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4화
1학년 전원이 키젠에 돌아왔다.
다들 후유증이 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자 케라섬에서의 치열했던 나날들이 꿈처럼 느껴질 만큼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이클롭스 수행평가에서 결투평가, 섬 생존평가까지. 키젠의 커리큘럼들은 하나같이 학생들의 성장욕을 자극하고 동기유발을 불어넣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학생들은 시련을 겪으면서 여러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자신보다 뛰어난 학생들에 대한 선망과 질투심. 그리고 그동안 깔고 간다고 생각했던 열등생들의 급속 성장으로 인한 긴장감까지. 수행평가가 끝난 뒤의 수업 분위기는 언제나 좋았다.
물론 자극을 받은 건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준비해라."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는 저녁. 소환학 교수 아론은 시몬의 복원 기술을 봐주고 있었다.
소환학 수업에서 '복원' 관련 수업을 진행한 날에는 늘 이런 식이었다.
시몬은 이미 기존 과정의 복원 기술들을 마스터했고, 정규 수업에서는 더 배울 게 없었다. 그때마다 아론은 짬을 내서 시몬의 수준에 맞는 특별과외를 제공했다.
"준비됐습니다. 교수님!"
"시작해라."
아론의 신호가 떨어지자 시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옆에 서 있던 스켈레톤의 몸이 해체되어 시몬의 팔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촤자자자작!
시몬의 오른팔이 뼈로 뒤덮여 갔다. 길이가 긴 상완골과 대퇴골이 기둥처럼 중심을 잡고 그 사이를 작은 뼈들이 오밀조밀하게 자리했다. 이어서 뼈와 뼈 사이에 칠흑이 흘러나와 연결되며 관절의 형태를 이루었다.
이게 바로.
'팔만 집중해서 뒤덮는 본 아머(Bone Armour)!'
'본 아머'는 스켈레톤의 뼈로 갑옷을 만들어 몸을 보호하는 방어형 복원기술이다. 시몬은 이렇게 팔만 감싸는 형태를 간단히 '건틀릿 모드'라고 이름 붙였다.
무려 세 번 연속 성공. 이제 제법 속도와 안정성이 갖춰졌다.
신이 난 시몬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거나 아령을 드는 것처럼 팔을 위아래로 무게감 있게 흔들어보았다. 맨손보다는 빽빽한 느낌이었지만 확실히 힘이 느껴졌다.
'천재는 천재군.'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는 아론은 연신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목 뒤는 땀으로 흥건했다.
복원 기술은 엄연히 2학년 때나 배우는 정규기술이다. 그런데 시몬은 이미 본 스피어를 기반으로 한 '본 네일'이라는 자신만의 기술을 창조해서 실전에서도 써먹을 만큼 숙련도를 올렸다.
급기야 이제는 복원 기술 중에서도 특히 어렵다는 '본 아머'의 응용기술마저 완성했다.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습득속도였다.
"교수님!"
시몬이 아론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타격도 시험해 봐도 될까요?"
"......물론이다."
시몬이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근처의 나무 앞에 섰다.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본 건틀릿을 착용한 팔을 뒤로 당긴 다음, 힘찬 기합성과 함께 나무를 때렸다.
터어엉!
굵직한 타격음과 함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와! 이게 칠흑도 두르지 않은 맨손의 위력인 거지?'
시몬이 감탄한 표정으로 오른팔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아론이 설명을 시작했다.
"방금 체감했다시피 본 아머는 방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스켈레톤 본연의 힘과 칠흑을 '완력'으로 치환할 수 있지. 일종의 강화 외골격 슈트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시몬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 아머는 조립하는 형태에 따라, 그리고 사용하는 스켈레톤에 따라 천차만별의 효과를 낸다. 키젠의 네크로맨서들도 본 아머를 사용하는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니까. 물론 이런 개성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본인에게 맞는 본 아머를 스스로 연구해야 해."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아론이 팔짱을 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전신 본 아머를 준비해 보도록."
"넵!"
물론 아론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걸 1학년에게 연습시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는 걸.
그래도 시몬은 시도했다.
전신 본 아머는 최소 두 기의 스켈레톤을 소모한다. 두 기의 스켈레톤들이 뼈들로 분해되어 바닥에 떨어졌고, 그것들이 날아와 시몬의 몸에 착착 달라붙었다. 가슴과 팔에 이어 다리까지 적절하게 뼈들이 들어찬다.
그러나.
후두두두둑!
잠시 팔에 신경 쓰는 사이 흉부 쪽의 갑옷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부위 간의 밸런스가 깨지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 관절 부위가 무너져 내리니 답이 없었다.
시몬이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잘했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아론은 드물게 칭찬을 했다.
"한쪽 팔에만 본 아머를 두르는 것과, 전신에 본 아머를 입는 건 차원이 다른 난이도다. 조급함을 느낄 필요는 없어."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렇게 오늘도 개인 수업이 마무리됐다.
'아으, 너무 좋다.'
시몬은 대만족이었다. 소환학 수업에 복원을 가르치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스켈레톤들을 회수했다.
아론은 근처의 벤치에 앉아 시가를 입에 물었다.
후우. 하고 연기를 뿜어낸 그가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엔 새로운 임무기간이군."
"네, 그러네요."
시몬은 이번 '임무'를 정말로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골렘을 사느라 돈이 엄청 쪼들려졌고, 딕에게 한 푼 두 푼 빌리는 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정식으로 학비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임무는 시몬의 입장에서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무엇보다 키젠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군단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무대였고, 운이 좋으면 새로운 에이션트 언데드를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혹시 생각해 둔 임무는 있나?"
"아뇨. 나중에 리스트가 나오면 보고 결정하려고 합니다."
아론이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팁을 하나 알려주지. 만약 리스트에 마음에 드는 임무가 없다면, 가만히 기다려 보는 것도 방법이다."
"......네?"
"말 그대로의 의미다. 넌 아직 특례 1번 입학생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서 잘 몰라."
아론이 시가를 손가락에 끼며 말을 이었다.
"조금 더 네가 가진 위치를 이용하도록."
뭔가 퀴즈처럼 알쏭달쏭한 팁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아론은 시가를 손가락으로 툭툭 때리며 쓰레기통에 집어놓고는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돌아가자."
"아, 넵!"
* * *
다음 날 수업이 끝난 뒤, 아론의 말대로 의뢰 게시판이 기숙사에 설치되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의뢰서를 살펴보고 있었다. 색깔별로 다른 네 개의 게시판이 보인다.
하얀색 - 로크섬 내 임무. 프리스트 충돌 가능성 없음.
파란색 - 암흑연합 내 임무. 프리스트 충돌 가능성 극히 낮음.
빨간색 - 중립지대 내 임무. 프리스트 충돌 가능성 높음.
검은색 - 신성연방 내 임무. 프리스트와 충돌함.
"저번엔 로크섬에서 꿀 빨았으니까, 이번엔 나가야겠지?"
"중립지대 수색 임무 같이할 사람 있어?"
왁자지껄한 다른 학생들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시몬과 피어는 네 개의 게시판을 꼼꼼하게 살폈다.
[없다!]
피어가 말했다.
[아무리 봐도 대장 놈들이 관여했을 만한 사태가 보이지 않아. 쯧! 대륙이 너무 평화로워도 문제라니까!]
'으음.'
시몬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임무가 지나치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에이션트 언데드의 흔적과 임무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으니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건 하나.]
피어의 시선이 검은색 의뢰서로 향했다.
[무수한 이빨 자국과 산 채로 뜯어먹힌 시신이라. 좀비들을 이끄는 프린스 놈의 소행으로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론 확실하진 않군. 그렇다고 직접 가서 알아보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
'네, 검은색 의뢰서는 교수의 허락을 받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이번엔 고액 의뢰 위주로 살펴보았다. 최근 골렘을 사면서 느낀 거지만 네크로맨서는 자본금이 정말 중요했다.
'끙.'
하지만 고액 의뢰도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저번에 500골드 넘게 벌어들이고 눈이 높아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아쉬웠다.
'한번 아론 교수님의 팁대로 해봐야겠다.'
시몬의 입장에선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 임무가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임무가 필요했다.
"시몬! 정했어?"
이번에도 딕은 하얀색 의뢰서를 집어 들고 있었다.
"아직이야. 근데 너 이번에도 하얀색 하려고? 계속 쉬운 임무만 하면 나중에 힘들어지지 않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법!"
딕이 의뢰서를 입에 물고 교복 재킷을 벗어서 어깨에 들쳤다.
"키젠은 뭐 하나 삐끗해서 잘못되면 언제든지 퇴학당할 수 있는 곳이잖아? 하루하루 알뜰하게 써야지!"
"알뜰하게 쓰는 게 로크섬 내 임무냐......."
"흐흐흐, 다 생각이 있다고. 그보다 빨리 야식이나 먹으러 가자! 야식!"
* * *
다음 날.
시몬은 임무를 등록하지 않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카미바레즈는 이번엔 파란색 임무에 도전하기로 했고, 메이린은 아직 케라섬에서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며 빠르게 하얀색 임무를 끝내고 기숙사에서 푹 쉬기로 했다.
"콜록! 콜록! 콜록!"
그리고 오늘의 첫 수업은 맹독학.
"켈록! 켈록! 미안하군. 오늘도 부탁하네!"
"네, 교수님. 들어가셔서 푹 쉬세요."
맹독학 교수 '랭 슈트라우스'는 갈수록 병세가 심해졌다. 수업을 진행하다가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고, 수석 조교인 프란체스카가 대신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엔 피를 토하는 빈도가 더 높아져서, 이론수업까지 프란체스카가 진행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아예 랭이 수업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학생들은 랭의 건강에 대해선 순수한 마음으로 걱정했지만, 내심 프란체스카가 교탁에 올라와 주기만을 기다렸다.
랭의 수업은 졸음과의 싸움이었지만, 프란체스카의 수업은 그 어떤 정규 교수들 못지않은 전문성과 역동성이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이제 그만 랭은 은퇴하고 프란체스카가 뒤를 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말 하긴 쫌 그렇지만, 철저한 실력지상주의 교풍인 키젠에서 랭 교수님은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해."
메이린은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프란체스카 지지파였다.
"학생들에게만 그렇게 살벌한 경쟁을 강요하고, 교수들은 과거의 명성으로 제자리에 안주해도 된다는 거야? 쫌 아니지 않아?"
"그러니까, 그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니까."
딕은 현실 유지파였다.
"키젠 교수라는 자리는 변동이 생기면, 해당 교수랑 휘하 조교들까지 싹 다 학교에서 짐 빼야 해. 그 자리를 다른 교수와 조교들이 채우는 거지. 정권이 통째로 바뀌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시몬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딕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프란체스카 쌤이 유능한 걸 누가 몰라? 나도 계속 수업 듣고 싶지. 근데 랭 교수님이 물러나면 조교 쌤도 같이 떠나야 해."
"으으, 복잡하네."
메이린이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카미바레즈가 물음을 던졌다.
"프란체스카 조교 선생님이 키젠 교수가 될 수는 없는 건가요?"
"바로 교수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지."
딕이 손가락을 휙휙 흔들었다.
"조교는 키젠의 교육자와 하수인 사이에 있는 조금 특수한 신분이야. 엄밀히 말하면 교육자보다는 수업 도우미에 가깝지."
메이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우미라니? 말 가려서 해."
"인식이 그렇단 거야. 물론 교수의 추천과 조교 경력을 인정받아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건 가능하지만, 조교가 바로 교수가 되는 건...... 거의 뭐 네프티스 님 차원에서의 움직임 정도는 있어야 가능할 거야."
저벅.
발걸음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자, 딕과 7조 조원들이 모두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15분 쉬는 시간이 지나고 프란체스카가 강의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
그리고 그녀는 시몬 일행 쪽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