둥이 쏘아져 나가 빅크룸의 몸통을 연달아 꿰뚫었다.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 빅크룸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큭!"
그녀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해골마가 급히 하강기동하고 빅크룸의 팔이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후우우웅!
간발의 차이였다. 시몬은 정신없이 휘날리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시야를 확보했다.
"로레인! 옆이야!"
"......!"
어느새 빅크룸의 다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육중한 몸으로 발차기까지!
그녀가 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겼지만 해골마의 반응이 느렸다.
"시몬! 추락에 대비해!"
시몬이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의 앞으로 깃털이 날아와 방어 마법진의 형태로 펼쳐졌다.
꽝!
골렘의 다리가 마법진에 부딪히며 느려진 사이, 해골마는 무사히 공격 반경에서 빠져나왔다.
'이 능력은 설마......!'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빅크룸의 몸 곳곳을 무수한 깃털들이 슉슉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악!
난도질당한 빅크룸의 신체 곳곳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깃털들은 다시 공중에 떠 있는 백금발 머리카락의 소녀에게로 돌아갔다.
"세르네!"
"흐음."
그녀가 턱을 짚으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물리 공격으로는 안 되네요."
빅크룸의 몸뚱이는 로레인과 세르네에게 입은 상처를 빠르게 회복하는 중이었다. 타격을 입힌 티도 나지 않았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그녀의 손에 휘감긴 깃털들이 쏜살같이 날아가 빅크룸 몸 곳곳에 푹푹! 소리를 내며 꽂혔다.
깃털들에 실려 있는 감정은 '진정'. 그것도 무려 스무 장의 진정 효과다.
평범한 인간이 맞았다면 진정이 아니라 그대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양.
그러나.
―어어어어어어어어!
빅크룸은 더더욱 분노하며 세르네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녀가 이맛살을 구기며 더 높은 상공으로 올라갔다.
"이래서 무식한 언데드는 싫다니까요."
키젠 1학년 중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로레인과 세르네마저도 마땅히 손 쓸 방도가 없다.
두 사람의 공격이 잠시 중단되자 빅크룸은 다시금 지상의 학생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러면 진짜 끝이 없는데."
학생들이 대피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공격으로 시선을 끄는 수밖에 없었다.
로레인이 화력을 퍼부어 빅크룸의 시선을 강제로 돌렸고, 빅크룸이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해골마가 최대한 낮게 비행하며 피해냈다. 이제 바로 아래에 숲이 보였다.
로레인이 다시 고삐를 잡아당겨 상승 비행하려는 그때.
-실행본부에서 전파합니다.
텅패드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이대로 시험중지는 아니겠지?'
시몬은 긴장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케라 군도 남쪽 섬에서 정체불명의 몬스터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쪽 섬의 학생들은 다른 섬으로 강제 랜덤 텔레포트를 진행하겠습니다. 텔레포트 후에는 5분간의 피해 면역 판정을 받게 됩니다.
시몬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포트를 거부하고 싶은 학생은 텅패드에 거절 신호를 입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경우,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실행본부 측에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로레인과 시몬은 즉시 거절 신호를 입력했다.
"시몬!"
로레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넌 이제 중앙으로 돌아가서 계속 시험 쳐! 이건 키젠의 문제......."
"아니. 남을게."
이건 엄연히 내 잘못도 있으니까.
시몬이 굳은 얼굴로 빅크룸을 바라보았다. 남쪽 섬 곳곳에서 텔레포트가 진행되는지 푸른빛이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시모오오오온!"
그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몬이 고개를 내렸다. 브레드로 변신한 에르제베트가 나무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로레인! 나 잠시만 내려갔다 올게."
"뭐어? 잠깐! 너 정말 어디까지 제멋대로 굴 생각......!"
이미 시몬은 해골마에서 훌쩍 뛰어내린 뒤였다.
"내가 다시 신호할게!"
"시몬!"
하늘에서 시몬이 내려오자 에르제베트가 즉시 나무를 딛고 도약했다. 그의 몸을 공주님 안기로 받아내며 가뿐히 지상에 착지했다.
"짠!"
"......."
졸지에 우락부락한 근육남의 품에 안기게 된 시몬이 한숨을 쉬었다.
"이러지 않아도 나 혼자 내려올 수 있어."
"후후, 군단장님도 차암- 부끄러워하시긴."
그녀가 시몬을 내려주고 있는데, 하늘에서 청록빛의 구슬이 떨어지고 있었다.
시몬이 팔을 뻗어 그걸 붙잡았다.
-시몬! 들려?
로레인의 목소리였다. 시몬이 고개를 들자 해골마 위에서 똑같은 장비를 들고 있는 로레인이 보였다.
-마력 통신 장치야. 아래 버튼을 누르고 말하면 돼. 마나 잔량이 얼마 없으니까 아껴 써.
"아, 오케이."
로레인은 바로 해골마를 이끌고 빅크룸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군단장님.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아, 그게."
통신 장치를 끈 시몬은 에르제베트에게 현재의 경과를 세세히 알려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 빅크룸이란 거네요."
"응.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처치해야 해."
"하지만 재생과 거인 능력을 가진 괴물을 무슨 수로......."
[크흐흐흐흐!]
두 사람이 고개를 내렸다.
시몬의 교복에 매달린 피어의 분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게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