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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2화 (9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2화

서바이벌 아일랜드.

마지막 넷째 날.

평가 종료시간은 정오 12시다. 이제 딱 1시간 남은 상황.

불괴의 저택 진입에 성공한 카미바레즈는 가슴 졸이며 저택 입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걱정돼?"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돌렸다.

머리를 감고 왔는지,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쓴 메이린이 과일주스 잔을 내려놓으며 눈을 찡긋했다.

"아, 고마워요."

"너무 걱정하지 마."

그녀도 카미바레즈의 옆에 앉아 자기 몫의 주스를 홀짝거렸다.

"그냥 맥없이 당할 애들도 아니고, 틀림없이 시간 내에 도착할 거야."

"그렇겠죠?"

불괴의 저택 진입 포인트 200점.

최소 중위권 이상 진입을 노린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반드시 들어와야 하는 장소였다.

저택 내부는 비전투구역이고, 이곳에선 모든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정글에서는 잡내 나는 몬스터 고기나 식물 뿌리를 씹어먹었다면, 저택에서는 온갖 호화로운 음식에 디저트, 그리고 샤워시설이나 각종 오락거리까지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모두가 저택에서 쉬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몇몇 학생들은 저택 주위에서 대기하며 안으로 들어오려는 학생들을 저격하기도 했다.

늦게 저택에 진입하는 학생들일수록, 몬스터 사냥으로 대량의 포인트를 챙겼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외부 학생들이 저택에 진입하면 그 자체로도 위협적인 경쟁자가 되지만, 역으로 이들을 사냥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포인트를 배 이상으로 부풀리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저택에 먼저 들어온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동맹'을 맺고, 저택 주위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실제로 후발주자들은 저택의 경비가 너무 삼엄한 나머지 감히 들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 자. 조금만 집중해 줄래?"

그리고 이런 저택파의 대규모 '동맹'을 주도한 인물. E반의 특례 7번 엘리사가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언제나 교복 위에 품이 큰 제독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이제 생존평가도 딱 한 시간 남았어. 다들 밖으로 나가서 저택 방어에 도움을 줬음 해. 지금까지 포인트를 벌어들인 애들이 전부 저택에 들어오면, 우리는 무조건 점수상으로 밀릴 수밖에 없어."

엘리사는 드레스덴 왕국 재상의 딸이다.

아버지의 성격을 똑 빼닮아 그녀 또한 철저한 정치가. 이번 수업에서도 서쪽 섬 다리를 점거하고 학생들에게 포인트를 갈취한 일로 유명했다.

"우리 모두의 성적을 위한 일이야. 부디 협조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녀의 목소리엔 힘과 호소력이 있었고, 주장에는 명분이 있었다. 소속감과 위기감을 자극하며 살살 호소하자 적지 않은 학생들이 저택 동맹에 합류하기로 했다.

엘리사가 고개를 돌려 메이린을 보았다.

"너도 방어팀에 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A반 1위."

메이린이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관심 없네요."

"의외네. 너랑 난 동류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 좋아하지 않아? 저번엔 부총장님 시험지 좀 보여달라고 그렇게 빌어도, 반 이익 어쩌고 하면서 끝까지 씹더니."

메이린이 픽 웃으며 대꾸했다.

"아직도 그거 일 맘에 담고 있었어? 보기보다 속 좁네."

엘리사의 안면근육이 살짝 꿈틀했지만 그 이상의 포커페이스 변화는 없었다. 그녀가 툭 내뱉듯 말했다.

"알 만해. 손 안 대고 코 풀기. 자기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이기적인 심보."

그 말에 엘리사 주위의 학생들이 싸한 분위기가 되었다. 대놓고 살벌한 눈빛을 보내며 압박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카미바레즈가 당황해서 엘리사와 메이린을 샥샥 번갈아 보았지만 메이린은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넌 너무 자기중심적이라서 문제야. 사람은 네 장기 말이 아니거든? 누구든 네 말에 따를 거라 생각하지 마."

"......."

엘리사가 입술을 깨물며 등을 돌렸다. 펄럭거리는 제독 코트의 소매가 바람에 흔들렸다.

"이번 일은 기억해 둘게."

저택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주위를 다른 학생들이 호위하듯 뒤따랐다.

"괘, 괜찮아요 메이린? 네임드를 그렇게 자극할 필요는......!"

"됐어. 쟤는 저렇게 딱 잘라 말해야 알아듣는 타입이야."

메이린이 태연하게 턱을 괴며 문밖을 바라보았다. 카미바레즈도 나란히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때 카미바레즈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왜 그래? 카미."

"시몬! 시몬이 오고 있어요!"

"진짜? 어, 어디? 어딘데?"

두 사람이 호들갑을 떠는 동안 저택 밖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준비하라느니, 위치로 가라느니 하는 외침이 들렸다. 엘리사는 아예 마력 확성기까지 들고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아......!"

마침내 메이린의 눈에도 보였다. 저 멀리 언덕에서 시몬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인물 조합이 이상했다. 느긋한 걸음걸이로 저택을 향해 다가오는 시몬의 오른편에는 로레인이, 심지어 왼편에는 상상도 하기 싫었던 인물이 보였다.

'세르네가 왜 시몬이랑?!'

메이린이 벌떡 일어났다.

틀림없다. 시몬이 그녀의 능력에 당한 것 같다.

기겁한 메이린이 주섬주섬 교복 상의를 걸치기 시작했다.

"준비해! 카미! 아무래도 시몬이 세르네의 노리개가 된......."

"아,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카미바레즈가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 쪽을 가리켰다.

시몬이 뭐라고 입을 열자 로레인이 웃었고 세르네가 발끈하며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정신지배에 당했다기엔 뭔가 그림이 정상적이다.

'근데 쟤는 왜 세르네랑 친한 척하는 건데!'

메이린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그때.

-잠깐만! 너희들에게 제안할 게 있어.

마력 확성기로 증폭된 엘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녀가 말한 '너희들'은 시몬 일행 세 명을 뜻했다.

-우린 너희와 싸울 생각이 없어. 그냥 보내주는 대신.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엘리사의 시선은 세 사람 너머를 향해 있었다.

-저것들을 막는 데 협조해 줄 수 있을까?

세 사람도 뒤를 돌아보았다.

강자의 등장에 저택 주위에서 눈치만 보던 학생들이 전부 몰려들고 있었다. 그 숫자는 적어도 50명이 넘어갔다.

'아차차.'

'들켰다.'

그들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로레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세르네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네요."

슈웅.

마력 확성기를 들고 있던 엘리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파악! 소리와 함께 머리 위의 나무에 깃털이 틀어박혔다.

"감히 누구한테 명령하는 거죠?"

세르네가 서늘하게 웃었다.

엘리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그냥 간단히 넘어갈 수는 없었다.

"좋아."

팀원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그녀가 악에 받친 표정으로 손가락을 딱 튕겼다.

웅! 웅! 웅! 웅! 웅!

허공에서 다섯 개의 아공간이 통째로 열리더니, 그 안에서 커다란 범선 다섯 척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태풍을 만나 난파된 배가 막 끌어 올려진 듯한 외형이었다. 선체는 낡고 녹슬었으며, 돛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거나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섯 척 모두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와아아아!"

"엘리사의 유령선이야!"

엘리사는 다소 특별한 사령학 지망생이었다. 스피릿과 칠흑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유령선'을 공중에 띄울 수 있었다.

대포들이 일제히 포문을 내려 시몬 일행과 후면의 학생들을 조준했다.

-선언한다.

엘리사가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택에 들어오는 누구든 쓸어버려. 드롭되는 텅패드 포인트는 방어에 참여한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배부하겠다. 나 엘리사가 보장해.

저택 곳곳에서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범선을 저렇게 하늘에 띄우다니......."

"진짜 이건 수준이 다르잖아!"

저택에 진입하려던 학생들이 동요하고 있는 반면, 세르네는 손바닥을 펼치며 우아하게 하품을 하고 있었고, 로레인은 여전히 관심 없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시몬도 어깨를 풀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돌파하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이 선두로 달리는 것을 신호로 그녀들도 뒤를 따랐다. 로레인은 달리면서 해골마를 꺼내 올라탔고 세르네는 두 발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특례들이 간다!"

"우리도 따라잡아!"

나머지 학생들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 하늘의 유령선이 위협적이긴 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 같네."

엘리사가 팔을 뻗었다.

"쓸어버려."

귀가 떨어질 것만 같은 포성과 함께, 포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수십 발의 칠흑 포탄들이 쏟아져 내려 지상을 초토화했다. 저택 앞의 숲이 순식간에 불꽃과 연기로 집어 삼켜졌다.

'장난 아닌데.'

포격으로 인한 연기 때문에 시몬은 주위를 분간할 수 없었다. 같이 왔던 로레인, 세르네와도 멀어졌다.

내려오는 포탄을 피해 정신없이 움직이던 시몬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뒤쪽으로 손짓했다.

쿵! 쿵! 쿵! 쿵!

자욱한 연기 속에서 미리 조립해 둔 머드 골렘이 튀어나왔다. 골렘이 시몬을 태운 채로 포화 속을 뚫고 돌진했다.

"고, 골렘이다!"

"소환학이면 시몬 폴렌티아야! 막아!"

저택 주위에 울타리까지 쳐둔 방어팀 학생들이 소리쳤다. 각종 원거리 투사체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사이로, 골렘은 정면돌파를 감행했다.

콰콰콰콰콰콰쾅!

모든 화력을 몸으로 버텨낸 골렘이 전차처럼 달려들어 울타리를 박살 냈다. 울타리 근처에서 버티고 있던 학생들은 그대로 충격에 날아가 버렸다.

"크윽!"

방어진이 한 방에 뚫렸다. 지키고 있던 학생들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골렘의 뒤에 찰싹 붙어 있는 시몬이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저 새끼 막......! 어어?"

어느새 바닥 곳곳에 스켈레톤의 뼈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시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본 네일 응용기 - 난장>

조각난 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회오리처럼 회전했다. 학생들의 얼굴을 때리거나 발을 거는 등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바닥을 구르거나 울타리에 머리를 박았다.

[소년! 앞을 조심해라!]

"네? 앞은 골렘이 알아서......."

터어어어어어엉!

갑작스러운 충격에, 골렘의 등 뒤에서 튕겨 나온 시몬이 흙바닥을 뒹굴었다.

흙맛을 느끼며 퉤퉤 침을 뱉은 그가 정면을 응시했다.

"헥토르......!"

놀랐다. 새까만 비늘 같은 것으로 상체가 뒤덮인 헥토르가 골렘과 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

골렘을 힘으로 붙들어 놓은 헥토르가 크게 소리쳤다.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내라!"

바빠죽겠는데 쟤는 왜 여기서 방해야.

시몬이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내리그었다. 머드 골렘에 힘이 더해지며 헥토르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헥토르의 다리가 후들거리며 딛고 있는 바닥이 움푹 내려앉았다.

"끄으으으으!"

헥토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핏줄이 투둑투둑 불거졌다. 이내 그가 입을 쩍 벌리며 목구멍에서 새까만 뭔가를 토해냈다.

용들의 상징적인 기술이라고 알려진 브레스(Breath).

헥토르의 입에서 쏟아져나온 검은 파장에 가슴을 강타당한 머드 골렘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후우! 허억!"

헥토르가 숨을 헐떡이며 자세를 다잡았다. 그는 상반신 전체가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시룡(屍龍)으로 변신하는 무어 가문 고유의 힘. 세간에서 부르는 무어 가문의 별칭은 '용의 가문'이었다.

헥토르가 함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머드 골렘도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부우웅!

골렘의 일격을 기민한 움직임으로 피한 헥토르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머드 골렘의 얼굴을 강타했다.

쩍!

머드 골렘의 얼굴에 금이 가며 주먹 모양의 흠집이 생겼다. 바닥으로 내려온 헥토르가 거칠게 연타를 퍼부었다.

쩌억! 콰득! 퍽! 으적!

비늘로 뒤덮인 두 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며 머드 골렘을 다지기 시작했다. 이내 팔을 거칠게 쳐올리며 어퍼컷을 날리자 골렘의 머리가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됐다!'

"너 뭐 해! 등신아!"

한 남학생이 그를 지나치며 소리쳤다. 헥토르는 뒤늦게 골렘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등 뒤에서 골렘의 핵만 쏙 빼간 시몬이 저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헥토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시몬 폴렌티아아아아아아아!"

격분한 헥토르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다리를 찢을 듯이 벌리더니 입을 벌렸다. 목구멍에서 거대한 칠흑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또 브레스냐!'

시몬이 골렘의 핵을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헥토르의 준비자세를 본 다른 학생들도 기겁하며 도망치고 있었다.

"이 미친놈이! 저택 쪽으로 그 기술을!"

"야! 야! 나 아직 있어!"

학생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흩어지고 있는 그때,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새빨간 섬광이 헥토르에게 닿았다.

충격을 받은 헥토르가 '커헉!'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시몬!!"

시몬이 고개를 들자, 앉아 쏴 자세의 카미바레즈가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카미! 덕분에 살았어!"

"호위할게요! 어서 저택으로!"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달렸다. 하지만 이번엔 나무 위에서 시몬을 노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특례 1번의 포인트는 절대 못 놓치지.'

엘리사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녀의 유령선 한 척이 포문을 열고 시몬을 향해 칠흑 대포를 조준했다.

"사격 개......!"

화르르르르륵!

하늘에서 집채만 한 흑염이 내려와 유령선을 덮쳤다. 화력에 크게 기우뚱한 범선의 포격은 애꿎은 지상을 폭사했고, 갑판에 불이 옮겨붙으며 무서운 속도로 불타기 시작했다.

"누, 누구야!"

엘리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어느새 그녀보다 더 높은 나무 위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메이린이 보였다.

"너! 돕긴커녕 방해를......!"

"어휴, 이 밥팅아."

메이린이 씩 웃으며 손바닥에 흑염을 일으켰다.

"사람은 네 장기말이 아니라 했지? 니가 저택을 틀어막으면 내 친구가 못 오는데 협조해 줄 것 같아?"

"이 망할!"

두 사람이 동시에 팔을 휘둘렀다.

포탄과 흑염이 격돌하며 사방에 쩌렁쩌렁한 굉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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